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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의 목적성을 내세운 디자인 스튜디오

스튜디오 김거실 디렉터 김용철

Text | KaKyung Baek
Photos | Hoon Shin

남산 아래 위치한 스튜디오 김거실에서 김용철 대표를 만났다. 1960~1970년대의 올드 힙합과 디스코 음악을 좋아한다는 그는 몇 개의 레코드판을 틀어주었다. 기분 좋게 울리는 비트와 리듬, 인센스 스틱의 향이 부드럽게 감싸는 공간에서 김용철이 중요하게 여긴다는 명제 ‘형태는 기능에 따른다’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제 이름은 김용철이고요, 서울에서 디자인 스튜디오 김거실
을 운영하고 있어요.



지금 인터뷰 나누는 공간에 대한 소개도 해주세요.
저희 스튜디오 사무실입니다. 1년 전쯤 이태원 쪽에서, 집 가까운 곳으로 사무실을 옮기고 싶어 공간을 알아보다가 이곳 남산 아래로 오게 되었어요. 팀원은 총 4명이고, 여기서 함께 작업하고 있습니다.








남산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요?
저는 집도 스튜디오도 한강이나 남산 둘 중 하나는 보였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는 물보단 산이 더 잘 맞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집이랑 사무실 모두 남산이 보이는 곳으로 구하게 됐어요.

 



독일인이 집을 구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걸

알게 되었어요. 발코니와 거실이었죠.”

 



스튜디오 이름을 김거실로 짓게 된 계기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제가 학생 때 베를린으로 유학을 가고 싶어서 여러 번 베를린에 갔어요. 집 얻는 과정도 경험했고요. 결론적으로 유학을 가진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독일인이 집을 구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걸 알게 되었어요. 발코니와 거실이었죠. 평소에 햇빛이 잘 들지 않기 때문에 날씨가 좋으면 거실과 발코니에서 일광욕도 하고 빨래도 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았어요. 거실은 독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실내 활동을 하는 장소잖아요. 실내 레저 활동이나 재택근무, 손님 응대까지 집 안의 허브 역할을 하는 곳이죠. 거실에 대한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중에 스튜디오를 차리면 거실이라는 공간의 의미와 목적성을 추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독일어로 거실이라 이름 지었는데 발음이 어려워서 한글로 쓰게 됐어요.

 


독일어로 거실은 어떻게 말하나요?
'
본치머'라고 해요. '치머'가 방이라는 뜻이고요. 그런데 스튜디오 이름이 거실이면 주거 공간 역할만 하는 곳으로 생각할까 봐 제 성을 붙여 스튜디오 김거실로 정하게 됐습니다.






 김용철 제공

 



대표적인 프로젝트를 소개해주세요.

한남동에 있는 올드페리도넛이에요. 도넛을 파는 카페인데, 원래 클라이언트가 경리단에서 매장을 운영하다가 한남동으로 이전하면서 제게 의뢰했어요. 외국인에게도 한국의 도넛이 맛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 했어요. 또 한국적 요소로 비주얼 콘셉트를 잡기를 원해서 바 구조라든지 가구를 한옥의 주춧돌이나 병풍, 민화, 자연 등에서 모티브를 얻어 디자인했고요.

 


전체 디자인 과정에서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클라이언트가 해당 신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시각적인 외형 작업만 하진 않아요. 브랜드가 전하는 메시지라든가 콘텐츠, 제품, 서비스 등에 관해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제가 언제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명제예요. 사실 요즘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형태와 컬러에 집중해 공간을 풀어낸 프로젝트가 유난히 많아요. 저는 그보다 클라이언트가 전개하려는 방향성을 먼저 이해하고 가구, 브랜딩 아이덴티티를 확장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또 실제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곳에 가서 플레이어들의 의견을 듣는 과정도 빠뜨리지 않아요. 예를 들어 카페 공간에는 다양한 머신이 있어요. 우리나라 카페는 좋은 머신을 많이 구비해두고 있는 편인데 어떤 머신을 쓰느냐에 따라 바 공간 설계가 달라질 수 있어요. 또 플레이어가 왼손잡이라면 이에 맞춰서 집기나 설비도 새롭게 짜야 하고요.








이렇게 꼼꼼하게 진행한 프로젝트 이후에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나요?

카페, 주방, 바 등은 매일 생산과 소비가 일어나는 곳이기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요. 최대한 피드백을 안 받는 게 클라이언트가 편하게 잘 사용하고 있다는 방증 아닐까 생각해요.

 


스튜디오를 남산 아래로 옮기면서 어떤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나요?
제가 좋아하는 가구, 조명, 오브제를 수집하면서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자 했어요.








