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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쑤시개부터 큰 집까지 만드는

물건연구소 아티스트 임정주·김순영

Text | Anna Gye
Photos | Mineun Kim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인 성북동 북정마을엔 예술가들이 많이 산다. 물건연구소 임정주, 김순영 부부도 그중 하나다. 지난해 장마철 그들의 작업실에 물이 샜고 둘은 철거부터 바닥, 벽, 전기 공사까지 직접 복구에 나섰다. 재정비를 마친 물건연구소는 그 이름대로 테이블 조명부터 철제 가구까지 직접 만든 물건으로 가득하다.






(왼쪽부터) 김순영, 임정주



 

성북동 북정마을과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요?

(임정주) 삼청동에서 군 생활을 해서 성북동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부촌인 성북동 외교관 사택 단지까지만 알고 경계 너머에 있는 북정마을은 잘 몰랐어요. 우연히 성곽길을 따라 골목에 진입했는데, 1960~1970년대에나 볼 법한 마을이 나타났어요.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곳이었어요. 20173, 마을로 진입하는 골목길에 작업실을 마련했죠.

(김순영) 마을이 동그란 형태를 띠고 있어요. 마을버스가 순환하는데, 그래서인지 서로에게 안겨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동네예요. 이곳에는 주로 이 지역 토박이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세요. 서울에서 느끼기 힘든 공동체의 끈끈함이 있죠. 장이 열리는 날이면 작업실 앞이 사랑방이 돼요. 저희를 보면서 도대체 뭐 먹고 사냐고 걱정해주시기도 해요.(웃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만들어가려고 해요.

물건에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살고 싶은 집도 포함돼요.”



 

어쩌다 작업실을 복구하고 개조하게 되었나요?

(임정주) 2020년 건물주가 좀 더 좋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건물을 리모델링했어요. 그런데 비가 많이 오니까 천장에서 물이 새더라고요. 건물 뒤가 거대한 암벽이에요. 물길을 열어 빗물이 지하수로 흐르게 해야 하는데, 완벽한 방수와 보수가 예상 못 한 결과를 낳은 거죠. 오히려 주먹구구식이지만 첫 주인이었던 할아버지 방식이 맞았던 거죠.

(김순영) 작업에 쓸 목재가 가득했는데 모두 물에 젖어버렸어요. 모든 작업물을 다른 공간으로 옮기고 저희도 대피했죠. 반년 후 다시 이곳을 찾아왔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어요. ‘다시 처음이다라는 생각으로 바닥부터 천장까지 모두 철거한 후 백지 상태에서 시작했어요. 저희 두 사람이 직접 하다 보니 지난 9월 시작해서 올해 1월이 되어서야 끝났어요. 이후 조금씩 작업물을 옮기고 이곳에 어울리는 물건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겨우 한 달 전에 제대로 모습을 갖춘 것 같아요.



 




 



, 바닥, 전기 공사까지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한 이유가 있나요?

(임정주) 비용 문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가장 컸어요. 제 머릿속에 있는 명확한 이미지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일을 시키는 데 드는 에너지와 시간을 생각하면 직접 하는 것이 효율적이었죠. 느리지만 조금씩 채워나가는 마음으로요.

(김순영) 그래서 자세히 보면 티가 나요.(웃음) 여기 철제 벽장도 정주 씨가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었는데 막상 배치하니 수직, 수평이 안 맞는 거예요. 공간 자체가 비뚤어져 있었던 거죠. 공간 작업은 처음이다 보니까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문고리 하나에도 애정이 가요.



 


 



흙바닥처럼 느껴지는 중간 벽이 마음에 들어요. 아치형 구멍이 뚫려 있어 작업실과 쇼룸으로 나눠지는 구조도 재미있고요.

(김순영) 어느 공간에서 보고 마음에 들어서 자세히 알아봤더니 독일 천연 미장을 전문으로 하는 웬디스월의 작업이었어요. 천연 미장 벽은 미세한 기공이 많기 때문에 공기 정화, 습도 조절, 소음 완화, 탈취 작용을 해요. 무엇보다 곰팡이에 강해 저희처럼 나무 작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죠. 천연 색채를 삽입하면 이렇게 미묘한 분위기가 나고요. 웬디스월 대표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이 중간 벽만 천연 미장을 했고, 나머지는 페인트칠을 했어요.

(임정주) 천연 미장 벽은 기공이 많아 빛을 반사하지 않고 흡수해요. 그래서 사진을 찍으면 물체만 빛을 반사하니까 사진에 물건의 느낌이 잘 드러나요. 이 벽을 인스타그램 포토존으로 쓰고 있어요. 무엇보다 뚫린 벽 너머의 무언가를 바라보는 느낌이 좋아요. 저는 주로 작업실에, 순영 씨는 쇼룸에 머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 벽이 문과 창이 되어 서로를 넌지시 바라보게 돼요.



