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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가 있는 문밖으로 나가고 싶은 집

건축가 알도 치비크

Text | Anna Gye
Photos | Aldo Cibic

앞으로 우리에겐 어떤 집이 필요할까? 디자인 전설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와 함께 멤피스 그룹을 이끈 이탈리아 건축가 알도 치비크는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밀라노의 43m²(약 13평) 아파트가 좋은 예라고 답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집은 기본적인 형태와 기능을 갖추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이웃이 문밖에 넘치는 집이다.







알도 치비크는 1989년 치비크 앤드 파트너스를 설립한 뒤 사회적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한 건축물에 대한 생각을 정립했고, 2010년 다학제 연구 센터 ‘치비크 워크숍’을 열어 서비스 디자인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우리에겐 어떤 집이 필요할까?’라는 물음에 끝없이 답해왔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코로나19 사태 전에는 1년 중 3분의 1을 다른 도시에 살았어요. 스튜디오가 있는 밀라노에서, 고향 비첸자에서,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퉁지 대학교가 위치한 중국 상하이에서 보냈죠. 그런데 요즘은 베니스와 가까운 비첸자 고향집에서 계속 지내고 있어요. 그래도 인터넷으로 사람들과 꾸준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위챗이나 줌을 통해 중국 학생들과 만나고 있죠. 다시 이동이 가능해지면 상하이로 건너가 6개월 정도 머물려고 합니다. 미래의 집과 관련한 다양한 사회 프로젝트가 상하이에서 진행 중이거든요.



‘우리는 어디에 어떤 집을 짓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문밖으로 나가고 싶은 집’이란 답을 하셨어요.

저는 오래전부터 부에 따른 위계형 거주지가 아니라 유럽의 임대주택처럼 누구나 살 수 있는 집을 설계하고 싶다고 말해왔어요. 집은 43m2(약 13평) 아파트처럼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고요. 사는 이에 따라 변화될 수 있도록 최대한 융통성 있고 중립적인 공간을 만들고자 해요. 중요한 것은 집 안이 아니라 집 밖입니다. 개인 공간과 연결된 공용 공간, 집과 관련한 서비스, 이웃, 조경 환경 등이 얽히고설키면서 활기 있는 군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죠. 이는 건축주의 마스터플랜 아래 미리 계획되는 것이 아니라 사는 이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쪽으로 형성됩니다.



살고 싶은 동네가 되면 집값이 올라가고 부동산 투기로 번지지 않나요?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매우 민감합니다. 집은 곧 재산으로 여겨지고요.

고가의 집에 살고 있어 행복한가요?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에 사는 사람일수록 건물에 애착이 없어요. 집 아닌 삶에 애착을 느끼죠. 생각해보세요. 몇 년 후 집값이 오르면 팔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으니 집에서 누리는 행복을 모르고 살아가요. 집이 곧 재산이란 생각은 참 비극적인 거예요.




“중요한 것은 집 안이 아니라 집 밖입니다. 개인 공간과 연결된 공용 공간, 집과 관련한 서비스, 이웃, 조경 환경 등이 얽히고설키면서 활기 있는 군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국가가 나서야 합니다.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하죠. 건축가도 함께 사회를 고민해야 합니다. 행복한 도시에 대한 고민을 모두 함께 할 필요가 있어요. 집은 더욱 다양한 형태가 되어야 해요. 소유냐 임대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미래의 주거 형태가 될 1인 가구 집은 클 필요도 없어요. 대신 공유 공간은 넓어야죠. 예지력 있는 전문가들이 함께 마을을 구성하는 데 참여하고, 교통 시설이나 쇼핑 시설 등 편의 시설이 주거지와 밀접하게 결합되어야 해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죠. 표본이 되는 좋은 집을 정부가 나서서 만들면 사람들 인식도 바뀔 거라고 생각합니다.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도 소개했던 프로젝트 ‘마이크로리얼리티Microrealities(2004)’, ‘리싱킹 해피니스Rethinking Happiness(2010)’ 등이 그런 미래 주택을 만들기 위해 시도한 것이에요. 나의 집이 아닌 우리 군락으로 소개하는 곳. 건물 집합체가 아닌 사회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죠.








