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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뿐인 당신의 이야기를 표구합니다

모리함 대표 최나영

Text | Solhee Yoon
Photos | Hoon Shin
Film | Jaeyong Park

몇 년 전 최나영 대표는 10년간 오가던 판교 출근길을 인사동으로 틀었다. 전통 표구 기법을 사사하기 위해서다. IT업계에서 주름잡는 기업에서 일하다가 먼지만 뽀얗게 쌓여가는 표구사를 전전하게 된 건 마음에 어떤 물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가고 싶은 속도를 깨닫는 순간이 느닷없이 찾아왔다고 했다.








모리함은 어떤 곳인가요?

한국의 전통 표구(장황, 배첩이라고도 함)를 기반으로 하여 개인의 소중한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 곳입니다. 형식은 액자와 병풍, 족자, 화첩 등이죠.



한남동에서 매장을 운영하다 작년에 명동으로 이사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손님들과 이야기 나누는 게 주된 일이라 매장이 조금 더 편안하고 따뜻한 공간이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정말 오래 물색했는데 이 자리를 딱 만났지 뭐예요. 한남동에서 인사동으로 넘어가는 길목이라 자주 지나다니는 동네였어요. 코로나19 여파인지 공실이 된 지 꽤 오래됐더라고요. 이전에는 중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특송 서비스업체가 있었대요. 이곳을 보고는 냉큼 계약했어요. 먼지를 털고 막혀 있던 창을 텄더니 이렇게 고즈넉한 적벽돌 건물에 큰 창으로 햇살이 쏟아지는 공간이 됐어요. 손님들이 모리함과 정말 잘 어울린다고 말씀해주셔서 기분이 좋아요.








이력이 독특해요. 이전에 IT업계에서 근무했다고요?

카카오에 선물하기란 서비스가 있잖아요. 그 부문에서 축하, 감사, 위로, 응원 등의 마음을 담은 선물을 전달하는 방식을 연구 했어요. 직업이나 책상 풍경이 달라졌을지언정 예나 지금이나 제 업의 본질은 같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에게 진심을 전하는 방식에 관한 일을 하니까.



업을 바꾼 계기가 있었나요?

너무나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제 인생에 정지 버튼이 눌린 것 같았죠. 상실 그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내가 가장 소중한 것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어요. 그런 마음을 좇아간 끝에 오래 보관하는, 기록하는 한국적인 방식으로 표구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원체 그런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뭔가를 잘 모았나요?

물건 모으는 것도 좋아하고 글 쓰는 것, 사진 찍는 것 모두 좋아했어요. 그 안에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게 곧 저의 기억이더라고요. 제가 엄마가 남긴 보석함을 쓰고 있는데, 거기에 엄마가 쓰던 향수 향이 은은하게 배어 있어요. 보석함을 열면 향이 나면서 예쁜 엄마 모습이 떠오르고, 늘 좋은 일이 이어졌던 그때의 느낌까지 살아나요. 단장하고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가거나 좋은 곳에 구경 갔었거든요. 보석함이 그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단초인 셈이죠.




물건 모으는 것, 글 쓰는 것, 사진 찍는 것 모두 좋아했어요. 그 안에 이야기가 있잖아요.”




표구는 물건에 어떤 의미를 더하나요? 물건만으로도 기억할 수 있잖아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더 크게 정성을 쏟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그 과정이 기억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고요. 물건을 어딘가에 툭 올려두는 것과 물건이 그 공간에 어울리게 어떤 정성을 들여서 두는 것은 결과적으로 다른 느낌을 준다고 생각해요. 어느 날 액자를 보더니 남편이 그러더군요. 방 안에 액자라는 공간이 생겼다고, 이 공간이 그 기억의 세계를 안고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고.










처음으로 표구한 건 무엇이었어요?

엄마의 진주 목걸이였어요. 엄마가 목걸이를 착용한 사진과 함께 간직했죠. 지금 보면 '다시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촌스럽긴 한데 애틋해요. 사실 표구를 배우는 과정이 정말 힘들었거든요. 최신 소프트웨어를 끼고 책상 앞에서만 살다가 허드렛일까지 도맡으며 하루 12시간을 서서 계속 물어가며 기술을 익혔어요. 액자를 보면 그 시간까지 떠올라 더 마음이 애틋해요.



