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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만든 파주의 대형 음악 홀

콩치노 콩크리트 대표 오정수

Text | Solhee Yoon
Photos | Hoon Shin
Film | Jaeyong Park

오정수 콩치노 콩크리트 대표와의 인터뷰 약속 시각은 사위가 깜깜한 금요일 밤 8시였다. 꽤 늦은 시각이라 의아했으나, 서울에서 주중 일을 마치고 파주의 콩치노 콩크리트로 출근하는 때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그렇다. 그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치과 의사로, 토요일과 일요일은 DJ로 두 편의 삶, 두 채의 집에서 삶을 플레이하는 중이다.








주중과 주말의 업이 따로 있다니 듣기만 해도 설렙니다. 모두의 로망 아닐까요?

서울에서 파주로 넘어가는 자유로를 달리며 늘 생각해요. 참 의미 있는 삶이라고. 만약 콩치노 콩크리트가 없었더라면 오늘도 아파트에서 이웃집을 의식해 간을 졸이며 볼륨을 낮추고 음악을 들었겠지요. 그런 걱정에서 해방돼 역사적인 명연주가들을 잠시라도 제대로 만날 수 있는 주말의 이 시간이 제게 너무도 소중해요. 그래서 매번 설레고 희망찹니다.








콩치노 콩크리트라는 이름이 독특해요. 언제 개관하게 됐나요?

개관은 20215월에 했어요. 이제 꼬박 1년이 됐네요. 이 공간의 목적을 이름에 드러내고 싶었는데,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을 추구하는 공간이라 그와 관련된 단어를 계속 찾았어요. 그러다 라틴어 콩치노concino’가 눈에 들어왔어요. '울려 퍼지다, 화합하다, 연주하다, 함께 노래하다'라는 뜻이거든요. 여기에 건물 재료인 콘크리트의 으로 살짝 바꿔 두 단어를 결합해 이름을 지었습니다.








음악 홀에 가득한 오디오 기기와 장비, LP만 보더라도 음악에 대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이토록 음악을 사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잠시 방황하다 학교를 그만두었어요. 당시 형님이 일본을 다녀오며 워크맨이란 걸 선물해줬는데, 그게 큰 촉매제가 된 것 같아요. 그 길로 음악에 빠진 건 어쩌면 본능적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산을 좋아해서 혼자서도 자주 산에 올랐거든요. 가만히 앉아 도심을 내려다보며 음악을 듣고 있으면 너무도 황홀했어요. 내가 만나지 못한, 생각하지 못한 범위의 세상이 펼쳐지는 것 같았어요. 그다음부터는 돈이 생기는 족족 음반을 사 모았어요. 성음사나 지구레코드에서 나온 클래식, , 월드 음악을 수집했죠. 명음반과 함께라면 수학 문제를 풀어도 머리가 안 아팠답니다.








음반을 수집하다가 그 다음으로 오디오의 세계에 빠진 거군요.

20대 초반이었어요. 잠시 광주에서 살 때였는데 충장로에 베토벤이란 고전음악 감상실이 있었거든요. 한쪽에는 커피 마시는 공간, 다른 한쪽에는 음악 감상실이 있었죠. 영국제인 로저스RogersLS3/5A 스피커와 서브 우퍼가 세팅되어 있었는데 그 소리가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오디오를 장만해야겠다 싶어서 저축해둔 거금 500만 원을 들고 청계천에 가서 중고를 샀어요. 근데 연결하자마자 고장이 나더라고요. 실망스럽게 쓴맛을 봤죠. 그때도 '좌절할 게 아니다, 살 거면 제대로 새것을 사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고 베토벤에서 본 로저스 LS3/5A 스피커와 영국제 오디오 이노베이션Audio Innovations진공관, 스위스제 토렌스Thorens의 턴테이블을 세트로 사버렸어요. 그게 제 오디오 인생의 출발점이죠.








세상에, 거침이 없었네요.

제가 살아오며 번 돈의 90%는 모두 오디오에 쓴 것 같아요. 10대 때부터 오디오 잡지를 구독해 읽기 시작했고 고등학생 때부터 세종문화회관에 다녔어요. 1988년 예술의전당 음악당이 완공되고 나서 첫 공연도 챙겨 봤죠. 예전에는 용산 전자상가 쪽에 수입 오디오 상가가 꽤 있었거든요. 틈날 때마다 갔어요, 뻔질나게.



