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동 어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귀가 바쁘다. 옆을 쌩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부터 각종 철재가 아웅다웅 부딪히거나 불꽃 튀는 용접 소리로 가득하기 때문. 이 소음을 김윤익 공간사일삼 디렉터는 예술가가 작업하기 좋은 곳이란 신호로 여겼다.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공간이기에 누구든 자유로이 말할 수 있을 테니까, 그것이 어쩌면 예술가가 할 일이니까.
철공소들 사이에 끼어 있는 예술가의 작업실이 신기해요. 언제 이곳에 자리 잡았나요?
2009년에 문을 열었으니 벌써 13년 차네요. 미술을 전공하고 막상 대학교를 졸업하니 어떤 기회나 활동할 무대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동료들과 합심해 우리끼리 작업하고 전시할 공간을 만들자고 한 게 시작이었어요. 놀러 온 친구도 “나도 여기서 전시하고 싶다”고 해서 자연스레 여러 사건이 일어나는 지금의 모습이 되었어요.
당시 문래동이 마음에 든 이유는 무엇이었어요?
서울의 틈, 서울의 구멍 같은 공간을 찾아 헤매다 상수동, 망원동, 문래동을 후보지로 추렸는데 그중 문래동이 가장 저렴했어요. 그리고 이미 이곳에서 선배 예술가들이 급진적이고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었고요. 한편으로는 ‘이 골목에서는 무엇을 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겠다’란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도심에 그럴 만한 곳이 몇 없잖아요. 어디를 가도 이웃을 신경 쓰고 조심해야 하니까. 그런데 여기라면 목소리를 좀 크게 내도, 사람들이 북적거려도, 저희끼리 우당탕탕 해도 괜찮겠다 싶었죠. 그래서 좋았어요.
얼마나 저렴했는지 궁금한데요.
처음에 건물주가 월세로 130만 원을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너비 10m, 폭 10m 규모인 데다 도심 건물 1층이라 꽤 괜찮은 조건이었죠. 게다가 건물주에게 “젊은 예술가들이 이곳을 작업실로 쓰며 뭔가를 해보려고 한다. 소중히 잘 써보겠다”라고 말씀드렸더니 감사하게도 월세를 한 차례 깎아주셨어요.
10년 넘도록 이곳에서 작업했으니 애정이 남다를 것 같아요. 가장 애착이 가는 부분은 어디인가요?
제가 일하는 자리의 천장이 되게 독특해요. 이 건물이 일제강점기에 지은 한옥이 일부 남아 있는 구조인데, 제 자리 바로 위로 한옥 지붕이 고스란히 자리해 있죠. 워낙 오래된 건물이라 천장의 흙이 수시로 떨어지길래 초창기에 동네에서 폐목재와 폐가구를 주워 와 패치워크하듯 수선했어요. 그러다 보니 천장에 별 게 다 박혀 있어요. 환풍기 커버, 바둑판, 공사 안내판까지. 그 시절이 남아 있는 것 같아 올려다볼 때마다 감회가 새롭죠.
어쩌면 문래동의 자산을 활용해 공간을 만들어간 셈이네요.
자연스럽게 우연히 그리되었어요. 그런데 돌아보면 제가, 그리고 보통 저희 세대가 처한 상황이 그런 것 같아요. 새로운 것을 하려면 있는 것들 사이에서 기회를 찾아야 하는 것, 그러니까 자연스레 있는 자원을 잘 활용하자, 어려움도 이용하자, 이런 생각을 하죠. 그런 상황이 저를 움직이게 한 것 같아요. 여기도 그래요. 낡고 좁은 공간이지만 이 환경을 잘 활용해서 뭔가를 만들어보자, 그러면 우리만의 색깔이 만들어질 수 있다, 자주 그렇게 생각해요.
이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나요?
1층 라운지에서는 저희가 기획하는 워크숍이나 작가들의 아티스트 토크 등이 비정기적으로 열려요. 지난해에는 시각예술 창작자들끼리 모여 암호 화폐, NFT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고요. 2층 전시장에서는 젊은 예술가들의 개인전이나 단체전이 수시로 열려요.
