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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하는 사람이 택한 연희동의 50년 된 박공집

에이코랩건축사사무소 정이삭 디렉터

Text | Solhee Yoon
Photos | Hoon Shin
Film | Jaeyong Park

연희동의 녹색 박공집은 50년 된 2층짜리 단독주택이다. 변변한 주차장도 없고 주변 건물은 모두 낮고 오래됐다. 집 앞을 오가는 이들은 대부분 장바구니를 든 어르신이나 출퇴근길을 재촉하는 젊은이들. 그래서 에이코랩건축사사무소 디렉터이자 대표 건축가인 정이삭은 이곳이 사무실로 좋단다. “저희가 눈여겨봐야 할, 제가 생각하는 보통 동네의 삶이 여기 있어요.”








에이코랩 사무소 공간이라면 대로변에 쉽게 주차 가능한 근린생활시설을 선택할 법도 한데, 50년 된 단독주택을 고르셨어요.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에도 연남동에 있는 3층짜리 다세대주택을 근린생활시설로 바꾼 건물 꼭대기에서 5년 정도 지냈어요. 물론 이런 위치와 구조의 공간에 사무소를 차린다는 것 자체가 비사업적인 태도죠. 그러나 저희가 다음 해에 설립 10주년이기도 하고 앞으로 변치 않고 한자리에서 오래도록 다양한 일을 쌓아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연희동이기도 했고요. 연희동은 변하지 않는 동네이고 그래서인지 평화로운 느낌이잖아요.








이 집의 어떤 모습에 끌렸나요?

들어오면서 보셨겠지만, 지붕이 굉장히 특이해요. 가파른 경사의 녹색 지붕이죠. 석고 계열 자재일 텐데 시간이 흐르며 이끼가 끼기도 하고 세월의 때가 묻으며 자연스레 녹색이 되었을 거예요. 그러고 보니 빨간 머리 앤이 사는 집, 그린 게이블스Green Gables 같기도 하고요. 이런 점이 그냥 재미있었어요. 건축가가 지은 집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지었을까 싶었죠. 당시 지은 다른 집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거든요. 사람이 살지 않은 지 어느 정도 되었던 터라 살짝 귀신의 집 같기도 했는데 리모델링 작업을 많이 해봤으니 우리라면 괜찮겠다 싶어서 계약했어요.




오래된 집을 리모델링하면서 고고학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발견의 재미가 있죠.”




헌 집을 수리하는 일이 어렵지는 않았나요?

오래된 집을 리모델링하면서 고고학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발견의 재미가 있죠. 벽지나 석고보드를 떼고 장판을 들추면 이 집을 만든 작업자가 버리고 간 소지품이나 당시의 신문지 등이 보이거든요. 그러면 너무 신기하죠. 묘한 기분도 들고. 또 대들보에 쓰인 상량문을 보면 건물을 짓던 당시의 풍경이 떠오르는 것 같아요. 괜히 겸허해지고 집을 더 소중히 다뤄야겠다는 다짐 같은 것도 생기고요. 그래서 저도 나름의 방법으로 상량문을 써봤어요. 부모님께 들은 좋은 말씀과 이 집의 공사에 관여한 모든 사람의 이름을 적어 대들보 위에 숨겨두었지요.










사에 관여한 모든 이를 기록한다는 마음이 멋져요.

아버지가 건설이나 토목업계에서 일했던 분이라면 한 번쯤은 아빠가 저 다리 지었어라는 말을 들어봤을 거예요. 물어보지 않아 그렇지 다들 뿌듯한 마음을 가지고 계시죠. 저도 이번에 이름을 받아 적으며 기분이 좋았어요. 처음에는어이구, 제 이름은 안 넣어도 돼요하시던 분도 한 번 더 여쭈면 바로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옛날 외장 타일을 다 뜯어내지 않고 일부는 남기기도 했어요. 이유가 있나요?

50년 된 것을 저의 재치가 능가할 수 없어요. 만약 그래 보인다면 흉내를 잘 낸 것이죠. 거대한 벽화라고 생각해요. 50년간 만들어진 벽화. 그걸 제가 1년 만에 따라 할 수 없으니까 새것을 옆에 두면서 , 정말 아름다운 것이구나라고 말하고 싶고, 50년이라는 시간의 연장선에 서고 싶었어요.



집을 사무실로 쓸 때의 장점이 있나요?

