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운동하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 됐다. 여러 사람과 부딪치지 않고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을 찾고 있다면 달리기는 어떤가? 케냐의 선수들로부터 달리기를 배운 김성우 대표에게 신발 고르는 법부터 집 근처 달리기 루트 정하는 법, 재미있고 편하게 뛰는 방법까지 물었다.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마인드풀러닝스쿨이라는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달리기를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어요.
저희가 만난 이곳은 어떤 공간인가요?
송리단길에 있는 카페 다반이에요. 제가 미국에 있을 때부터 콤부차를 즐겨 마셨어요. 차 소믈리에로도 활동하는 다반 사장님은 콤부차를 잘 만들어요. 제가 국내에서 마셔본 콤부차 중 가장 맛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선천적으로 소화기관이 약해서 조금만 잘못 먹어도 금방 배탈이 나거든요. 몸에 잘 맞는 걸 먹어도 금세 알아차리고요. 콤부차는 마시자마자 제 몸이 좋아하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에너지도 생기고요.
달리기는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했나요?
대학교 4학년 때 우울증으로 힘든 시절을 보냈어요. 이렇게 말하는 게 조심스럽지만, 당시 술에 의존해서 우울증을 이겨보려
했죠. 당연히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그러다 우연히 크리스토퍼
맥두걸의 책 <본 투 런Born to Run>을
읽고 맨발 달리기를 하게 되었어요. 그 책에서 맨발로 축제처럼 달리는 부족의 이야기를 읽었거든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해서 그런지 달리기는 항상 힘든 훈련이라고만 생각했어요. 당연히 축구화를 신고 달렸고요. 그런데 신발을 벗고 풀밭 위를 달리는데
힘들지 않고 정말 즐겁더라고요. 달리는 순간만큼은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걸 느꼈어요. 햇빛 아래서 땀 흘리는 나를 느끼는 순간, 앞으로 ‘달리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진 제공: 김성우
달리기에 마음을 뺏겨 케냐로 갔던 건가요?
대학교 졸업하고 나서도 달리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 그러나 선수가 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였고. 하지만 정말 잘 뛰는 친구들에게 배워보고 싶었어요. 당시 가장 잘 달리는 선수들이 케냐와 에티오피아에 많이 있었어요. 세계에서 가장 잘 뛰는 사람들은 어떻게 뛰고 무엇을 먹는지, 그들의 비밀을 알고 싶어서 케냐로 떠났죠. 물론 그들에 관한 책이나 영상을 보긴 했지만 평소에 같이 지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생활 모습, 호흡, 표정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거든요.
사진 제공: 김성우
케냐 선수들과 지내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세계에서 가장 월등한 선수를 배출하는 나라에는 뭔가 비결이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들에겐 비결이 없더라고요. 그게 가장 충격이었어요. 케냐 아이들은 6살 때부터 학교에 가기 위해 매일 5~15km를 걷고 뛰어요. 한국이나 미국처럼 개발된 국가에 사는
사람들에게 발달할 수 없는 생리적 능력, 신진대사 능력이 그때 다 갖춰지는 거예요. 당시 여자 국가 대표 선수들과 조깅을 같이 하곤 했어요. 그런데
정말 천천히 뛰더라고요. 그들은 리커버리 런recovery run이라
불렀어요. 강한 훈련을 한 다음 날은 1km에 6분 정도 되는 속력으로 천천히 뛰면서 휴식 기간을 가졌어요. 선수들이
수다를 떨면서 즐겁게 뛰는 걸 보고 항상 빨리 달리는 게 정답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죠.
천천히 뛰는 시간이 쌓여야 잘 달릴 수 있게 되는 거군요.
맞아요. 수영, 로잉, 달리기처럼 지구력이 필요한 분야의 세계적 선수들은 코로나19 이후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어요. 코치들은 선수들이 이전보다 훈련도 덜 했는데 기록이 잘 나와서 당황했고요. 코로나19 전에는 강도 높은 훈련 후에 제대로 쉬지 않았던 거예요. 훈련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시간을 몸에 주지 않았던 거죠. 코로나19 여파로 각계 전문가들이 휴식의 중요성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케냐에서 만난 선수들도 하루에 10시간 이상 자고 일주일에 하루는 꼭 쉬어요.
마인드풀 러닝은 일반 달리기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사실 마인드풀mindful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았어요. 마음 챙김이라는 뜻인 이 단어가 요즘 마인드풀 요가나 마인드풀 다이어트, 마인드풀 이팅 등 너무 남용되는 것 같아서요.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이 단어만큼 제가 추구하는 달리기를 표현할 만한 게 없더라고요. 마인드풀 러닝은 코 호흡이 편한 속도로 나를 위해 달리는 행위를 말해요. 호흡이 불편한데도 기록을 깨기 위해, 경쟁하기 위해 달리는 게 아니고요. 자신이 달리는 이유를 인지하고 그것에 집중하는 달리기예요.
