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봉동의 대대손손 물려 쓰는 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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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봉동의 대대손손 물려 쓰는 가구

언커먼하우스 정명희, 정영은, 강희철

Text | Bora Kang
Photography | Siyoung Song

언커먼하우스는 아버지와 딸이 함께 만든 원목 가구를 선보인다. 아버지의 40년 노하우를 바탕으로 국내에서 자체 제작하는 가구 이름에는 대부분 ‘대물림’이라는 단어가 붙는다. 그 말속에는 아버지가 딸에게 대물림한 가업의 의미, 더불어 이들의 가구가 대대손손 대물리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왼쪽부터) 언커먼하우스의 강희철, 정영은, 정명희







쇼룸 이름이 ‘문봉 리조트’인 게 재미있네요. 어떤 의도로 지은 이름인가요?

(정영은) 쇼룸이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문봉동에 있는데요, 고객이 이곳에 들어설 때 따뜻한 나라에 여행 온 듯한 기분을 느꼈으면 해서 지명 뒤에 ‘리조트’라는 단어를 붙였어요.



아버지인 정명희 사장님이 40년 넘게 가구를 만들어오셨다고요.

(정명희) 1981년부터 ‘에벤에셀’이라는 이름의 가구점을 운영하면서 한국적 요소를 살린 고가구를 제작했어요. 가구 산업이 부흥하던 시절에는 ‘에벤에셀이라면 믿고 맡긴다’는 평을 많이 들었죠. 그만큼 제가 만드는 가구에 대해 자부심이 있었고요. 그러다 시대가 바뀌면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주력 상품이던 장롱의 수요가 급격히 줄어든 데다 인건비가 올라가면서 국내 생산을 유지하는 게 전처럼 쉽지 않더군요. 가구 산업이 하향세를 걸으면서 가구 단지 전체가 위기를 맞기도 했고요.



지금은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가구를 만드는데, 그에 따른 어려움은 없나요?

(정명희) 과거에도 디자인 사무실을 따로 운영할 만큼 자체 디자인에 공을 많이 들였어요. 전부터 유행을 타지 않는 모던한 가구를 꾸준히 추구해온 터라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나이를 먹다 보니 제 가구가 요즘 친구들이 좋아하는 디자인과는 거리가 좀 있었어요. 딸과 함께 일하면서 그런 부분이 많이 보완됐죠. (버건디 컬러 테이블을 가리키며) 전 이런 색이 과연 팔릴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제일 잘 나가더라고요. 우리 세대와는 취향이 완전히 달라요. 요즘은 딸이 하는 말이라면 무조건 듣고 봅니다.




사진 제공 정영은



사진 제공 정영은







따님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어떤 분인가요?

(정영은) 전기 작업, 미장, 배관 수리 등 집과 관련된 일이라면 뭐든 척척 해내셨어요. 집도 직접 설계할 만큼 열정이 넘치셨고요. 아버지가 작업대에서 조각하는 모습, 일을 마치고 하얀 먼지를 털어내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어요.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재킷 안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 스케치하시던 모습도 떠오르고요.



따님인 정영은 대표는 직장인 시절 ‘이층집 여자’라는 예명으로 블로그에 오래된 아파트를 고치는 과정을 올려 뜨거운 호응을 얻었어요.

(정영은) 블로그를 시작한 건 아버지의 가구를 기록하기 위해서였어요. 40년 넘게 가구를 만들었지만 인터넷을 검색했을 때 그에 대한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게 안타까웠거든요. 마침 육아휴직 중이라 뭔가 새로운 일을 벌이고 싶기도 했고요. 이런저런 이유로 오래된 아파트를 고치는 과정을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는데 그게 운 좋게 포털 사이트 메인에 소개되면서 집을 기록하는 일에 더 재미를 붙인 것 같아요.



은행원으로 10년 근무했다고 들었어요. 어쩌다 아버지의 대를 잇기로 결심했나요?

(정영은)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가구업은 아버지의 일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결혼하고 제 집을 꾸미면서 아버지가 만들어준 가구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어요. 어느 순간 직접 제작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직장 동료이자 사업 선배였던 남편의 응원 덕에 용기를 낼 수 있었고요.



남편인 강희철 실장도 육아휴직을 내고 언커먼하우스에 출근 중이라고요.

(강희철) 네. 다행히 아내의 사업이 잘되고 있어서요.(웃음) 주말에는 제가 직접 배송하는 일이 많은데 그때마다 가구를 받은 사람들의 행복한 얼굴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껴요.



쇼룸이 서울이 아닌 일산, 그것도 다소 쇠락한 느낌이 드는 가구 단지 안에 있어요.

