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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을 느티나무와 함께 자란 도예가의 집

도예가 신상호

Text | Solhee Yoon
Photos | Hoon Shin
Film | Jaeyong Park

도예계의 이단아, 지치지 않는 전사. 신상호 도예가를 수식하는 말이다. 그가 사는 집도 통념과 거리가 멀다. 1976년 양주 산골짜기에 터를 잡은 뒤로 아내와 손을 모아 건물을 짓고 아프리카, 유럽, 하물며 국내 고물상까지 돌며 수집한 물건과 그로부터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들로 채웠다. 그리고 1976년에 심은 느티나무 묘목이 아름드리나무가 된 집을 이제 양주시에 기증해 모두의 집으로 만들고자 한다.








1976 이곳에 처음 오셨을 때는 변변한 도로 하나 없었을 것 같아요.

그때는 비포장도 아니었죠. 개천 옆에 둑 같은 길만 있었지, 집다운 집도 없었어요. 시멘트 벽돌 벽에 하늘이 다 보이는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축사가 있어 근처에 텐트를 치고 우물에서 물을 길어 먹고 그리 살았지요. 아내가 참 고생했어요. 그래도 이사 가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그때부터 내가 살던 이곳이 그대로 존재하면 좋겠다고 바랐어요. 옛날에는 무슨 일을 해도 빨리빨리’, ‘더 많이’, 이런 식으로 사고했는데 이제는 될 수 있으면 천천히 생각하고 또 생각해요. 이게 시행착오를 줄이는 역할도 해요.








집이 캠퍼스 같아요. 집 옆에 갤러리, 그 옆에 작업실, 또 그 옆에 취미실이 나란히 있네요. 이 건물은 어떤 곳이에요?

1986년에 급히 지어 올렸는데 여태 작업실로 잘 쓰고 있어요. 1988년 서울올림픽 기간에 문화 행사를 진행하는 장소로 쓰려고 옛 미군 부대 막사를 활용해 부랴부랴 만든 거예요. “이토록 잘 갖춰진 대규모 작업장에서 현대 도예를 하는 사람이 있었구나하며 다들 놀랐죠. 그 만남이 발판이 되어 이천 세계 도자기 엑스포 조직이나 김해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설립에 탄력을 받을 수 있었고요. 나는 집에 있을 때면 아침이고 저녁이고 새벽이고 시도 때도 없이 작업실에 와요. 가만히 생각하고 들여다보고 끄적이고 또 만들고 그런 시간이 참 재미있어요.








요즘에는 어떤 작업을 하나요?

2017년부터 나무 시리즈작업을 하고 있어요. 작업실 바로 앞에 있는 느티나무 봤어요? 그 나무를 그리는 거예요. 내가 살다 간 곳에 큰 느티나무 한 그루쯤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처음 이곳에 온 해에 묘목을 심었어요. 주변 사람들은 쓸데없는 일 한다고 핀잔을 줬지요. 그러면 나는 이 나무 아래에서 환갑잔치할 거다!”라고 호언장담을 하고요.(웃음) 한참을 잊고 살았는데 어느 날 나무가 보이더라고요. 70살이 넘은 때였죠. 혼잣말로 나무에게 말했어요. “, 네가 이렇게 컸구나. 내 모든 시도와 실패와 눈물과 웃음을 네가 다 묵묵히 보았겠구나. 그래, 그러면 내 남은 인생은 너만 그리다가 죽겠다.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내가 가진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늘 상상하죠.”




작업 자체가 계속 작품과 대화하는 일이겠어요.

학생을 가르칠 때 늘 했던 말이선생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네 작업 속에 선생이 있다였어요. 네가 꾸준히 네 작업을 하다 보면 그 작업이 너에게 길을 가르쳐줄 것이라는 말이죠. 나는 지금도 왜 내가 이걸 여태 몰랐지? 바보 아니야?’ 이런 생각을 해요. 지금도 깨닫는다는 얘기죠.








도예가님 얼굴에 천진난만함이 있어요.

올해 일흔여섯이에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게 아닐까 해요.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자꾸 뭐를 수집해요. , 음반, 사진, 시계, 피자 판, 군용품, 자동차 바퀴 등등 분야도 가리질 않아요. 스스로 병에 걸렸다고 말하는데, 아내에게 나 약 먹으러 가야 한다고 하면 그건 뭐 사러 가야 하는데 돈 좀 달라는 소리예요.(웃음) 그러니까 나는 사람이란 직업 외에 취미 생활이 있어야 한다는 철칙을 갖고 있어요. 평생을 그리 살다 보니까 지금은 이게 내 건강 비결이라고 믿어요. 늘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기대가 되고 내가 가진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상상하죠. 그 고민이 또 행복이고요.










