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에이 갤러리(O.D.A. Galerie, Objet d’Affection)를 이끄는 커플. 첫 만남부터 가게 문을 닫을 때까지 장식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예상보다 빠르게 전개되었다. 이들의 집은 두 사람이 써 내려가는 로맨스 소설과 같다. 서로 품은 마음을 조금씩 보여주며 채워나가는, 예측 불가능한 장면으로 채워진다.
(왼쪽부터) 에브 뒤크로크Ève Ducroq, 아르노 돌링제Arnaud Dollinger
2017년부터 이 아파트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아르노 돌링제Arnaud Dollinger) 2016년 6월 16일 에브를 처음 만난 날, 빈티지 가구만큼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다는 확신이 들었고 바로 사랑 고백을 한 뒤 함께 살기 위한 아파트를 구하러 다녔어요. 2017년 봄이 되어서야 이 장소를 발견했는데, 고요한 볕이 바람처럼 드나드는 모습을 보고 바로 ‘이 집이다’라고 생각했죠.
집 안 가득 멋진 소품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독특한 형태와 강한 컬러 벽은 예상 밖이네요. 마치 연극 무대 세트를 보는 것 같아요.
(돌링제) 솔직히 이 집은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에요.(웃음) 우리 두 사람의 호기심, 쾌락,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각적 이미지가 피곤할 정도로 넘쳐나기 때문이죠. 와인을 마시며 장식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밤새도록 나누고 싶은 장소입니다.
(뒤크로크) 현실과 꿈, 과거와 미래, 인문학과 예술 어디쯤을 바라보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진부한 삶은 없는, 늘 변화하는 공간. 불협화음 같지만 그래서 더 생동감이 느껴지는 공간. 제 딸아이(뒤크로크는 두 딸의 엄마다)가 찾아와 “여기 있던 소파는 또 어디로 사라진 거지?”라고 물을 때가 제일 신나요. 저희는 스스로를 장식가라고 불러요. 소파가 거실을 가로지르고 부엌에 다이닝 테이블이 없는 등 동선에 거슬리고 방식이 엉뚱하더라도 가구, 벽, 그림 등을 조립해 새로운 무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죠. 그런 면에서 저희 집은 안식처보다 놀이터에 가까워요. 침실, 거실, 서재 등 공간 구분도 딱히 없으니까요.
“고요한 볕이 바람처럼 드나드는 모습을 보고 바로
‘이 집이다’라고 생각했죠.”
그렇다면 집은 어떤 의미의 공간인가요?
(뒤크로크) 의식주보다 두 사람의 감정과 관심이 연대하고 정서적 공동체를 이루는 장소에 가깝죠. 장식미술이란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우리에게 침대, 조명, 의자 등 집 안의 물건은 상대방의 취향을 알기 위한 단서이고 저희의 사랑 이야기죠. 항상 새로운 물건으로 가득하고 새로운 이야기가 가득해요. 저희도 다음 달 집 풍경을 예상할 수 없어요. 지금 앉아 있는 이 소파도 여기서 사라질지도 몰라요.
(돌링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상대방이 저의 이야기를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틈을 내주어야 하죠. 그런 의미에서 집은 저에게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써 내려가는 로맨스 소설과 같아요. 서로가 가져온 물건을 보고 서로를 알아가고, 달라지는 취향처럼 변화하는 상대방을 받아들이면서 점점 풍성해지는 진행형 상태.
촬영하기 전 집 안 풍경을 또 바꿨다고 들었어요.
(뒤크로크) 거실 공간을 완전히 바꿨어요. 발코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대신 창밖을 바라볼 수 있게 소파를 창가 바로 앞에 놓아 창을 정면으로 바라보도록 배치했죠. 벽도 딥 블루 컬러로 칠했어요. 바다에 첨벙 뛰어들고 싶어서요.(웃음) 전체적으로 대담하고 자유분방하고 유머스러운 1970년대 프렌치 스타일을 구현했어요. 대표적인 예로 짧은 다리에 중심이 낮은, 디자이너 제라르 게르몽프레즈Gérard Guermonprez의 작품을 두었죠. 코로나19로 인한 이동 제한 기간에 집에 머무르는 동안 다양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더라고요. 이런저런 생각을 나누고 싶어 갤러리 인스타그램 팔로워들에게 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공간을 비디오로 찍어달라는 미션을 주었죠.