(강희철) 아내가 일산에서 태어나 쭉 이 동네에 살았거든요. 장인어른 댁이며 가구 공장도 전부 이 근처고요. 이런 환경이라면 저희가 지역사회를 위해 뭔가 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구 사업을 매개로 지역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키는 거죠. 실제로 일산, 파주 등지에서 활동하는 작가들과 협업하는 게 올해 저희 목표예요. 언커먼하우스가 단순한 가구 브랜드가 아닌, 로컬 창작자를 지원하는 온·오프라인 플랫폼이 되었으면 해서요.

(정영은) 한편으로는 저희가 사는 동네로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찾아오신 분들에게 가구 단지의 역사에 대해서도 설명드리고요. 저희가 하는 일이 사양길에 접어든 가구 산업에 작은 불씨가 될 수 있게요.




“가구의 역할이 중요해요. 지금 저희가 사는 아파트도 일산 신도시 조성 당시에 지은 건물이거든요. 구조가 너무 천편일률적이라 가구 배치 과정에서 기존의 틀을 깨기 위해 노력했어요.”




한국에서 가구 만드는 사람으로서 한국의 주거 문화에 대한 고민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대표적인 주거 공간인 아파트의 경우 대부분 한정된 넓이에 비슷한 구조이니까요.

(정영은) 그래서 가구의 역할이 중요해요. 지금 저희가 사는 아파트도 일산 신도시 조성 당시에 지은 건물이거든요. 구조가 너무 천편일률적이라 가구 배치 과정에서 기존의 틀을 깨기 위해 노력했어요. 주방 식탁을 거실로 옮기고 그 자리에 커다란 아일랜드장을 두는 식으로요. 가구 하나만 바꿔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니까요.



인테리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가구 시장도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고 느껴져요. 값비싼 오리지널 빈티지 가구와 기성 브랜드 가구, 이케아의 삼파전 사이에 다양한 선택지가 생겼다고 할까요?

(강희철) 정확한 지적이네요. 저희가 딱 오리지널 빈티지와 이케아 사이의 리치 마켓에 속해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양쪽의 단점을 보완하는 게 목표고요.

(정명희) 예를 들면 북유럽에서 생산된 오리지널 빈티지 선반의 경우 원목이다 보니 온도에 따라 틀어지기 쉬워요. 저희가 만든 ‘대물림 시스템 선반’은 그런 오차를 물리적으로 조절할 수 있죠. ‘대물림 테이블’ 역시 다리 길이와 형태가 다양해서 아이가 다 자라 어른이 될 때까지 사용할 수 있고요.









대표님이 디자인이나 제작에도 깊이 관여하나요?

(정영은) 네. 제가 디자인한 가구에 아버지가 조각공예 요소를 더하는 식이에요. 마치 영화 속 ‘이스터 에그(숨은 메시지)’처럼요.(웃음)



멋지네요. 자녀들 입장에서는 할아버지와 엄마가 만든 가구 속에서 자라는 셈이니까요.

(정영은) 저희가 여느 브랜드와 다른 점이 바로 그 부분인 것 같아요. 저희가 만든 가구를 직접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거요. 집이 사실상 첫 번째 쇼룸 역할을 한다고 할까요? 저희는 제품을 제작하면 집에서 일정 기간 사용해본 다음 수정과 보완을 거쳐 상품화하죠. 그래서 단골 고객들은 SNS에 올라온 저희 집 사진을 보고 신제품을 미리 예측하기도 하고요.



벽에 고정하는 시스템 선반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선반을 제작하고 있어요. 선반, 특히 시스템 선반은 한국의 주거 공간에서 자주 사용하는 물건이 아닌데요.

(정영은) 맞아요. 선반은 국내에서 비주류 가구에 속하죠. 아이러니하게도 이케아 한국 공식 웹사이트에서 검색어 1위가 ‘선반’이라고 해요. 그럼에도 목재 선반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회사는 국내에 없고요. 공예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고 인테리어에서 오브제의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개인이 아끼는 물건을 진열해둘 공간이 필요해졌어요. 이럴 때 선반이 아주 적절한 역할을 하죠.



아버님과 따님이 각각 본인 세대에 맞는 가구를 하나씩 추천해준다면요?

(정영은) ‘대물림 테이블’을 추천해요. 저처럼 집에서 육아와 살림을 병행하며 다양한 작업을 겸하는 분들에게 꼭 써보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정명희) 저는 ‘기와 선반’을 추천할게요. 이름 그대로 선반의 양 끝부분이 기와 형태로 되어 있죠. 진열과 수납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기능적인 가구라 연령 구분 없이 만족스럽게 쓸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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