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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동 호모 콜렉투스의 집

아트 토이 컬렉터 손상우

Text | Solhee Yoon
Photos | Hoon Shin
Film | Jaeyong Park

<드래곤볼> 만화책을 끼고 손오공 피겨를 가지고 놀던 소년 손상우는 이제 국내 아트 토이 계보를 기록하는 아트 토이 컬렉터 ‘부다덕’으로 불린다. 그의 집은 여전히 그가 좋아하는 것투성이다. “저희 집에는 과거형이 없어요. 모두 좋아하는 것들이죠. 다 현재진행형입니다.” 거실 소파와 책장, 서재 책상과 수납장에 자리 잡은 모든 것을 이르는 말이다.








부다덕이란 활동명을 쓰는데 무슨 뜻이죠?

고등학생 때 친구가 랩 네임을 부다덕이라 지어줬어요. 마음에 꼭 들더라고요. 이 이름을 60대까지 쓰고 싶은데 얼마 전에 한자로 의미를 더했어요. 본디 뜻하여 '온 세상의 덕을 가진 오리'.(웃음) 결혼하면서 '있을 유()' 자를 앞에 더해 지금은 유부다덕입니다. 결혼식장에서 직접 제작한 유부다덕 스티커를 나눠주기도 했어요.








어떤 일을 하나요? 아트 토이 컬렉터란 것이 생소해서요.

먼저 아트 토이를 소개하자면, 쉽게 말해 아티스트가 만든 토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여기서 말하는 토이는 조각에서 파생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브컬처로만 여겨졌는데 요즘 미술 시장의 트렌드나 소비자의 인식 변화로 뜨겁게 떠오르고 있죠. 이 전환기에 저는 전문 플랫폼에서 아트 토이를 판매하고 콘텐츠를 기획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트 토이 관련 경매와 강의를 열거나 기획하고 있습니다. 컬렉터를 위한 커뮤니티 플랫폼 바이앤빌리브 콘텐츠 디렉터도 맡고 있고요. , 물론 컬렉터이기도 하죠.








먼저 이 동네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네요. 서울 구기동 말이에요.

얼마 전에 이사 왔어요. 어느덧 딸이 초등학생이 되니,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기에는 이 동네가 좋겠다 싶었어요. 동네가 요란스럽지 않고, 또 오는 길에 보셨겠지만 골목에서 숲과 산이 보여요. 산책하기 좋죠. 아내와 연애할 때부터 평창동, 부암동 이 부근으로 자주 놀러 왔어요. 부암동의 계열사란 치킨집도 좋아하지만 환기미술관을 비롯해 이 동네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갤러리와 미술관을 좋아하거든요.




컬렉션을 사물로 쓰는 일기라고 생각해요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좋은 동네라니 뭉클한걸요.

고향은 부산이고, 상경하고는 쭉 이태원, 해방촌 부근에서 살았어요.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겠다고 다짐했으니 바삐 돌아가는 스트리트 컬처, 아트 신 현장에서 무엇이든 많이 보고 빨리 소화하는 게 1순위였어요. 지금은 그 시기를 지나왔죠. 더 성장하려면 오히려 저에게 시간을 많이 써야 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야 해요. 예전에 아내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보다가 우리 인생도 페이즈phase(단계)를 나눠보자고 한 적이 있어요. 그렇게 따져봤을 때 지금은 외적 성장기라고 할 1~3단계를 지나 내적 성숙기인 4단계에 들어선 것 같더라고요. 이 말을 들은 친구도 고개를 끄덕였어요. “과거의 부다덕은 이태원이 어울렸는데 지금의 부다덕은 구기동이 어울린다. 1~3단계 때와는 생각하는 방식이나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니 사는 동네를 바꾸는 게 당연하다.”








집 안이 꼭 보물 상자 같겠어요.

제 것과 아내 것, 딸아이 것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어요. 거실 사이드 테이블에 있는 <토이 스토리>의 미스터 포테이토 헤드 보이세요? 앞쪽 토이는 딸아이 것, 뒤쪽 토이는 토담이란 작가의 작품인데 아내 것이에요. 저와 아내 둘 다 <토이 스토리>를 정말 좋아해요. 저희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것을 딸이 향유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저는 클래식이라고 생각해요. 책장 한쪽의 레고로 만든 곰돌이 푸 월드는 아내 것이에요. 아내가 이 시리즈를 참 좋아하는데, 푸를 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진대요. 그 바로 옆에 있는 건 제 것인데 다니엘 아샴 작가의 이로디드 드로리언Eroded DeLorean’이란 토이예요. <백 투더 퓨처>에 타임머신으로 등장한 자동차 드로리언을 작가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작품이죠. 이것 하나로 저는 '백 투더 퓨처, 다니엘 아샴, 드로리언'이란 세 가지 키워드를 가졌죠.



컬렉션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호모 콜렉투스라고,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수집하는 동물이라는 말도 있거든요. 사실 컬렉션이라고 하면 거창해 보이는데 실은 그렇지 않아요. 어릴 때 한 번쯤 해본 따조나 포켓몬스터 띠부띠부씰 수집도 의미 있는 컬렉션이죠. 저는 컬렉션을 사물로 쓰는 일기라고 생각해요. 그것들이 제가 초심을 기억할 수 있게, 목표를 되새길 수 있게 도와줘요. 사실 저는 굉장히 나약한 사람이라 쉽게 까먹고 흔들리거든요.(웃음) 그래서 컬렉팅한 것에 도움을 받죠.