작은 공간으로 충분하다(Mini is More)”라고 표현한 밀라노의 43m2( 13) 아파트를 자세히 소개해주세요.

반은 거실로 만들고 나머지는 복층 구조로 침실을 배치했죠. 부엌을 배치하고 남은 1평의 공간에 샤워 시설을 만들었어요. 부엌은 360도 회전하는 선반을 설치해 좁지만 넉넉하게 활용할 수 있고, 수납공간을 두어 불편함이 없도록 했습니다. 일이 중요한 사람은 중심에 테이블을, 휴식이 중요한 사람은 침대를 두고 사용할 수 있어요. 간편식이 늘어나고 있으니 부엌을 작게 만들거나 아예 벽 뒤로 감출 수도 있어요. 침실, 부엌, 거실 등 ‘공간’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닌 머물고 싶은 소파, 테이블, 침대 등 ‘쓰임’으로 구분되는 곳이에요. 시멘트와 석고 플라스터로 마감해 거주하는 이가 마음껏 알아서 꾸밀 수 있죠. 거주하는 이가 공간을 재분배하고 정리해서 사용하는 것이죠.



가구와 물건은 어떻게 고른 것인가요?

의도적인 중립적 환경은 예술 작품과 가구를 좀 더 생동감 있게 보여주죠. 가구와 물건은 대부분 직접 제작했어요. 제가 만든 테이블 주변에 놓은 의자는 토넷 체어, 테이블 위 사진은 포토그래퍼 파비오 존타Fabio Zonta 작품이고, 레드 컬러 캐비닛 주변에 걸린 초현실적인 그림은 안드레아스 슐체Andreas Schulze의 작품으로 침실 계단 위에도 걸려 있어요. 직접 제작한 소파와 미니 커피 테이블이 놓인 장소에는 디자이너 미켈레 데 루키Michele De Lucchi의 멤피스 디자인 체어를 놓았어요. 기본을 갖춘 집이죠. 저는 이 집에 들어올 때마다 보트 안에 있는 것 같아요. ‘저 문을 열면 어떤 재미있는 풍경이 보일까’ 하면서 잠시 머무는 장소 말이죠. 외부 환경이 좋아지고 밀접한 연결 고리가 생긴다면 도시 전체가 곧 집이 되죠. 집을 떠나는 순간이 즐거워지죠.



43m2( 13) 규모는 좁지 않나요?

더 작게도 만들 수 있었어요. 제가 그리는 미래의 집은 도시 안에 있어요. 활기찬 도시 중심에서 편리한 시설을 공평하게 이용하면서 살아가는 공동체죠. 1인 가구가 늘고 도시 인구 밀도가 높아지면서 집이란 공간에 할애할 수 있는 규모는 점점 줄어듭니다. 사람들은 더욱 크고 넓은 집을 추구하기보다 집이 작더라도 더욱 재미있고 활기찬 장소에 살고 싶어 하고요. 2003년 이탈리아 교정 시설에서 프리덤 룸Freedom Room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는데, 4m x 2.7m 공간이 전부였어요. 작은 공간 안에 저비용, 다기능 가구를 배치해 침실이 부엌이자 서재가 되고 또 체육관이 되었죠. 극단적 예지만, 행복과 만족을 느끼는 데에서 공간의 크기가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는 사실을 경험했어요. 개인 공간보다 공용 공간에 더욱 힘을 쏟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가구를 배치한다면 43m2라도 해도 불편하지 않아요. 문밖에 공원이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문밖에 공연장이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건물에서 편안함을 찾지 말고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관계 속에서 행복과 만족을 찾아야 해요.









“부유한 사람들은 공동 사회 기반 시설에 대한 필요성을 덜 느끼죠. 사람들과 떨어져서 격리된 장소에서 사는 것이 방법이라 생각하죠. 하지만 이는 근시안적 행동이에요. 도시는 수년간 짜맞춘 충실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요. 도시 안에서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답이죠.”