 


 



쇼룸은 순영 씨 공간 같네요. 식물이 가득하고, 책장을 열면 나타나는 민트 컬러 미니 주방도 그렇고요.

(임정주) ‘삶에 대한 작은 아이디어를 소량으로 제작해 판매해보자는 의도로 시작한 소소 프로젝트도 순영 씨 입김으로 시작되었어요. 제가 생각하지 못한 케이크 선반, 케이크 커팅 칼 등을 만들었죠. 확실히 저는 제품 디자이너라 화이트 큐브 형태 갤러리를 기본으로 제품에 집중하려는 반면, 연기를 전공한 순영 씨는 연출자 시각으로 전시의 기승전결을 살펴요. 서로가 서로의 사각지대를 보는 셈이죠. 작품 기획은 같이 하지만 주로 저는 디자인과 제작을 맡고 전시와 홍보는 순영 씨가 담당해요. 공식 직함은 대표 임정주, 실장 김순영입니다.

(김순영) 정주 씨가 늘 저에게 했던 말이 있어요. ‘작은 이쑤시개부터 큰 집까지 만들고 싶다.’ 물건연구소라 이름 지은 것도, 저희 작업을 사물또는 작품대신 물건이라 부르는 것도, 저희 작업이 이상적 공간에 이르는 여정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희 주변과 일상에서 필요한 것부터 시작했어요. 작업실에 있는 흔들의자, 효자손, 옷걸이, 조명 등을 보면 그렇죠.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만들어가려고 해요. 물건에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살고 싶은 집도 포함돼요.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이상적인 집이 있겠군요. 어떤 곳에 살고 싶나요?

(임정주) 제가 만든 물건에 둘러싸여 살고 싶어요. 형태는 박공지붕의 빨간 벽돌집이 좋을 것 같아요. 소재가 명확해서 그것으로 충분한 느낌을 좋아해요. 소재의 특성과 성질이 디자인 자체로 보이는 느낌 말이에요. 저희가 앉아 있는 스테인리스 테이블이 좋은 예인데, 페인트를 더할 수 있지만 철제 소재 느낌이 강할수록 더 매력적으로 보이죠.



 

가능하다면 외부는 더욱 독립적이고내부는 뻥 뚫린 집을

만들고 싶어요벽을 창으로 바꾸는 식이죠.”

 



아파트에 사는 것은 생각해본 적 없나요?

(임정주) 사실 저는 아파트 키드예요. 특히 자연스럽게 이웃들이 모여들던 아파트 놀이터에 제 추억이 고여 있어요. 그런데 지금의 아파트에는 정서는 사라지고 편리만 남은 것 같아요. 소통과 프라이버시를 혼동하고 있죠. 아파트가 변하지 않는 한 단독주택에 가까운 공간에 살고 싶어요. 만약 제가 공간을 디자인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가능하다면 외부는 더욱 독립적이고, 내부는 뻥 뚫린 집을 만들고 싶어요. 벽을 창으로 바꾸는 식이죠. 유현준 건축가가 자신의 책에서 아파트 창문은 밖을 향해서만 나 있고, 방과 방은 벽으로 나뉘고 막혀 있다. 소통을 위해서는 방에서 거실을 향해 창문을 뚫어야 한다. 집도 넓어 보이고 다양한 형태의 공간이 만들어져 심리적으로 넓게 느껴진다라고 했는데 전적으로 동의해요.

(김순영) 지금 사는 집에도 문이 없어요. 창문처럼 뚫려 있죠. 1층에는 집주인이 살고 저희는 2~3층을 쓰고 있어요. 옥상도 자유롭게 쓸 수 있어 제가 좋아하는 식물과 채소도 길러요.



 




 

부부가 일과 삶을 공유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김순영) 일을 같이 하고 나서 한 2~3년쯤 경계가 무너졌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부부가 함께 하는 스튜디오가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 중 하나죠. 각자 시간을 보내라는 추천을 받았는데, 결국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저희만의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함께 또는 따로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요. 최근에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요.



 




 

새로운 작업실에서 생긴 새로운 루틴이 있다면요?

(임정주) 인스타그램에 사진 올리기. 이름 계정은 물건연구소 포트폴리오를, 다른 계정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미지를 업로드해요.

(김순영) 전 인스타그램보다 식물과 친해요. 식물 잎을 매만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죠.


 

서로가 서로를 물건에 비유한다면요?

(임정주) 순영 씨는 밥그릇. 익숙하지만 매일 새로운 물건.

(김순영) 정주 씨는 나무. 두툼한 모습도, 둥글둥글한 성격도 나무를 닮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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