(돌링제) 반응이 뜨거웠어요. 수십 통의 메시지를 받았어요. 다들 한 달 넘게 하루 종일 집에 머문 적이 없다 보니 저희 미션을 신선하게 받아들인 것 같아요. 애착 물건만큼(오디에이 갤러리O.D.A. Galerie는 ‘애정을 쏟는 소중한 물건’이란 뜻의 프랑스어 ‘Objet d’Affection’의 줄임말) 애착 공간에 대한 이야기도 무궁무진하더라고요. 어떤 이는 욕실 내 욕조를, 어떤 이는 침대 머리맡에서 잠든 아이의 모습을 비디오를 찍어 보내왔어요. 타인의 집을 구경하는 즐거움과 함께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점이 흥미로웠죠. 이를 계기로 타인의 집을 꾸미는 일도 한번 시작해볼까해요.
공간을 꾸밀 때 서로 합의를 하나요?
(돌링제) 그럼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상의를 하죠. 단, 물건을 구입할 때는 각자 취향을 존중하는데 원칙은 한 가지예요. ‘첫눈에 반한 물건일 것.’ 사랑에 푹 빠진 것이라면 손님이 구입하지 않아도 저희 집에 두고 그 기쁨을 누릴 수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팔리지 않기를 바라는 물건도 있어요.(웃음)
첫눈에 반한 물건 한 가지를 소개해주세요.
(뒤크로크) 거실에 놓인 정리함은 처음으로 함께 산 가구예요. 1957년 빈티지 제품인데 서랍을 열려면 비밀 버튼을 눌러야 하죠. 요즘 것보다 더 현대적인 스타일이라고 생각해요.
(돌링제) 블루 컬러 벽에 걸려 있는 전설적 모델 트위기의 사진.
두 분 모두 미술을 전공했나요? 각자의 배경을 간략히 설명해주세요.
(돌링제) 프랑스 알자스 지방에서 태어나 캐비닛 제작자로 일하다 28세 때부터 도시 몽펠리에에 정착해 콘셉트 스토어를 운영했어요. 스칸디나비아 가구와 미국 빈티지 의류 등을 소개하는 곳이었죠. 31세 때 영국 가구 브랜드 실베라Silvera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을 시작하면서 파리로 옮겨왔어요. 미술 공부를 한 적은 없어요. 가게를 운영하며 터득한 실전 경험과 독학으로 깨달았죠.
(뒤크로크) 파리 17지구에서 태어나고 자란 파리 토박이에요. 에콜 드 루브르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이슬람 미술에 심취했고, 소르본 대학교에서 현대미술 석사 학위를 받았죠. 이후 파리 장식 박물관, 발명 과학 박물관(The Palais de la Découverte), 과학 산업 도시 박물관(The Cité des Sciences et de l’Industrie) 등에서 전시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분야에서 일했어요. 이후 박물관을 그만두고 아동복 브랜드 푸티 파리Pouti Paris를 설립했는데 개인적 이유로 포기했죠. 그리고 아르노를 만났고, 마흔이 되는 해에 다시 한번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 그와 함께 오디에이 갤러리를 열었어요.
디자인 갤러리를 오픈하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돌링제) 장식미술에 대한 깊은 열정을 공유하고 있었고, 함께 앤티크 시장을 다니며 조각품을 사곤 했어요. 두 사람이 공유하는 장식 언어를 사람들에게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 마음대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직접 갤러리를 오픈하는 것이었죠. 흔한 인테리어 소품 말고 놀라움을 주는 패턴과 장식으로 가득한, 이상한 갤러리가 하나쯤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은 편안하고 기능적인 물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것은 시간이 갈수록 쓸모가 바뀌거나 고장 나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영원히 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 딱 맞는 물건이 있어야죠.
(뒤크로크) 욕구 실현 목적이 강했어요. 공간을 만들고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죠. 경매 가격, 디자이너의 명성 등 상품 구매 유혹이 전혀 없는, 오로지 시각적인 단서만 제공하는 갤러리를 만들고 싶었어요. 새로운 디자인을 발견하고 질문을 던지는 장소가 되길 원했죠. 패션 디자이너, 세트 디자이너, 아티스트들이 자주 찾아와요.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나요?
