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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다양성, 도시

코로나 시대에 독립을 결심한 디자이너의 집

디자이너 프란체스카 콜롬보

Text | Anna Gye
Photos | Claudia Zalla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졌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재능을 발현할 수 있는 평생 직업을 찾아 나선다. 디자이너 프란체스카 콜롬보 또한 다양한 직업을 거쳐 여러 나라로 집을 옮겨 다니며 살다가 고향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프란체스카 콜롬보라는 브랜드를 론칭했다. 생계가 아닌 자아실현을 좇는 삶은 집 안 풍경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나타난다.








밀라노, 파리, 스페인 등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살았어요.

태어난 곳은 이탈리아 밀라노예요. 누오바 아카데미 디 벨레 아르티Nuova Accademia di Belle Arti에서 패션 & 텍스타일 디자인을 전공하고 오트 쿠튀르 패션 분야에 발을 들였어요. 패션 디자이너 엘사 스키아파렐리Elsa Schiaparelli 밑에서 일하면서 최상류 계층의 패션 네트워크를 쌓았죠. 밀라노, 파리 등 유럽 내 컬렉션에 따라 집을 옮겼어요. 화려하고 바쁜 삶이었죠. 하지만 패션계 일을 하면서도 딴짓을 하고 싶어 주변을 둘러봤어요. 여러 도시에 살아보면서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장소를 탐색했고요. 그러다 인생에 재시동을 걸 기회가 왔죠.




모든 것이 멈춘 시점에 제가 주도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크게 들려왔어요.”




어떤 기회였나요?

스페인 자라홈에서 오퍼가 들어왔어요. 인테리어는 패션과 다른 분야이고, 부티크 스튜디오에서 대기업으로 이동하는 일이라 일종의 모험이었죠. 또 스페인에서 살아야 했어요. 하지만 저는 모든 것을 껐다가 다시 켜는 인생 리부팅을 시도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3년간 스페인만의 느린 속도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직업 외 분야를 탐색했어요. N잡러 시대라고 하잖아요. 회사에 다니면서도 늘 이것저것 다양한 일을 시도했고 코로나 시대가 오자 독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코로나 시대에 독립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요?

저의 쓸모를 회사에 어필하기 위해 커리어를 쌓는데, 오히려 커리어를 쌓을수록 시야가 좁아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은 변하는데 내 입지는 정체된 것 같았죠.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것이 멈춘 시점에 제가 주도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크게 들려왔어요. 평생 직장이 아니라 평생 직업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죠. 인생에서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질 수도 있다고 봐요. 이를 위해 나의 핵심 역량을 찾아야 했어요. 그동안 여러 분야에 발을 담갔던 경험과 용기를 떠올리며 저만의 시나리오를 쓰기로 했어요. 모든 규칙이 무너질 때가 바로 기회인 거죠.










자신의 이름으로 브랜드를 만들었어요. 손으로 직접 그린 그림을 패턴 삼아 벽지, 접시, 가구 등을 만드는 브랜드 프란체스카 콜롬보Francesca Colombo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변화와 혁신은 멀리 있지 않아요. 조금씩 중심축을 이동하면 새로운 틈을 발견할 수 있죠. 패션과 인테리어 기업에서 일한 경험, 텍스타일을 전공한 이력, 코로나19로 인해 높아진 집에 대한 관심 등. 백지에 나의 장단점, 하고 싶은 일과 그동안의 경험을 하나씩 써 내려가다 보니 제 손으로 집을 그리고 만지고 다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집을 조금씩 꾸미는 일은 저만의 행복 중 하나였어요. 벽지, 커튼, 컵과 접시 등에 제가 그린 그림을 입히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죠. 얼굴 피부를 관리하듯 집 안의 시각적인 부분을 다룬다는 의미에서 서페이스 디자인surface design으로 볼 수도 있어요.



스페인에서 이탈리아 밀라노로 옮겨간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모든 것을 껐다가 재시동을 거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주변 환경이 바뀌면 에너지가 생깁니다. 게다가 제가 주인공이 된 셈이니 태어나고 자란 제 고향 밀라노에서 출발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었죠. 제 브랜드의 핵심은 디자인보다 생산에 있어요. 제가 직접 그리고 색을 입힌 그림을 섬세하게 스캔해서 벽지, 그릇, 패브릭 등에 입히는 기술은 이탈리아만 한 데가 없어요. 프랑스는 브랜드와 마케팅, 스페인은 글로벌 유통, 이탈리아는 고품질 소규모 생산을 배우기에 좋은 나라예요.








밀라노의 포르타 가리발디에 있는 지금 사는 집은 어떻게 구했나요?

집은 일터이자 쇼룸 기능도 해야 했어요. 이런 의미에서 이탈리아의 역사, 장인 정신 등이 느껴지는 동네를 찾았는데, 오래된 건물과 아르티장 숍이 많은 포르타 가리발디가 떠올랐죠. 건물 외관도 밀라노 전통 석고 스타일과 발라토이오ballatoio 구조(발코니와 복도가 이웃집과 이어진 구조)이기를 바랐어요. 밀라노 중심가에서 발코니가 있는 집은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을 구하는 것만큼 힘들거든요. 여러 나라에 살면서 공간에 대한 취향이 확고해진 터라 제가 살면서 구조와 스타일을 틈틈이 바꿀 수 있는 집을 원했어요. 또 기본형 구조에 소음이 없고 볕이 잘 드는 집을 찾았죠.








발코니 바로 앞에 작업 테이블이 있네요.

