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따뜻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한국적 아름다움을 전파하는 사람이 있다. 한국에서 만든 공예품을 비롯한 예술 작품 그리고 한국의 전통문화를 아우르는 라이프스타일 공간 스튜디오 코 대표 유이비. 그녀는 갤러리에 놓이는 그럴듯한 오브제가 아니어도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제품 그 자체로 충분히 예술적 가치가 있음을 알린다.
신진 작가의 도자기부터 장인이 만든 전통 오브제까지 다양한 셀렉션이 돋보입니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아우르는 라이프스타일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꼭 갤러리에 놓이는 그럴듯한 오브제가 아니어도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제품 그 자체로 충분히 예술적 가치가 있다는 걸 알리고 있죠.
로스앤젤레스에서 온라인 숍을 운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미국에는 일본산 홈 카테고리 상품을 큐레이팅해서 판매하는 곳이 많아요. 같은 물건이라도 어떻게 소개하고 보여주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 보이잖아요. 지금은 K-팝, K-뷰티가 각광받는 시대지만, 유학차 이곳에 온 20살 때부터 줄곧 한국산 공예품을 멋지게 소개하는 곳이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죠. 아이디어를 수집하면서 본능에 따르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남편에게도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요.
남편은 한국에서 태어나 어릴 적 미국으로 입양됐어요. 한국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는 남편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생각하다 보니 정작 한국에서 자란 저조차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무지하다는 걸 깨달았죠. 스스로를 진중하게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됐어요. 사업 구상과 시장조사부터 꼼꼼하게 다지면서 이 일을 해야겠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코(nose)와 고古에서 작명 아이디어를 얻었다면서요?
냄새를 맡는 것과 오래된 것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갸우뚱하시겠지만 스튜디오 코Studio Kō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했어요. 사업 구상을 하던 어느 날 우연히 어떤 냄새를 맡았는데 그 향이 오래된 기억을 상기시켜주었죠. 바로 할머니에 대한 진한 추억이었어요. 사람의 모든 감각은 대뇌로 전달되기 전에 시상이라는 과정을 거치는데, 후각만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뇌에 바로 연결된대요.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깊었던 그날, 스튜디오 코가 탄생한 거죠.
“작품 탄생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중요해요. 서사가 있어야 호기심이 생기니까요.”
한국산 공예품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외국인 고객에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나요?
전통적인 작품과 현대적 요소를 띤 작품의 비율을 고려해 바잉하고 있어요. 전통적인 것만 고집하다 보면 한국 문화가 생소한 사람에게는 자칫 기념품 숍 같은 느낌이 들 수 있거든요. '한국적인 작품도 이렇게 배치하면 우리 집에 잘 어울리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려고요.
직접적인 매출과 관계없이 국, 떡, 전 등 한국의 전통 먹거리, 윷놀이 같은 전통 놀이, 국경일, 한글 등을 소개하는 것도 인상적이에요.
판매하는 작품 자체만 보여주기보다는 그 작품이 탄생하게 된 일화나 밀도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서사가 있어야 호기심이 생기니까요. 작가 한 분 한 분, 작품 하나하나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전하려고 노력해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좀 더 쉬운 방법으로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알게 된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외국에 살면 애국자가 된다던데 저도 그런가 봐요.
베스트셀러가 있다면요?
청자 작품들이에요. 흔하지 않은 색이라 그런지 많은 분들이 좋아하죠. 또 바잉해온 작품 중 전혀 팔리지 않은 것은 없어요. 결국 작품들이 주인을 찾아가는 걸 보면 ‘역시 잘 데려왔구나’ 해요.
새로운 작가나 브랜드를 선정하는 기준이 있나요?
균형을 가장 염두에 둡니다. 전통적 요소가 있으면서도 현대적 감각이 더해졌는지 살펴보죠. 일단 섭외 차 미팅을 요청하는데, 작가들과 이메일이나 화상으로 대화하다 보면 작가의 특성이나 숨겨진 이야기, 가치관이 느껴지거든요. 작품 자체도 중요하지만 일련의 대화 과정을 통해 최종 결정을 합니다.
특별한 작품도 많이 보여요. ‘ㅋㅋㅋ’라는 문자가 새겨진 파스타 볼은 스튜디오 코에서만 구입할 수 있다고요.
시장조사 겸 경기도 이천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투박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는, 연호경 작가의 분청 작업들을 우연히 발견했어요. 그때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졌죠. 작품을 구매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 도자기에 담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땡땡(연OO)’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분이에요. ‘ㅋㅋㅋ’ 시리즈나 ‘Made in Korea’가 새겨진 화병은 한국에서 자란 교포든 외국인이든 국적에 상관없이 웃음을 주는 재미있는 작업이어서 바잉을 결정했어요.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해요.
기억에 남는 고객도 있을 것 같아요.
초반엔 한국 문화를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고객 위주로 주문이 이뤄졌어요. 스튜디오 코를 시작한 지 4년이 돼가는 요즘엔 한국 문화에 문외한인 분들의 문의가 늘어났죠. 최근엔 애플 티비 플러스Apple TV+에서 제작한 <파친코> 시리즈의 글로벌 프리미어 일정에 맞춰 한국 도자기를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여경란 작가와 함께 작업한 도자기와 보자기 포장은 전 세계 팬들과 제작진에게 전할 예정이에요.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창문 너머로 야자수가 보이는 집을 사무실 겸 스튜디오로 쓰고 있어요. 오전에는 이메일과 주문을 체크해 상품을 포장하고 배송 준비를 해요. 한국에서 새로 받은 작품이 있으면 상세 촬영이나 콘텐츠를 위한 촬영도 하고요. 오후엔 한국에 계시는 작가들과 줌 미팅을 합니다. 주로 협업에 관련한 상의를 하죠.
집에서 일하다 보면 일과 삶의 경계가 허물어지기도 할 텐데요.
저나 남편이나 팬데믹 시대 이전부터 재택근무를 했어요. 처음에는 일과 삶의 경계가 전혀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가구를 배치하여 공간을 분리하여 사용해요.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죠. 일하는 시간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정한 것도 도움이 됐어요. 저녁 시간이 되면 서로 일을 끝내라고 눈치를 줘요.(웃음) 팬데믹 이후엔 집에서 요리를 많이 하게 돼서 저녁이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일을 마무리해요.
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부엌과 다이닝 룸요.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라 그런 것 같아요. 요리를 즐기기도 하고, 좋아하는 물건으로 가득 채워진 공간이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셀렉트 숍을 운영하다 보면 저 자신이 구매하고 싶은 것 위주로 바잉하게 되는데 결국 십중팔구는 제가 구매하게 되더라고요. 부엌 선반에 한국 작가들의 각양각색 그릇과 컵이 놓인 모습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애국심도 생기고 기분도 좋아져요.
해외에서 한국인 비즈니스 오너로 산다는 건 어떤 걸까요?
어디에 살든 인내와 책임감이 많이 필요한 직업인 것 같아요. 수입이 일정하지 않아서 불안할 때도 있었고, 방향성에 관해 고민하는 순간도 자주 찾아와요. 처음 시작할 때는 정말 확신이 없었거든요. 그렇지만 일단 꾸준히 해보자는 생각만 했어요. 첫 구매로 인연을 맺은 손님이 재구매로 이어질 때 굉장히 뿌듯해요. 저는 그분들을 ‘스튜디오 코 컬렉터’라고 불러요. 스튜디오 코를 통해 자신만의 컬렉션을 만들어 나간다는 상상을 하면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