(돌링제) 셀린느 수장 헤디 슬리마네Hedi Slimane도 찾아와 셀린느 부티크에 쓸 물건을 사 갔고, 가수 레니 크라비츠도 단골손님이에요. 지난 주 일요일에는 패션 디자이너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Simon Porte Jacquemus가 왔는데 디자이너 윌리 리초Willy Rizzo의 의자를 탐냈죠.
갤러리는 8주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완벽하게 다른 스타일로 꾸민다고 들었어요.
(뒤크로크) 맞아요. 지금은 24m2(약 7평)이지만 처음에는 12m2로 시작했어요. 다락방 하나 크기였죠. 쇼룸보다 각자의 방 같은 느낌을 주면 좋겠다 싶었어요. 자신이 사는 공간을 떠올릴 수 있으니까요. 어느 특정 시대, 특정 디자인의 스타일을 추구하지 않고 다양한 물건을 뒤섞었어요. 빈티지 물건을 바라보는 방식을 깨고 싶었죠. 8주에 한 번씩 거실, 침실, 서재 등 공간을 제안하기 시작했어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나 1980년대 주류 파스티스Pastis 광고 등 다양한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고요. 매번 달라지는 분위기 때문에 손님들이 다시 찾아오고 그들의 인스타그램으로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난 것 같아요.
“파리는 떠나고 싶지 않은 아름다운 집이에요.
모든 동네마다 추억이 묻어 있어요.”
만약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느 시대의 어떤 디자이너를 만나고 싶나요?
(뒤크로크) 1950년 이후 활동한 조 콜롬보Jo Colombo와 커피 한잔하고 싶네요. 그의 가구는 다양한 자세로 앉을 수 있고 조립이 가능하죠. 침실도 되었다가 파티 룸으로도 변신하는, 가구에 따라 공간의 쓰임도 달라졌죠. 가구로 벽을 허물었다고 할까요.
(돌링제) 저도 1950년대로 돌아가 이탈리아 포토그래퍼이자 디자이너인 윌리 리초를 만나고 싶어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은 편안하지도 않고 고급스럽지 않다며 이탈리아 모던 시크 스타일을 만들었죠. 가브리엘 코코 샤넬의 친한 친구이기도 했고요.
빈티지 제품 말고 새 제품도 구입하나요?
(돌링제) 사본 기억이 거의 없어요. (거실 램프를 가리키며) 이 램프는 지금도 아르테미테Artemide에서 생산하고 있지만, 50유로 더 높은 가격에 빈티지 제품을 구입했죠. 디자이너 이사무 노구치 커피 테이블도 새 제품에 비해 유리 상판이 더 두껍고 목재 질감도 달라요. 미묘하지만 디자인, 컬러, 장식, 질감 등 모든 것이 새것과 다르고 시간에 따라 바랜 색감과 낡은 형태도 제품마다 다르니 결국 제가 가진 빈티지 제품은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것이 되죠. 금방 제 삶과 친숙해지기도 하고요. 때론 빈티지 부속품으로 직접 가구를 만들기도 해요.
두 사람에게 파리는 어떤 도시인가요?
(뒤크로크) 파리는 떠나고 싶지 않은 아름다운 집이에요. 모든 동네마다 추억이 묻어 있어요.
(돌링제) 내일 다른 곳에서 살 수 있다고 하면 떠날 것 같아요. 파리 햇살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두 사람은 비슷한 거 같으면서 매우 다르네요. 두 사람의 캐릭터를 집 안 사물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뒤크로크)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손때 묻은 마리아 조각상이 떠올라요. 18세에 미국 뉴욕에 처음 갔을 때 구입했는데 수호신처럼 저를 지켜주는 것 같아요. 이후 지금까지 저와 함께하고 있죠.
(돌링제) 레오파드 조각상요. 팔리지 않아서 집으로 가져왔는데 눈빛이나 자세가 에브를 연상시켜요. 처음에는 키우는 고양이 두 마리가 또 다른 고양이가 들어왔다며 무척 좋아했어요. 앞으로 저희 수호신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