편안함이 있어요. 이 집도 바닥 난방을 해서 현관에서 신발을 슬리퍼로 갈아 신고 들어오는데 확실히 하루 동안 받는 스트레스가 덜해요.








녹색 박공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을 꼽으라면 어딜까요?

2층 응접실요. 이 집에 처음 왔을 때 사실 이 응접실을 제 업무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발코니 문을 등지고 앉아 계단으로 올라오는 이를 맞이하고, 쉬고 싶으면 발코니로 나가 궁동공원 자락을 바라보며 바람을 쐬는 상상을 했죠. 그래서 테라스에 비와 햇빛을 막아주는 캐노피도 만들었고요. 그러다 어느 순간 여기가 제일 좋은 방인데 혼자 쓴다는 게 너무 욕심쟁이 같은 거예요. 그래서 이 공간을 함께 쓰고 내가 자주 나와야겠다고 생각을 바꿨어요.








전반적으로 원목 자재를 많이 쓴 것 같아요.

바닥, 계단 난간, 책상, 의자처럼 사람이 자주 만지고 밟는 곳은 단단한 화이트 오크를 사용했어요. 천연 오일로 마감했고요. 그리고 지붕선을 따라 뻗은 천장 면은 따뜻한 느낌의 미송을 썼어요. 자주 만질 일이 없으니 별도의 마감은 하지 않았고요. 통나무를 잘라 그대로 붙이기만 한 것이라 자연스레 우리랑 같이 숨을 쉬는 셈이에요.








가구도 직접 만들었나요?

우리를 위한 집을 만들었으니 가구도 만들고 싶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가장 건축적인 태도로 말이에요. 서양 건축의 기둥-보 구조와 동양 건축의 결구법을 조합했죠. 이름도 지었어요. 아키어Archi-er라고. 올해에는 이 구조를 바탕으로 좀 더 편하게 앉을 수 있는 버전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스스로를 건축가가 아닌 건축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보통 건축가라고 하죠. 근데 저는 가家가 아닌 것 같았어요. 저희 집안이 건축하는 집안도 아니고 대단한 공을 이룬 것도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빌딩 디자이너일까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명사로 나를 한정할 필요가 없겠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재미있게 하면서 살면 충분하겠다 싶어 건축하는 사람이라고 말해요. 저는 때때로 건축하는 사람, 가구 만드는 사람, 옷을 짓는 사람이 되겠죠.









사무실 한편에 깨진 기와와 호돌이 그림이 있는 게 이색적인데, 일부러 모으는 건가요?

리모델링 현장에 갈 때마다 주워 오는 편이에요. '청파동 아흔 살 집' 작업을 할 때 떼어낸 문짝과 기와가 있고요. 재개발하는 동네가 있으면 일부러 찾아가 주워 오기도 해요. 수집하는 기준이라면 나머지것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누군가가 기념해서 박물관에든 도서관에든 보관하겠다고 하는 것은 굳이 관심을 갖지 않고요.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겠다, 모두의 기억에는 있지만 영원히 실물로는 보관되지 않겠다 싶은 것만 가져와요.








좋은 집이란 어떤 집이라고 생각하나요?

제가 대학원 다닐 때 스승 고 정기용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당시 명륜동 빌라에 사셨는데 그 집이 좋은 이유를 말씀하시며 걸어서 창경궁에 갈 수 있고 마로니에공원을 걷다가 극장에 들러 연극을 볼 수도 있다. 출퇴근하며 걷는 그 골목길도 좋다. 그러니 창경궁이 마당이고 마로니에공원이 거실이고 골목길이 복도다라는 내용이었죠. 그때는 설마 싶었는데 이제는 그런 마음이셨구나이해해요. 문밖의 영역까지, 조금 더 넓은 범위로 집을 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현판 없는 이 집을 한 번에 찾아오는 사람은 제 기준에서 멋진 사람이라고 하셨죠. 사옥인데 현판을 달지 않은 이유, 그리고 앞으로도 달 계획이 없는지 궁금해요.

저 빛바랜 타일에 윤을 내려고 그렇게 노력해놓고는 '이제는 내 것이야'라며 해치는 행위가 모순 같더라고요. 그러면 이 집도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어요. 에이코랩 사무실은 녹색 박공집에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언젠가 누군가가 뜯어낼 현판을 설치하려고 집에 상처를 내기 싫었던 마음이 제일 커요. 다만 배달 오시는 분들의 항의가 잦아 얼마 전 아주 작게 현관문 도어벨 옆에 이름을 쓴 용지를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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