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IV

PEOPLE|라이프스타일, 로컬, 커뮤니티

집 빵 파는 노들역 앞 사랑방

히뽀1997 대표 신은미

Text | Solhee Yoon
Photos | Hoon Shin
Film | Jaeyong Park

노들역 3번 출구에서 조금 걸으면 히뽀1997 입구가 보인다. 의외의 자리다. 동네 사람만 지나다닐 듯이 인적이 드문 곳이고 베이커리 카페의 필수 요소인 탁 트인 전망이나 널찍한 좌석은 찾아보기 힘든 이유를 묻자 신은미 대표는 손사래를 친다. “아휴, 나는 잘나가는 카페를 하려는 게 아니에요. 그저 동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골목에서 ‘집 빵’을 파는 게 다지.”








가게 이름이 귀여워요. ‘빵집이나 베이커리’, 그 흔한 카페같은 단어도 안 붙였네요.

전업주부였다가 53살에 히뽀1997 문을 열었어요. 장사는 처음이었고, 그러니까 대단한 목표가 없었지요. 카페를 하겠다, 베이커리를 하겠다, 그런 생각보다는 작게 작업실 정도로 구색만 갖춰 집에서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해줬던 것처럼 만들면 동네 아줌마들이 둘러앉아 단팥빵 하나쯤은 먹고 가겠지, 딱 그 정도 생각이었어요. ‘히뽀hippo(하마)’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동물이고 ‘1997’은 첫아이가 태어난 해예요. 그때부터 제빵을 시작한 터라.








제빵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나이 서른에 전업주부로 첫아이를 낳고 보니까 제 시간이 없었어요. 앞으로 한동안은 육아에 매달려야 할 텐데 벌써부터 지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어요. 누가 뭐라 해도 오직 나의 일이 있어야 한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을 만들어야겠다, 그러다 찾은 게 제빵이었어요. 집에서 빵을 굽겠다고 하니까 남편이 통 크게 당시 100만 원짜리 오븐을 선물해주더라고요. 제가 얼마나 좋아했던지 친정 엄마가 너는 집 산 것보다 오븐 산 게 더 좋구나라며 고개를 절레절레하셨죠. 아이를 재우고 부엌에서 레시피 하나하나 따라 하는 게 제 육아 스트레스 해소법이었어요. 집에서 스스로 성취감을 얻는 방식으로 너무 잘 맞았죠. 그래서 아이는 밤 9시면 꼭 재웠어요. 제 육아 철칙!(웃음) 나중에는 두 아이 등교할 때, 남편 출근할 때 간식거리로 싸줄 수 있어 그것 또한 좋더라고요.




나이가 들수록 애쓰지 않으면 운신의 폭이 좁아져요.”




르 꼬르동 블루에 입학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첫아이가 고3 되던 해에 안식년처럼 저에게 양육 완수를 기념해 선물을 주고 싶었어요. 남편은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 했고 저는 두 가지 옵션을 놓고 고민했죠. 명품 백을 살까, 제빵을 제대로 배워볼까.(웃음) 고심 끝에 결국 르 꼬르동 블루 숙명 아카데미 제빵 과정에 등록했어요. 돌아보면 배움의 욕구가 있었던 것 같아요. 큰 투자였죠.










수업은 어땠나요?

수업에 들어가 보니까 우리 반에서 제가 가장 나이가 많았어요. 제가 셰프 선생님보다 딱 한 살 적더라고요. 뭐 별수 있나요. 어린 친구들이랑 부대끼면서 더 열심히 배웠어요. 잠시 앉을 새도 없이 오전부터 오후까지 내내 선 채로 재료 살피고 반죽하고 조리대와 오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고된 일정인데도 재미있었어요. 모르던 걸 배우니까 얼마나 신났겠어요.








가게를 해야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50살이 되면서 지금과는 다르게 살고 싶은데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이때 변화를 주지 않으면 늘 먹던 것을 먹고, 가던 곳을 가고, 보던 사람들을 만나며 늙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이가 들수록 애쓰지 않으면 운신의 폭이 좁아져요. 저는 다른 길을 가보고 싶었고 그게 히뽀1997의 시작이었어요.








노들역 3번 출구와 가깝지만 인적 드문 골목에 자리를 잡았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제게 상권보다 중요한 게 바로 집세권이었어요. 아무래도 살림을 하니까 가게 문 닫고 집에 가서 저녁밥 지어 먹을 시간이 되느냐가 중요했어요. 지금 딱 가게 문 닫고 집에 도착하는 데 도보로 5분 정도 걸려요. 가는 길에 마트도 있으니 금상첨화죠.



이 동네에 산 지는 얼마나 됐나요?

