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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여는 영화의 만찬

영화 전문 기자 민용준, 미식 전문 기자 이주연

Text | Bora Kang
Photos | Siyoung Song

40년 넘은 빌라를 고쳐 사는 이들 부부는 주말이면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영화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낯선 이들과 거실에 둘러앉아 '기생충'을 보며 짜파구리를 먹고, '벌새'를 보며 감자전에 청주를 기울인다. 프리랜서인 이들에게 평일의 집이 치열한 일터라면, 주말의 집은 취향의 공동체를 위한 느슨한 살롱에 가깝다.








옥인연립은 집 전체를 감각적으로 개조해서 사는 분이 많은 곳으로 유명해요. 어쩌다 이곳과 인연이 닿았나요?

(이주연) 원래는 바로 건너편 빌라에 살았어요. 굉장히 좁은 골목에 빌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이었는데 골목을 빠져나올 때면 정남향에서 볕을 듬뿍 받고 있는 옥인연립이 눈에 들어왔죠.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저기 살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저희 집은 해가 잘 안 들었거든요.

(민용준) 그때만 해도 저는 옥인연립에 대해 좀 부정적이었어요. 그런데 어차피 집 보는 건 공짜니까 한번 둘러나 보자는 마음이었죠. 그렇게 세 집 정도 봤는데 둘이 살기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만 모두 수리를 한 집이라 그 점이 아쉬웠어요. 저희는 아예 고치지 않은 집을 원했거든요. 며칠 후 부동산에서 연락이 와서 이 집을 봤는데 정말 하나도 손을 안 댄 상태였어요. 열쇠를 돌려 잠그는 나무 창문이 그대로 있을 정도로요. 보는 순간 고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딱 들었죠.



40년이 넘은 주택인데 살면서 불편한 점은 없나요?

(민용준) 집이 3층이라 엘리베이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는데 그것 말고는 딱히 없어요. 아, 크기에 대한 아쉬움은 있어요. 살림이 점점 늘어나서요. 덕분에 물건을 버리면 공간이 생긴다는 단순한 진리를 체감하고 있죠.








집에 있으면서 가장 좋은 순간은 언제인가요?

(이주연) 오후에 창밖 보면서 앉아 있을 때요. 지대가 오르막인 데다 뒤에 건물도 없어서 앞뒤로 트인 풍경이 제법 볼만해요. 뒤편에 두충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잎이 다 나오면 정말 아름답거든요. 나무 키가 이 집 창문 높이랑 비슷해서 마치 저희를 위해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요.



결혼 후 쭉 서촌에 살고 있어요. 주민으로서 이 동네의 매력을 말해본다면요?

(민용준) 전 사실 서촌이 어디 있는지도 잘 몰랐어요. 아내 말을 듣고 처음 와봤는데 동네가 서울답지 않게 고즈넉하더라고요. 결혼 전에는 강남의 번화가에 살았는데, 밤에 창문을 열면 “위하여!” 같은 건배사가 하루에도 열 번씩 들려서 집에 와도 계속 밖에 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 동네에 살다 보니 집에 들어온다는 느낌이 뭔지 알겠더라고요.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도 전보다 더 즐거워지고요. 한마디로 집에 있는 시간이 엄청 좋아졌다고 할까요? 그 부작용으로 회사를 그만뒀나 싶긴 합니다만.(웃음)




“결혼 전에는 강남에 있는 번화가에 살았는데, 밤에 창문을 열면 “위하여!” 같은 건배사가 하루에도 열 번씩 들려서 집에 와도 계속 밖에 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주말마다 집에서 ‘시네밋터블Cinemeet-able’이라는 행사를 열고 있어요. 정확히 어떤 성격의 모임인가요?

(민용준) 낯선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특정 영화와 그에 어울리는 음식을 매개로 이야기를 나누는, 어찌 보면 굉장히 소꿉놀이 같은 행사예요. 제가 준비한 프로그램을 통해 영화에 대한 애정을 함양하고, 아내가 준비한 음식을 통해 영화를 한 번 더 음미하는 자리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저희 둘 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다 보니 존재 자체가 플랫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각자가 잘하는 걸 서비스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예요.

(이주연) 첫 모임의 주제는 <기생충>이었고 지금은 <벌새>로 손님을 모집하고 있는데요, 신청자 대부분이 <기생충> 때 참석했다가 재방문하는 케이스예요. 그때 너무 좋았다며 친구를 데려오는 분도 계시고요. 집이 좁아서 한 회당 인원을 4명으로 한정했는데 덕분에 분위기가 더 정답고 아기자기해지는 것 같아요.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이 남의 집 거실에서 자유롭게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이 재미있죠.

