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다솔의 집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책상과 책장, 그리고 고양이 두 마리가 있다. 책상 위는 찻상이 차지하고 양다솔의 무릎은 고양이들 차지다. 커다란 창문으로 오후 내내 햇빛이 드는 집. 그는 이 집이 없었더라면 작가가 되지 못했을 거라고 말한다. 양다솔을 꼭 닮은 집에서 그의 책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에 대해, 동료들과 함께 써나가는 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글쓰기 소상공인'이라고 본인을 소개하더라고요.
제가 작년에 일을 쉬었어요. 그때는 막연하게 지금쯤이면 다른 직장을 다니고 있을 거라 생각했죠. 어쩌다 보니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이라는 책을 냈고 아직까지는 글과 관련한 일을 하고 있어요. 얼마 동안은 글과 관련한 일로 먹고 살 수 있을 거란 예감이 들었죠. 훌륭한 작가가 되겠다는 포부보다는 제 한 몸 벌어 먹일 수 있는 글쓰기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생계를 위한 돈을 벌 정도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글쓰기 소상공인이라고 저를 소개하곤 해요. 스타 작가들만 글로 먹고 살 수 있다면 누가 글을 업으로 삼겠어요. 문학 분야에도 일종의 중산층, 소상공인이 필요해요.
최근 나온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이라는 책 제목이 인상적이에요.
제가 10년 동안 쓴 글을 모아서 엮은 책이에요.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쓴 것도 아닐뿐더러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제 주관도 감정도 많이 달라져서 하나로 묶는 작업이 쉽지 않았어요. 작년 초반에 제가 백수처럼 지냈어요. 20대 후반, 한 가지 커리어를 정해 열심히 위로 올라가야 할 시점에 대책 없이 일을 그만둔 거죠. 그 즈음 저는 스펙을 쌓는다거나 취업 준비도 하지 않고 정말 밥만 해 먹고 살았어요. 어머니께서 잔소리를 하실 법도 한데 아무 말씀이 없으시더라고요. 좀 이상해서 왜 아무 말씀도 안 하시느냐고 여쭤봤죠. 그때 어머니가 “네가 돈이 많든 적든 마음이 가난하지 않은 것 같아서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어요. 저희 어머니가 평소에는 독설가인데 종종 이렇게 이구아수 폭포 같은 말씀을 하시곤 해요. (웃음) 그 말씀이 정말 맞았어요. 제가 오랜 시간 동안 무슨 일을 하든 항상 마음이 가난하지 않기 위해서 글을 썼더라고요.
책을 읽고 난 후의 소감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요?
정말 많은 피드백이 있었어요. 그중에서 특히 한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나요. 이 책을 쓴 사람은 아침에 일어났는데 눈이 키 높이까지 쌓인 상황에서 남들은 밖을 나갈 엄두도 못 내는데 마치 앞에 아무것도 없다는 듯 성큼성큼 나아가는 것 같다고요. 제가 이 글을 쓸 때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어줘서 고마웠어요. 제 책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삶을 펼치는 기개’가 아닐까 생각해요. 이렇게 이상한 사람도 잘 살고 있다고, 이가 없을 땐 잇몸으로도 살 수 있다고요.
“글 한 편 잘 쓰는 건 어쩌다 할 수 있지만 우리는 긴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요”
‘까불이 글방’을 운영하고 계시죠. 글 쓰는 동료들과 공유하는 중요한 가치가 있나요?
저희 글방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다들 포용력이 있고 따뜻한 분들이에요. 서로의 글도 정말 좋아하시고요. 글방에서 제 역할은 오퍼레이터예요. 글을 함께 쓰시는 분들에게 중요한 것 세 가지를 말씀드리곤 해요. 첫 번째는 솔직하게 쓰는 거예요. 추상적으로 멋있게 쓰는 글은 솔직하고 구체적인 글이 밑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담백하게 쓰는 연습을 많이 하라고 말씀드려요. 두 번째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독후감, 인터뷰, 레포트 등 억지로 해야 하는 글을 주로 썼잖아요. 자기 안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끌어올리는 것만도 굉장히 힘든 일이죠. 세 번째는 꾸준히 쓰는 거예요. 저희 글방에도 종종 정말 잘 쓴 글이 나올 때가 있는데, 그럼 서로 읽고 감탄하면서 바로 문학상에 보내자고 그래요. (웃음) 그러면 저는 잘 쓰니까 더 써보시면 어떻냐고 말하는 쪽이에요. 글 한 편 잘 쓰는 건 어쩌다 할 수 있지만 우리는 긴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요. 오랜 기간 꾸준히 손을 단련하자는 쪽이죠.
글방의 장점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서로가 서로의 적극적인 독자이자 작가가 되어주는 경험이 정말 좋아요. 글쓰기를 시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끼리 서로의 글을 보고 매주 새로운 시도를 해요. 처음에는 자기 글이 최고로 잘 쓴 것 같고 단점이 잘 안 보이지만, 남이 했던 실수를 지켜보고 내 글에서 그런 실수를 덜어내면서 서로가 성장하게 돼요. 좋은 글에 대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좋은 글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게 되고요. 모두가 각자의 출발선에서 각자의 길을 가지만 서로 이어져 있다는 느낌을 줘요.
망원동에 산 지 오래됐나요?
