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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공동주택, 도시, 재생

우리 동네가 모두의 집이라면

도시 공감 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 소장 이준형

Text | Anna Gye
Photos | Mineun Kim

후암동에는 모두를 위한 집이 있다. 6명의 건축가가 후암동에 도시 공감 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를 열고 후암동에 어울리는 집을 보여주기로 했다. 하나의 건축물 대신 동네 이야기가 가득한 길 위에 후암 주방·거실·서재·별채·노트·제빵실과 이 모든 공간을 안내하는 후암연립을 만들었다. 후암동 프로젝트는 건축가가 마을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후암동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2014년부터 후암동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공간을 운영하고 있어요. 어떤 의도로 시작했나요?

건축 공부를 하면서 평범하고 일상적인 공간을 다루는 동네 건축가가 되고 싶었어요. 주민들이 찾아와 자기 집의 문제점을 상담하고 장기적으로는 동네 건물을 개선하는 건축가 말이죠. 하지만 이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에요. 아직도 건축은 경제적, 사회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죠. 건축은 돈이 들어가는 일이고 건축가는 필연적으로 돈을 가진 사람들과 일을 하게 되죠. “그렇다면 어떻게 건축가가 동네에 침투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대학원 동기 6명과 함께 도시 공감 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하고 후암동을 찾았어요.








왜 후암동을 선택했나요?

집을 다루는 건축가의 입장에서 오래된 동네, 주거지역으로 다양한 삶을 품은 동네가 우선이었어요. 서울 사대문 동네들을 살피면서 후암동까지 왔죠. 후암동은 서울역에서 남산까지 이어지는 큰 지역인데 아이들 웃음소리, 주민들 간의 활기찬 인사가 끊임없이 들렸어요. 특히 후암맥주, 후암커피 등 동네 이름을 딴 상호가 유달리 많이 보였어요. 빌라촌이나 아파트 단지와는 다른, 따뜻한 분위기와동네만의 정체성이 보였죠.




“후암동은 큰 지역인데 아이들 웃음소리,

주민들 간의 활기찬 인사가 끊임없이 들렸어요.”




20166 용산고등학교 근처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처음 한 일은 무엇인가요?

동네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알려면 동네를 이해하는 것이 먼저예요. 후암동의 오래된 집과 거주자의 삶을 기록하는 후암가록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한 손에 지도를 들고 동네 구석구석을 다니며 살폈어요. 점심에는 동네 밥집을 찾고 책방과 카페에서 오후 시간을 보내고요. 그렇게 들여다본 장소, 사람, 풍경을 잡지 <후암탐구생활>에 담았죠. 후암동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군영(현 용산 미군 기지)과 서울역, 용산역 주변 지역으로 일본인이 많이 거주하면서 자연스럽게 모습을 갖췄어요. 지금은 삼각 지붕을 얹은 목조 주택부터 근대화 과정에 생긴 다가구·다세대 주택 그리고 유명 건축가의 소규모 건축물까지 다양한 주택 유형이 층을 이루고 있죠.










이런 과정을 통해 후암동에 어울리는 집을 고민했겠네요.

그렇죠. 여기서 건축가의 아이러니가 드러나는데 건축가는 숙명적으로 클라이언트가 존재해야 재능을 보여줄 수 있어요. 건축가가 먼저 집을 지어 파는 구조가 성립하지 않죠. 나름 저희끼리 공유 주택을 만들어볼까 생각했는데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더라고요. 그렇다면 집 전체가 아닌 함께 TV를 보고 요리하고 휴식을 취하는 집 안의 가족 공유 공간을 차례대로 만들어 운영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죠. 그렇게 후암주방을 시작으로 길을 따라 드문드문 후암거실(홈 시어터), 후암별채(스파 라운지), 후암노트(전시 및 휴식 공간), 후암연립(카페와 숍), 후암서재, 후암제빵실 등을 만들었어요. ‘집 안의 공간을 밖에 마련해 누구나 경험해볼 수 있도록 한다목적으로 삼으니 공유 공간이 가장 적합한 방식이 되었죠. 건축가의 시선을 담은 공간은 10평 미만의 작은 공간이라도 기능적으로, 미학적으로 만족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특히 동네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직접 경험하게 하고 싶었어요.












실제 후암동 주민들이 이 공간을 사용하나요?

20% 정도예요. 외부인이 더 많죠. 비대면 예약제로 운영해서 젊은 층이 대부분이고요. 그렇다면 동네 주민을 위한 공간이라 할 수 없지 않느냐 하는데, 그렇게 단정 지을 수는 없어요. 살기 좋다고 느끼는 동네는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 공간을 외부인들이 찾아오면서 생기 있는 동네가 되었다고 좋아하는 분도 있고 신선한 공간 덕분에 동네가 차별화되어 좋다는 주민도 있어요. 후암동 프로젝트는 동네라는 이름으로 묶고, 사람들을 연결하고, 로컬 비즈니스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형식에서 탈피하고 싶어요. 핵심은 건축이에요. 건축물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속에서 윤리적,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윤리적,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존재한다고요?

