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취향을 찾은 컬렉터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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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취향을 찾은 컬렉터의 집

아티스트 앤디 딕슨

Text | Anna Gye
Photos | Mineun Kim

캐나다에서 펑크록 뮤지션으로 이름을 날렸던 앤디 딕슨Andy Dixon은 5년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주류와 비주류 문화가 혼재하는 로스앤젤레스에서 그는 회화 작가로 전환할 기회를 얻었고, 펑크 음악처럼 전형성에서 벗어난 아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자신의 그림을 구입한 사람들의 집을 찾아가 그림이 걸린 모습을 사진 찍고 그것을 다시 그림으로 그리는 특별한 프로젝트다.








로스앤젤레스(이하 LA)에 산 지 5년 정도 되었다고 들었어요.

캐나다 밴쿠버 출신이에요. 캐나다에서 펑크록 밴드 d.b.s 멤버로 활동했고, 아치 레코즈Ache Records 레이블을 설립하고 전자음악 장르의 솔로 앨범을 내기도 했어요. 앨범 그래픽 작업을 시작으로 여러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음악에서 미술로 자연스럽게 전향했어요. LA에 오기 전 뉴욕에서 잠깐 살았는데, 제가 태어나고 자란 밴쿠버 기후와 비슷한 LA가 끌리더라고요. 바다도 가깝고 날씨도 맑고요. 무엇보다 LA 아트 신이 재미있었어요. 자유분방하고 유쾌하고, 별로 합법적이지 않고, 주류와 비주류 문화가 섞여 있죠. 매력적인 사람이 많아요. 아마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 같아요.



작업실과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대형 작업을 하려고 규모가 큰 작업실을 찾고 있었어요. 집에서 출퇴근하기 쉽고 주변에 편의 시설이 있는 것으로요. 그렇게 인터넷 사이트를 한참 뒤지다가 이곳을 찾았어요. 한쪽 면 전체가 창이고, 통창 가득 부드러운 햇빛이 들어와서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결정해버렸죠.








매일 이렇게 작업실에 오나요?

가능하면 규칙적인 패턴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일주일에 최소 2일은 쉬려고 하고요. 아침 시간은 되도록 집에서 여유롭게 보내요. 대형 작업을 하는 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작업 전에 충분히 휴식해야 하죠. 보통 오후 1시쯤 여기 도착해 저녁 9시까지 작업해요. 지난 1년간 전시 준비 때문에 작업실에서 정신없이 보냈어요.



컬렉터의 집(Patron’s  Home)’ 시리즈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6년 전 우연히 제 그림을 좋아하는, 미국 오스틴에 사는 컬렉터의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보았어요. 앤티크 가구가 놓여 있는 아름다운 거실 한가운데 제 그림이 걸려 있었는데,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예술가는 숙명처럼 그림을 팔고 나면 그 그림이 어떤 공간에 걸리는지 알지 못해요. 컬렉터를 만나기도 쉽지 않죠. 하지만 '컬렉터의 집' 시리즈를 통해 예술가가 작품을 판매한 이후 작품과 다시 관계를 맺고 진화하는 모습을 추측해볼 수 있어요. 아티스트에게도 도전적이고 신선한 작업 방식이죠.




“미적 교육으로 연마되지 않는 잠재된 취향이 진짜 취향이죠.”




일종의 컬렉터와의 협업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맞아요. 작품을 구입한 사람의 참여도가 큰 역할을 합니다. 아트 마켓에는 중개인이 있어서 (직거래가 아닌 이상) 그림을 구입한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어요. 하지만 '컬렉터 집' 시리즈를 핑계 삼아 갤러리에 문의해 연락처를 받거나, 애초에 작품을 팔기 전 이 시리즈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 연락처를 공유하도록 양해를 구하기도 합니다. 컬렉터가 원하면 제가 연락을 하는데, 이 시리즈가 알려지고 난 후 먼저 저에게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말을 건 분도 있어요. “당신의 그림을 걸어놓은 거실 사진을 보내줄까요?”라고 말이죠. 컬렉터가 LA에 살면 직접 방문해 작품이 걸린 공간을 촬영하고, 불가능한 경우 사진을 요청합니다.










때론 공간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도 있을 것 같아요.

'만족스럽다, 아니라'라고 판단할 대상이 아니라고 봐요. 아티스트는 그림이 작업실을 떠나고 나면 그림의 행방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림이 누군가의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들뜨니까요. 컬렉터의 취향대로 꾸민 공간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어요. 공간마다 개인의 성격이 드러나고 개성이 돋보이기 때문에 심리학 공부가 된다고 할까요? 작품이 각각 다른 분위기에 융화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예술적 자극이 되죠. 사진을 이용해 또 다른 그림 작업을 해야 하기에 가끔씩 위치 조정을 요청하기도 해요. 예를 들면 “램프 각도를 10도 정도 오른쪽으로 틀어줄 수 있나요?”, “의자를 조금 옆으로 옮겨주세요” 같은 거예요. 그래서 '컬렉터의 집' 시리즈는 단연코 컬렉터와의 협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시리즈를 시작하기 전에는 제 그림이 타인의 공간에 어울릴지 확신이 서지 않았어요. 대부분 모던하고 미니멀한 인테리어를 선호하기 때문에 공간 풍경이 다 비슷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고요. 하지만 기우였죠. 생각보다 풍경이 다양하고 그림 배치도 달랐죠. 사진 앵글, 분위기, 요소 등도 흥미로웠는데, 가끔 사진 속에 반려견이 숨어 있기도 했어요.








