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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다양성, 도시, 큐레이션

삶을 위로하는 유물의 집

큐레이터 정명희

Text | Young Eun Heo
Photos | Hoon Shin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생기발랄한 어린이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그리고 역사적인 유물을 보러 온 한국인부터 외국 관광객까지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곳에서 유물에 숨겨진 이야기를 전시로 전달하는 큐레이터 정명희는 매일 유물과 관람객을 맞이한다. 그리고 박물관이라는 공간이 삶을 위로하고 기억에 오래 남을 경험을 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는 어떤 일을 하나요?

큐레이터는 어떤 기관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역할과 업무가 달라. 국립박물관 큐레이터는 박물관 소장품 보존과 관리를 담당하면서 조사·연구를 하고 전시 기획도 하죠. 소장품을 타 기관에 빌려주거나 연구자가 유물을 열람할 수 있게 도와주기고요. 가장 다른 점은 국가를 대표하는 박물관으로서 역할과 의무가 있다는 거예요. 국립중앙박물관은 전국의 13개 소속 박물관이 잘 운영되도록 유물, 인력, 예산, 보존 처리 업무를 지원해요. 또 해외 박물관에서 열리는 한국 전시를 기획하, 이 외에도 다양한 행정 업무를 합니다.








원래 사립 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했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가 되었나요?

국립중앙박물관은 국내에서 제일 큰 박물관이니까 박물관 업무를 더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또 이곳에는 제가 좋아하고 연구하고 싶은 유물들이 있으니까 연구도 계속할 수 있고요. 결혼과 출산 후에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어요. 당시에는 전반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거든요.








박물관 전시는 상설 전시와 기획 전시로 나는데 기획이나 준비 과정에서 두 전시가 아주 다른가요?

상설 전시는 관람객의 연령대가 넓고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큐레이터가 가장 공을 들. 상설 전시장은 지속해서 유물을 교체하는데, 유물 상태에 따라 전시 기간 정해요. 토기와 도자기는 제약이 없지만, 빛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안 되는 서예, 회화, 불교회화 같은 그림이나 나전칠기처럼 온습도에 민감한 유물은 1년에 전시할 수 있는 기간이 제한되어 있어요. 문화의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해 해외 박물관 유물을 대여해 전시하기도 하고, 새로운 연구와 발굴 성과를 전달하기 위해 전시 구성을 바꿀 때도 있어요. 박물관의 전시품 항상 똑같생각하기 쉽지만 끊임없이 변합니다.




좋은 유물을 는 건 더 큰 세계로 나가게 해주는 힘이 돼요




워낙 고려해야 할 점이 많다 보니 전시 주제를 잡고 기획하는 데 어려움이 많겠어요.

주제 선정보다는 그 주제를 어떻게 풀어낼 것이냐가 더 어려워요. 관람객이 전시실에서 머무는 동안 무엇을 보게 만들고 어떤 경험을 하게 할 것인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죠. 이는 화려하고 유명한 유물을 전시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거든요. 전시에 담긴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지, 또 하이라이트는 어디에 숨겨놓을지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아요.








그렇게 준비한 전시가 열리면 뿌듯할 것 같아요.

큐레이터는 전시관에 유물보다 관람객을 더 유심히 봐요. 큐레이터가 계획한 동선을 그대로 따르는 관람객도 좋지만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의외의 관람을 하는 관람객을 더 좋아해요. 관람평을 읽으면서 그들처럼 숨겨진 위트를 찾아내는 눈을 잃지 말자는 다짐도 하고요.










박물관에 오면 계획된 동선 따라 빠짐없이 다 봐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관람객도 있죠.

작품의 명보다는 개인적 경험이 전시 감상에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대부분 유물을 볼 때 그 작품이 언제, 누가 제작했는지를 중심으로 보잖아요. 학교 시험에서도 작품명과 제작 연도를 물어보고요. 물론 유물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지만, 직접 보고 교감한 경험은 오랫동안 느낌과 기억으로 남아요. 뭔가를 배우거나 알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내려놓고 자기 시선으로 유물의 새로운 부분을 찾 경험을 했으면 좋겠어요.



때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물보다 소박유물에 꽂힐 때가 있죠.

