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째 밀라노에 정착 중인 조이 헤로는 다양한 클라이언트의 취향을 고려해 그들의 공간에 작품을 비치하는 아트 에이전트를 운영한다. 단순히 아트 컬렉션을 제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장인과의 협업으로 유니크한 작품을 선보인다. 1940년대에 지은 밀라노의 오래된 아파트에서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그의 삶을 들여다봤다.
아트의 고장이자 수많은 취향이 존재하는 밀라노에서 예술과 디자인 분야에 몸담는다는 건 어느 직군보다 치열한 하루를 사는 일이다. 올해 초 아트 에이전트, 더 그레이트 디자인 디재스터The Great Design Disaster(TGDD)를 설립한 조이 헤로Joy Herro는 밀라노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아트 & 디자인 전문가로 꼽힌다. 단순히 아트 컬렉션을 제안하는 일에 머물지 않고, 각 공간에 어울리는 작품이나 디자인을 지역 장인과 협업해 완성하는 식이다. ‘프라다 칼로가 고질라를 봤다면 작품 속에서 어떻게 녹여낼까?’,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이지라이드 자전거를 탄다면?’ 같은 예측 불가한 상상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디자인 피스를 만들어낸다. 공간에 아트와 디자인 작품을 들이는 일이 대중적 취미로 자리 잡은 요즘, 남다른 취향을 갖는다는 건 하나의 경쟁력일 터. 밀라노의 작은 아파트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공간의 오브제를 고민하는 아트 디렉터의 밀라니즈 라이프를 들여다봤다.
패션과 아트에 관심 많은 이라면 누구나 동경하는 예술의 도시에서 살고 있어요. 어떤 계기로 밀라노에 정착했나요?
디자인과 예술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레바논에서 나고 자랐어요. 인테리어,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이탈리아 로마로 건너왔고, 거기서 대학을 다니며 제품 디자인을 전공했죠. 당시 빈티지 디자인에 관한 공부가 공간을 다각도로 바라보고 접근하도록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어요. 졸업 후 이탈리아 빈티지 디자인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갤러리를 관할하게 되면서 아트 & 디자인 작품을 선별하는 안목을 기르게 됐죠. 이탈리아 디자인과 문화에 대한 개인적인 열정으로 여기까지 이끌려온 것 같아요.
최근 더 그레이트 디자인 디재스터라는 새로운 아트 에이전시를 론칭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더 그레이트 디자인 디재스터는 맞춤식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아트 에이전시예요. 열렬한 아트 컬렉터가 일종의 투자자가 되도록 안내하죠. 밀라노에는 평생을 한 분야에만 매진하는 장인이 많아요. 그들에게 원하는 디자인의 가구나 조각품, 설치 작품을 의뢰해 독창적인 예술 작품이 완성되도록 조율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결과적으로 세상에 한 점뿐인 작품이 고객의 공간에 놓이게 되는 거죠.
밀라노 장인과 협업한 작품 가운데 반응이 좋았던 것을 꼽는다면요?
단 한 작품만 고른다는 건 힘든 일이에요. 황금빛 브론즈를 둥근 조약돌처럼 연마해 제작한 샹들리에 ‘Space Chandelier’, 빛이 투영되는 다양한 색상의 아크릴 조각을 마치 테트리스 퍼즐처럼 쌓아 올린 사이드 테이블 ‘Tetris’ 등 수십 점의 협업물을 제작하며 호응을 얻었어요. 작품을 집에 들일 때는 그 공간에 함께할 다른 작품들과의 조화를 염두에 두죠.
“주변에 훌륭한 이웃이 있느냐는
집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현재 살고 있는 밀라노 집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지금의 아파트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요?
3년 전부터 밀라노로 건너와 살고 있어요. 1940년대에 지은, 이웃과 창을 마주하고 있는 전형적인 밀라니즈 스타일의 아파트죠. 주변에 훌륭한 이웃이 있느냐는 집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아파트 창문 밖으로 공원이 내다보이는데 그곳에서 매일 아침 조깅을 즐기며 이웃들과 교류하죠. 부지런하고 열정적으로 생활하는 제 싱글 라이프와도 잘 맞는 것 같아요.
집에 어떤 작품을 두었는지 궁금해요.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더 그레이트 디자인 디재스터를 함께 이끄는 그레고리 가체렐리아Gregory Gatserelia의 작품을 좋아해요. 그가 제작한 미니멀 체어를 볕이 드는 창가에 두었는데 그 자체로 하나의 정물화 같죠. 최근 인스타그램에도 올렸을 만큼 애착이 남달라요.
