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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토크쇼 <건축술사>의 두 건축가 이야기

건축가 신현보·정예랑

Text | Bora Kang
Photography | Siyoung Song

좋은 집의 조건은 무엇일까? 아파트는 정말 나쁜 주거일까? 반려견 주인이 모여 사는 공동주택은 이상할까? 국내 최초 건축 토크쇼 에 출연 중인 두 건축가를 만나 좋은 집, 나쁜 집, 이상한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분 모두 <빌리브> 애독자라고요. 그동안 읽은 인터뷰나 기사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나요?

(신현보) 홍콩에 사는 이탈리아인 요가 강사의 작은 집 이야기요. 처음에는 4평짜리 집에 산다기에 좁은 방에 요가 강사가 몸을 구기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읽어보니 전혀 다른 내용이더라고요.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는데, 특히 ‘임시로 머물 공간을 돈을 들여 꾸며야 하는가?’라는 관점에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정예랑) 저는 ‘집다운 집’에 대한 기사요. 집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통해 집의 본질적인 의미를 되새기게 만드는 글이었어요. 그게 제가 <빌리브>를 좋아하는 이유인 것 같아요. 전문용어나 어려운 설명 없이 자연스럽게 집과 건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요.



동료 건축가들과 함께 ‘건축술사’라는 이름의 유튜브 토크쇼에 출연하고 있어요.

(신현보) 원년 멤버였던 김동희 건축가와 주거 문화 미디어 ‘phm ZINE’이 함께 기획한 프로젝트예요. 처음에는 부담스러워서 출연을 주저했죠. ‘내가 건축에 대해 이렇게 말해도 되나?’ 하는 망설임도 있었고요.

(정예랑) 저도 마찬가지예요. 건축가들이 의외로 외곬이라 앞에 나서서 말하는 걸 꺼리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래도 막상 해보니 걱정했던 것보다 좋은 점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영상을 보고 저를 찾아오는 건축주도 생기고, 주제에 따른 제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도 많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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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너 명의 건축가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건축주와 설계비를 조율하는 과정 등 ‘내부자들’의 뒷이야기를 듣는 즐거움도 쏠쏠했고요.

(정예랑) 요즘은 건축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매체가 워낙 많잖아요. 그러다 보니 대중이 잘못된 정보를 얻을 확률도 그만큼 높아진 것 같아요. 방송을 통해 그런 오류를 바로잡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건축가로서 대중과 좀 더 친근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싶기도 했고요.



서로의 의견이 미묘하게 충돌하는 지점을 보는 재미도 있더군요. 단독주택과 아파트에 대한 의견을 나눌 때 특히 그랬죠. 단독주택의 자유로움을 강조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아파트의 편리함을 높이 사는 분도 있었어요.

(신현보) 전 어려서 한 아파트에 오래 살아서인지 아파트에 대한 추억이 많아요. 그래서 아파트를 ‘삭막한 주거’로 단정 짓는 분들에게 반발심이 좀 있죠. 어릴 때 친구들과 놀던 복도 계단이며 아파트 상가 같은 곳이 저에게는 그들이 말하는 골목길이나 다름없거든요. 집을 부동산 가치로만 재단하는 현실이 건축가로서 마음 아프지만, 그렇다고 단독주택만이 인간적인 주거이고 거기서만 개인사가 제대로 쓰여진다는 식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그렇게 말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단독주택의 비율이 너무 적기도 하고요.




“요즘은 건축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매체가 워낙 많잖아요. 그러다 보니 대중이 잘못된 정보를 얻을 확률도 그만큼 높아진 것 같아요. 방송을 통해 그런 오류를 바로잡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단독주택의 독립성과 공동주택의 편리성을 갖춘 소규모 공동주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어요. 코리빙co-living처럼 제법 본격적인 형태의 공유 주택도 등장했고요.

(정예랑) 필연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집값이 너무 오른 데다 내 땅에 내 집을 짓는 일도 물리적으로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니까요. 저는 이제 코리빙, 코워킹의 시대를 지나 공유에 대한 방법론을 고민하는 시기가 올 거라고 봐요. 공간을 어디까지 공유할 수 있을지, 언제 어떻게 공유해야 할지, 대상을 가족 단위로 확장할 순 없을지, 1인 가구뿐 아니라 싱글과 가족, 싱글과 노인의 교집합을 찾아볼 순 없는지 생각해보는 시기요.

(신현보) 동의해요. 전 특히 소규모 공동주택이 주거 문제에 대한 많은 해답을 가져올 거라고 예상해요. 그 과정에서 프라이버시에 대한 한국인의 생각이 어떻게 변화할지도 궁금하고요.



개인적으로 꼭 한번 짓고 싶은 주택이 있다면요?