(민용준)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저희 집을 구경하러 온다는 생각도 들어요. 원래 남의 집 구경이 제일 재미있잖아요. <구해줘! 홈즈>라는 프로그램이 인기 있는 것도 그런 이유일 테고요.



영화 전문 기자인 남편과 미식 전문 기자인 아내의 장기가 절묘하게 결합된 행사네요. 수익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요.

(민용준) 주말마다 행사를 준비하는 게 보통 일은 아닌데요,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나면 다음 날 기분이 굉장히 좋더라고요. 이건 좀 과격한 농담이지만 ‘이거 하려고 결혼했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요.

(이주연) 맞아요. 손님들 덕에 오히려 저희가 에너지를 받는 기분이에요. ‘이거 하려고 이때까지 이혼 안 했나?’ 싶을 정도로요.(웃음)





ⓒ 이주연




모임을 위해 각자 어떤 준비를 하나요?

(이주연) <기생충> 때는 짜파구리에 국과 채소 반찬을 곁들여 냈고요, <벌새>는 영화에 나온 감자전과 솥밥, 복숭아를 넣은 청주가 기본 구성이에요. 여기에 저희가 특별히 아끼는 술이나 음료를 웰컴 드링크로 내드리고요. 다음 회차에는 동네에 있는 오래된 떡집에서 떡을 몇 가지 사서 웰컴 푸드로 대접하려고요. 영화에 나오는 우롱차랑 같이요.

(민용준) <기생충>은 영화에 대한 정보가 이미 시중에 너무 많이 나와 있는 터라 영화 자체보다는 감독의 전작 위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어요. 봉준호 감독의 초기 단편부터 최근작까지 점층적으로 짚어가는 식으로요. 영화와 음식에 대한 전문성을 내건 행사인 만큼 각자의 파트에서 손님들에게 확실한 만족감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낯선 사람을 집으로 초대하는 게 마음에 걸리진 않았나요?

(민용준) 얼마 전 ‘어반스페이스오디세이’라는 곳에서 영화 관련 모임을 진행했는데요, 그때의 경험이 시네밋터블을 기획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어쨌든 돈이 오가는 행사이고 서로 공통된 취향 아래 모이는 자리인 만큼 이상한 사람이 오진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죠.



그동안 어떤 분들이 오셨나요? 참여한 게스트 중 각별히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면요?

(민용준) 이제까지 총 일곱 번 진행했는데 직업군이 정말 다양했어요. 일반 회사원도 있고 영화 미술감독 일을 하시는 분도 있고요.

(이주연) 한번은 저랑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고 지내던 분이 오셨는데 직업이 정치부 기자라고 하더라고요. 인스타그램에서는 서로 음식 이야기만 주고받던 사이라 깜짝 놀랐어요. 그런 의외의 만남이야말로 이 모임의 매력이 아닐까 해요.








살롱, 소모임, 소셜 클럽 등 최근 들어 다양한 형태의 모임이 생겨나고 있어요. 두 분처럼 집에서 사람들과 취향을 공유하는 경우도 부쩍 눈에 띄고요.

(민용준) 타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아요. SNS 덕에 타인의 삶을 관찰하기는 전보다 쉬워졌지만 막상 스마트폰을 끄면 혼자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거든요. 너무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는 동시에 실제로 만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보니 관계에 대한 갈망이 커지는 거죠. 예전에도 ‘다모임’이나 동호회 같은 커뮤니티가 있긴 했지만 요즘은 전보다 목적성이 훨씬 강화된 분위기예요. ‘취향의 공동체’라는 확실한 유대감이 있으니 서로 어긋난 대화를 할 가능성도 그만큼 줄어들었고요.




“앞으로 집을 플랫폼 삼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볼 생각이에요. 어쩌면 이 공간 자체를 누군가에게 잠시 빌려줄 수도 있겠고요. 그렇게 사람이 끊이지 않는 집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시네밋터블의 향후 계획을 들려주세요.

(민용준) 세 번째 주제로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를 생각하고 있어요. 영화에 나오는 우메보시나 평양냉면을 재현해보면 어떨까 싶고요.

(이주연) 저희 둘 다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인간관계가 전보다 좁아진 느낌인데요, 이런 때에 시네밋터블이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 집을 플랫폼 삼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볼 생각이에요. 어쩌면 이 공간 자체를 누군가에게 잠시 빌려줄 수도 있겠고요. 그렇게 사람이 끊이지 않는 집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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