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내린 듯한 절벽, 일렁이는 파도, 가늘지만 억센 야생화, 흩날리는 갈대숲···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캘리포니아 대자연을 담은 사진들 가운데서도 카스 프라이즈의 작품은 단연 독보적이다. 런던, 뉴욕과 같은 대도시에서 커리어 우먼으로 바쁘게 살아왔던 그녀는 가정을 꾸리며 비로소 자신의 고요한 사진과 닮은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살아간다.
원색의 강렬한 파도가 아닌, 흑백으로 구현한 바다의 일렁임은 마치 활기찬 자연의 소리를 ‘음소거’로 환기한 듯하다. 거센 바람에 흩날리는 갈대 무리 또한 현실 풍경 속 ‘색’을 들어내자 마치 정지된 화면처럼 찰나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역동적인 자연의 단면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고요한 풍경. 흑백사진에 가까운 뉴트럴 계열로 뽑아낸 카스 프라이즈Cas Friese의 사진은 그렇듯 공간을 차분하고 고요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시리게 푸른 자연의 색조를 최대한 화려하고 생생한 컬러로 구현하는 아티스트들과는 다른 행보다. 미국 북동부 코네티컷주에서 갤러리 ‘카스 프라이즈’를 운영하는 그녀는 자신의 작품처럼 정제되고 고요한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한다. 비움과 여백을 지향하는 수묵화 같은 그녀의 삶을 들여다봤다.
미국에서 따뜻한 빛과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캘리포니아를 무대로 활동해오고 있는데요. 사진에 대해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 건 언제였나요?
1990년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사진의 아름다움을 처음 느꼈어요. 수업, 촬영 과제, 암실에서의 필름 인화법 등 전체적인 과정을 익히며 평범하게 사진의 세계에 들어섰죠.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했는지를 생각해보면 그 시절에 사진에 관한 기초 지식을 배울 수 있었던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대학을 중퇴하고 20대 중반에 패션 회사를 이끌며 일찍부터 본인의 직감을 따르는 창의적인 삶을 살아왔어요.
삶의 모든 길이 직선은 아닌 것 같아요. 지금은 사진가로 활동하지만 예술과 관련해 정도를 걸어온 건 아니었어요. 대학을 중퇴한 뒤 스물여섯 살에 런던으로 건너가 작은 패션 회사를 설립했죠. 강한 직업윤리를 가지고 창의적인 기업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매일같이 현장을 배우고 제 직감을 따르고자 노력했죠. 패션 분야에서 10년간 경력을 쌓는 동안 항상 예술을 곁에 두었어요. 전시나 개인 컬렉션을 찾아보는 건 물론이고 건축·디자인 투어를 하고 컬렉터와 깊은 대화도 나누고 세계 여행을 하며 수많은 경험과 관찰을 통해 예술을 알아갔죠.
“제 삶은 제 사진과 거의 닮아 있어요. 최대한 정제되고 심플하게요.”
취미로만 생각했던 사진을 직업으로 삼게 된 데에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2013년 임신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회사에서 창의적인 일을 접할 기회가 줄어들었어요. 그제야 인생의 중심축을 세우고 제 모든 감각을 대변할 수 있는 창조적인 결과물을 만들고 싶었어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겠다는 결심 같은 거였죠. 일련의 아이디어가 떠오르다 멈추고 실행하기를 반복하며 지금의 자리까지 온 것 같아요.
캘리포니아의 자연을 포착한 당신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고요하고 차분해지는 게 느껴져요.
그렇게 느낀다면 너무 감사한 일이에요. 제 작업은 우리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것, 그렇게 너무 익숙해서 간과하기 쉬운 풍경을 담고 있어요. 작품이 공간을 고요하게 채우고, 그것을 바라보는 이에게 사유와 휴식, 뭔가에 집중하는 시간을 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죠. 제 작품은 스케일이 큰 편인데 평균 75 x 55인치 크기로 제작합니다. 시선을 사로잡는 크기죠. 작품을 제작할 때는 자연의 단면이 발산하는 느낌과 에너지를 생각해요.
일상적인 풍경 속에서 어떤 것을 포착하고 싶나요?
