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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동 치킨집 건물 4층의 세라믹 스튜디오

폴리가든 홍주아, 김민정

Text | Anna Gye
Photos | Mineun Kim

세라미스트 홍주아, 김민정은 소위 뜨는 동네 대신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낯선 동네에 작업실을 열기로 했다. 두 사람이 운영하는 브랜드 폴리가든이 고정된 이미지에 머물지 않도록,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창작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다. 용산구 동자동에 위치한 작업실은 언제라도 낯선 장소로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왼쪽부터) 김민정, 홍주아




동자동 치킨집 건물 4이라는 주소를 받고 언뜻 세라믹 스튜디오를 상상하기 힘들었어요.

(김민정) 2년 전 저희가 여기 들어왔을 때는 상가뿐만 아니라 건물 곳곳이 비어 있었어요. 간판도 없는 건물이라 매력적이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치킨집이 생겼더라고요. 폴리가든 클래스를 찾는 분들이 많으셔서 편의상 서울역 맞은편 동네, 동자동 치킨집 건물 4이라고 설명하고 있어요.(웃음)

(홍주아) 처음부터 이 동네를 생각한 것은 아니에요. 성수동, 연희동, 연남동 등 소위 뜨는 동네나 이미지가 강한 동네는 피하고 싶었어요. 폴리가든 브랜드가 동네 이미지와 충돌하는 것이 싫었고, 무의 상태에서 저희만의 느낌을 만들고 싶었어요. 부동산에서 동자동 매물이 나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동자동? 거기가 어디지? 뭐가 있는 동네지?’ 하고 바로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알고 보니 서울역 맞은편 빌딩 숲에 가려진 쪽방촌이 있는 동네였고,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었어요. 당시 활동적 에너지가 필요했던 저희에겐 딱이었죠.








마음에 드는 공간을 찾기 위해 몇 달간 애썼다고 들었어요. 이 공간의 어떤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나요?

(김민정) 처음부터 채광이나 통풍이 잘 안되는 지하나 1층 공간은 제외했어요. 도예 작업 특성상 작업, 유약, 건조 과정이 별도로 이뤄져야 해서 규모와 구조도 고려해야 했죠. 이곳은 4층이라 불편하지만 저희에게 필요한 여러 조건을 만족시켰고, 무엇보다 다른 층에 비해 천장이 높아서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27( 90)이지만 체감적으로 더 넓게, 쾌적하게 느껴지죠.

(홍주아) 당시만 해도 건물 전체가 비어 있었고 간판도 없이 리모델링을 앞둔 건물이라 저희가 개입할 수 있는 점이 많아 보였죠. 공간에 대한 어떤 단서가 보이지 않아서 매력적이었다고 할까요. 아는 사람만 올 수 있는 프라이빗한 느낌도 있고요.




아티스트에게 작업실은 공간이 아니라 작업의

일부라고 봐요. 작업실 분위기와 환경에 따라

작업 방향이 달라질 수 있거든요.




동네도 그렇고 건물도 그렇고 백지상태의 공간을 찾은 것 같네요.

(김민정) 맞아요. 아티스트에게 작업실은 공간이 아니라 작업의 일부라고 봐요. 작업실 분위기와 환경에 따라 작업 방향이 달라질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공간이 좁으면 자연스럽게 작업 규모가 작아지고 심리적 압박을 느끼죠. 그래서 작업실을 구할 때 가능하면 한계와 규정이 없는 공간을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내부도 마찬가지예요. 벽이나 가구로 공간이 구분되지 않도록 바닥과 천장까지 무색무취 분위기를 입히려고 했어요. 책장, 선반, 테이블도 가장 간단한 형태로, 나무로 제작했죠.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작업에 따른 동선이었어요. 작업 테이블 다음에 건조 선반이 있고 그다음에 유약 과정에 필요한 개수대와 가마 구역, 그리고 완성된 작품을 진열하는 선반과 포장 작업 공간으로 이어지는 식이죠. 가만히 보면 의자, 테이블, 선반 등 모든 인테리어 요소가 각각 그 자리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창작 작업이라는 것이 쉽게 지칠 수 있어요. 그래서 끊임없이 자극받고 다른 생각에 몰두할 있도록 하는 좋은 환경이 필요하죠. 그런 환경을 찾기 위해서 계속 이동하고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홍주아) 여기 온 지 2년 정도 되는데 끊임없이 다른 장소로 옮겨볼까 생각해요. 시간 날 때마다 이곳저곳 부동산을 기웃거리곤 해요. 새로운 동네, 건물, 사람들에 따라 폴리가든 작업도 달라질 거예요.










