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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 전원주택에 숨은 맛의 공간

요리연구가 나카가와 히데코

Text | Kakyung Baek
Photos | Hoon Shin

요리 연구가 나카가와 히데코는 연희동의 아늑한 주택에 살면서 요리교실 ‘구르메 레브쿠헨’을 10년 넘게 운영해오고 있다. 그가 여럿이 함께 요리하고 완성된 음식을 좋은 술과 나눠 먹는 멋진 경험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를 닮아서 정갈하고 아늑한 요리 공간에서는 감칠맛 나는 음식과 요리를 통해 만난 사람들의 얘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선생님에게는 두 가지 이름이 있으시죠?

일본 이름은 나카가와 히데코예요. 1998년에 결혼하고 한국에서 산 지는 30년이 다 되어가요. 큰아이 낳고 한국으로 귀화했죠. 당시 한국 이름을 지을 때, 남편이 원래 이름을 한자로 쓰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더라고요. 일본 이름을 한자 그대로 쓰면 중천수자예요. 그래서 제게는 중천수자라는 두 번째 이름이 있어요.



대문에 달린 간판에 '구르메 레브쿠헨'이라 쓰여 있어요. 어떤 뜻인가요?

원래 레브쿠헨을 이메일 주소로 사용했는데, 요리 교실을 시작할 때 남편이 '구르메'를 붙여서 만들어준 이름이에요. 레브쿠헨은 생강 쿠키를 뜻하는 독일어이고 구르메는 미식가라는 뜻이에요. 제게 맛의 놀라움을 깨닫게 해준 생강 쿠키의 기억이 담긴 말이에요.








1층을 구르메 레브쿠헨으로 운영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2007년 전까지는 아파트에 살다가 이곳 연희동 주택으로 이사를 왔어요. 누군가를 초대하고 함께 요리해 먹는 걸 좋아했지만, 아파트에 살 땐 요리를 가르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어요. 좀 더 넓고 독립적인 공간으로 이사하고 나니 그제야 제가 좋아하는 수업도, 모임도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당시 저는 육군사관학교에서 일어 강사로 일하면서 요리 교실을 몇 군데 다니고 있었어요. 베트남 요리 수업이었는데 선생님이 수업하는 걸 보면서 나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 같이 수업을 듣던 멤버들이 저에게 스페인 요리를 배워보고 싶다고 해서 자연스러운 계기로 요리를 가르치게 됐어요.




좀 더 넓고 독립적인 공간으로

이사하고 나니 그제야 제가 좋아하는 수업도, 모임도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처음으로 요리 교실을 열었을 때 메뉴가 파에야였던 이유가 있나요?

젊었을 때 저는 일본에서 하루빨리 나가서 살고 싶었어요. 신문기자가 되기 위한 인턴 과정을 다 마친 상태였는데 무작정 일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스페인으로 떠났죠. 거기서 통신원, 번역 등의 일을 하면서 지냈어요. 그때 어깨너머로 다른 나라의 음식을 배우고 저만의 레시피를 쌓기 시작했죠. 스페인에서 혼자 살면서 파에야를 곧잘 만들어 먹었어요. 저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고향 음식에 대한 향수가 별로 없었어요. 어디서든 그 나라 음식을 즐겼는데 그중 하나가 파에야였죠. 제가 전 세계를 다니면서 먹은 요리 중에서도 재미있는 것을 주로 가르쳐요.








요리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정식으로 요리를 배우는 코스를 밟지 않았어요. 그저 요리를 좋아할 뿐이었죠. 또 아버지가 오랫동안 셰프로 일했는데 아버지 레스토랑에서 일을 도와드리면서 어깨너머로 하나하나 배웠어요. 그런 배경이 쌓여서 지금 저만의 레시피를 만들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이봄출판사 제공




지금 운영하는 요리교실인 구르메 레브쿠헨은 수강하기 위한 대기자가 정말 많다고 들었어요. 주로 어떤 분들이 이 수업을 듣나요?

지금은 코로나 상황이라 정규 수업은 진행하지 않아요. 한창 수업을 할 때는 학기 단위로 진행했어요. 오전에는 주부가 많고 의사, 변호사, 경제학자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일을 마치고 오기도 해요. 오래 다니신 분들은 10년 정도 된 경우도 있고, 기본적으로 3년 정도 수업을 꾸준히 듣는 제자가 많은 편이에요.








수강생들이 선생님의 수업을 오랫동안 듣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제가 만드는 프로그램이 다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정규반은 일본 요리, 지중해 요리, 스페인 요리, 술안주 만드는 수업이 있고요. 해마다 제가 관심 있는 주제로 새로운 수업을 기획해요. 예를 들면 식재료 연구반처럼요. 정규 수업을 듣고 나서도 이렇게 새로 기획한 수업을 들으면 굉장히 다양한 레시피를 배울 수 있어요. 특히 수강생들이 제 수업에서 제철 식재료 활용 방법을 잘 알려줘서 좋다고 많이 얘기하더라고요. 또 식재료 간 궁합을 맞추는 법도 다들 흥미롭게 배우는 것 같아요.