아무리 건물이 멋져도 주변 건축, 동네 분위기,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으면 사람들이 찾질 않아요. 멋진 아파트지만 사방이 도로뿐이라면 차를 타고 다른 동네로 가겠죠. 자신의 동네를 둘러볼 생각도, 여유도 없을 거예요. 하지만 집에서 15분 거리 내에 여유롭게 걸으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어떨까요? 동네에 머물고 싶고 가보지 않았던 길도 살피게 되죠. 동네에 필요한 좋은 공간이란 사람이 모이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을 연결시키는 공간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후암 주방·별채·거실 등은 접점 공간이 될 수 있죠. 자연스레 공간과 길을 둘러보고 다른 장소를 찾게 되고나도 후암동에 살아볼까?’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어요.








동네에 필요한 공간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가요?

마을에 공간을 만든다고 할 때 단순히 커뮤니티 공간을 떠올리는데, 요즘 현대인의 성향이나 변화에 대응하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해요. 현대인에게 필요한 마을의 공간은 오히려 혼자 조용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요? 1인 스파 라운지 시설이 있는 후암별채처럼요. 저희 시설 모두 작은 규모로 소수만 단독으로 이용할 수 있고 비대면 방식으로 예약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프라이빗한 방식 때문에 찾는 분이 많아요.



맞아요. 타인과 섞이지 않고 우리끼리 모이길 원하죠. 지역보다 취향이 같은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원해요. 그래서 동네 이웃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것 같아요.

사라졌다기 보다는 느슨해졌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당근마켓도 동네를 키워드로 하지만 느슨한 연대를 지향하죠. 이제 공간을 만들고 억지로 이벤트를 열어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네트워크를 만드는 방식만 선호하는 것 같진 않아요. 동네가 경계나 한계가 되어서는 안 되고요. 우리 동네에 각 개인에게 필요한 공간이 생긴다면 동네를 아지트 삼아 각자 나름의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겠죠. 전 동네에 다양한 공간이 많이 생겨야 하고 신구 세대가 섞여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오가면서 일어나는 혁신과 충돌이 활기와 생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죠.








얼마 전, 지금까지 해온 마을 아카이빙 작업, 공유 공간 프로젝트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후암연립을 열었어요.

다른 공간으로 쓰고 있었는데 저희 일을 보여줄 수 있는 안내소가 필요하다 싶어 후암연립이란 공간을 만들었어요. 2017년 후암동에 문을 연 커피숍 카페 우리다’, 우리 밀과 야생 효모로 만든 빵을 판매하는 밭으로’, 후암동을 모티브로 한 ‘굿즈 상품(엽서, 연필, 포스트잇, 클립 등) 매장’, 후암연립 안내서와 지도가 비치된 ‘전시장’이 함께하고 있어요. 제로 웨이스트 브랜드와 협업도 하는데 후암동 주민들에게 제로 웨이스트 운동, 환경보호 이슈를 전달한다는 의미가 있죠. 앞으로 새로운 공간을 만들기보다 공간을 콘텐츠화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어요. 보통 로컬 콘텐츠라고 하면 지역에서 생산하는 재료나 서비스를 활용하는데, 저희는 후암동이라는 동네를 무기로 일을 벌이려고 해요. 후암연립은 길과 길이 만나는 교차로이자 놀이터, 공원, 경로당이 함께하는 자리 앞에 위치해 있어요. 문 앞 파란 벤치에 앉아 있으면 후암동의 따뜻한 일상이 고스란히 보이죠.




“동네에 필요한 좋은 공간이란 사람이 모이는 공간

아니라 사람을 연결시키는 공간이에요.”




후암연립을 비즈니스 모델로 생각하고 다른 동네에서 시도해보려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많은 분이 찾아오셨어요. 다른 동네에서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도 받았고요. 솔직히 돈을 벌려면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드려요. 후암연립은 후암동과 오랜 관계를 맺은 건축가들이 직접 만들고 관리하기에 가능한 일이에요. 주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짧은 거리로 촘촘하게 이어지는 골목과 낡은 건물과 신축 건물이 공존하는 후암동이기에 가능했던 것이고요. 성수, 연남 등 상업 시설이 모여드는 동네와는 맥락이 다른 것 같아요. 저희에게 이 일은 부업 같은 거예요. 건축 실험이자 고민거리이기도 하고요.(웃음) 돈은 다른 건축 프로젝트로 벌고 있죠.








언제 어디서든 비대면 만남을 할 수 있고 여행이 일상화된 시대에 왜 동네라는 단위가 여전히 중요할까요?

코로나19 이후 더욱 중요해진 개념이 ‘슬세권’이에요. 슬리퍼를 신고 편안한 옷차림으로 나갈 수 있는 집에서 15분 거리 내의 동네. 슬세권에 생활에 필요한 인프라뿐만 아니라 쉴 수 있는 치유의 장소가 있다는 것이 삶에 얼마나 행복을 주는지 느껴본 것이죠. 이제 동네는 라이프스타일의 동의어가 되고 있어요. 개성적이면서 다양한 공간이 많은 동네에 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라이프스타일도 재미있어집니다. 로컬이란 말이 부상하고 있는 배경에도 결국 삶의 질에 대한 욕구가 반영되어 있어요. 앞으로 마을이 집이 될 것이고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려는 노력이 이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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