발코니가 딸린 집을 고집한 이유이기도 하죠. 이렇게 해가 드는 발코니가 있는 것만으로도 집 안 분위기가 여유로워져요. 넓은 창가 아래 작업 테이블을 놓으면, 해가 뜨면 자연스럽게 일을 시작하고 해가 지면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죠. 처음 이사 왔을 때는 집에 이 테이블밖에 없었어요. 여러 나라에 옮겨 다니며 살면서 터득한 진리 중 하나는 필요해서 산 가구와 물건은 결국 버리게 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가구나 물건을 구입할 때는 필요보다 의미에 중점을 둬요. 공간보다 제 몸에 맞는 가구를 고르죠. 그렇게 조금씩 일부러 시간을 들여 가구를 구했어요. 침대 조명을 들이기까지 3년이 걸렸죠. 벽에는 원래 아무것도 없어요. 시안과 샘플을 걸기 위해서죠. 그렇게 이 집에 사는 세월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집의 몸집도 늘었어요.








, 가구, 그릇 등 본인이 작품으로 집 안을 장식했네요.

더 그랜드마 가든The grandma garden 시리즈 벽지를 바른 거실, 벽에 마리 앙투아네트 그릇 시리즈가 매달려 있는 주방, 직접 타일을 붙여 만든 욕실까지 집 안 곳곳에 제 손길이 묻어 있어요. 아르플렉스 할리우드Arflex’s Hollywood 소파는 제가 좋아하는 디자인 가구인데, 핑크 페일 컬러 천으로 직접 소파 덮개를 만들어 씌웠어요. 디자인은 자연의 요소에서 가장 큰 영감을 받아요. 취미가 말타기인데, 말을 타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이 그림의 단서가 되죠. 이런 데커레이션 벽지는 과감하게 쓸수록 효과가 큽니다. 포인트 벽지로 사용하면 일부만 강렬해서 집이 산만해 보여요. 조언을 하자면, 미니멀리스트의 집에는 강한 컬러와 질감의 벽지를 전체적으로 사용하고, 맥시멀리스트의 집이라면 가구와 물건의 컬러가 융화되도록 중성적 분위기를 만드세요.








작업은 손으로 직접 그린 그림에서부터 시작하나요?

맞아요. 종이와 손으로 그린 그림은 제 컬렉션의 기본이죠. 저는 손으로만 디자인을 하는데 이는 제가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과 관련이 있어요. 가볍고 섬세한 소프트 스케치부터 최종 디자인까지 단계별로 세부 사항을 정리해요. 마지막으로 스캔할 때만 컴퓨터를 사용하죠. 그리고 다시 생산 단계에서 장인의 손길을 거칩니다. 그릇, 벽지, 패브릭 등의 매개를 이용할 뿐 집을 두 손으로 직접 그리는 일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



셀프 인테리어를 할 때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요?

현관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주방이 가장 힘들었어요. 기능성, 효율성, 디자인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죠. 주방에 투자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오픈형 구조일 경우 삼시세끼를 해결할 뿐 아니라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안방과 비슷하다고 봐야 해요. 잡다한 주방 물건을 잘 감춰두는 것만으로도 집이 깔끔해져요. 그래서 치수를 재고, 서랍 내부를 설계하고, 동선에 따라 직접 가구를 제작했어요. 주방 외 공간은 가능하면 비워두고 싶었어요. 제 집은 영감의 장소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영감은 무엇을 보고 듣고 느낀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생각을 비워내야 새로운 생각이 싹틀 수 있죠. 주변에는 마음을 흔드는 이미지가 범람하지 않도록 신경 썼어요.








집을 꾸민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인테리어도 패션처럼 집에 옷을 입히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사실 반대입니다. 인테리어는 덜어내고 정리하는 일이에요. 사물이 아니라 감정에 충실하는 것이죠. 사람에 따라 편안한 분위기가 모두 다르겠죠. 제겐 큰 집도 불편하게 느껴져요. 그래서 작은 집을 선택했고 그에 따라 필요한 가구만 두었죠.




인테리어는 덜어내고 정리하는 일이에요.

사물이 아니라 감정에 충실하는 것이죠.”




요즘 소비자들은 상품 출처, 생산 과정, 윤리적 철학, 적절한 가격까지 모두 고려하는 것 같아요.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 스몰 브랜드가 있다면 몇 개만 소개해주세요.

무라노 지역의 이야기와 고대 미학을 뒤섞어 무라노 유리공예품을 세련되게 보여주는 스토리즈 오브 이탈리아Stories of Italy, 향기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로 향초와 향수를 발굴하는 프랑스 브랜드 트루동Trudon, 빈티지 유리를 이용해 새로운 유리 제품을 만드는 스튜디오 칼프Studio Kalff 모두 친환경과 윤리적 미학을 가진 브랜드죠. 과거와 현대를 연결하는 매력적인 화법을 가지고 있어요.








항상 다양한 영역을 탐구하고 리셋을 두려워하지 않는 본인의 삶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모험을 좋아하거나 호기심이 많아서 그런 것은 아니에요. 생계보다 자아실현을 위해 일하고, 살고 싶은 삶을 찾아다닐 뿐이죠. 저는 항상 삶, , , 행동을 일관된 방식으로 유지하고 가능한 한 삶을 단순하게 만들려고 노력해요. 볕 좋은 곳에서 커피 한잔 마시거나 발코니에서 꽃을 관찰하는 등 단순한 삶 속에서 행복과 만족을 찾으려고 해요. 당장 돈을 좀 못 버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10년이 지난 후에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찾지 못하는 것이 큰 문제죠. 여러 가지 꿈을 꾸고 다양한 공부를 해야 해요. 커리어를 전환하거나 새로운 도시로 삶의 터전을 바꾸는 등 모든 것을 껐다가 재시동을 거는 변화를 통해 원하는 삶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두려움이라는 안개를 조금만 벗어나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나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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