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 보이는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한 달에 한 번, 클래식 한 곡을 일 년 동안 깊이 있게 듣는 ‘살롱 골드베르크’라는 독특한 음악감상회가 열린다. 음반에서 연주가 시작되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공간이 어느새 음악으로 가득 찬 음악감상실이 된다. 아파트먼트 프란츠는 오롯이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중한 공간이다.
프란츠를 시작하기 전에 바이올린 음악 교본을 직접 펴냈다고요.
성인을 대상으로 오랫동안 바이올린 레슨을 했어요. 한 분 한 분 물어보면 바이올린을 배우는 이유가 다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클래식이 중심인 기존의 교본 스타일에서 벗어나 배우는 분들의 니즈에 맞는 교본을 직접 만들어보고자 했죠. 처음 펴낸 교본이 <한 권으로 끝내는 취미 바이올린>인데, 바이올린 연주에서 꼭 알아야 할 테크닉을 멜로디가 좋은 팝과 가요를 연주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도록 구성했어요.
그것을 계기로 음악 전문 출판사 프란츠를 열게 됐군요.
책이라는 물성이 주는 특별한 느낌과 책을 이루는 디자인적 요소가 좋았어요. 그래서인지 조금 더 아름다운 책을 직접 내고 싶더라고요. 2년 정도 준비해 2017년에 첫 책을 출간했어요.
프란츠에서 출판한 책들은 음악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보여줘 더 특별한 것 같아요.
규모가 작은 출판사라 책을 많이 낼 수 없다 보니 기획과 원고 선정에 신경을 쓰는 편이에요. 그중에서도 역사가 깊은 클래식이라는 장르를 현재 시점으로 바라보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 예를 들어 슈베르트 평전은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이 썼지만, 현재 유럽에서 슈베르트에 관해 활발하게 연구하는 음악학자가 펴낸 평전을 골랐어요. 현대 연구자가 옛 음악을 바라보는 시선과 생각이 궁금했거든요. 또 현대음악 작곡가 필립 글래스의 자서전 <음악 없는 말>은 현존하는 작곡가가 직접 자기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고 자세하게 들려준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두고 출판한 책이에요.
책 출판 외에 굿즈를 제작해서 판매하는 이유는 뭔가요?
음악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매력적이고 궁금한 예술이죠. 그래서 저는 음악을 시각화하는 일에도 관심이 많아요. 지금은 예전에 비해 책을 많이, 깊게 읽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책보다는 연필이나 테이프처럼 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굿즈를 이용해 음악의 느낌을 즐기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그러다 책에도 관심을 가져준다면 감사한 일이고요. 실제로 요즘은 책보다 굿즈로 먼저 프란츠를 접하는 분들이 있어요. 책과 굿즈는 개인적인 시간을 위한 것이라면, 아파트먼트 프란츠는 함께 모여 음악을 더 깊이 있게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한 우물을 깊이 파보면 그다음 우물도 궁금해져요.”
약도를 보고 놀랐어요. 아파트먼트 프란츠가 빌딩이 아닌 아파트에 있어서요.
일부러 힌트를 주려고 이름에 ‘아파트먼트’를 붙였지만 처음 찾아오는 분들은 대부분 놀라더라고요. 사실 이곳은 제가 15년 전부터 살고 있는 집이에요. 대대적인 공사를 해서 주거 공간은 비밀의 벽 뒤에 숨겨두었어요. 찾아온 분들이 생활감을 느끼면 불편해할까 봐요.
자신의 집을 여러 사람에게 열린 공간으로 바꾸는 건 꽤 어려운 결정이었을 텐데요.
프란츠의 활동이 길을 가다 우연히 들어와서 참여하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리고 프란츠가 어떤 것을 하고 싶어 하고, 어떤 것을 추구하는지 보여줄 수 있는 공간으로 24시간, 365일 프란츠의 색이 묻어나는 이곳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겠다 싶어 다소 과감한 결정을 내렸죠.
프란츠의 책과 굿즈는 물론 악보대와 메트로놈 등 음악과 관련된 물건이 곳곳에 놓여 있어요. 아파트먼트 프란츠를 꾸밀 때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요?