많은 사람이 숙제하는 것처럼 역사·문화적으로 의의가 유물만 찾아서 봐요.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 유명하고 화려한 유물 앞에 서면 주눅이 들거든요. 그렇지만 이런 태도가 잘못된 건 아니에요. 왜 유명하고 사랑받는지 직접 확인해보려는 자세가 중요하. 만약 길을 잘못 든 전시실에서 우연히 본 유물에 마음 끌렸다면 그 역시 중요한 감상이고요. 특별한 의미가 없어 보이더라도 어느 순간 자기 눈에 띄면 그 유물을 자세히 보게 돼요. 이렇게 전시실을 천천히 둘러보다 보면 우리가 못 찾고 있던 것들이 다가오는 순간이 있어요.










나와 맞는 유물을 찾는 특별한 방법이 있을까요?

전시실을 이곳저곳 다니면서 취향에 맞는 유물을 찾아보세요.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면 귀한 재료 화려하게 만든 금속공예를 좋아하는지, 혹은 먹의 담담함이 살아 있는 서화를 좋아하는지,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아무리 유명한 유물이라고 해도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그냥 지나가도 돼요. 자기 마음을 존중하다 보면 저절로 호기심이 생기는 유물을 만나게 돼. 그게 바로 자신의 취향이에요.



박물관이 어떤 공간이 되기를 바라나요?

일상의 속도 빠르게 달리다가 지쳤을 때, 또는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편하게 찾아오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박물관에는 유물만 있는 게 아니에. 계절마다 정원 풍경이 달라지고, 때때로 공연과 강연 등 연계 프로그램도 열리죠. 이처럼 각기 다른 시간에 와서 추억을 하나둘 쌓았다면 박물관이라는 공간을 충분히 즐겼다고 생각해요. 야간 개장을 하는 수요일과 토요일이면 전보다 직장인 퇴근하고 많이 와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올 정도라면 진짜 좋아하는 마음으로 찾아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관람객을 볼 때 기분이 좋아요.










관람객과 달리 매일 박물관에 출근하는 사람으로서 제일 좋아하는 공간이 있나요?

1'역사의 길'을 제일 좋아해요. 일자로 쭉 뻗은 대리석 길에 빛이 화사하게 들어오면 따뜻하거든요. 비가 오는 날에는 목칠 공예실에 가요. 목재로 만든 작은 소반과 문갑 전시하는 곳인데 신기하게 나무 냄새가 나요. 백자실 같은 경우, 조용히 있으면 재현해둔 장인의 공방에서 들리는 나무 타는 소리, 물레 돌리는 소리 .



박물관의 유물은 우리보다 오래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 오래 살아갈 존재잖아요. 오랜 시간을 품은 유물을 보고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연구자로서 큐레이터는 기록 이상의 상상을 하거나 개인적인 감상을 는 건 제한되어 있어요. 그래도 가끔 유물이 어떻게 사용되었고, 그 물건의 소유주에게 어떤 가치가 있었던 물건다 보면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는 순간이 있어요. 그때 ‘삶의 고난과 아픔, 나이가 들고 헤어지는 일은 어느 시간에서도 일어 일이구나. 그런 와중에 조상들은 삶을 살아내고 주어진 과제를 다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유물을 본다는 건 나에게 닥친 상황을 좀 더 넓은 관점으로 볼 수 있게 도와주고 더 큰 세계로 나가게 해주는 힘이 돼요.








오랜 시간을 견뎌온 유물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위로받을 때도 있어요.

폐사지로 답사를 간 적이 있었어요. 과거 모습은 다 사라지고 감나무 한 그루와 탑만 남아 있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그곳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과거부터 현재까지 다 간직된 거잖아요. 박물관의 유물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유물은 취업, 진로에 대한 고민이나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을 잊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인 박물관에서 유물의 작은 부분까지 몰입해서 보다 보면 고민이나 힘들었던 순간을 잊게 돼요.



대화를 나누면서 큐레이터란 유물에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 위로를 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큐레이터로서 목표가 있다면요?

큐레이터라는 업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타성에 빠지지 않고 계속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고 어떤 걸 하고 싶은지에 대해 꾸준히 고민하면서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놓치지 않으려고 해요. 변하는 세상에 귀 기울이고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자세도 잊지 않고요. 박물관은 불특정 다수가 찾아오는 곳이기에 관람객의 요구가 다양해요. 사회가 바뀌고 사람들 취향이 달라지는데 큐레이터가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으면 관람객을 만족시키는 전시를 기획할 수 없거든요. 앞으로 박물관에서 일하면서 배운 내용을 매개체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알려주는 역할을 이어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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