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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사적이지만 활짝 열려 있는 집

일제 코르넬리센스 외

Text | Anna Gye
Photos | Graanmarkt 13

그란마르크13은 일제 코르넬리센스와 팀 판 겔로펜의 이상과 취향이 담긴 집이다. 볕을 가득 품은 아파트, 벨기에 디자이너의 작품을 파는 편집숍, 로컬 메뉴가 가득한 레스토랑 등이 자리한 집은 작은 사회와 다름없다. 간판도 입구도 없지만 아는 사람들이 찾아와 머물다 간다. 지연, 혈연, 학연보다 강력한 취향이라는 지붕 아래 모이는 신종족에 대한 이야기다.







코로나19로 라이프스타일의 흐름이 급속히 변하면서 사람들은 물리적 환경보다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관계 맺기에 익숙해졌다. 지연, 혈연, 학연보다 강력한 취향이라는 무기. 문화적 기호가 인간의 삶과 소비생활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람들은 하면 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감정선을 교류하는 장소를 만들고 자신들만의 세상에 살고자 한다. 비즈니스 학교를 졸업한 젊은 부부 일제 코르넬리센스Ilse Cornelissens와 팀 판 겔로펜Tim Van Geloven의 생각도 그러했다. 그들은 가장 사적이고 은밀한 장소인 자신들의 집을 완벽한 취향 공동체로 만들기로 했다.








평소 흠모하던 벨기에의 유명 건축가 빈센트 판다위선Vincent Van Duysen에게 각 층에 아파트, 편집숍, 레스토랑 등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그들의 미적 감각과 미식 경험을 이해하는 아트 디렉터 보프 페르헬스트Bob Verhelst, 셰프 세퍼 노벌스Seppe Nobels 등이 이곳에 상주하도록 했다. 편집숍은 부부가 여행길에 발견한 물건과 존경해 마지않는 패션 디자이너의 의상으로 채웠다. 이들의 미션은 자신들과 결이 같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 그란마르크13Graanmark13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의식주에 대한 이야기를 마음껏 나눌 수 있는 가족 같은 이웃을 찾고자 했다. 이곳에는 간판도, 거창한 입구도 없다. 아무나 들어올 수 있지만 아무나 알 수는 없다. 소위 아는 사람만 이 집을 찾고 그들은 함께 느끼고 배우고 서로 영감을 주는 존재로 관계를 맺는다.








이곳 현관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주로 어떤 사람인가요?

(이하 일제 코르넬리센스) 건축, 패션 계통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아요. 평소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보내다 하루 정도 핸드폰을 끄고 그란마르크13 아파트에서 고요한 하루를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죠. 일일이 밝힐 수는 없지만,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일하는 창작자 대부분이 이곳을 찾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아파트에는 원래 저희 부부가 살았어요. 방이 4(6명 기준)인데 원한다면 혼자 쓸 수도 있어요. 호텔처럼 아무나 예약해서 잘 수 있는 곳은 아니에요. 그란마르크13의 규칙과 철학을 이해하고 오랫동안 관계 맺은 사람들만 아파트를 사용할 수 있죠.









사실 들어오기 전에는 이곳에 편집숍, 레스토랑이 있는지 몰랐어요. 간판도 쇼윈도도 없네요.

이곳은 집이니까요. 이런 공간을 만들려고 한 것은 13년 전부터예요. 암스테르담에서 안트베르펜으로 이사하면서 살 동네를 찾다가 우연히 이 건물을 발견했죠. 당시 1층은 중국음식점이었고 건물이 거의 무너지다시피 했어요. 10년 전 건물을 구입해 천천히 집을 개조했어요. 전체적인 콘셉트는 우리가 세우고 건축가 빈센트 판다위선이 상상을 실현하는 식이었죠. 2014년 아파트 공간을 먼저 마무리하고 다른 공간은 천천히 만들었어요. 매년 개조하고 증축했지요. 가장 최근에는 야외 테라스 공간을 만들었어요. 저는 이곳이 우리 집이자 우리와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아지트가 되었으면 했어요.

 



이곳이 우리 집이자 우리와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아지트가 되었으면 했어요.”

 



문화적 공감대를 가진 사람들을 찾는 게 왜 중요했나요?

한 번쯤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나요? 말이란 느낌을 뜻하죠. 과거에는 인종, 국가, 성별 등 환경적 요인으로 관계를 맺거나 화려하고 멋진 공간을 만들어놓고 돈과 권력이라는 지붕 아래서 주파수가 맞는 사람들을 찾았지만, 지금은 그런 과정이 불필요해졌어요. 글로벌화, 디지털화가 이루어지면서 더욱 정확하고 빠른 방법으로 말이 통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게 되었죠. 하지만 비대면 방식으로는 신뢰가 가는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어요. 안정된 장소에서 취향과 감정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고 싶었어요. 의식주를 함께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의식주를 변화시키고, 그렇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특정 집단을 원했죠. 1년에 두 번씩 서로 중고 물건을 교환하고 한 달에 한 번 토론회와 파티 같은 모임을 열죠.