자연은 가장 아름다운 오브제예요. 매일 새로운 촬영이 가능할 만큼 변화무쌍한 풍경을 선물하죠. 식물, 하늘, 모래, 바위, 물 같은 자연의 단면에 끌립니다. 미세하고 독특한 질감과 색조를 지닌 모든 것이 저를 사로잡아요.
캘리포니아의 백사장과 거친 파도를 흰색에 가까이 표현한 ‘White Water’ 등 정제된 사진 톤이 오늘날의 ‘모던 인테리어 하우스’와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팬데믹을 겪으며 집이 그 어떤 시대보다 중요한 공간이 되었어요. 집의 본질인 편안함을 구축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으로 고른 소품이나 그림으로 집을 꾸미곤 하죠. 제 사진 대부분이 채도가 낮은데, 거의 무채색에 가깝다 보니 여러 공간에 두루 어울리는 것 같아요.
당신의 일과는 어떠한가요? 하루 중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을 꼽는다면요?
매일매일 조금씩 달라요. 그런데 어떤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포착하거나, 특정 공간을 방문해 연출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대부분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저희 집에 딸린 갤러리 카스 프라이즈와 스튜디오 공간을 오가며 하루를 시작하죠. 새로운 오리지널 작품을 개발하고, 매주 한정판 에디션을 제작하는 데 시간을 거의 다 보내요. 이 섬세한 작업 과정에서 얻는 다양한 경험을 즐기는 편이에요. 잠시라도 지루할 틈이 없죠. 일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작업실 소음을 모두 차단하고, 최대한 일과 제가 향하고 있는 방향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그런 가운데 스튜디오 미팅 전에 즐기는 모닝커피, 딸과 함께 학교 버스 정류장까지 걷는 길이 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줍니다.
본인의 이름을 건 사진 갤러리 카스 프라이즈를 운영하고 있어요.
2018년에 제가 살던 집 2층을 개조해 문을 연 사진 전문 갤러리예요. 사진가로서 제 작업을 모아 정기적으로 전시를 열고 상시 작품을 판매하는 쇼룸 공간이죠. 10명의 여성 아티스트가 참여하는 온라인 전시회를 여는 등 팬데믹 시기에도 계속 운영해왔어요. 작가로서의 철학과 시각적 언어를 공유하는 큐레이션 공간이라 할 수 있죠. 필립 존슨 글라스 하우스 박물관과 그레이스 농장 재단이 자리한 코네티컷주 뉴가나안에 갤러리가 있어요.
‘디자인 위든 리치Design within Reach’ 같은 미드센추리 가구 편집숍에서 당신의 사진을 판매하고 있어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쇼룸에서 당신의 사진을 진열하고 판매한다는 건 당신의 작품이 타인의 삶과 공간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겠죠.
우연한 기회에 디자인 위든 리치 회사 간부를 제 전시회 오프닝에 초대하게 됐어요.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조직 내에서 ‘아트 이니셔티브Art Initiative’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제게 참여 의사를 물었죠. 저는 이 가구 브랜드의 새로운 카테고리의 첫 번째 아티스트가 되는 특권을 누렸어요. 제 원작 시리즈와 동일한 품질과 재료로 소량의 작품을 제작한 후 번호를 매겨 디자인 위든 리치에서도 판매하게 됐어요.
당신의 사진이 걸린 집을 상상해봤을 때 어떤 가구 스타일과 패턴이 조화를 이루나요?
제 삶은 제 사진과 거의 닮아 있어요. 저는 최대한 정제되고 심플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제 사진과 거의 같은 분위기가 투영되도록 공간을 정리해요. 인테리어에 관해서는 톤과 텍스처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굉장히 오래된 전통적인 건축양식으로 지은 집이지만, 미드센추리 모던 디자인을 워낙 좋아해서 심플한 가구와 제 사진을 배치해놓았습니다.
당신의 작품을 집에 걸어두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공통된 ‘삶의 취향’을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제 작품을 수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화로운 자연 풍경을 좋아해요. 특히 'Day as Night' 작업 시리즈를 수집하는 컬렉터가 많은데, 현대적이고 심플한 인테리어를 추구하는 사람이 대다수예요. 자신들의 견고한 취향을 즐기며 공간 디자인에 관해서도 독특한 관점을 지향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