‘프란츠의 취향에 맞는 공간’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지만 누구보다 제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고 프란츠의 모든 것이 만들어지는 공간이기 때문에 우선은 저와 이곳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에게 영감을 주는 공간이었으면 했어요. 그리고 방문객에게도 잠시 다른 세계로 들어간 듯한, 일상의 환기가 되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싶었지요. 그래서 불필요한 것은 두지 않으려고 해요.
아파트먼트 프란츠의 핵심인 ‘살롱 골드베르크’는 어떤 모임인가요?
신청한 10명 이내의 인원이 모여서 음악을 감상한 후에 서로 느낌을 공유하는 모임이에요. 특이한 점은 클래식한 곡을 정해서 일 년 내내 각기 다른 연주자의 버전으로 그 곡을 계속 듣는다는 것이에요. 처음 이 계획을 이야기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기간이 너무 길다고 말렸어요. 그런데 끝까지 고집했던 이유는 제 개인적으로 6번 정도 들어야 그나마 그 곡과 친밀해지고, 그 이상 들으면 귀가 점점 섬세해져 누구보다 그 곡을 잘 알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한 우물을 깊이 파보면 그다음 우물도 궁금해지니까요. 올해로 3년째를 맞이했는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참석한 분도 있어요.
평소 이 공간에서 음악을 듣나요?
네. 그래서 스피커도 신경 써서 준비했어요. 이전 합정동 사무실에서는 작은 스피커로 음악을 들었는데, 아파트먼트 프란츠에는 고음질의 스피커가 필요하다 싶어 뱅앤올룹슨의 베오랩 18을 들여놨죠. 이 공간에서 다른 분들과 함께 음악을 즐기는 시간을 꿈꿔왔기 때문에 고가의 제품이지만 구매하는 데 크게 망설이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주로 어떤 장르의 음악을 듣나요?
프란츠에서는 클래식을 주로 다루지만 개인적으로는 대중음악도 즐기는 편이에요. 김동률, 윤상, 이소라 음악을 많이 들었고 지금도 자주 들어요. 클래식은 시기마다 특정 작곡가나 작품에 집중해서 듣는 편인데 작년과 올해는 모차르트와 슈만의 곡을 들었어요. 모차르트 곡은 '피아노 협주곡 20번'이나 '피아노 협주곡 24번'과 같이 단조로 된 곡을 많이 듣고요. 제가 조금 우울하거나 가슴을 치는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클래식의 매력을 하나 꼽는다면요?
대중음악이 즉각적으로 가슴에 와닿는다면, 클래식은 그런 요소도 있는 동시에 뇌를 자극하는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훌륭한 클래식 작품 하나를 집중해서 듣는 건 좋은 책 한 권 읽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다양한 곳에서 음악을 듣죠. 집, 지하철, 거리. 어떤 사람은 음악감상실을 찾기도 하고요. 음악 감상에 최적인 공간은 어디일까요?
조용히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과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은 어디에서든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간편하게 찾아서 들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만큼 끄기 쉽고, 주로 배경음악 정도의 의미만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상황이 음악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보기는 어렵죠. 이와 달리 요즘 여기저기 생겨나는 좋은 음악 공간이나 아파트먼트 프란츠처럼 감상을 위한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음악을 집중해서 듣겠다고 마음을 다잡게 되잖아요. 그 자체로 이미 음악을 듣기 좋은 환경이 갖춰진 게 아닐까 싶어요.
프란츠의 SNS를 보니까 전보다 더 다양한 활동을 준비하고 있더라고요.
올해로 5년 차가 되었어요. 프란츠를 알아봐주는 분들이 생기고, 좋아해주는 분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더 열심히 활동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제 모여서 많은 것을 함께 할 시기도 되었기 때문에 7월부터 음악 모임, 공연 형식의 프로그램, 강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어요. 아파트라는 특성상 출입이 쉽지 않지만, 아파트먼트 프란츠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아늑한 공간에서 좋은 음악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찾아주셨으면 좋겠어요.
1883
호텔 그라피 네주
1223
하우스 리터러시
149
퓨처 리빙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