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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틈이 자주 행복해지는 캠핑

<주말의 캠핑> 김혜원 작가

Text | Kakyung Baek
Photos | Hoon Shin
Film | Jaeyong Park

<주말의 캠핑> 저자 김혜원의 본업은 에디터다. 분주한 일상에서 그가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캠핑처럼 ‘그냥 기분 좋아지는 일’을 찾는 것이다. 그는 커리어에 도움 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을 틈틈이 일상에 심어둔다. 그중 캠핑은 ‘작정하면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 수 있다’는 명제를 마음에 굳게 심어준 취미다. 그의 집 역시 자연 속 캠핑 분위기가 물씬 난다.








요즘 어떤 일상을 보내나요?

본업인 에디터의 직무 난도가 높고 무척 바쁜 편이라 일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해요. 나의 리듬을 잃어버리면 결국 일에서도 무너지게 되더라고요. 출근 시간보다 한 시간 반 일찍 일어나서 씻고 향 피우고 요가를 해요. 몸 쓰는 데는 영 재주가 없어서 대단한 동작을 하진 못하지만, 요가를 하면 내가 편한 속도로 천천히 잠을 깨고 나의 리듬을 찾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주말의 캠핑>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계기에 대해 들려주세요.

편집자에게 ‘먹고사는 일 외에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딴짓’에 대한 책을 써달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제일 먼저 생각난 주제가 캠핑이었어요. 한 가지 주제로 책을 쓰려면 그 분야의 전문가 정도가 돼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캠핑은 ‘잘할' 필요가 없는 장르예요. 누가 불을 더 잘 피우나, 설거지를 빨리 하나 경쟁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캠핑이라면 잘 알아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재미있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캠핑을 취미로 삼게 된 계기가 있나요?

사실 그동안 꾸준히 할 수 있는 취미를 찾아서 꽤 오랫동안 헤맸어요. 취미 후보에 올랐던 것 전부 잘하고 싶은데 잘하지 못해서 즐겁지 않았어요. 재미로 시작한 일인데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남들과 비교하며 안달을 내고 있더라고요. 하지만 캠핑은 조금 더 잘하고 못하는 게 큰 의미가 없는 활동이라 좋았어요. 무리하게 노력할 필요도 없고 딱히 잘하고 싶은 생각도 안 들었죠. 저는 잡생각이 많은 인간이라 아무것도 안 하면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라 괴롭거든요.




해야 하는 일 말고, 도움 되는 일 말고, 그냥 기분 좋아서 하는 일도 챙기면서 살고 싶어요.”




캠핑에 빠져 지낸 날들을 회상할 때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을 꼽자면 언제인가요?

‘바다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겠다’는 느슨한 계획 말고는 별다른 작정을 하지 않고 무작정 떠났는데 그 일주일을 자주 곱씹어요. 동해 일주 둘째 날, 장호항에서 노을을 너무 오래 보는 바람에 목표로 삼은 곳에 도착하지 못한 채 해가 저버렸고, 그나마 익숙한 곳을 찾다 보니 그게 울진이었어요. ‘울진, 차박’ 이런 검색어를 대충 넣어서 선택한 해수욕장에 도착했는데 어두워서 주변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일단 잤어요. 근데 다음 날 차 문을 여니까 풍경이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아침 햇살을 받아서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모래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그 넓은 해변에 우리밖에 없었어요. ‘시간이 이대로 멈추기를 바라는 기분’, ‘영원히 반복되어도 좋을 하루’라는 표현이 내 것이 된 날이었어요.




사진 제공: 김혜원


사진 제공: 김혜원




캠핑은 새로운 자연 속에 매번 집을 짓고 잠시 생활하는 것이죠. 캠핑을 통해 집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점이 있나요?

돌이켜보면 공간을 채워가면서 조금씩 나만의 색이 뚜렷해진 것 같아요. 내 방이 생겼을 때, 내 부엌이 생겼을 때, 내 텐트가 생겼을 때, 주어진 공간을 내 물건으로 채우는 과정에서 취향이 생기더라고요. 대단한 취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저는 매일 쓰는 물건, 자주 쓰는 물건은 예뻐야 한다는 주의거든요.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기분을 사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름다운 물건을 하나 들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인생이 환기되기 때문이죠. 가능한 범위 안에서 사치를 부리는 편입니다. 집에 초대한 손님이 “집이 꼭 너 같다”라고 말해줄 때 기쁘더라고요. 내 취향인 물건을 하나씩 모아 나와 닮은 집을 만들어가는 것, 그런 데에서 보람을 느낍니다.








스스로 집에 대해 정의한다면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언제나 나를 환대해주는 공간. 바깥 세상, 공간은 되게 가변적이잖아요. 운이 좋아 다정한 공간에서 환영받는 날도 있지만, 어떤 날엔 ‘내가 뭘 잘못했지?’ 싶을 정도로 불청객 취급을 받기도 하고요. 그런데 집은 내가 나를 위해 나를 위한 물건들로 채운 공간이라 늘 나에게 다정해요. 공간 곳곳에 나에게 필요한 배려가 묻어 있죠.