집은 개인의 취향이 집약된 공간이죠. 집을 꾸밀 때 자신만의 원칙이나 노하우가 있나요?
공간을 디자인할 때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거울과 빛이에요. 어느 방향에서 얼마만큼의 빛이 들어오는지, 어떤 조명을 달아 집 분위기를 연출할지 생각하죠. 거울은 공간을 확장하거나 시선을 분산시키기는 흥미로운 오브제예요. 잘 활용한다면 공간을 깊고 흥미롭게 구획할 수 있는 아이템이죠.
일상에서 특별한 의식이 있다면요?
침대에서 즐기는 낮잠요. 바쁜 일과와 업무로부터 벗어나 완벽하게 쉬기 위해서죠. 따뜻한 오후, 침대에 볕이 드는 시간에는 일부러 나른하게 저 자신을 내버려두는 편이에요. 도시에서 생활하면 한 번씩 심신이 무장해제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빛과 맑은 공기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중요한 동력이죠.
소셜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많은 사람이 집을 공개하고 특정 라이프스타일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나요?
타인의 삶을 쉽게 들여다볼 수 있는 소셜 미디어의 시스템 속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적어도 우리는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놀랄 일이 줄어들었어요. 어떤 공간을 방문하거나 누군가를 만나기 전, 이미 그 사람의 됨됨이나 취향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공간에 어울리는 작품을 고른다는 것이 쉬운 작업은 아닐 텐데요.
작품을 선택하는 것은 매우 주관적인 영역이에요. 그 결과물은 지극히 사변적이고 감정적이죠. 그래서 온전히 그 인물이 되어 그 공간을 누비고 어떤 동선 아래 사용할지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편이에요.
아트 에이전트로서 지금껏 진행한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다면요?
베이루트에 있는 수집가의 집을 예술 작품으로 채우는 일을 한 적이 있어요. 훗날 중요한 아트 컬렉션이 될 여러 디자인 작품을 직접 선별하고 제안하면서 많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죠.
아트 & 디자인 전문가로서 최근 개인적으로 주목하는 아티스트나 디자이너가 있나요?
여성의 머리를 주제로 패티시 작업을 선보이는 줄리 커티스Julie Curtiss의 작업을 좋아해요. 밀레니얼 아티스트를 대표하는 그녀의 작품으로 인해 저의 헤어스타일에 변주를 주고 있죠. 아이스크림을 든 여성의 손가락 털을 강조한 그림이나, 장발의 헤어스타일을 통해 담배를 문 인물의 성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드는 그림으로 유명한 작가예요. 줄리 커티스의 작품이 동시대에 전하는 울림이 깊어 최근 제 인스타그램에 “Hair as culture and power”라는 문구를 올리기도 했어요.
밀라노의 일상에서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매일 숙련된 장인들과 워크숍을 하며 시간을 보낼 때예요. 프로젝트 과정을 추적하고 새로운 재료와 기술을 배워나가는 시간이 소중해요. 밀라노의 플리마켓을 돌아다니며 보석 같은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발견할 때도 참 보람 있죠.
“저는 작가나 디자이너, 창의적인 일을 하는
세상의 모든 아티스트들 위에 장인이 자리한다고 생각해요.”
집이 더욱 중요해진 시대에 살고 있죠. 집이란 어떤 의미인지 한마디로 정의한다면요?
제가 가장 아늑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에요.
당신의 라이프스타일에 영향을 미친 아티스트나 디자이너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저는 작가나 디자이너, 창의적인 일을 하는 세상의 모든 아티스트들 위에 장인이 자리한다고 생각해요. 한땀 한땀 정성스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수행해온 이탈리아의 무수한 장인을 예로 들 수 있죠. 그들은 자신의 꿈을 성실하게 실현하는 신중한 사람이에요. 모든 유행이 빠르게 변하는 요즘에도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장인이 존재하고, 그들에게 작품을 의뢰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예정된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코로나19로 인해 올가을로 미뤄진 밀라노 가구 박람회(Salone del Mobile)에 참여할 계획이에요. 9월 5일부터 10일까지 열리는 전시에는 4명의 컬렉터와 4명의 장인이 협업한 신작들을 소개할 예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