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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디자이너의 전시적 시점으로 가구 바라보기

디자이너 그룹 뮬러 반 세베렌

Text | Anna Gye
Photos | Kevin Faingnaert

벨기에 부부 디자이너 뮬러 밴 세베렌Muller Van Severen의 벽돌집 옆에는 똑같은 외관의 스튜디오가 있다. 이곳에서 만든 생필품의 프로토타입을 집으로 가져와 직접 써보며 기능과 미학을 점검한다. 복잡하고 어려운 가구보다 삶에 쉽게 파고들 수 있는 가구를 만들겠다는 생각. 그들은 집과 스튜디오를 오가며 자신들만의 데이터를 쌓고 멋과 실용, 감각과 실전의 틈을 좁히고 있다.







무척 오래된 집 같아요.

2007년에 이 집을 구입할 때 이미 100살이었으니 올해로 110살이 넘었네요. 벨기에 겐트의 다른 건물에 비하면 젊은 편이에요.(웃음) 저희 부부 모두 겐트에서 태어나 자랐고 겐트 미술학교를 함께 졸업했기에 자연스럽게 이곳에 뿌리내리게 되었어요. 도심은 편리하지만 큰 공간을 찾기 어렵고 가격도 비쌌죠. 2011년 디자이너로 데뷔하기 전 각자 예술 작업을 했기에 오히려 도시에서 동떨어진 시골 지역을 선호했어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오래된 농가 주택을 찾아내 건축가 엘리스 반 투이네Élise Van Thuyne와 함께 레노베이션했고요. 구조를 크게 변경한 것은 없어요. 저희 부부와 두 딸의 개인 공간이 구별되게 내부를 정돈하고 난방이 잘되도록 벽을 다지고 지붕을 보수했죠. 주방도 2년 전에야 완성됐어요.











수리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졌겠네요.

그렇죠. 지금도 미완성 상태라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살면서 기호에 따라, 편의에 따라 개조하는 것이 현명해요. 가족이 늘어날 수도 있고, 작업실 규모를 늘려야 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변동 사항이 생길 수 있잖아요. 2011년 디자인으로 방향을 튼 이후 작업실 공간을 보완했죠. 집은 두 딸을, 작업실은 저희 부부를 중심으로 취향을 더하는 쪽으로요. 집과 작업실 모두 전시가 늘면서 점점 저희 가구로 채워졌어요. 색도 늘었고요(창문은 레드 컬러로, 문은 블루 컬러로 칠했다). 하지만 가장 드라마틱하게 바뀐 곳은 정원이에요. 식물을 심고 야외 테이블을 만들었죠. 울창한 나무 그루터기가 벽과 지붕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어요. 어떤 가구보다 멋지죠.








집과 작업실을 이렇게 가깝게 만든 이유가 있나요?

저희는 어느 누구보다 삶을 면밀히 관찰해야 하는 디자이너니까요. 집이 작업실이고 작업실이 곧 집인 셈이죠. 집에서 생활하면서 필요한 물건을 생각하고, 작업실로 가서 스케치하고 도안을 완성해 공장에 제작을 맡기죠. 프로토타입이 완성되면 집으로 가져와요. 사람들 몸에 맞고 사용하기 편리하고 만족감을 줄 수 있는지 직접 체험하고 검증해요. 굳이 디자이너가 삶에 도움이 될 제품인가?’라며 직접 시험해봐야 하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과정은 무척 중요해요. 디자이너 자신의 관습을 깰 수 있는 좋은 방법이거든요. 가구 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전시적 시점에서 가구를 바라보는 거죠. 효율적이라 생각했던 디자인도 삶의 영역에 들어오면 불편한 것이 될 수 있어요. 상상과 현실은 매우 달라요.

 



프로토타입을 작업실이 아닌 집에서 사용해보는 이유는

, 천장, 벽난로 등의 분위기와 맞춰보기 위해서예요.”

 



그렇게 집과 작업실을 오가면서 작품 생산과 동시에 검증을 하는 셈이네요.

알루미늄 튜브를 반복적으로 결합해 만든 올튜브스 시리즈’, 선반·책장·조명·라운지 의자를 하나의 가구로 만든 인스털레이션 에스 시리즈’, 패션 브랜드 카셀 에디션과 함께한 더 필로 소파등 제품마다 주제와 특색은 다르지만, 어느 집에나 잘 어울리고 누구나 아름답다고 느끼게 하는 매력이 있죠. 이것은 집과 작업실을 오가며 독창성과 합리성을 동시에 조율했기 때문이에요. 프로토타입을 작업실이 아닌 집에서 사용해보는 이유는 벽, 천장, 벽난로 등의 분위기와 맞춰보기 위해서예요. 상업 공간에서는 보이지 않던 재질, 크기, 형태가 두드러져 보이죠. 덩치 큰 소파도 막상 집에 어울릴 때가 있어요. 갤러리에서 마냥 투박하게 느껴지던 의자도 집 안에서 매력을 발휘하고요. 그렇게 집에서 하루 24시간, 1365일을 함께 지내다 보면 별것 아닌 모서리, 손잡이, 광택 등이 문제가 되기도 하죠. 예측이 빗나갈 때도 많고요. 그래서 오랜 시간을 두고 검증하는 거예요.










작업은 보통 어떻게 이뤄지나요?