요리교실을 운영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사람이에요. 몇 년 운영해보니 음식은 수단일 뿐이더라고요. 한 학기 수업 초반에 수강생과 제가 잘 맞는지 알아챌 수 있어요. 그런 분들을 억지로 끌고 가려고 하지 않는 편이에요. 저는 수업에서 요리를 배우는 사람, 분위기, 관계를 매우 세심하게 살피고 이끌어가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선생님의 수업은 주로 여러 명이 함께 요리하고 나눠 먹는 형태인 것 같아요. 이렇게 여럿이서 함께 요리하는 경험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저는 요리 교실의 지휘자 역할을 해요. 어느 정도만 설명하고 시범도 적당히 보여주고요. 나머지는 수강생들이 레시피를 보면서 각자 음식을 만들도록 해요. 궁금한 것은 그때그때 제게 물어보기 때문에 이 수업의 정체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되게 정신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웃음) 하지만 그런 분주한 와중에도 요리가 하나씩 완성되는 과정을 보면 저도 수강생들도 큰 성취감을 느끼죠. 그리고 때로는 2명씩 짝을 지어 한 가지 요리를 만들 때도 있어요. 그럴 때 함께 요리했던 사람들이 금세 친해지죠. 요리하면서 자연스럽게 각자의 고민도 나누게 되고요. 특히 제 수업에서는 좋은 와인을 마시면서 완성된 음식을 다 함께 나눠 먹어요. 이런 분위기에서 나오는 얘기들이 제 수업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요.





이봄출판사 제공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 집에서 자주 하는 요리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작년에 코로나19 때문에 거의 집 밖에 나가지 못했을 때는 가족과 함께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자주 했어요. 만두, 쿠시카츠 같은 거요. 쿠시카츠는 여러 재료를 손질해 꼬치에 꽂아서 튀겨낸 요리예요. 닭고기, 흰 살 생선, 우엉, 당근 등의 재료를 미리 데쳐두었다가 밀가루, 달걀, 빵가루를 묻혀 튀기면 되죠.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품이 정말 많이 들어요. 이것을 가족과 분담해서 함께 만들어 먹으면 참 좋더라고요.








이번에 펴낸 신간 <히데코의 연희동 요리 교실: 비장의 레시피>집밥을 테마로 했어요. 그중에서도 반응이 좋았던 레시피 몇 가지를 추천해준다면요?

아무래도 만들기 쉬운 음식이 반응이 좋은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문어 세비체배추와 베이컨 오븐구이를 추천해요. 지인들이 직접 만들어보고 정말 맛있다고 했던 요리예요. 문어 세비체는 스페인 요리의 영향을 받은 중남미 요리죠. 해산물을 얇게 잘라 다진 채소와 레몬, 라임즙 등에 절여서 만들어요. 배추와 베이컨 오븐구이는 제가 처음 요리교실을 시작할 때부터 인기 메뉴였는데 이 책에 처음으로 레시피를 소개했어요. 커다란 배추에 베이컨을 곁들여 오븐에 굽는 요리인데, 배추의 매력을 극대화해 맛볼 수 있어요.



요즘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요즘은 정말 음식 포화 상태인 것 같아요. 먹고 싶은 것에 대한 질문이 제일 어려워요. 하지만 누군가 제게 음식을 만들어준다고 하면 한식을 고를 것 같아요. 밥과 반찬이 있는 한식의 정갈함이 좋아요.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정말 맛있잖아요. 요즘 같은 계절이라면 애호박볶음 같은 반찬이 나오겠죠. 제가 남편에게 한식을 요리해주면 뭔가가 좀 빠진 것 같다는 말을 듣곤 해요. 한식 선생님에게 배워서 조금씩 늘고 있지만 아직도 아쉬운 부분이 있거든요.








요리를 잘한다는 것은 선생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정식으로 요리를 배운 게 아니고 어깨너머로, 책을 보고 배운 거라 이 질문에 답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도 요리를 잘한다는 건 훈련이 되어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훈련이란 여러 번 반복해서 습득하는 거잖아요. 그중에서도 특히 맛을 보고 간을 잘 맞추는 게 중요해요. 이를테면 어떤 요리를 하는지에 따라서 소금을 조금넣는 기준이 각각 달라요. 그런 미세한 차이까지 감별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요리를 잘하는 것 아닐까요? 물론 안목이나 센스처럼 훈련으로 기를 수 없는 것도 요리를 잘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에요.








집에서 요리를 시작해보려는 초심자에게 조언을 해준다면요?

한 가지 음식을 여러 번 만들어보면서 원하는 맛이 나올 때까지 반복해보는 게 좋아요. 이것저것 해보는 것보다 한 가지를 열 번 이상 해보면 어떤 요리든 자신 있게 할 수 있게 되거든요. 또 좋은 칼을 구매하는 것도 추천해요. 조금 저렴한 걸 사면 재료 손질하기도 힘들고요. 꼭 좋은 도구로 요리를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칼과 도마, 프라이팬 같은 기본 도구를 잘 갖춰놓으면 요리를 시작할 때 큰 도움이 되죠. 계속 오래 쓸 수 있는 것으로요.



앞으로 연희동 요리 공간에서 어떤 일을 계획하고 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요리책은 제게 명함 같은 의미라 꾸준히 낼 계획이에요. 에세이도 한 권 준비하고 있고요. 또 각 분야의 친구들과 음식을 연결하는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도 계획하고 있어요. 물론 코로나19 때문에 계획해놓고 하지 못한 일도 너무 많지만 앞으로 좀 더 재미난 일을 벌여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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