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장기화로 식물을 기르며 마음을 정화하는 홈 가드닝이 일상의 취미로 자리 잡았다. 대형 화훼 농장과 꽃집이 어느 때보다 호황을 누리는 가운데 트럭 가득 푸른 식물을 싣고 각 지역을 찾아가는 이가 있다. 미국 중부 도시 미니애폴리스에서 이동식 팝업 식물 트럭 ‘더 윈도 박스’를 운영하는 마거릿 복스의 이야기다.
미국 사람들이 즐겨 찾는 빈티지 디자인 매장, 주말 장터에 열리는 플리마켓, 아트와 공예를 취급하는 컨템퍼러리 갤러리. 미국 중부 미니애폴리스에는 삶의 취향이 명확한 이들의 단골 매장 근처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팝업 트럭이 있다. 실내외에서 자라는 다양한 종류의 꽃과 식물을 싣고 하루 몇 시간 영업하고 홀연히 사라지는 이동식 식물 트럭, 더 윈도 박스The Window Box. 이 근사하고 독특한 트럭을 운영하는 마거릿 복스Margaret Vox는 식물을 즐기고 가까이하는 이들의 단골 매장이나 커뮤니티를 찾는 데 누구보다 능통하다. 일상을 정화해주는 식물을 가지고 거리로 나온 플랜트 큐레이터의 삶, 취향이 비슷한 동네와 매장을 선별하는 전문가의 안목을 들여다봤다.
일상을 정화해주는 식물을 제안하고 판매하는 ‘플랜트 큐레이터’의 삶을 살고 있어요. 원래도 꽃과 식물에 관심이 많았나요?
전공 자체는 달랐어요. 미네소타 세인트폴 대학에서 마케팅과 철학을 배웠으니까요. 그렇지만 항상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았죠.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가드닝에 대한 지식을 얻곤 했어요. 제가 기억하기로 매년 여름 식물을 심고 가꾸고 물을 주었죠. 우리가 흙을 파낼 때 어머니는 그것을 삶과 사물이 자라는 방식에 비유하곤 했어요. 그때부터 식물의 아름다움과, 식물을 돌보는 행위가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웠던 것 같아요. 식물에 남다른 애정을 품게 된 것은 고등학생 때였어요. 고등학생들이 참여하는 ‘캠프 선샤인Camp Sunshine’이라는 자연 학습 캠프에서 꽃, 나무, 새 같은 자연의 산물을 자세히 접할 기회를 가졌죠. 그때 창의적인 것을 만들고 세상에 선보이는 일에 흥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지난해 연말부터 이동식 식물 트럭 ‘더 윈도 박스’를 운영하고 있어요. 음식을 판매하는 푸드 트럭은 많이 봤지만, 어느 동네를 찾아가 한시적으로 식물을 판매하는 팝업 트럭은 생소해 보여요.
더 윈도 박스는 코로나19로 인해 고안하게 된 일종의 이동식 꽃 가게예요. 원래 꿈은 매장을 운영하는 것이었지만 코로나19가 닥치면서 계획이 틀어졌죠. 첫 사업을 하는 데 5년 임대 계약은 여러 면에서 부담스러웠고, 팬데믹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사람들이 예전처럼 매장을 찾아가 쇼핑하는 걸 즐기지 않게 됐어요. 급변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수많은 질문을 하게 됐고, 제가 원래 희망하던 꿈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니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더라고요. 트럭의 장점인 기동성을 중심으로 다양한 매장에 꽃과 식물을 직접 제안하고 전달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죠. 규모 면에서 대형 화훼 농장과 경쟁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고, ‘어디든 찾아갈 수 있는’ 더 윈도 박스만의 장점은 그들에게는 없는 것이었어요. 더 윈도 박스를 반길 만한 곳에 찾아가 얼굴을 마주하고 그 공간에 놓을 식물을 제안하는 일에 보람을 느낍니다.
“사람들은 트럭이라는 공간 자체를 좋아해요.
어디론가 떠날 수 있는 이동 수단을 다른 목적으로 설계한 것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것 같아요.”
식물을 싣고 다니는 트럭에는 특별한 기능이 필요할 것 같아요.
트럭을 살 때 최대한 실내 공간이 구축되어 있지 않은 것을 찾았어요. 마치 빈 캔버스처럼 오롯이 제 취향으로 채울 수 있는 여지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현재 사용하는 트럭은 감자칩으로 유명한 식품 브랜드 프리토 올레이즈Frito O’Lays의 배달 트럭으로 사용했던 것이라 내부에 별다른 디자인이랄 게 없었어요. 실내 공간을 구축하며 식물을 안전하게 운반하기 위한 선반을 부착했고, 이동하는 동안 식물이 제자리에 고정될 수 있도록 격자판을 개발했죠.
더 윈도 박스를 운영한 지 만 1년이 되었어요. 자신의 동네나 즐겨 가는 매장 근처에 식물 트럭이 정차해 있는 것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날씨의 영향을 받는 만큼 지난여름 가장 왕성하게 트럭을 몰았던 것 같아요.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식물의 종류와 타인의 다양한 취향을 접하는 일은 정말 흥미롭습니다. 사람들은 트럭이라는 공간 자체를 좋아해요. 어디론가 떠날 수 있는 이동 수단을 다른 목적으로 설계한 것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것 같아요. 일반 가게가 아닌 트럭을 둘러보는 행위, 실내가 아닌 실외 공간에 진열된 식물에게서 일상의 특별함을 얻는 듯해요. 이렇듯 작은 이벤트를 통해 누군가의 삶을 환하게 밝힐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근사한 일인 것 같아요.