그러면서 점점 음악 홀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키워간 거군요.

사실 처음에는 나만의 음악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아주 작은 소망이었어요. 원래는 시골 산 중턱에 조그마한 집이 있었어요. 제 방에 오디오를 한 세트 마련해두고 쉬는 날이면 가서 음악을 감상하곤 했죠. 아름다운 선율이 가득한 방 한가운데에 깃드는 달빛을 보고 있노라면 그만한 휴식이 없을 정도로 행복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일이 바빠지고 역할이 많아지다 보니까 그런 걸 즐길 여유가 없어지더라고요. 도심에서는 큰 소리로 음악을 듣기 어렵고요. 그래서 서울 근교의 음악 홀이란 이미지를 구체화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나만의 음악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아주 작은 소망이었어요.”




왜 파주였나요?

서울 근교로 몇 년 동안 땅을 물색하러 다녔는데 마지막 후보지가 양평과 파주였어요. 그러다 우연히 이 땅을 보았는데, 몇 년 전 이 근처에서 밥을 먹으며 여기 참 좋다했던 기억이 나더라고요. 도심이나 관광지 특유의 번잡함이 없고, 산과 강이 펼쳐져 보이고, 좋은 기운이 느껴졌어요.








건물이 꽤 커요.

4개 층이에요. 1층은 주차장으로 쓰고 2~3층은 음악 홀, 4층은 게스트룸이에요. 설계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설계한 민현준 홍익대학교 교수가 했습니다.



건물을 계획할 때 꼭 구현해보고 싶었던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음반을 녹음했던 당시 공간의 스케일과 비슷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오케스트라 연주단은 10~15m 정도 폭으로 쫙 펼쳐져 연주하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음반을 플레이하는 공간은 그보다 한참 축소된 규모죠. 녹음 환경과 다르다는 이야기는 곧 LP에 기록된 스케일감, 웅장함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설계할 때부터 오케스트라 무대를 염두에 두고 그것과 비슷한 공간을 만들고자 했어요.








콩치노 콩크리트는 본인에게 어떤 공간인가요?

오케스트라를 준비하는 대기실 같아요. 서울 집에서는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면 이곳에서는 어떤 음반을 어떤 순간에 틀면 좋을지를 쉴 새 없이 생각하죠. 말하자면 생각의 방향이 바뀌는 거예요. 루프톱에 올라서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진 일대가 보이는데, 그 풍경을 보며 내일은 어떤 분들이 여기에 올까, 그분들에게 더 아름다운 순간이 되게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제게는 이 집이 더 충만한 음악 경험을 위해 준비하는 곳이에요.



집이란 장소가 주는 의미는 어떤가요?

집이 콩치노 콩크리트와 다른 점이 있다면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더 신경 써서 들을 수 있는 공간이랄까요. 방에 놓인 오디오를 보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얻어요. 그래서 저는 워크맨을 선물받았던 그 순간부터 20, 30, 40, 50대까지 줄곧 제 방에 오디오를 세팅해뒀어요. 그 작은 상자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로 제 방이 조그마한 소우주가 된 것 같거든요.










동년배 친구들에게는 별나다고 소문났을 것 같아요.

저는 오디오, 음반 이외에는 욕심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그 흔한 맛집도 시간 내서 찾아가 본 적이 없죠. 저는 이 기기와 음반에서 장인들의 손길이, 정성이 느껴져요. 당시의 놀라운 음악 세계가 여기 제 앞에 있고, 이 세계를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다들 미쳤다고 하죠. 그런데 미치지 않고 무슨 일을 하겠어요. 진짜 제대로 하려면 미친 듯이 해야죠. 그래야 우리가 세상에 뭔가를 내놨을 때 이 정도면 그래도 괜찮네란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서울 집의 제 방에는 침대 옆에 1940년대 진공관 전축이 있어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라디오를 켜는 거예요. 클래식FM 방송을 듣기 위해서죠. 전축 옆에 노트를 두고 '이 곡 좋다, 저 곡 좋다'고 적으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주말을 위해 아이디어를 저축하는 셈이죠. 그다음 주말에 콩치노 콩크리트에서 플레이해봐요. 사실 콩치노 콩크리트를 지을 당시에는 새벽에 홀로 일어나 큰 소리로 음악을 들으면 행복하겠다 싶었거든요. 근데 그것보다 더 행복한 게 여러 사람과 함께 듣는 것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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