(신현보) 예전에 ‘멍집Mungzip’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1층은 반려견을 위한 게스트하우스, 2층은 단독주택으로 이루어진 곳이에요. 반려견의 눈높이를 고려해 모든 창문을 바닥까지 내리고, 바닥 난방 대신 공조 방식을 적용해 시원한 바닥을 좋아하는 반려견들이 편안하게 배를 깔고 누울 수 있도록 했죠. 객실에 주방을 없애고 공용 식당을 마련해 투숙객들이 자연스럽게 교류하도록 유도했고요. 기존의 애견 민박이 ‘반려견 동반이 가능한 일반 숙박 시설’이라면 멍집은 애초에 반려견을 위한 공간으로, 새로운 개념을 많이 제시했다고 생각해요. 기회가 된다면 그에 대한 연장선으로 반려견 공동 케어가 가능한 공유 주택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일종의 공동 육아처럼 모두가 합심해서 서로의 반려견을 보살피는 환경을 조성하는 거죠. 주인이 안심하고 여행도 떠날 수 있게요.




신현보, ‘멍집’ ⓒ변종석


정예랑, ‘가거지지可居之地’ ⓒ노경




한국의 주거 환경에서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뭘까요?

(정예랑) 자연이라고 봐요. 하늘을 볼 수 있는 틈, 발로 밟을 수 있는 땅, 바람이 통하는 길 등 자연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요. 그러니 다들 집 안에 조그만 화분 하나라도 들이려 하고요. 그래도 요즘 짓는 셰어하우스나 코하우징을 보면 전에 비해 자연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졌어요. 어쩌면 아파트도 그런 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해요. 아주 작은 크기의 중정을 세대별로 조성하는 식으로요.



건축가로서 공간이 삶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실감하나요?

(신현보) 그럼요. 그러려고 노력하는 직업인걸요. 얼마 전에 제가 지은 가정집의 건축주 부부를 만났는데, 아내분이 한 말이 재미있었어요. 자기가 책 읽는 장소로 애용하던 공간이 어느새 남편 차지가 됐다며 웃더라고요. 남편이 그 공간을 너무 마음에 들어한다면서요. 그런 피드백이 저는 너무 즐거워요. 제가 만든 공간의 용도를 건축주 스스로 규정함으로써 건축과 사람 사이에 어떤 교류가 일어나는 셈이니까요.




“집에 대한 콘텐츠가 많아진 건 일단 좋은 현상이라고 봐요. 우리나라에서는 남의 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으니까요. 사람들이 그렇게 간접적으로나마 다양한 집을 접하면서 내가 살고 싶은 집은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내리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평소에 ‘이건 정말 직업병이다’ 싶은 순간이 있다면요?

(정예랑) 건물에 들어서면 재료와 재료가 만나는 부분을 유심히 봐요. 벽과 바닥이 만나는 곳, 천장과 벽이 만나는 곳. 속된 말로 얼마나 ‘기깔나게’ 만들었는지 살펴보죠. 손으로 쓱 만져도 보고요.

(신현보) 저랑 똑같네요. 아내도 제가 건물 앞에서 머뭇거리면 “30분 시간 줄 테니까 만지고 와”라고 해요. 정확히 ‘만지다’라는 표현을 쓰더라고요.(웃음)



‘먹방’에 이어 ‘집방’의 시대가 왔다고들 합니다. <구해줘! 홈즈> 같은 부동산 중개 예능 프로그램이 1년째 큰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하고요.

(정예랑) 집에 대한 콘텐츠가 많아진 건 일단 좋은 현상이라고 봐요. 우리나라에서는 남의 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으니까요. 사람들이 그렇게 간접적으로나마 다양한 집을 접하면서 내가 살고 싶은 집은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내리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집방’에 대한 아쉬운 점은 없나요?

(정예랑) 건축을 좀 더 전문적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해요. 건축가, 시공사, 건축주의 ‘삼합’을 통해 하나의 집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거죠.

(신현보) 이왕이면 ‘서바이벌’보다는 ‘리얼’이면 좋겠어요. 예전에 건축 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연 제의를 받은 적이 있는데 서바이벌이라는 장르가 건축과는 잘 안 맞더라고요. 여러 명의 건축가가 경쟁 PT를 펼치면 건축주가 그중 마음에 드는 건축가를 고르는 형식이었는데 2주에 한 번 결과물을 내놔야 한다는 말에 바로 거절했어요. 잘못하면 대중에게 ‘2주 안에 완벽한 디자인이 나올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겠더라고요. ‘쿡방’은 요리사가 20년간 쌓은 노하우를 15분 만에 보여줄 수 있지만 건축은 달라요. 그보다는 훨씬 긴 호흡이 필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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