꼭 지키고자 하는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겸손할 것. 결국 표구란 그 안에 든 물건을 돋보이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물건에 깃든 이야기가 잘 드러나도록 배경으로 물러나 겸손하게, 하지만 당당하게 제 역할을 하도록 만들자고 매번 다짐해요.








모리함은 대면 상담을 고수한다고요?

카카오톡이나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처럼 편리한 소통 수단이 많지만 저희는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요. 메일이나 전화로 소통할 때는 느낄 수 없는 눈빛, 제스처 등이 표구를 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도 생각하고요. 손님들도 공감해주신답니다. 표구를 의뢰하고 저희와 이야기 나누며 목재와 원단 등을 결정하고 마지막 픽업하는 과정까지 모두 가치 있다고 여겨주시니 감사하죠.








상담할 때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나요?

100% 맞춤 제작 방식이라 먼저 표구할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레이아웃을 합니다. 그다음 개인의 취향과 액자를 걸 공간의 분위기 등을 체크해 프레임부터 배접할 천이나 지류의 종류와 색 등 마감재를 결정해요.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면요?

표구를 처음 해보는데 이 액자를 어디에 걸면 좋겠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아요. 그럴 때 저는 편안하게 머무는 공간을 권해드려요. 잘 보이는 곳에 액자를 걸어두고 자연스레 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 물건을 어떻게 구했는지, 왜 간직하고 있는지, 나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런 사사로운 것들이 이야기를 풍요롭게 만들어주잖아요.








집에는 어떤 액자가 있나요?

하나 소개하면 남편의 애장템이죠. 둘이 여행 갔을 때 굉장히 힘들게 구한 레이싱카 포스터가 있어요. 남편은 그걸 보면 손에 넣기까지 험난했던 여정, 그 모델을 좋아하는 이유, 어릴 때의 추억, 덕후 생활의 힘에 관해서까지 줄줄 이야기가 이어져요. 집에 누가 놀러 올 때마다 들려주는 것 같아요.



표구에 안전한 보관이란 역할 못지않게 이야기를 끌어내는 역할도 있네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일도 살다 보면 자꾸 까먹게 되잖아요. 그래서 자주 보고 이야기해야 해요. 눈에 잘 띄는 곳에 액자로 걸어두면 그에 관한 기억이 자꾸 떠올라서 함께 기억을 나눌 수 있게 돼서 좋아요.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지난겨울에 깨진 찻잔을 들고 모리함에 찾아온 손님이 생각나요. 아내분이 찻잔에 뜨거운 물을 붓다가 깨뜨렸는데 너무 속상해해서 찻잔을 표구해 서프라이즈로 선물하고 싶다는 거였어요. 이제 두 분은 그 잔을 볼 때마다 속상함보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떠올릴 것 같아요. 표구가 새로운 이야기를 더한 셈이죠.



이 공간에서 가장 뿌듯한 순간이 있다면 언제일까요?

단연 액자를 픽업하러 오는 손님을 맞이할 때죠. 현관문 바로 앞에 하얀 벽 보이시죠? 손님이 픽업 올 시간에 그곳에 액자를 걸고 핀조명을 맞춰둬요. 모리함에 들어서자마자 완성된 액자를 볼 수 있도록. 손님들이 기뻐하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는 분도 계셨어요. 손님의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서 제가 많이 배우는 시간이랍니다.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전통 표구의 멋과 방식에 기술적이고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더한 요즘 표구를 더욱 잘하고 싶어요. 또 한국 전통 한지를 유네스코에 등재하기 위해 추진단을 꾸려 활동하고 있는데, 우리 것의 소중한 가치를 더 널리 알리고 싶어요.



좋은 집이란 무엇일까요?

이야기가 있는 집이라고 생각해요. 가족의 동선에 따라 배치한 가구, 자라나는 아이의 키를 표시해둔 벽지, 아버지가 좋아하는 수석을 모아둔 창고처럼 그 가족만의 이야기가 있는 공간, 그 추억이 내일을 살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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