찾고 있는 작업실 분위기가 있나요?

(김민정) 성수동, 연남동 등 우선 뜨는 동네는 제외하고 싶고요. 그리고 동자동처럼 상가와 회사가 많은 동네도 피하고 싶어요. 이미 경험했으니까요. 새소리가 들리는 공원이 있고 한적한 곳. 이곳과 정반대 느낌이면 어떨까 싶어요. 무엇보다 작업실 안에 적당히 쉬고 놀 수 있는 휴식 장소가 있었으면 해요.

(홍주아) 저희 둘 다 회화를 전공했고 도예 작업은 이후에 자발적으로 시작했어요. 폴리가든은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드로잉과 섬세하게 쌓아 올리는 흙 작업 사이 어디쯤, 상업과 순수 작업을 오가는 작품을 추구하죠. 그런데 클래스나 작품 판매 문의가 많아서 개인 창작 작업을 거의 못 했어요. 특히 회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싶었는데 작업실 환경상 그럴 수 없었죠. 그래서 좀 더 넓은 공간에서 각자 개인 작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외적 에너지를 얻고 싶어서 분주한 동자동의 상가 건물을 선택했지만, 다음 작업실은 내적 에너지를 키울 수 있는 평화로운 동네면 좋겠어요. 도심과 살짝 떨어져 있어도 좋고요.








두 분 다 회화를 전공했는데 어떻게 도예 작업을 하게 되었나요? 회화와 도예 작업의 큰 차이점이 있다면요?

(홍주아) 좀 더 실용적인 것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마지막 학기쯤에 도예 수업을 들었는데 형태를 완성하고 가마에 넣고 유약을 바르는 매 순간마다 물성이 확확 바뀌더라고요. 분명 검은 흙인데 가마에서 나오면 백색이 된다든지, 액체 같은 유약이 반짝거리는 파우더처럼 보인다든지 하는 기발성, 의외성이 매력적이었어요.

(홍주아) 무엇보다 끝이 있어 좋았어요. 회화 작업은 글 쓰는 일처럼 본인 마음에 들 때까지 수정하고 덧칠하면서 채워나가야 해요. 끝도 없고 만족도 없죠.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에요. 그러나 도예 작업은 마지막 가마 과정을 거치면 완성이에요. 명쾌하게 결론이 나죠.



그래서 그런지 도예 작품에 회화적 요소가 보이는 것 같아요. 다른 세라믹 스튜디오와 구별되는 차별점이기도 하고요.

(김민정) 다른 세라믹 스튜디오와 차별을 두기 위해 특별하고 새로운 기법을 추구하지는 않아요. 어떻게 보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방법이지만 표현하는 스타일이 다른 거죠. 형태보다 색감, 질감, 표면 효과에 집중하고 그에 따라 자연스러운 형태를 찾는 식이에요. 공간의 포인트가 되기보다 공간의 일부가 되는 작품 말이죠. 도예를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희만의 방식으로 이것저것 혼합하면서 폴리가든만의 분위기를 찾은 것 같아요.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장르, 기법, 기술은 없어요. 도예, 회화, 조각 등 예술 장르를 충돌 없이 버무려 조화를 이루어내면 새로운 느낌이 나오죠.








인스타그램에서 인기를 끈 콜라주 머그컵, 페이퍼 머그컵을 보고 표면에 드로잉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흙을 섞은 후 김밥처럼 말아서 자른 단면을 일일이 이어 붙여 형태를 만드는 방식이더라고요.

(홍주아) (페이퍼 머그컵을 가리키며) 여기 얼굴 모양 보세요. 흰색, 검은색 등 여러 컬러의 흙을 섞어 김밥처럼 말고 단면을 자르면 이런 모양이 나와요. 자른 단면을 하나의 사각 블록이라 생각하고 반복적으로 이어 붙여 전체 컵 형태를 만드는데, 흙의 물성 때문에 모양이 찌그러지고 뒤틀리면서 자연스러운 패턴이 생겨요. 이렇게 만들려면 흙을 섞을 때부터 철저히 계산해야 해요.