23년째예요. 아이들 초 · ·고등학교를 이 동네에서 다 보냈으니까 오래된 주민이죠. 다시 말해 손님 모두 이웃인데, 사실 처음 인사하는 사람도 많아요. 제가 동네 여기저기를 쏘다니는 사람은 아니라 그런 면에서는 어리숙한데 가게를 하니까 자연스레 인사를 나누고 말문을 트게 되더라고요. 애들 학부모 모임에서 만난 엄마들을 오랜만에 만나기도 하고. 그럴 때면 가게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과 교류하는 장이 되는 셈이네요.

종종 골목 사랑방 같다는 생각을 해요. 이렇다 할 유동 인구는 없지만 서로 안부를 묻는 이웃들이 다녀가니까요. 특히 우리 단지 사람들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어요. 23년을 살았는데도 처음 보는 사람이 있죠. 요즘은 다들 출퇴근 시간이 다르니까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저는 히뽀1997을 통해 친구가 많이 생겼어요. 유아차를 타고 왔던 아이가 이제 유치원 간다고 엄마 손잡고 걸어 들어올 때,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하던 친구가 취업 준비를 시작한다고 할 때, 그들의 소식을 듣고 대화를 나누죠. 그러니까 여기서 빵을 판다기보다는 서로의 일상을 공유한다는 의미가 더 커요. 그게 지금 제가 살아가는 재미예요.








동네 장사의 매력이네요.

물론 장사란 게 만만치 않아요. 저는 겁이 많은 스타일이라 이 자리를 계약하고 3개월간 밤잠을 설쳤다니까요. 괜히 한 거 아닌가, 돈만 쓰면 어쩌지, 걱정을 수없이 했죠. 또 시작하고 보니까 상상한 것만큼 아름다운 일도 아니었어요. 오후 3~4시에 빵을 다 팔고 집에 들어가 쉬다가 저녁을 맞이하는 삶을 기대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죠. ‘이때는 이만큼 와야 한다는 예측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빵 맛이 변했나, 뭐가 잘못됐나 혼자 또 고민하죠. 그렇지만 거기에 깊게 빠지지는 않아요. 대신 내가 먹고 싶은 빵과 쿠키를 굽고,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어제 인스타그램에서 본 예쁜 요리를 따라 하면서 기분 좋게 시간을 보내요. 그러면 손님이 올 때 더 반갑게 인사할 수 있죠. 기분이 좋으니까 빵 하나 더 건네주고 냉장고에 있는 과일 하나 끼워주고, 그렇게 또 안부를 묻고. 제가 아는 사랑의 종류가 넓어졌어요.










빵 만드는 원칙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집 빵을 만든다고 소개해요. 최선의, 최고의 재료만 고집한다고는 할 수 없으나 정직한 재료를 쓰고 몸에 나쁜 것을 넣지 않아요. 저의 제빵 역사가 우리 집 부엌에서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굽는 것에서 시작됐잖아요. 그때 마음이랑 똑같아요. 우리 가족, 내 이웃이 먹는 거니까요.



가게에서 사용하는 빈티지 식기, 빈티지 가구가 예뻐요.

아이를 키우며 제빵을 하면서 빈티지 식기나 빈티지 수납 가구도 하나씩 샀어요. 모으고 보니까 이렇게 제 작업장의 인테리어가 되었네요. 젊은 사람들이 와서 “너무 예뻐요”, “어디서 구했어요?” 하면 그만한 즐거움이 또 없답니다. 관심사를 하나 가지고 살찌우며 사는 건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요령인 것 같아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60살 즈음이면 남편은 정년퇴직하고 자식들은 사회생활에 바쁘겠죠. 그때는 남편과 교외로 나가서 가드닝까지 하는 브런치 카페를 운영하고 싶어요. 제가 좋아하는 빈티지 그릇, 가구를 더 펼쳐놓고요. 60살부터 70살까지 그렇게 사는 게 목표예요. 김태리 배우 주연의 <리틀 포레스트> 같은 풍경이요. 영화에서는 아리따운 20대가 주인공이지만 저의 극에서는 머리 새하얀 아줌마인 제가 예쁜 앞치마 두르고 수프를 끓이고 프렌치토스트를 굽고 있겠죠.



하고 싶은 일을 향해 계속 움직이는 모습이 멋져요.

제 것을 챙기고야 마는 성격이라 그런데, 저는 그게 중요하다고 믿어요. 자기 삶은 자기가 사는 게 가장 좋죠. 저는 수시로 남편과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요. “여보, 나는 60살에는 교외에서 브런치 카페를 하고 싶어.” “아들딸아, 엄마가 빈티지 그릇을 모으는 건 나중에 브런치 카페를 하고 싶어서야.” 그러면 남편도 애들도 신은미는 그런 꿈을 가지고 있지생각해요. 큰 꿈이 작게 이뤄질지라도 상관없어요. 어떤 계획을 세워서 작게라도 이뤘다, 살아보니 그게 제일 남는 것이더라고요.




RELATED POSTS

PREVIOUS

나와 오브제와의 관계, 그 친밀감이 편안한 곳
라이팅 디자이너 마이클 아나스타시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