3년 됐어요. 이곳은 인천과 부천에 오래 살다가 망원동에 와서 살게 된 첫 집이에요. 제게 망원동, 홍대는 빨간색 광역버스를 타고 놀러 가던 곳이었어요. 내가 사는 동네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죠. 여기 살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래서인지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던 것 같아요.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여러 집을 봤을 텐데 이 집을 선택한 계기가 있나요?
제가 집을 고르는 기준이 좀 까다로워요. 이 동네에서 적어도 30채는 본 것 같아요. 최소 2년을 함께할 공간이잖아요. 저는 실제로 피부에 닿는 것들에 예민해요. 예를 들면 집, 음식, 옷이 제 기준에서 잘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인생에 대한 열의가 쉽게 사그라들더라고요. 집을 고를 때 제일 중요한 기준은 통풍과 일조량이에요. 저는 사계절 내내 창문을 열어두는 편인데 맞바람을 맞으며 환기를 하기 위해서죠. 그리고 고양이를 키우다 보니 햇빛도 중요해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에요.
차 마시는 공간을 위해 어떤 요소가 필요한가요?
제 삶에서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다도예요. 여기서 차를 마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정말 중요하죠. 같은 공간에 앉아서 매일 차를 마실 거잖아요. 만약 차를 마시며 바라보는 풍경이 벽이라면 정말 답답하겠죠. 이 집은 거실 창이 크고 밖에는 바로 나무가 있어요. 햇빛도 아주 잘 들어서 차를 마시며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다울 거란 확신이 들었죠. 다른 수많은 집을 보러 다녔지만 제가 차를 마시는 모습이 잘 상상이 안 됐거든요.
언제부터 다도가 삶 전반으로 들어왔나요?
중학생 때 교장 선생님이 조금 독특한 분이었는데 학교 정수기에 보이차를 넣어두셨어요. 본인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모든 학생들이 물 대신 보이차를 마셔야 했죠. 유일하게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도 찻집으로 만드셔서 그곳에서 놀기 위해 교장 선생님이 우린 차를 마셔야 했고요. 선택의 여지 없이 차가 제 삶에 들어왔던 것 같아요. (웃음) 이후에도 제가 선생님으로 모셨던 분들이 거의 다 차를 드셨죠. 보이차를 마시기 위해서는 인생을 보이차 중심으로 개편해야 되거든요. 집 안의 제일 중요한 곳에 찻상이 있어야 하죠.
“주거 공간은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문화적으로도 삶의 반경을 넓히는 데 절실하다고 생각해요”
본인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육체적 휴식과 영혼의 확장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라 생각해요. 세상일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 없잖아요. 집은 유일하게 마음대로 있을 수 있는 내 공간이죠. 나에 대해 알려주고 싶고 잘 지내보고 싶은 사람은 먼저 초대하는 편이에요. 집이 저를 많이 닮았거든요. 제 손을 거친 것들이 저의 내러티브를 그대로 드러내주는 것 같아요. 책장이 너무 비싸서 제가 직접 벽을 뚫어서 책장을 만들기도 하고. 화분도 분갈이해서 들였고, 벽에 걸린 그림도 마음에 드는 그림을 제가 직접 오마주 해 본 거예요. 자신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구체화 해볼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삶의 스펙트럼 자체가 다를 수 있다고 봐요. 주거 공간은 사람의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문화적으로도 삶의 반경을 넓히는 데 절실하다고 생각해요.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신다고 들었어요.
제 삶의 많은 것이 친구들이 해보라고 해서 일어난 것들이에요. 책도 그렇고요. 스탠드업 코미디의 경우도 친구들이 제가 말하는 것을 그대로 무대에 올라가서 하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저는 말 때문에 자잘한 흥망성쇠를 다양하게 겪으며 살았는데요. 그런 말로 뭔가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스탠드업 코미디언 활동을 해봤는데 전혀 쉽지 않더라고요.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에세이 쓰기와 비슷한 점도 있지만 무대 상황, 관객과의 소통, 그날의 분위기 등등 비언어적 요소까지 포함해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훨씬 더 복합적이고 어려웠습니다.
최근 작가님을 웃게 만든 것이 있나요?
한 문장을 보고 5분 넘게 웃었던 적이 있어요. 친구가 고서점에서 <모험도감>이라는 책을 찾았어요. 모험에 관한 모든 방법이 정리된 책이었는데 그중에서 노숙을 주제로 한 챕터가 있었어요. 노숙을 가이드하는 내용이었는데 처음에 “처음에는 누구나 걱정이 된다”라는 문장이 엄청 웃기더라고요. '맞아, 맞아' 하면서 공감도 됐고요. 노숙이라니 당연히 걱정이 되죠. 노숙 아니어도 그렇고요. 삶을 찌르는 문장이었습니다. 다음 문장은 노숙은 어렵고 힘들지만 해보고 나면 대체할 수 없는 상쾌한 기분을 준다, 이런 식이더라고요. 노숙이라….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저는 작업 공간에 가장 많이 머물러요. 지금 이 시간대가 가장 좋아요. 오후 두세 시가 되면 햇빛이 가득 차오르고 어떤 상황에서도 조금은 행복해져요. ‘삶이 이런 것이구나. 이렇게 오래 살아야지.’ 이런 한가로운 생각마저 들고요. 이 작은 평화를 매일 놓치고 싶지 않죠.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항상 여기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