집을 어떤 모습으로 꾸미려고 했나요?

저의 라이프스타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글쓰기와 음주인데, 굳이 카페나 술집을 갈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작업실, 술집으로 집을 꾸미고 싶었어요. 거실에 소파 대신 아름다운 원목 테이블을 놓은 이유죠. 칵테일도 만들고 커피도 타는 바bar도 설치했어요. 실제로 저희 부부는 거실을 바처럼 이용해요. 가끔은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하며 커피를 내주기도 하고요.










집에서도 캠핑 온 듯한 느낌을 내는 방법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캠핑을 가지 못할 때 임시방편으로 캠핑 온 기분을 소환하곤 해요. 흡연자들이 종종 담배 타임을 갖는 것처럼 저는 팔로산토 타임을 가져요. 팔로산토는 향이 나는 나무 조각으로 여기에 불을 붙이면 얼마간 공기에 캠핑 냄새를 입힐 수 있어요. 그 향을 맡으며 지난 캠핑을 추억하면서 잠시 쉬어가는 거예요. 가끔 집에 캠핑 의자랑 테이블을 펼쳐두고 홈 캠핑을 하기도 해요. 조명을 모두 끄고 희미한 오일 랜턴 불빛에 의지해 생활하다 보면 제법 캠핑 기분이 나거든요. 거기서 책도 읽고 버너로 포토푀 같은 국물 요리도 해 먹습니다. 집에서 권태감을 느끼는 이유가 ‘너무 편해서’인 경우가 많은데, 약간의 불편함을 만들면 캠핑하거나 여행을 떠난 것 같은 설렘을 느낄 수 있어요.




사진 제공: 김혜원


사진 제공: 김혜원




가장 좋아하는 시간과 공간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이른 아침 해가 뜬 직후와 늦은 오후 해가 지기 전에 아주 잠깐 아름다운 빛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데 그 순간을 아주아주 좋아해요. 작은 방 중 하나를 서재로 사용하는데 오후 4시쯤 들어오는 빛이 정말 근사합니다. 그리고 복도에서는 북한산이 한눈에 보이는데 북한산 뷰 선셋이 저희 집의 자랑이에요. 노을이 질 즈음 좋아하는 컵에 좋아하는 음료를 담아 복도로 나가요. 라디오 방송 '배철수의 음악캠프' 틀어놓고 노을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환기되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충전한 에너지로 저녁도 만들어 먹고, 밀린 집안일도 하고, 글도 씁니다.








이전 책 <작은 기쁨 채집 생활>의 제목처럼 작가님의 일상엔 작은 기쁨, 취미가 굉장히 많은 것 같습니다. '일상의 작은 기쁨'을 삶 곳곳에 배치하는 이유를 듣고 싶어요.

‘마음 놓고 행복할 수 있는 때’ 같은 건 인생에 없더라고요. 행복은 계절처럼 큰 단위로 오지 않고 몇 달씩이나 지속되지도 않지요. 잡지 마감이 코앞이니 당분간 우중충하게 지내겠다는 마음은 영영 흐린 기분으로 살겠다는 말과 같다는 걸 실감하고 나서부터는 바쁘더라도 시간을 내서 틈틈이 행복해지려고 노력해요. 딱히 웃을 일 없는 일상에 캠핑같이 작은 기쁨을 심어두는 거예요. 요즘은 일을 하더라도 기왕이면 풍경 좋은 곳에 가서 하려고 해요. 책을 내며 쓴 원고 중 일부도 텐트 안에서 쓴 거예요. 해야 하는 일 말고, 도움 되는 일 말고, 그냥 기분 좋아서 하는 일도 챙기면서 살고 싶어요.










최근 새롭게 발견한 작은 기쁨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자기 전에 마시는 위스키 한잔. 위스키는 특히 즐길 거리가 많은 술이라 좋아요. 브랜드마다 서사가 있고 맛과 향도 확연히 다르죠. 여행하는 기분으로 하나씩 사 모으며 공부하고 있어요. 취미의 세계는 옷장 속에 든 나니아 왕국 같다고 생각해요. 봉인되어 있을 때는 잠잠하다가 한번 열어보면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색다르게 보는 눈이 생겨요. 세상이 조금씩 입체적으로 보이게 되죠.



언젠가 꼭 한번 살아보고 싶은 집이 있나요?

마당이 있는 집에 살아보고 싶어요. 어떤 나무를 심을지까지 생각해두었어요. 일단 목련이나 조팝처럼 봄 마중을 위한 나무를 심고 싶어요. 욕심 같아선 카메라 앵글에 다 안 잡힐 정도로 커다란 나무도 있으면 좋겠고요. 조용한 바닷가 마을, 마당에 큰 나무가 있는 집에서 매일 노을 산책을 하면서 사는 상상을 종종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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