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빼기를 위한 자연스러운 공간

VILLIV



PEOPLE|라이프스타일, 홈데코

힘 빼기를 위한 자연스러운 공간

아티스트 김참새

Text Anna Gye Photos Mineun Kim

‘김참새’라는 귀여운 예명으로 활동하는 그녀의 구기동 작업실은 새 둥지를 닮았다. 얼마 전 스튜디오 논텍스트와 함께 레노베이션하면서 나무판으로 공간을 감싸고 다양한 수납공간을 둔 가구를 제작했다. 북한산이 보이는 작업실에는 햇빛 같은 미소를 가진 그녀와 반려 식물, 동서양 목가구가 함께 산다. 감각에 몸을 맡길 수 있는 힘 빼기를 위한 공간이다.






 



뜨거운감자, 고범준, 박원, 등 뮤지션 앨범 아트 작업은 물론 카카오톡, 스텔라 아르투아, 현대카드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했어요. 결과물 대부분이 밝은 색감 가득한 그림이라 작업실 또한 컬러가 넘칠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 밖이네요.

이번에 레노베이션 공사를 하면서 제가 좋아하는 공간이 나무 등 식물로 둘러싸인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 작업실도 문을 열자마자 북한산이 성큼 들어오는 커다란 창문 때문에 덜컥 계약한 것이거든요. 일부러 공간의 컬러를 없애려 했던 것은 아니에요. 원래 공간이 지닌 흔적을 살리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블랙, 크림 컬러로 통일된 것 같아요. 사실 자연이 꺼내 보여주는 색이 제가 쓰는 물감의 색보다 다양하죠.



 


 



그러네요. 천연 색으로 가득 찬 공간이라 할 수 있겠어요.

나무를 택한 것은 아무래도 편안함이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아요. 힘을 빼고 한숨 돌릴 수 있는 장소가 되길 원했어요. 원래 심각하게 작품을 붙잡고 있는 것보다 딴짓을 하면서 힘을 빼야 좋은 결과가 나올 때가 많아요. 삶도 그렇잖아요.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는 흐름에 그저 몸을 맡기다 보면 어느 순간 성큼 성장하죠.

 



딴짓을 하면서 힘을 빼야 좋은 결과가 나올 때가 많아요. 삶도 그렇잖아요.”



 

벽지 대신 나무판으로 공간을 감싼 것이 독특해요. 가구도 모두 나무 소재고요.

나무 소재를 잘 활용하는 논텍스트 스튜디오 실장님과 다양한 의견을 나누었는데, 원하던 나무판으로 공간 전체를 덮으려면 상당한 비용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일부는 무늬목으로 대체했죠. 무엇보다 모든 재료를 품을 수 있는 큰 책상이 필요했는데, 실장님이 수납장을 넣은 초대형 나무 책상을 만들어주셨죠. 표면이 더러워지면 교체할 수도 있어요. 미팅룸에 놓인 빈티지 가구는 제가 직접 골라 구입한 거예요. 허리가 잘록한 플리크래프트Plycraft사의 체르너 체어Cherner Chair와 한스 웨그너Hans Wegner1935 벤치는 사연 있는 물건이라 애정이 가요. 테이블은 거창 지역의 돈궤(금고)를 활용한 것인데 독특하게 다리가 있어 서양 가구랑 잘 어울리죠.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가구 때문에 다이닝 룸, 작업 공간, 미팅 장소 등으로 자연스럽게 나눠지네요. 전과 비교해 구조는 어떻게 달라졌나요?

실장님께 부엌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드렸는데 이렇게 다이닝 테이블을 만들어주시니까 끼니를 챙기게 되고 작업하는 시간이 한층 여유로워졌어요.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며 북한산을 바라보는 새로운 습관도 생겼고요. 원래는 미팅 공간도 없었어요. 작업실 전체가 그저 작업 공간이었죠. 의도하지 않았지만 가구 배치로 자연스럽게 질서가 잡혔다고 할까요? 작업은 주로 책상에 앉아서 하거나 책상 옆 이젤 앞에서 하고 나무 벽에 그림을 고정시켜놓고 공간 속에서 작품을 바라보며 수정할 점을 생각해보죠.