가장 트렌디한 매장들과 협업해왔어요. 팝업 식물 트럭이 정차할 브랜드나 공간을 선정하는 데 남다른 시선을 갖고 있을 것 같은데요.
대부분 인스타그램을 통해 팝업 스토어를 진행할 브랜드나 장소를 결정해요. 제가 오랜 시간 팔로잉하며 지켜본 매장에 연락해서, 매장 주변에 더 윈도 박스를 주차해 숍 고객들이 매장 밖에서 또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관련 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협업하자고 요청했죠. 어떤 장소, 어느 동네가 우리 콘셉트에 어울릴지 위치에 대해 많이 배운 한 해였어요. 여러 협업 중에서 저처럼 작게 비즈니스하는 소상공인들과 연대한 경우 가장 성과가 좋았어요. 사람들은 비용 부담이 적은 작은 품목을 구매하려는 경향이 있고, 저희 트럭으로 와서 자신의 공간에 들일 작은 초록 식물을 구입하며 거리 두기와 자가 격리로 인한 각박한 상황 속에서도 행복을 찾으려는 모습을 자주 봤어요.
작업에 관한 영감은 어디서 얻는 편인가요?
다양한 사람을 통해 작업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편이에요. 자기 브랜드를 운영하는 친구들에게 조언을 얻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몇 년간 브랜드를 운영하며 경험을 쌓은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도움이 많이 돼요. 요새는 자신의 일상을 예쁘고 자연스럽게 촬영하는 기술이 모두에게 요구되는 시대잖아요. 인스타그램 운영도 사업의 큰 부분인 만큼 다양한 사진을 많이 접하고, 빛과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할지 연구하기도 해요. 생활 속에서 시시때때로 마주하는 빛은 작업에 가장 큰 영감을 줘요. 움직이는 사물에 투영된 빛의 일렁임,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움직임, 오브제와 식물, 사람 얼굴에 깃들어 그것의 깊이를 조율하는 빛을 통해 자연스럽게 작업의 단초를 얻어요. 식물의 삶에만 빛이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요. 사람에게도 빛은 삶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식물을 제안하는 플랜트 큐레이터의 집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요. 가장 염두에 두는 인테리어 요소는 무엇인가요?
빛과 로케이션, 이 두 가지를 가장 고려합니다. 주변인들과 소통하며 지내는 것이 제게는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근처에 가족과 지인들이 사는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죠. 또 창문이 많은 집, 그래서 다양한 방향에서 하루 종일 빛이 드는지가 중요한 요소예요. 남향뿐만 아니라 동향, 서향, 북향, 각 방향에서 드는 볕도 나름의 매력이 있어요. 그 다양한 볕에 따라 집에서 키울 수 있는 식물의 종류도 훨씬 다채로워지는 것 같아요. 올리브 나무, 덩굴풀이나 뱅갈고무나무 등 여러 식물이 한 공간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으니까요.
집에서 행복을 느끼는 본인만의 특별한 공간, 찰나의 순간이 있다면요?
제가 좋아하는 공간은 빛의 방향과 빛이 드는 양에 따라 그때그때 변화해요. 하루 종일 집 안에 있다 보면 빛의 움직임에 따라 좋아하는 공간이 바뀌죠. 그중에서도 이른 아침 명상과 기도를 하는 거실 한편을 좋아하는데, 마주한 흰 벽에 오브제와 제 모습이 긴 그림자가 되어 스미는 풍경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져요. 그런 특별한 빛이 들 때마다 주변으로부터 사랑받고 특별한 보살핌을 받는 기분이 들죠. 그러고 보면 하루 중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은 대부분 아침 시간에 일어나는 것 같아요. 하루를 어떻게 꾸려나갈지, 그날 어떤 일을 할지 계획을 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니까요.
“저는 누구를 초대할지, 그들과 어떻게 유대할
것인지가 집을 가꾸는 실질적 요소라고 생각해요.”
코로나19 이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어느 때보다 집이 특별한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어요. 본인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많은 순간이 발생하는 곳이에요. 가장 편히 쉴 수 있는 보금자리이자 삶의 방식을 가꾸며 한 가정의 취향이 온전히 응축된 곳이죠. 멋진 가구와 디자인 소품을 들이는 것으로 자신의 공간을 정의하는 이도 있지만, 저는 누구를 초대할지, 그들과 어떻게 유대할 것인지가 집을 가꾸는 실질적 요소라고 생각해요. 함께 식사하고, 책을 읽고 토론하고, 노래 부르며 삶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서 빛나길 바라요.
그간 다양한 지역에 식물 트럭을 몰고 찾아갔어요. 앞으로 가보고 싶은 지역이 있다면요?
소박하고 진실한 동네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갈 거예요. 스미스 브리지Smith Bridge 한가운데서도 팝업 스토어를 열었을 만큼 더 윈도 박스가 가지 못할 곳은 없으니까요. 여름이면 라이브 공연이 열리는 뮤직 페스티벌 현장에 찾아가 맛있는 고기 냄새가 가득한 BBQ 트럭 옆에서 식물을 팔아보는 것도 근사할 것 같고요. 그렇게 다양한 곳을 누비다 보면 닻을 내리고 매장을 오픈할 장소를 만나게 되겠죠.
1787
더 셀비
1105
992
SNS 상 일본인들의 집에 대한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