이런 생각을 사람들에게 설득시킬 수 있을까요?

시간이 걸리겠죠. 하지만 멀리 내다보는 사람들은 균형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힘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을 거예요. 사람들은 작은 집을 보고 규모가 아니라 비용 때문에 불평을 해요. ‘이렇게 작은데 이렇게 비싸?’라고 생각하는 거죠. 비용을 낮추면 어떨까요? 집은 재산이 아니라 소비재일 뿐이라는 생각을 모두가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정부가 도심 밖에 신도시를 만들어 주택 가격을 부추기기보다 도심 속 주택단지를 정리하고 더욱 많은 인구가 함께 도시에 모여 살 수 있도록 애써야 해요. 건물보다 서비스에 더욱 투자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한국식 아파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한국에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 한국식 아파트는 시장 논리에 따라 생긴 건축물인 것 같아요. 공동체 의식이 없는 건물 집합체에 가까우니까요. 한국인의 집단 문화 의식이 이런 아파트 형태를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요. 한국 아파트 인테리어는 노르딕 스타일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색채 사용도 매우 절제되어 있고요. 그것이 유행인지 기호인지 잘 모르겠어요.



더욱 많은 인구가 도시에 모여 살려면 아파트 같은 형태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글쎄요. 아파트냐 주택이냐 등 안정적 주거 형태로 ‘썰전’을 벌이기보다 불편해도 함께 살아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을 설득하는 것이 먼저겠죠.







건축가 에토레 소트사스와 함께 상식을 허무는 디자인과 자유분방함으로 1980년대 디자인 혁명을 이끈 이탈리아 디자인 그룹 멤피스의 일원으로 활동했어요. 지금의 건축 철학의 기초는 그때 만들어진 것인가요?

그렇죠. 그룹 해체 이후에도 당시 참여했던 모든 멤버들이 각자 노선에 맞는 다양한 활약을 했어요. 저는 1989년 치비크 앤드 파트너스를 창립해 건축, 인테리어, 산업 디자인 분야를 넘나드는 상업 활동을 하면서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겸했죠. 2010년 치비크 워크숍을 세운 후에는 물리적인 건축에서 벗어나 사회, 사상, 관습 등 폭넓은 의미의 건축을 다루기 시작했어요. 저는 학생들과 폭넓은 분야를 연구하는 것을 좋아해요. 실천적이고 경험적인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죠. 10년 전부터 언급한 서비스 디자인은 에어비앤비, 우버 등으로 현실화되고 있어요. 저는 지역 전체를 향상시키고 공공 공간에 대한 새로운 문화적, 정서적, 환경적 인식을 정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미리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 같은 때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요?

이탈리아인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고, 해냈다고 생각한 일들이 위협받고 있는 이 현실이 매우 안타깝지만 밝을 내일을 바라봐야 해요. 다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야 해요. 세상을 위협하는 전염병은 곧 사라질 거예요. 하지만 전염병이 남기고 간 흔적은 되새김질할 필요가 있죠.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연약해질 수 있는지를 보았어요. 사람들과 접촉 없이 절대 혼자서 살 수 없다는 것도 알았고요. 인간이 쌓은 이기적인 시스템이 얼마나 무지한지 깨닫고 기본으로 돌아가려는 자세를 가져야 해요.



매일 영상 회의 프로그램 위챗과 줌으로 학생들을 만난다고 했는데, 젊은 학생들을 만나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에토레 소트사스가 멤피스 디자인 그룹을 만들었을 때 그의 나이 64세였어요. 저를 포함해 다른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20대였죠.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에토레 소트사스가 22세였던 저에게 그랬던 것처럼 변화를 꿈꾸게 만들고 싶어요. 현실 감각을 잃지 말라고 조언하며 뼈 있는 질문을 던지려 애쓰죠. 젊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무척 즐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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