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이 흐르는 서재를 공유합니다

VILLIV



PEOPLE|커뮤니티, 큐레이션, 코워킹

영감이 흐르는 서재를 공유합니다

영감의 서재 대표 박지호

Text | Kakyung Baek
Photos | Hoon Shin

17년간 매거진 에디터, 편집장으로 일한 박지호는 ‘좀 다른 방식으로 콘텐츠를 표현할 수 없을까’라는 고민 끝에 공간과 콘텐츠를 결합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냈다. 정동에 자리한 ‘영감의 서재 102’는 코로나19 시대와 맞물려 한 명 또는 소수 인원의 한 팀이 방문해 매달 그가 큐레이션한 책, 음반, 브랜드, 오브제, F&B 등을 통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장소다.


박지호 대표님(@joygeopark)은 요즘 어떤 일상을 보내나요?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남성 패션 잡지 <아레나> 편집장으로 일하다 독립한 지 3년 차예요. 회사 다닐 때는 하지 못한 일을 하면서 지내요. 예를 들면 오전에 가벼운 산책과 사색을 하며 보내고 오후에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는 거죠.

 


지금 이곳은 어떤 공간인가요.
‘영감의 서재 102’라는 곳이에요. 심야책방과 심야살롱을 5년째 운영하고 있는데, 거기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이 1회성으로 끝나는 게 아쉬워서 이곳을 만들었어요. 작년 10월에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마당에서 야외 서재를 열었는데, 당시 루이스 폴센 포터블 조명이 나왔어요. 그 조명으로 밖에서 함께 책을 읽는 콘셉트였는데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항상 열어둘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 생각한 거죠. 마침 정동길 쪽에 멋진 공간이 나와서 영감의 서재 102 문을 열게 되었어요. 영감의 서재 102의 인스타그램(@inspiration.102)을 통해 누구든 회당 4명 이하로 예약해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영감의 서재 102를 기획하게 된 계기에 대해 조금 더 들려주세요.
저는 매거진을 통해 콘텐츠 만드는 일을 17년간 했어요. ‘좀 다른 방식으로 콘텐츠를 표현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공간과 콘텐츠를 결합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던 거죠. 영감의 서재 102는 코로나19 시대와 맞물려 한 명 또는 소수 인원의 한 팀이 방문해 매달 제가 큐레이션한 책, 음악, 사진, 차, 향 등을 통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장소예요. 서재라는 공간은 제가 책에 관한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가장 먼저 떠올린 콘셉트이고요. 시대를 돌이켜보면 서재가 책만 읽는 공간은 아니잖아요. 책이 여러 권 꽂힌 책장을 배경으로 술을 마신다거나 친구들과 담배를 피우면서 얘기한다거나 좋은 오디오로 음악을 듣는 것처럼 다양한 장면이 떠오르죠. 책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 안에서 큐레이션한 음악을 듣고 브랜드 제품을 포함한 오브제를 사용해보고 차를 마시는 등 총체적 경험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콘텐츠를 표현할 방법을 고민하다
공간과 콘텐츠를 결합하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이곳이 들어선 건물도 정말 멋지더라고요.
앞서 얘기한 야외 서재를 열면서 정동이라는 동네에 푹 빠져 있었어요. 사실 ‘신아기념관’이라 불리는 이 건물도 공공 유적으로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때마침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기회가 생겼죠. 1930년대 최초로 철근 콘크리트 공법으로 지은 건물이에요. 당시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서 여전히 사용 가치가 있는 건물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일단 이 공간에 들어오고 나서 ‘무엇을 해야 재미있을지’ 구상하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아름다운 정동길을 산책하다가 이곳에 들어와서 공간과 콘텐츠가 어우러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죠.



서재 내부에 놓인 가구도 흥미로운데요.

오래된 건물 특유의 ‘황량함’을 없애기 위해 가장 먼저 가구 디자인 스튜디오 길종상가를 떠올렸어요. 나무를 소재로 한 작업을 의뢰했죠. 지금 보이는 책장과 테이블은 천장의 그리드 구조에 맞춰 안정적인 구조로 만들고자 했어요. 공간에 있는 의자는 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디자인만 독특하지 사용하기 불편한 의자가 종종 있잖아요. 저는 오래 앉아 있는 의자일수록 특히 더 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저쪽에 암체어를 하나 놓아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죠. 테이블은 길고 크게 해달라고 의뢰했어요. 각 개인이 떨어져 앉는 것보다 서로가 무엇을 하는지 느낄 수 있는 정도의 간격으로 말이죠.



공간 특성상 책이 참 많아요.

