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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의 맛을 판매하는 슈퍼마켓

슈퍼막셰 바이 에피세리 꼴라주 오너 셰프 이형준

Text | Kakyung Baek
Photos | Siyoung Song

어렸을 때 디자이너가 꿈이었다는 이형준은 음식만큼이나 공간을 사랑한다. 13년 동안 서울 곳곳에 봉에보, 그랑 아무르, 에피세리 꼴라주 등 감각적인 프렌치 레스토랑을 열었고, 최근에 프랑스 식료품점의 활기를 재현한 슈퍼막셰 바이 에피세리 꼴라주(이하 슈퍼막셰)를 시작했다. 공간에 대한 그의 각별한 애정은 배달 음식에 특화된 디지털 플랫폼까지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 드릴게요.
프렌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입니다. 최근에 문을 연 슈퍼막셰를 준비하기 전부터 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제가 셰프를 하게 된 것도 레스토랑이라는 공간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거든요.


셰프를 꿈꾸게 만든 그 레스토랑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르 가브로슈Le Gavroche라는 레스토랑이에요. 당시 영국에서 유학 중이었는데 요리사로 일하던 친구와 함께 그곳에 간 적이 있어요. 그전까지는 레스토랑에 별로 관심이 없었죠. 10파운드 이상 하는 음식은 사 먹어본 적도 없을 정도였으니까요.(웃음) 그런데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버거울 정도로 벅찬 기운을 느꼈던 것 같아요. 셰프는 물론이고 웨이터들까지 전부 화이트 가운을 차려입고 벽에는 샤갈의 그림과 찰리 채플린의 흔적이 보였죠. 테이블 세팅도 정말 멋있었어요. 은으로 된 식기와 조각까지 어느 하나 평범한 것 없이 눈길을 사로잡았죠. 당시 저는 디자이너가 꿈이었어요. 하지만 순수 미술, 건축, 그래픽 디자인 등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갈피를 못 잡고 있었고요. 그런데 그 레스토랑에 제가 원하는 여러 분야가 모두 존재하고 있더라고요. 그때 셰프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거죠.








오너 셰프이면서 새로운 브랜드를 만드는 기획자이기도 하죠.

제가 셰프로 일한 지 13년 정도 됐는데 그동안 1~2년에 한 곳씩 브랜드를 오픈했어요. 수마린, 에피세리 꼴라주, 그랑 아무르 등이 있어요. 저는 제가 원하고 만들고 싶은 공간을 먼저 설정하고 그 공간에 어울릴 만한 요리를 기획하는 방식을 선호해요.



공간에 대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공간을 중시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나의 장점은 무엇인지를 고민한 결과일 수도 있겠네요. 예를 들어 칼국수를 정말 잘 만드는 요리사가 있다면 그는 칼국수에 집중해서 자신의 비법을 연마할 거예요. 저는 다른 요리사들과 달리 어렸을 때부터 디자인과 순수 미술을 좋아했던 점을 좀 더 차별화하고 싶었어요. 예술 작가는 작품을 남기는데 셰프가 만든 요리는 물리적 형태로 남지 않는 게 아쉬웠어요. 특히 한국에서 프랑스 요리는 주식이 아니기 때문에 끊임없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야 해요. 손님들은 대개 특별한 요리를 기대하고 레스토랑을 찾거든요.




“결국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것은 공간에 대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공간이 마음에 들어야 일할 맛도 나고 계속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하지만 최근 코로나19 발생 이후 공간 개념에 대한 변화가 많았 것 같아요.

맞아요. 인식이 많이 달라졌어요. 슈퍼막셰는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계획을 고려해 만든 브랜드예요. 최근에는 슈퍼막셰의 메뉴를 HMR(짧은 시간에 간편하게 조리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대체 식품)로 개발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어요. 저 역시도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에는 배달 음식을 잘 먹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배달 음식에 관한 새로운 지점을 찾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슈퍼막셰에서 가장 신경 쓴 요소는 무엇인가요?

로고 플레이를 포함한 브랜드 아이덴티티 디자인이에요. 온라인을 주력으로 하는 곳이기 때문에 디지털 플랫폼에 노출되는 이미지에 신경을 많이 썼죠. 로고 디자이너와 브랜딩을 전문으로 하는 친구들과 함께 브랜드 이미지의 레퍼런스를 찾는 단계부터 전부 참여했어요.



로고를 활용한 인테리어가 돋보이고 굿즈도 인기가 많다고 알고 있어요.

제가 레스토랑을 오픈하면서 항상 느끼는 게 있어요. 한 레스토랑이 ‘어떤 오너 셰프가 있는 가게’로만 기억되는 거예요. 한 가게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게 오너 셰프밖에 없는 상황이요. 하지만 슈퍼막셰만큼은 레스토랑의 공간부터 요리 등 다양한 요소를 전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어요.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슈퍼막셰 로고를 활용해서 굿즈도 최대한 많이 만들고 트레이, 방향 표지판까지 세심하게 디자인했죠.












집에도 컬러풀한 가구와 취향이 녹아든 소품이 많나요?

레스토랑의 가구나 인테리어에는 신경을 많이 쓰는데, 집에는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마음 때문인지 그런 물건이 별로 없어요. 다만 이케아에서 산 유아용 플라스틱 가구가 많아요. 가격도 합리적인 데다 어른용보다 색깔이 더 예쁘거든요.(웃음)



그렇다면 요즘 살아보고 싶은 집이 있나요?

점점 집에 대한 개념이 협소해지는 걸 느껴요. 여러 지역에 저의 가게가 있고 그 가게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니까요. 집은 딱 잠만 자는 공간이면 된다는 생각이었는데, 최근에 덕수궁 근처에 새로 지은 아파트에 살아보고 싶더라고요. 발코니가 정말 큼직하고 창문으로는 덕수궁 마당이 내려다보이는 곳이에요. 물론 비싸서 지금 당장은 살 수 없지만 ‘여기서 살면 되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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