여러 아티스트가 방문할 것 같은데 기억나는 반응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해외 큐레이터나 작가들이 “독일에 있는 어느 공간 같아”, “네덜란드에 있는 어느 공간 같아” 이런 얘기를 할 때가 있는데 그런 소리를 들으면 재미있어요. 왜냐면 저는 해외의 그런 공간에 가본 적이 없으니까 '어떤 부분이 그럴까', '왜 그럴까' 상상하곤 하죠. 2층 전시장은 작가에게 고난도의 놀이터라고 할까요. 생김새가 정방형이 아니고, 양 끝의 천장 높이도 다르고, 바닥도 삐그덕거리는, 한마디로 전형적이지 않은 전시장이라서요. 하지만 그게 이곳의 매력이니까 이 조건에 맞춰 입맛대로 전시를 기획하고 작품을 발표하면 그것이 각자의 색깔이 되리라 믿어요.
어느 도시에도, 공간에도, 집에도 빈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움직이는 전시장 프로젝트를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공간사일삼 덕분인지 어떤 틈을 만드는 데에 관심이 많아요. 어느 도시에도, 어느 공간에도, 심지어 집에도 빈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렇다면 우리가 들고 다닐 수 있는 틈, 어느 곳에 끼워 넣어도 거슬리지 않는 틈은 어느 정도일까 고민하다가 50cm짜리 입방체를 만들어 큐브라고 이름 지었어요. 작품에는 이동하는 집, 관람객에게는 이동하는 전시장인 셈이죠.
이동하는 전시장 개념인 큐브(사진: PACK, 작품 협력: 유신애)
큐브가 이곳저곳을 떠도는 건가요?
맞아요. 작품을 품고 이곳저곳에 등장하죠. 이 작은 큐브가 어딘가에 끼여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사건을 만들어내는지가 흥미로워요. 한번은 큐브를 들고 인왕산 정상에 오른 적이 있어요. 바위에 큐브를 올리고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르신들이 다가와 말을 걸어주시더라고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데 이렇게 고생하느냐며 물도 챙겨주시고. 어쩌면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재미있잖아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다양한 곳에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으니까요.
문래동을 즐기는 본인만의 팁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평일에는 모든 공장이 바삐 돌아가서 정신없지만 주말만큼은 고요해요. 저도 모르게 ‘서울에 이렇게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 만큼 문래동 일대가 비어 있죠. 그 느낌이 되게 그럴싸해서 텅 빈 이곳을 산책하는 걸 좋아해요. 그러고는 공간사일삼에 와서 아껴두었던 영화를 보고 책도 읽고 커피도 내려 마셔요. 오래 지내서 그런지 이곳이 제게는 서울에서 가장 편안한 공간이에요.
좋은 공간이란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나요?
어떤 새로운 걸 해볼 수 있는 공간. 사람에게는 일하고 먹고 자는 것 외에도 낯선 생각을 하고 취미 활동을 하고 무언가를 만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한 공간을 어떤 규모로 특정해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런 틈을 위해서는 최소한 이 정도 공간이 있어야 한다거나.
사실 물리적인 공간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공간만 있다고 해서 저절로 꿈이 꿔지는 게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 알잖아요. 오히려 시간을 마련하는 게 우선일 것 같아요. 시간을 조정하는 감각을 키운달까요. 예컨대 저는 책을 한 장 한 장 손끝으로 천천히 넘겨보거나 핸드 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는 것처럼 서서히 물질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데에서 영감을 받아요.
2022년에는 어떤 일을 해보고 싶나요?
저희 팀원들과 큐브를 들고 더 자주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려고요. 도시 곳곳에 틈을 내보고 싶어요. 그런 측면에서 공공 예술 프로젝트에도 관심이 많아요. 한편으로는 NFT, 블록체인, 암호 화폐 연구도 꾸준히 하려고요. 이 기술은 비대면 시대에 예술이 관람객에게 다가가는 방법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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