책장은 일부러 높이를 낮췄어요. 저도 책을 좋아하지만, 책이 압도적으로 쌓여 있으면 손도 안 대고 읽지 않게 되더라고요. 저는 공간에서 책을 오브제로만 쓰는 걸 싫어해요. 그래서 책장을 낮춰 쉽게 손이 가게 하고, 쪼그리고 앉아 책을 펼쳐 볼 수 있게 만들었어요. 이렇게 가구를 배치하고도 허전한 부분은 가드닝으로 채웠죠. 이는 그린 그로우 가든Green Grow Garden에 의뢰했어요. 열대 느낌보다는 한국적 정서에 맞는 정갈한 식물로 골랐어요. 예를 들면 삼각 잎의 아카시아는 식물 크기에 비해 복잡하지 않고 심플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고요. 올리브 나무처럼 잎이 넓지 않고 작은 것 위주로 들여놓았어요. 가드닝까지 마치고 나니 그때부터 공간 분위기가 잡혔어요.



낮은 위치에 간접조명을 여러 개 설치한 점이 돋보여요.
천장에 설치한 조명은 전부 간접조명이에요. 공간에는 포인트가 될 수 있는 간접조명 5개를 설치했어요. 테이블에 조명을 설치하려면 위에서 치렁치렁 늘어뜨리거나 올려놓아야 하는데 전선 정리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아서 루이스 폴센의 판텔라 포터블을 놓았어요. 어두울 때 조도를 보완할 수 있도록 말이죠. 저도 워낙 직접조명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처음에는 간접조명으로만 된 이 공간이 어둡게 느껴졌어요. 하지만 오랫동안 책을 보기에는 간접조명이 더 편안하더라고요. 조명을 하나하나 켜고 끌 때마다 분위기가 달라져요. 조금 더 어둡게 하고 싶다면 2개 정도 끄고, 밤에도 뭔가 읽어야 하면 다 켜놓고요. 간접조명의 장점을 제대로 체감하는 중이에요.

 


심야책방, 심야살롱, 영감의 서재 102까지 공간에 콘텐츠를 녹이는 커뮤니티를 진행하면서 특히 신경 쓴 지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한국에는 밍글링 문화가 없잖아요. 낯선 사람들끼리 소규모로 모이면 처음에 굉장히 어색하기 마련이죠. 하지만 자기만의 공간, 영역이 잡히면 빠르게 적극적인 태도로 바뀌더라고요. 이 공간에 당신이 있는 게 굉장히 잘 어울리고 당신이 할 수 있는 것, 당신이 편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걸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를 통해 참여자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공간에 애정을 쏟는 것 그 이상이어야 실질적으로 뭔가를 얻을 수 있다고 봐요.


“공간에서 무언가를 하는 행위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좋은 공간에 대한 갈망은 더 늘어날 거에요.”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인지 오프라인 공간의 가치가 더욱 부각되는 것 같아요.
작년에 중앙일보 지식플랫폼 <폴인fol:in>과 콘퍼런스할 때도 그렇고 올해 더현대서울과 공간에 대한 강의나 토크를 할 때, 심야살롱을 열었을 때도 느낀 건데,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제약이 늘어날수록 좋은 공간에 대한 갈망이 커지고 있어요. 물론 줌 같은 디지털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것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은 몸을 움직여야 하는 것 같고요. 공간에서 무언가를 하는 행위가 인간의 본능적 행위 중 하나이기 때문에 좋은 공간에 대한 갈망은 점점 더 늘어날 것 같아요.



영감의 서재 102 근처로 곧 이사한다고 들었어요.

집과의 거리를 걸어서 10분 이내로 줄였어요. 영감의 서재 102를 단순히 사람들이 대응하는 사무적인 공간보다는 저 또한 즐기고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해요. 코로나19 시대에 재택근무 해봐서 아시겠지만, 한국의 아파트 위주의 집에선 개인 서재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잖아요. 또 인테리어를 잘하기도 쉽지 않고요. 저는 제 집에 뭔가를 꾸리기보다는 제가 만든 색다른 공간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거나 나누는 걸 좋아해요. 저 구석에 쌓여 있는 책은 1990년대부터 제가 끼고 다니던 것이에요. 어머니가 몇 번이나 버리라며 쓰레기통에 가져다 놓았는데 지금까지 낑낑 끌고 다니다 이제야 갖고 나오게 됐네요. 영감의 서재 102에는 시대의 맥락을 보여주는 책을 배치하는 공간을 큐레이션하고 집에는 작은 책장과 책상에 현재의 흐름, 최근 한 분기 사이에 벌어진 흐름을 볼 수 있는 책들을 두었어요.




RELATED POSTS

PREVIOUS

나와 오브제와의 관계, 그 친밀감이 편안한 곳
라이팅 디자이너 마이클 아나스타시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