사진 제공: 김성우
오프라인으로
하는 것으로는 ‘서울숲 맨발 달리기’ 수업이 있어요. 달리기를 어렵다고 느끼는 분들이 좀 더 재미있고 쉽게 달릴 수 있도록 마련한 수업이에요. 하지만 요즘 코로나19로 대면 수업이 어려운 경우가 많죠. 그래서 같이 만나서 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온라인 수업에 참여할 수 있어요. 그중
대표적인 것이 ‘30일 5분 달리기 프로그램’이에요. 한 달 동안 15일
이상 달리기를 실천하면 수료증도 드리고요. 제가 하루 한 번씩, 자유롭게
달릴 수 있는 방법이나 동기부여가 되는 영상 등을 메일로 보내드려요. 처음에는 혼자 뛰는 게 어색할
수 있으니 들으면서 뛸 수 있는 오디오 가이드북도
드리고요.
@jacoby_1988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분들의 피드백 중 인상 깊었던 것이 있다면요?
달리기는 항상 힘든 거라고 생각한 분이 있었어요. 프로그램을
통해 5분씩 달리는 게 과연 도움이 될지 확신하지 못했죠.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달리기 수업에 참여했고 3개월 뒤에 연락을 주셨어요. 10km
마라톤 대회에 참여했다고 말이죠. 이제는 자신을 달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해요. 저는 인식이 바뀌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달리는 데 있어서도
마음가짐이 큰 영향을 미치고요. 이런 연락을 받으면 정말 보람을 느껴요.
집에 운동하는 공간을 따로 마련해두나요?
공간이 있다면 좋을 것 같기는 해요. 하지만 지금은 따로 마련하지는 않았어요. 저는 요가도 좋아하는데 거실에 매트를 깔면 그 순간만큼은 요가 공간이 돼요. 그런 식으로 매트를 활용해 운동에 집중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도 좋더라고요. 저는 집 안 곳곳에 케틀벨, 폼롤러, 셀프 마사지를 위한 나무 막대기 등을 놔둬요. 왔다 갔다 하면서 눈에 보이면 쉽게 몸을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집에서 일하다가 중간중간 스트레칭하기도 좋고요.
집에서 혼자 운동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려요.
운동에 대한 관점을 바꿔보면 도움이 돼요. 운동이라고 해서 1시간 30분씩 시간을 정해두고 땀을 뻘뻘 흘려야만 하는 건 아니죠. 잠깐 동안 팔굽혀펴기 5개, 간단한 요가 한 동작만 해도 자세가 좋아지고 혈액순환도 잘되거든요. 이런 걸 스몰 윈small win이라고 하죠. 이렇게 해서 작은 성취감을 느끼면서 운동에 대한 자신감을 갖길 바라요. 두 번째는 운동 습관을 유지하는 거예요. 저 같은 경우는 매일 아침 일어나기, 식사하기 등 하루에 빠뜨리지 않고 하는 행동 바로 뒤에 운동 시간을 붙여요. 예를 들면 저녁 먹고 요가 10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케틀벨 들고 집 안 걷기 같은 거죠.
러닝용 신발로 어떤 걸 추천하나요?
쿠션이 많고 너무 편한 신발은 권하지 않아요. 신발
기능이 너무 좋으면 나쁜 자세로 뛰고 있어도 불편하지 않거든요. 이상한 자세로 계속 달리게 되는 거예요. 가능한 한 쿠션이 없고 밑바닥이 평평한, 조금 불편한 신발을 추천해요. 학생 때 신던 하얀색 실내화도 달릴 때 좋아요. 대신 발바닥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너무 꽉 끼는 신발은 피하고요. 비싼 러닝화를 고집할 필요는 없어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려주세요.
지금은 제가 중심이 되어 온·오프라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프로토콜 형식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제가 없어도 사람들이 달리기 수업에 참여하고 인증하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요. 또 신발에 관한 실험도 해보고 싶어요. 제 생각에는 달리기에 그리 많은 장비가 필요하지 않아요. 맨발로만 달릴 수는 없지만 요즘 신발을 보면 낭비가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상품이 나오면 계속 사고요. 신발을 조립해 만들 수는 없을까? 1년에 얼마의 비용을 내면 소비자에게 신발 두 켤레를 보내주고, 소비자가 다 신은 신발은 분해해서 다시 새것으로 만들 순 없을까? 이런 식의 순환 모델을 생각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