공간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일에서 다른 사람(클라이언트)을 위해 하는 디자인과 내 공간을 위해 하는 디자인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예를 들면 여기는 상업 공간을 주로 작업하는 스튜디오이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접근할 때가 많아요. 정해진 콘셉트를 지켜야 할 때도 있고, 아이덴티티의 통일성을 위해서 조형을 디테일하게 챙길 때가 많은데 제가 쓰는 공간은 아무래도 편안하게 이것저것 늘어놓고 사용하는 것 같아요.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하잖아요.(웃음) 그때그때 제 취향에 맞는 것들의 집합이라 통일감은 없는 것 같아요.








막연하지만 좋은 공간에 대한 기준이 있나요?

여행 갔을 때 화려하거나 디자인적으로 잘 만들어지진 않았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속 가능한 형태로 나이 들어가는 에이징된 공간을 좋아해요. 요즘 SNS로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 많이 생겨나는데 과연 5년 뒤, 10년 뒤에도 똑같은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해보곤 해요.

 


여행 중에 본 인상적인 공간에 대해 좀 더 얘기해주세요.

런던의 토페스라는 카페가 기억나는데요, 실제로 템스강 주변이었는지 하천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강을 사이에 두고 상권이 형성된 지역이었어요. 할머니가 운영하는 오래된 카페였죠. 그 공간이 디자인, 브랜드적으로 훌륭하지는 않았지만, 할머니와 같이 나이 먹어가는 공간에서 오는 편안함, 안도감을 느꼈어요. 카페라는 곳이 사실 사진을 찍는 곳이라기보다는 차 한잔, 커피 한잔 하면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곳이잖아요. 그런 본질적인 목적에 잘 부합하는 곳이었던 것 같아요.

 



할머니가 운영하는 오래된 카페였죠.

할머니와 같이 나이 먹어가는 공간에서 오는

편안함, 안도감을 느꼈어요.”

 



직접 디자인할 때도 공간의 에이징을 염두에 두는 편인가요?

저도 고려하긴 하지만, 그 공간을 운영하는 클라이언트의 몫이 제일 큰 것 같아요. 디자인을 마치고 공간이 태어난 다음, 본래의 조형성을 유지하면서 공간이 나이를 먹어가면 제일 좋겠죠. 하지만 공간을 운영하다 보면 조금 더 합리적인 것을 찾게 되고 조형성이 무너지는 순간이 오는데 그럴 때 아쉬운 선택을 하면 아무래도 에이징의 느낌이 덜하겠죠. 소비자들도 그걸 분명 느낄 테고요.








스튜디오에서 제일 좋아하는 오브제는 무엇인가요?

저는 엑스라인 체어를 제일 좋아해요. 보기에는 불편해 보이는데 실제로 앉아보면 되게 편해요. 제가 코펜하겐에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우리나라도 북유럽 가구가 각광받는 추세잖아요. 그런데 코펜하겐에 가서 에어비앤비 숙소, 미술관 등을 방문할 때마다 엑스라인 체어가 있더라고요. 덴마크 사람들이 실제로 쓰고 있고 좋아하는 의자라는 것을 알게 되자 애정이 더욱 커졌어요.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특정 북유럽, 바우하우스풍 의자는 그들이 애용하는 의자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비대면, 사회적 거리 두기가 확산한 요즘, 코로나 전과 후의 공간 디자인에 대해 어떤 차이를 느끼는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오프라인 비즈니스가 조금 더 소극적으로 변한 것 같기는 해요. 어떤 공간에 가서 무언가를 소비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의미가 커요. 쿠팡, 네이버 등에서 간단하게 물건을 살 수 있고 서비스도 신청할 수 있는 시대잖아요. 그런데도 그 공간을 굳이 찾아간다는 것은 공간이 가진 매력이 있다는 얘기니까요.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갈 수조차 없게 되니까 오프라인 비즈니스가 점점 소극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실제로 작업 의뢰가 들어온 경우 클라이언트들의 니즈만 살펴봐도 배달을 위주로 하는 바나 공간을 구성하는 사례가 확실히 늘었어요. 실내 좌석을 조금 더 축소하고 생산을 위한 바를 크게 만드는 거죠.

 


언젠가 살아보고 싶은 집에 관해 이야기해주세요.

저는 5살 정도 되는 에그라는 강아지와 함께 살고 있어요. 마당이 있는 집에 사는 게 꿈이에요. 강아지와 함께 마당에서 놀 수 있고 조경도 할 수 있고, 여유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즐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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