공이 많이 드는 작업이네요.

(김민정) 그렇죠. 티가 나지 않지만요. 2013년부터 이런 작업을 꾸준히 해왔고, 첫 시작은 화분이었어요. 마음에 드는 화분이 없어 직접 만들다가 폴리가든이란 이름이 탄생했죠. 당시 생각보다 화분이 잘 안 팔렸어요.(웃음)








순수 미술을 전공한 분들은 보통 상업 브랜드 스튜디오를 내고 클래스나 다른 활동을 하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 경우가 많은데 스튜디오 운영뿐만 부지런히 SNS 활동을 하면서 인지도를 쌓고 있는 것 같아요.

(김민정) 상업과 비상업 활동을 구분하고 나는 아티스트니까 순수 활동만 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이라 봐요. 저희 작업과 결이 맞는 사람들에게 저희 작업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상업성이란 자기 것을 버리고 대중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것을 대중이 즐기도록 만드는 파격을 뜻하죠. 사람들이 새로움에 눈뜰 수 있도록 이끌어야죠. 클래스 운영도, SNS 활동도 그런 새로움을 알리기 위한 소통 창구예요. 성공보다 반응을 듣기 위해 브랜드를 널리 알리고 싶어요. 이런 소통이 있어야 지치지 않고 성장하고 발전하면서 작업할 수 있어요.

(홍주아) 폴리가든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이미지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고루하다고 봐요. 폴리가든은 세라믹이 될 수도, 조각이 될 수도, 회화 작품이 될 수도 있죠. 미니멀하면서도 때론 화려할 수도 있고요. 고정된 이미지와 분위기를 떠올리지 않았으면 해요. 불안한 것이 더욱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주저앉기보다 흔들리면서도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다양한 분야를 탐색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기회를 얻을 수 있죠.








그렇게 끊임없이 변화하는 폴리가든이 되기 위해 도전하는 것이 있나요?

(김민정) 다시 화분 작업을 시도하고 있어요. 과거에 화분을 만들 때는 식물을 어떻게 기르는지도 모르고 아티스트 입장에서 화분을 만들었어요. 이제는 다양한 식물을 직접 키우면서 터득한 지식과 식물 애호가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반려식물이 잘 살 수 있는 집 같은 화분을 떠올리고 있어요. 종류에 따라 화분 안에 유약을 바르거나 물줄기 구멍이 커야 하는 경우가 있어요. 요즘 이렇게 식물 공부하느라 집이 거의 정글이에요. (웃음)

(김민정) 최근 타일 작업에 관심이 가요. 공간과 연결 고리가 있어서 차후에 공간 작업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조형 작업도 시도하고 있어요. 미국 아티스트 제이비 블렁크JB Blunk처럼 전방위적으로 움직이려고 해요. 자연스럽게 물 흘러가듯이 변화하고 싶어요.








작업실에는 식물이 안 보이네요.

(홍주아) 가마 때문에 내부가 건조해서 식물 기르기가 어렵더라고요. 집으로 다 피신시켰죠.

(김민정) 집에는 식물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제 성격도 그렇지만, 흙더미와 도구가 가득한 도예 작업을 하다 보니 가구나 물건이 많으면 짐처럼 느껴져요.



세라미스트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무엇일까요?

(김민정) 세라믹 작업은 혼자 하기엔 엄청 힘들어요. 주로 혼자 작업하는 회화 작품을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더 크게 느끼는 것 같아요. 도예 작업과 스튜디오 운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협업과 협동이죠. 그래서 이런 공동체적 분위기를 유지하려면 좋은 공간을 찾는 것이 중요해요. 최근 저희가 이사를 계획하고 있는데 클래스 회원, 도와주시는 아티스트, 협업을 요청하는 분들을 더 반갑게 맞이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죠. 지치지 않게 해주는 좋은 공간, 생각이 고정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극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능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홍주아) 당연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체력이 우선입니다. 잘하고 싶다고 생각할수록 정신적, 체력적으로 한계가 찾아오죠. 몸과 마음이 단단해야 자신의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고, 타인에게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내 것을 잘 해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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