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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구옥을 이야기로 인테리어 하다

출판사 ‘버튼티’ 대표 조인숙

Text | Kakyung Baek
Photos | Hoon Shin

출판사 ‘버튼티’ 대표이자 핸드메이드 작가인 조인숙은 최근 작업실과 주거 공간을 효과적으로 분리하기 위해 26년 된 구옥으로 이사했다. 2층은 작업실, 3층은 휴식 공간으로, 오래된 단독주택에 대대적인 변화를 주었다. 감각적인 가구와 소품, 여행에서 사 온 수집품으로 마치 동화 속처럼 멋진 집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요?

유튜브 채널 버튼티와 쇼핑몰 등 여러 일을 하면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버튼티는 제가 운영한 지 10년 넘은 1인 출판사 이름이기도 해요. 제가 주로 쓰는 여행 관련 책, 핸드메이드 관련 책을 직접 출판하고, 저와 비슷한 분야의 작가들 책도 내요.



본격적으로 여행 관련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13년 전쯤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던 시절에 아이와 단둘이 유럽 여행을 갔어요. 당시만 해도 아이와 함께 장기간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이 흔치 않았죠. 그런데 이런 저의 이야기를 알게 된 잡지 기자가 여행 에세이를 써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에어비앤비로 쉽게 숙소를 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당시 저는 런던에 도착하면 왠지 더 좋은 집이 있을 것 같아 유스호스텔을 5박만 예약해놓고 떠났죠. 그런데 막상 가보니 석 달 동안 지낼 집을 구하기가 정말 쉽지 않았어요. 그런 고군분투기를 담은 에세이를 잡지에서 본 여러 출판사들이 책을 내자는 제의를 했고 <90일간의 런던 스테이>를 내면서 본격적으로 작가 행보를 시작했어요.








버튼티에서 준비하는 책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코로나19로 여행을 다니지 못해서 버튼티 출판 작업이 주춤하고 있지만, 제가 새롭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핸드메이드 관련 책도 준비해보려고 해요. 가장 먼저 포르투갈 여행에 관한 책이 나올 예정이에요. 코로나19가 발발한 초반에 아이들과 함께 포르투갈 여행에 다녀온 얘기를 정리하고 있어요. 이전 시리즈보다 일러스트레이션을 풍부하게 넣으려고 해요.










포르투갈 여행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저희가 포르투갈에 도착했을 때 영화 <기생충>이 미국에서 아카데미상을 받았어요. 행인들이 저희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아채고 축하한다고 말해주기도 했죠. 제가 상을 탄 것도 아닌데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그리고 포르투갈은 물가가 싸서 런던에서 원룸을 구한 비용으로 도루 강이 보이는 널찍한 집에서 묵었죠. 아침이면 아이들이 밖에 나가서 에그타르트와 커피를 사 왔어요. 느긋하게 창밖을 바라보며 아침을 먹고 스케치북과 일기장을 챙겨서 함께 그림을 그리러 나갔죠. 그때 아이들과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보고 간 터라 영화에 나온 비발디의 사계중 여름 3악장을 들으며 영화에 관한 그림을 함께 그렸어요.




여행을 떠날 때는 아이들이 공부할 것은

절대 가져가지 않는다는 것도 저희만의 룰이었죠.”




아이들과 여행을 다니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이들에게 여행 중에 무언가를 깨닫고 배워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아요. 저도 처음에는 돈과 시간을 투자한 여행에서 아이들이 좋은 경험을 많이 하길 바랐어요. 하지만 큰아이가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방학마다 여행을 다니면서 그런 욕심은 좀 내려놓게 됐어요. 여행을 떠날 때는 아이들이 공부할 것은 절대 가져가지 않는다는 것도 저희만의 룰이었죠. 멋진 곳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추억이 될 테니까요.