본인의 방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초심을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저를 자극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일도 잘돼요. 내가 생각했던 대로 살고 있구나, 하는 뿌듯함도 들고. 책상에는 <아이언맨> 주인공이 운영하는 기업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펜과 펜 홀더가 있어요. 마치 그 회사에 다니는 느낌으로요. 화분은 제 인생에서 첫 번째 분재예요. 결혼 5주년을 기념하는 목혼식 때 아내의 선물로 데려온 단풍나무인데 이름도 ‘오반’이라고 지었어요. 이전 집에선 영 기운을 못 차리더니 이 집에 온 뒤로 많이 좋아졌어요. 조명 밑의 피겨는 절 닮았다고 딸아이와 아내 그리고 친구가 사준 것들이고요. 또 오늘의 부다덕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드래곤볼>7성구 쿠션이 허리를 받쳐줍니다. 제가 윤형근 작가를 굉장히 좋아해요. 그래서 그의 전시 도록과 작품도 눈에 잘 띄는 곳에 두었어요.








모든 것이 이야깃거리네요. 희귀하거나 독특한 에피소드가 있는 것도 있나요?

이거 한번 보실래요? 20211211일 자 <데일리 뷰글> 타블로이드판 신문이에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개봉 기념 이벤트로 열린 뉴욕 팝업 행사에서 구했어요. <데일리 뷰글>은 마블 코믹스에 등장하는 신문사 이름으로 주인공 피터 파커가 스파이더맨이라고 폭로한 그곳이에요. 진짜 깜짝 이벤트였거든요. 팝업을 알리는 사진 몇 장이 불시에 SNS에 떴고, 사진 속 H&M 간판을 단서로 주소를 찾기 시작했어요. 마침 뉴욕 출장 중이었는데 게시 글을 먼저 본 아내의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택시를 탄 뒤 게시 글을 올린 이들에게 DM을 마구 뿌렸어요. 제발 주소를 알려달라고.(웃음) 이 팝업 행사 장소에 도착한 순간, 제가 서 있는 뉴욕은 그냥 뉴욕이 아니었어요. 스파이더맨이 살고 있는 뉴욕인 거죠. 기사 하나하나도 끝내줘요. '미치광이 스파이더의 파괴적 거미줄', '(거미줄로 인해) 끈적해진 거리에 갇힌 환경미화원' . 이 신문을 볼 때면 그때의 긴장감, 놀라움, 환희 등이 떠올라요.








책장에 아트 토이를 비롯해 스트리트 컬처, 힙합, 현대미술 등 다양한 주제의 책이 꽂혀 있어요.

지금 제가 이렇게 좋아하는 것들에 둘러싸여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20대의 부다덕이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도 관심사를 넓히고 깊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40, 50대의 부다덕을 위해. 지식을 쌓는다고 바로 발현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배우고 내 언어로 바꿔보고 내 생각을 더해보는 숙성의 시간이 2~3년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하루라도 빨리 열심히 쌓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주제가 잡다해 보이지만 어느 순간 테트리스처럼 ‘아!’ 하고 맞춰지는 때가 올 거예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는 모습이 멋져요.

2~3년간 일기를 쓰고 마인드맵을 꾸준히 그린 적이 있어요.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뭐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지? 이런 질문은 단번에 답을 찾을 수 없더라고요. 사실 번아웃을 크게 겪었어요.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겠다며 달렸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그다음 스테이지가 무엇인지 모르겠더라고요. 그 시기를 보내고 정한 목표가 이거였어요. 아트 토이 신을 아카이브하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자.



선배 컬렉터로서 딸에게 조언도 해주나요?

더 어릴 때는 눈에 보이면 무조건 사고 싶어 했는데 이제 기회비용이란 걸 알아요. 요즘은 사고 싶은 것, 언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을 스스로 정해요. 굳이 제가 거드는 말이 있다면 전에 비슷한 걸 샀는데 금방 싫증 내지 않았나?”라든가 평소에 정말 가지고 싶어 했다면 이미 알고 있었을 텐데, 지금 그런 마음은 충동구매 아니야?” 정도랄까요. , 그리고 등가교환의 법칙도 얘기해줬어요. 지금 사면 다음은 없다.








왜 집이었을까요? 오피스나 제2의 작업실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요.

집은 인간이 살기 위해 갖춰야 할 첫 번째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상경한 후로 2~4년마다 이사를 다녀서 집이란 이미지가 상징하는 안정감을 크게 느끼는 것 같아요. 저에게 집이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장 좋아하는 것들로 둘러싸인 장소예요.



요즘에는 무엇에 관심 나요?

너무 많아요. 그래도 하나를 꼽으라면 고미술이요. 고미술 하나만 봐도 결국 정치, 역사, 문화를 다 공부해야 되더라고요. 그래서 근현대 공부 하고 있어요. 언젠가는 중세 공부도 시작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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