저희 둘 다 정통파가 아니에요. 디자인 학교 출신이 아니라는 거죠. 예술 작업을 오래 한 터라 주로 작업실 책상 앞이 아닌 집에서 딴짓하면서 시작하는 편이에요. 소재를 찾으면 서로 질문을 던지면서 추상적인 생각을 정리하죠. 축소 모형을 붙잡고 몇 시간 생각하기보다 테이블에 앉아 차나 술을 마시면서 문답하는 것을 좋아해요. 생각보다는 느낌을 따라가면서 이것저것 작업실에 있는 재료로 퍼즐을 맞추듯 해결해나가죠. 수정의 연속이에요. 그렇게 어느 정도 밑그림이 그려지면 공장에 프로토타입 제작을 맡겨요. 그걸 집에서 사용해보면서 또 한 번 수정하죠.

 







가구를 배치할 때 특별히 신경 쓰는 요소가 있나요?

사실 무신경하다는 것이 솔직한 답일 거예요. 수시로 새로운 가구가 들어오니 상황에 따라 자리를 찾는 식이죠. 특히 벽난로가 있는 거실은 저희 부부와 부모님의 손길로 채워진 공간이에요. 저희의 시그너처 작품 와이어 시리즈’, ‘인스털레이션 에스 시리즈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조각상, 저희 두 사람이 직접 그린 그림, 딸이 여섯 살 때 만든 나무 의자 등이 오밀조밀 모여 있죠. 실제 집에서는 매거진에 등장하는 인테리어 법칙이라는 것이 통하지 않을 때가 많아요. 집은 사용자 중심으로 설계해야 하죠. 저는 물건을 숨기는 수납장보다 잘 보이는 선반이 필요하고, 여러 사람이 모여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여유 공간보다 가구 하나 더 놓을 수 있는 자리가 더욱 필요하죠. 허전한 벽을 채우기 위해 그림을 걸기보다 조명을 설치하는 식이에요.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이 있다면요?

주방요. 여러 번 보수를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됐어요. 거실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 물건이 가득한 곳이에요. 코로나19 때문에 가족 모임 장소가 거실에서 부엌으로 옮겨졌어요. 두 딸과 하루 종일 함께 요리하고 식탁에서 책을 읽고 밤에는 남편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작업실에서 미처 못 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죠. 부엌은 최근 저희가 주목하는 공간이기도 해요. 2020년 덴마크 주방 디자인 브랜드 리폼과 함께 주방 가구를 제작했어요.








2017년 디자인 마이애미 행사에서 에어비엔비와 함께한 행사가 인상적이었어요. 미국 플로리다 전시장에 벨기에 겐트 집의 거실을 완벽하게 재현했죠.

재미있는 프로젝트였어요. 인테리어로 치장한 집보다 실제 삶을 머금은 집을 체험하는 일은 여행만큼 짜릿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사실 타인의 집을 구경하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도 없어요. 무심코 놓은 물잔 하나도 유심히 보게 되죠. 창가 풍경에 마음이 가기도 하고요. 이처럼 훌륭한 집은 건축물, 가구, 인테리어 소품으로 읽히지 않아요. 누구나 탐나는 집은 살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이 고른 물건, 삶의 태도가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성큼 마음에 와닿죠. 저희 집 거실에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물건이 더 많아요. 양가 부모님 모두 예술가 출신이라 대부분 미술 작품이고 각 작품마다 <천일야화>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죠.

 



인테리어로 치장한 집보다 실제 삶을 머금은 집을

체험하는 일은 여행만큼 짜릿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물건보다 분위기를 더하는 데 힘을 써야겠네요.

그렇죠. 이를 위해서는 먼저 어떤 분위기에서 살고 싶은지 알아야 하죠.

 


코로나19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집 밖으로 이어지는, 밖으로 향하는 가구가 필요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와이어 체어처럼 야외 조각물이었다가 바람과 햇볕을 느낄 수 있는 휴식처가 될 수도 있는 가구. & 아웃도어를 모두 소화하는 가구 같은.








코로나19 기간에 어떻게 지냈나요? 집과 일터가 가까이 있어 무리 없이 일할 수 있었겠네요.

덕분에 쉼 없이 일했죠. 페어와 전시가 취소되는 바람에 밖으로 소식을 전하지는 못했어요. 올해 서서히 전시들이 재개해 그동안 준비한 신작들을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선 올해 창립 10주년을 맞아 겐트 디자인 박물관에서 회고전을 준비하고 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10가지 사건을 골라 작업에 참여한 10명의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해요. 또 작가 월터 쾨니히Walter König와 함께 10주년 기념 아트북을 준비하고 있어요. 연구 기록이자 비평이죠. 곧 브랜드 헤이와 함께 가구 컬렉션도 발표할 예정입니다.


 

데뷔 10주년 소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사실 사진, 조각을 전공한 저희에게 디자인 가구 영역은 무모한 도전과 같았어요. 논리보다 직감에, 성공보다 실패에 의존했죠. 과거에 인연을 두지 않고 늘 새로운 영역을 탐구했어요. 앞으로도 뻔한 계획 같은 것은 세우지 않으려고 해요. 세상 밖의 것에 휘둘리지 않고 저희 두 사람, 집이라는 사회 안에서 저희만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쓸모 있고 아름다운 가구를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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