 

팬데믹 기간에도 문을 열었다고 들었어요.

2014년 처음 이곳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의도를 곡해하는 사람이 더러 있었어요. 그저 수많은 디자인 공간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고요. 왜 집이라는 형태인지, 그 연결 고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런데 팬데믹을 거치면서 사람들이 알아차리기 시작했어요. ‘관계라는 단어에 집중하게 되면서 이면서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소,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장소를 눈여겨본 것이죠. 집과 가까운 동네, 주변이 떠오르면서 그란마르크13으로 시선이 모였어요. 모든 층을 개방하지는 못하고 찾아오는 한 명의 손님을 위해 최소한의 공간만 열어두었죠.










내부는 미니멀하지만 따뜻한 분위기가 감도네요. 특히 자랑하고 싶은 건축적 요소가 있다면요?

아파트 공간으로 이어지는 콘크리트 계단요. 건축 시공업자 두 분이 만들었어요. 4개월 동안 목재로 일일이 계단 형태를 만들고 콘크리트를 부어 완성했어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공을 들였죠. 그래서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그분을 초대해 식사 대접을 해요. 전체적으로 벽 분위기가 무척 마음에 들어요. 미니멀하게 정돈되어 있지만 차갑고 건조한 느낌이 없죠. 건축가 빈센트 판다위선의 재능이 발휘된 부분인데 커다란 창에서 들어오는 빛과 화이트 컬러, 벽의 재질감 등 여러 요소가 섞이면서 은은한 분위기를 발산해요.

 


편집숍에는 사고 싶은 물건만 구입하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요.

편집숍이라고 소개하지만 사실 우리 부부의 옷장과 같아요. 일반 콘셉트 스토어에서 볼 수 없는, 우리 부부의 이야기가 담긴 물건이 가득하고 손님은 사적인 장소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죠. 구입에 대한 어떤 강요나 물건에 대한 설명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필요 없는 물건을 사지 않도록 세일도 안 해요. 지속 가능성은 친환경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구입하지 않는 거예요. 또 중고 물건을 가져와 직접 교환하거나 판매할 수도 있도록 했어요.







 

그란마르크13을 통해 어떤 영향을 주고 싶은가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 설득력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 사회 또한 대중보다 소수, 개개인의 목소리에 주목하고 있죠. 이제는 이런 마이크로 모임, 개인의 힘이 대중을 바꾸고 세상을 거듭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거에요. 결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멋진 공간이 아니에요. 취향 좋은 사람을 불러오는 공간이죠. 신뢰를 받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쉬면서도 영감을 받고 서로 일을 도모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결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멋진 공간이 아니에요.

취향 좋은 사람을 불러오는 공간이죠.”

 



그래서 그란마르크13'지금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This is happening here)'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군요.

건물은 제자리에 있지만, 환경은 늘 바뀌죠. 물건도, 공간도, 사람도 말이죠. 음식도 매 시즌마다 달라지고요. 매일 찾아간다 해도 그때마다 다른 사건이 일어나는 곳이에요.


 

당연한 질문이지만, 왜 이렇게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진 공간에 사는 것이 중요할까요?

취향 있는 공간에서 잠을 청하는 경험을 해봐야 본인이 살고 싶어 하는 삶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이죠. 이 공간에서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름다운 물건이 아니에요. 먹고 입고 마시고 즐기는 것. 24시간 동안 이 집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경험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이상적인 삶, 살고 싶은 세상을 떠올려봤으면 해요.








얼마 전 13 그루의 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야외 테라스 공간을 만들었어요.

코로나19로 레스토랑 문을 열지 못했어요. 갑작스럽게 5월 예약도 모두 취소해야 했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이 고단한 나날들을 위로하기 위해 각자의 집에 없는, 나무 그늘이 가득한 테라스 공간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편안하게 들어와 책을 읽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죠. 자신의 집에 온 것처럼 테라스를 활용하면 좋겠어요.








본인에게 집은 어떤 장소인가요?

자신을 위한 가장 이기적인 장소라고 생각해요.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하며 좋아하는 것을 누리면서 편안하게 휴식하는 곳. 걱정, 슬픔, 스트레스 등이 침범할 수 없죠. 그런 의미에서 최근 생겨난 재택근무 문화가 무척 안타까워요. 저는 가정과 일은 명확히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고 해도 집은 삶의 공간으로 남아야 하죠. 집에는 늘 공백이 넘쳐야 해요. 물건, 사람, 사건으로 점점 채워지는 상태가 좋아요. 완벽해서 건드리고 싶지 않은 곳보다 부족해서 뭔가 채우고 싶은, 희망이 가득한 곳이 바로 집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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