 

창이 공간 안팎을 자연스럽게 연결해주는 것 같아요. 앉는 장소마다 멋진 풍경이 걸려 있네요.

이 건물이 40년 이상 되어 손볼 데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요. 가장 손쉬운 결정은 새로운 건물로 이사하는 것이었지만 이 북한산 풍경을 포기할 수가 없더라고요. 북향이라(그림 때문에 일부러 빛이 직접적으로 들어오지 않는 북향을 택했다) 해가 뜨고 지는 광경은 볼 수 없지만 눈이 시원해지고 숨통이 탁 트여요. 바라보지 않아도 숲속에 있는 듯 시원한 공기가 머무는 것 같죠.


 



 



그 느낌은 창가에 놓인 다양한 식물 때문에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2014년 이곳에 처음 왔을 때부터 키우는 반려 식물이에요. 집에는 더 많은 종류의 식물이 있어요. 특히 아버지가 식물뿐 아니라 동물도 좋아하시는데 덕분에 어릴 때부터 강아지, , , 물고기랑 한 식구가 되어 살았죠.(웃음) 생각해보면 이런 기억 때문에 나무 소재에 끌리는 것 같아요. 할머니 댁도 나무 집이었어요. 비 오는 날이면 집 전체에서 묵직한 나무 냄새가 났죠.


 

책과 잡지가 무척 많네요.

작품 영감을 글에서 얻을 때가 많아요. 읽으면서 바로 상상할 수 있는 묘사가 잘된 소설을 좋아하는데, 특히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를 좋아해요. 에세이 작업도 하고 있고요.









장르 구분 없이 다양한 작업을 시도하는 것 같아요. 최근 전시에서는 바느질을 활용한 설치 작품도 소개했어요.

프랑스 낭시 국립고등미술대학에서 공부할 때 설치, 일러스트, 영상,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다뤘어요. 사실 협업 작품 때문에 크레파스 감성의 밝은 분위기 그림이 잘 알려졌지만 색이 거의 없는 작업도 많아요. 반어법처럼 슬픈 감정을 화려한 컬러로 드러내기도 하고요. 매번 다른 소재를 쓰려고 노력해요. 동양 재료와 서양 재료 모두 사용하는데 최근에는 종이죽을 한 겹 한 겹 올리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어요. 작업은 일기 같아요. 그래서 솔직한 감정을 조금 감추려고 암호 같은 문구를 넣기도 하고요.

 


작품을 볼 때마다 컬러 조합이 늘 새로웠어요.

색채 감각은 어머니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어머니는 가정주부인데 취미 삼아 저희 자매의 옷, 인형, 액세서리 등 다양한 물건을 직접 만드셨죠. 특이한 컬러와 소재를 좋아하고 다양한 천을 모으시죠. 얼마 전 어머니 작품 전용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드렸어요.(웃음) 여기 의자에 앉아 있는 파란 인형도 어머니 작품이에요.

 








언젠가 어머니와 협업한 작품을 볼 수도 있겠네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현재 가족과 함께 살고 있지만 독립해서 본인만의 집을 디자인한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어떤 동네에 살고 싶어요?

아마 지금 작업실 분위기와 비슷할 것 같아요. 저는 편리한 것보다 편안한 것이 좋아요. 교통이 좀 불편해도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그런 위치가 좋겠죠. 땅도 산도 가까운, 마치 아름드리나무 같은 집. 그린 컬러 하나 정도 첨가한다면 충분할 것 같아요.




RELATED POSTS

PREVIOUS

두 사람이 완성한 쉼표 같은 집
그래픽 디자이너 이아리, 기획자 김한성 부부

NEXT

아파트라는 노스탤지어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 김도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