작가로서 여행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해방감을 주고 일상의 환기가 되죠. 확실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예전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했던 인터뷰의 한 구절이 생각나네요. 그는 여행을 가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번다고 말했던 것 같아요. 저 또한 글을 쓰고 디자인하고 그림을 그리는 모든 지난한 과정을 여행이 버티게 해주는 것 같아요. 항공권을 끊으면 왠지 모르게 힘이 나는 것도 그 이유겠죠.(웃음)










현재의 집으로 이사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가장 큰 이유는 작업실이었어요. 이전에는 40평대 아파트에 살면서 안방을 작업실로 썼어요. 처음에는 작업실 월세도 절약하고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돌볼 수 있어서 좋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어지더라고요. 그런 스트레스를 여행으로 풀곤 했는데 코로나 시대를 맞으면서 그조차도 어려워졌어요. 일과 삶을 분리해야겠다는 생각에 이사를 결심하게 됐어요. 이 집 2층은 작업실로 쓰고 3층은 주거 공간이에요. 작업실에서 이것저것 어지럽히면서 일하다가 위층으로 올라가 마음 편히 쉴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좋아요. 제 유년 시절에도 단독주택에서 살았어요. 옆집 언니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놀았던 기억이 생생해요. 제 아이들도 어른이 되기 전에 개성 있고 입체적인 구조의 집에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이 집에 이사 왔을 때 바로 앞에 공원이 있는 게 마음에 들었어요. 1, 지하층까지 저희가 쓸 수 있는 공간도 넉넉했고요.










처음 이 집의 인테리어를 고민하면서 어떤 청사진을 생각했나요?

저와 남편은 디자인 전문 회사와 함께 아파트 인테리어를 해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전반적으로 여러 층을 인테리어한 경험은 없었어요. 원래는 내부를 관통하는 계단도 만들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예산이 많이 들더라고요. 결과적으로 중요한 공간에 중점적으로 인테리어를 했어요. 예를 들면 포인트를 주고 싶은 방과 거실을 제외하고 나머지 방은 합리적인 가격의 합지로 도배를 한 것이지요.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예요?

창문이 있는 곳이에요. 오랫동안 의자에 앉아 일하다 보면 쉽게 피곤해지는데, 창문을 열고 바깥을 보면 금방 피로가 해소돼요. 3층 창문 앞에 단상을 만들었는데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기도 해요. 비가 올 때, 노을이 질 때 단상 위로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게 정말 아름답거든요. 저는 둘째 아이 방을 좋아해요. 크기는 작지만, 박공지붕 구조라 아늑하고 멋져요.








공간의 색채와 디자인, 가구, 소품 등 인테리어 감각이 남다른데,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나요?

20년이 넘은 영국의 TV 프로그램 <그랜드 디자인Grand Designs>을 본 적이 있어요. 인테리어를 보여주기 급급한 방식이 아니라 장편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었어요. 건축가이기도 한 MC가 한 사람이 집을 구하고 1~2년 정도 집을 바꿔나가는 과정을 면밀하게 보여주죠. 집에 관한 환상만 보여주지 않고 제법 현실적으로 돈과 관련한 에피소드도 많아요. 어떤 사람은 집을 짓기 위해서 부모님에게 돈을 빌리고 공사 중인 집에서 먹고 자기도 해요. 어떤 집은 무려 10년간 인테리어 중인 곳도 있고요. 그런 사례를 보니 제가 집을 전체적으로 인테리어하고 부동산 경매를 하는 일 같은 건 그렇게 큰일이 아니더라고요. 또 내가 좋아하는 공간, 내가 원하는 집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보는 기회가 됐어요. 여행을 다니면서 가본 멋진 공간을 떠올리며 인테리어의 커다란 맥락을 잡기도 했어요. 알바 알토의 하우스나 세잔의 아틀리에처럼 제가 좋다고 느낀 부분을 집에 어떻게 접목할지 많이 고민했어요.










더 마음에 드는 집으로 이사하거나 인테리어를 크게 바꾸려고 하는 사람을 위한 조언이 있을까요?

큰 변화가 두려워 고민만 하다가 기회를 놓치는 것보다 차라리 실패하더라도 시도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여행을 떠나는 것과 비슷해요. 당장 눈앞의 일로 바빠서 여행을 미루기보다 어떻게든 기회를 잡아서 다녀오면 훗날 여행 가지 말걸하고 후회하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저는 아이들이 어릴 적 벽에 낙서할 때도 한 번도 하지 말라고 한 적이 없어요. 오히려 더 컬러풀하고 자유롭게 그려보라고 붓을 주었죠. 생각해보면 그게 별로 큰일은 아니거든요. 집이 좀 더러워지면 어때요, 다시 페인트로 칠하면 되죠. 무엇을 시도하든 인생에서 큰 실패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할까 말까, 갈까 말까 고민하지 말고 한번 해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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