이 시리즈를 이어가면서 특별히 느낀 점이 있나요?

집은 주인과 사물의 관계가 만든, 수많은 감정이 응축된 덩어리입니다. 집주인은 잘 모르지만, 저 같은 타인이 관찰하고 사물을 하나씩 그림으로 표현하다 보면 세세한 감정선이 느껴지죠. 그래서 이렇게 작업하고 나면 한 번도 만나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금방 친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일종의 우정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타인의 공간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특별한 기회인 것 같아요. 사람들은 디자이너의 가구, 멋진 그림 등에서 집주인의 취향을 읽으려고 하지만 사실 어지럽고 낡은 테이블 모습에서 취향이 뿜어져 나오거든요. 미적 교육으로 연마되지 않는 잠재된 취향이 진짜 취향이죠. 이를 저만의 공식으로 풀어볼 수 있어서 매번 작업하는 것이 즐거워요. '컬렉터의 집' 시리즈는 결과물보다 과정이 중요한 작업이죠.








당신의 작업에는 늘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이 담겨 있어요. 이 시리즈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요?

“그림을 왜 구입했나요? 그림은 공간()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나?”라고 묻고 싶었어요. 그림은 과연 데커레이션의 일부일까요? 아니면 예술 취향일까요? 자신의 집 풍경을 보고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지기를 바랐어요. 그림을 통해 자신의 취향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죠.



작업실 공간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다면요?

창문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자연광이 부드러워 하루 종일 작업해도 피로하지 않죠. 위치도 좋아요. 그랜드 센트럴 마켓 맞은편에 있어서 간단히 음식을 사 먹을 수도 있고, 또 바로 옆에 블루 보틀 카페도 있어요. 작업실이 외딴곳보다는 이렇게 생동감 넘치고 사람이 북적이는 동네에 있기를 바랐어요. 작업이 잘되지 않을 때는 밖으로 나가 기분 전환을 할 수 있죠.








작업실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물건이 있나요?

의자를 좋아해요. 혼자 쓰는 스튜디오치고 의자가 많은 편인데, 이곳에서 친구들과 와인을 자주 마시기 때문이죠.(웃음) 기하학적 패턴이 인상적인 멤피스 스타일과 멤피스, 포스트모더니즘이 섞여 있는 스타일인데 주로 1980년대 빈티지 작품입니다. 신진 디자이너를 응원하는 차원에서 구입한 작품도 있어요. 납작한 커피 테이블은 호주의 신진 듀오가 운영하는 스튜디오 미그논Studio Mignone의 작품인데,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그들도 제 작업을 잘 알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트 작업에 대해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다 마음이 맞아 특별히 저를 위해 테이블을 디자인해주었어요.



오랫동안 음악을 해왔어요. 음악 작업실과 미술 작업실에 큰 차이가 있다면요?

음악 작업실엔 방음벽, 스피커 시스템이 중요하지만 미술 작업실은 빛이 잘 들어오는 열린 공간이 더욱 좋죠. 또 음악 작업실은 밴드가 와서 녹음하고 미팅도 자주 하는 반면, 미술 작업실은 혼자의 공간입니다. 비울수록 좋고 작업 동선에 맞춰 모든 것이 배열되어 있죠. 마음가짐도 달라요. 미술 작업을 할 때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야 하죠.








아티스트로서 당신의 삶에 큰 영향을 준 글귀가 있나요?

아직 해보지도 않은 일에 존중을 기대하지 마라(You cant get respect for work you haven’t done yet).기회가 절로 찾아올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기다리면 안 된다는 것이죠. 젊은 아티스트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말입니다.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밖으로 꺼내지 않는 것만큼 큰 실수는 없어요. '이건 어떨까? 저건 어떨까?' 상상에서 그치지 않고 꿈을 실현하는 데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보자는 것이 저의 모토입니다.








상황이 허락한다면 LA에서 오래 살고 싶다고요.

LA는 맑고 명랑하고, 반짝반짝 빛나며, 친근한 사람들이 넘치고, 자유롭고 야생적인 분위기가 넘치는 곳입니다. 아트 디스트릭트Art District 지역에 방문하면 제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이에 따라 LA 아트 신도 다른 지역과 달리 자유분방하고 느긋하며, 열정적이고 새로워요. 주류와 비주류 구분이 적어서 예술 공부를 하지 않은 저 같은 독학자도 쉽게 어울릴 수 있죠. 신진 아티스트를 위한 기회도 많고요.



팬데믹 시대에 불안한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이 있나요?

불안함이 밀려올 때 작업에 열중합니다.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면 돼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우선순위에 두고 나머지 일의 순서를 정하세요. 이렇게 시간을 나누고 계획하면서 자신을 돌보는 시간도 가지세요. 전 일부러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만듭니다. 영화를 보거나 설거지를 하는 등 사소한 일상의 순간을 즐기려고 노력하세요. 단순한 기쁨은 생각보다 위대합니다. 즐거움은 복잡하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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