수집이 건강 비결이었군요!

그렇지요. 또 내가 작업을 하는 데 영감이 돼요. 작품이 나아가는 힘을 주죠. 특히 나는 새것도 좋지만 낡고 누군가 썼던 것에 흥미가 있어요. 얼마 전에 파리에 다녀왔는데 새삼 중고 의류 상점이 참 많이 생겼단 생각이 들었어요. 중고라고 해서 가격이 싼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그 앞에 모여 눈을 크게 뜨죠. 과거에 탄생한 또는 유행한 디자인을 보려고, 지금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려고, 미래를 상상하며 무언가를 만들어보려고요. 이처럼 나도 고대의 것, 전통의 것에 관심이 아주 많아요.



과거의 것이 창작의 씨앗이 되는 거네요.

나는 짧게는 20, 길게는 100년을 앞서나가는 게 미술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요즘 말로 새로운 것’, ‘새로운 곳을 향해서 계속 나아가는 것이라고 봐요. 그러니 내 관심사는 이렇게 그렸다, 저렇게 그렸다, 이런 방법이 아니라 미술이 견인해오는 변화예요. 과거의 것은 그 변화를 자라게 할 영양분이 풍부한 씨앗이죠.








관장, 교수, 작가 등 여러 직함으로 바쁘게 사는 동안 삶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60살까지는 열심히 사회생활을 했고 이후로는 혼자 노는 방법을 터득하고 내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했어요. 나이가 드니 친구들을 만나 하는 이야기가 똑같아요. 정치가 어떻고 주식이 어떻고 부동산이 어떻고, 이런 이야기는 아무리 해도 의미가 없겠다 싶어서 친구 관계까지 싹 정리해버렸어요. 친구들이 상호야, 밥 먹자그러면 우리 집에도 밥 있어. 네 밥 네가 먹고 내 밥 내가 먹자그래요. 그러면 이런 또라이 같은 놈이 있나하고 욕하지.(웃음) 근데 그게 뭐 대수야. 나는 내 시간을 갖는 게 가장 소중해요.








생을 돌아봤을 때 '이거 참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는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돈을 셀 수 없이 벌던 때가 있었어요. 도자기 시리즈였는데 일본에서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경리 직원에게 어제 들어온 돈이 얼마나 되니?” 하고 물으면 아직 다 못 셌어요라고 할 정도였죠. 지금 생각해도 깜짝 놀랄 일이지요. 그때 저는 생각했어요. '내 직업이 뭐지? 나는 작가인데 지금 보니 상품을 만드는 장사꾼 아닌가.' 그래서 그 길로 작업을 관두고 다른 실험에 나섰죠. 그랬기 때문에 지금까지 즐겁게 작업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집, 신상호 스튜디오를 양주시에 기증한다고 들었어요.

시에 기증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식구들과 얘기했더니 흔쾌히 그러라고 하더라고요. 특히 작은딸이 좀 독특한데 그 애의 지론이 아빠가 좋아서 만들고 수집하고 긁어모은 재산이니 남겨놓지 말고 가시라예요. 아주 내 머리 꼭대기에 있는 애죠.(웃음) 그래서 나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양주시에 땅과 작업실과 작품 일체를 기증하겠다고 했고 관련 절차를 밟고 있어요.








가족분들이 도예가님을 믿는 마음이 느껴져요.

잘 생각해보면 자식에게 과한 재산을 주는 건 자식이 느껴야 할 성취를 돈으로 뺐는 거예요. 힘들어도 고생하며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어나갈 때  보람이 있고 행복이 있는 것인데 말이에요. 그리고 이 작업실과 살림집에서는 10년만 더 살기로 했어요. 그 이후에도 내가 살아 있으면 20평대 조그마한 아파트로 이사를 가려고요. 청소하기 편하게.(웃음) 내가 만일 큰 아파트를 짓는다면 벽을 확 터서 뭐든 사는 사람 마음대로 꾸미도록 한번 해보고 싶어요. 나는 식물로 가득 채우고 부대끼며 한번 살아보고 싶네요.








도예가님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76살을 먹어도 50살같이, 60살같이 생각도 정신도 건강도 유지한다는 게 행복 아니겠어요. 이 행복이 이어져가기를 바라죠.



요즘에는 어떤 재미난 일을 하고 계세요?

미국이 반환한 주한 미군 기지 의정부 땅을 예술 문화 공간으로 바꾸는 일에 참여하고 있어요. 이곳을 공원화해 학교나 갤러리, 아트 페어도 만들자고 생각을 모으고 있죠. 이 나이에 사실 부담스러운 규모의 일이지만 아주 익사이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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