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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 빈티지 마니아의 빛나는 집

김민정 빅슬립 대표

Text | Solhee Yoon
Photos | Hoon Shin
Film | Jaeyong Park

‘인테리어 맛집’, ‘감성 충만 빈티지 숍’으로 소문난 빅슬립은 ‘어느 수집가의 방’을 콘셉트로, 연희동 조용한 골목에서 은밀하게 아카이브를 살찌우는 소품 숍이다. 조명, 그릇, 커트러리 등 품목도 다양한데다 하나같이 독특한 생김새가 눈길을 끈다. 이런 안목을 지닌 김민정 대표의 집은 어떤 모습일까.








빅슬립 매장처럼 집도 구석구석 물건으로 가득하네요. 언제부터 수집했나요?

저는 어릴 때부터 늘 물건이 많았어요. 마음에 든다 싶은 건 곁에 두고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학창 시절 좋아했던 책, 잡지, CD, LD를 대부분 지금까지 가지고 있어요. 그 당시 라디오 방송을 녹음해둔 테이프도 몇 박스 되는걸요. 친한 친구들은 너는 꼭 트럭 있는 애인 만나라하고, 저는 다마스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부를 정도였죠.








그중 빈티지를 좋아하는 이유는요?

누구나 검색해서 살 수 있는 제품이 아니라 오직 이곳, 여기에 단 하나라는 특별함이 있잖아요. 또 내가 이걸 발견했다는 느낌이 있어요. 물건을 보면 나도 모르게 너 여기 있었니? 너같이 예쁜 애가 아직도 세상에 있었네이런 말을 한다니까요. 이전 주인이 어떤 이유로 변형하거나 디자인한 부분을 발견할 때가 진짜 재미있어요. 예를 들어 컵에 식물을 담아 벽에 걸려고 가장자리에 뚫은 구멍 같은 거요. 또 빈티지를 다루는 게 마음이 편안해요. 이미 사용감이 묻어 있으니까요. 제가 워낙 조심성이 없어서 새 물건에 흠집 나지 않게 조심하고 몸 사리다 보면 그게 스트레스가 되더라고요.








골목에 버려진 가구도 관심사겠네요.

혼자 있든 친구와 있든 길을 걸으며 제가 자주 하는 말이 그거예요. “어머, 저거 뭐야?” 친구들은 네가 말하기 전에는 저런 게 있는 줄도 몰랐어라고 하죠. 저는 3인용 소파를 굴려서 집까지 1km를 옮긴 적도 있어요. 장마 때 우산 들기를 포기하고 비를 쫄딱 맞으면서 앤티크 거울을 주워 온 적도 있고요. 심지어 거울이 너무 무거워서 신고 있던 양말을 벗어 손에 끼고 거울을 옮겼죠.




누구나 검색해서 살 수 있는 제품이 아니라 오직 이곳, 여기에 단 하나라는 특별함이 있어요.”




그렇게 어렵사리 구한 가구를 집에 딱 놓았을 때 어떤 기분이에요?

감탄해요. 예를 들어 아이돌이 데뷔해 열심히 활동했는데 좋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해체됐어요. 근데 제가 새로운 프로듀서인 거예요. ‘너희들의 재능이 이리 깊은데 사람들이 몰라본 거야?’ 그러면서 그들을 캐스팅해 세상에서 제일가는 멋진 스타로 만들었을 때 느끼는 성취감과 비슷한 만족감이라 생각해요.



본인에게 좋은 집이란 어떤 집인가요?

내 동선이나 편리성에 따라 가구와 물건이 정렬된, 그렇게 나의 편안함을 위해 설계된 집이 좋아요. 인테리어와 관련해서는 진정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만 채우자라고 생각해요. 유행하는 거, 인기 있는 거에 편승하는 건 제 성격과 맞지도 않고나까지 그러지는 말자고 스스로 말하죠.








그 좋은 집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요?

가구를 이리 놓았다 저리 놓았다는 물론이고 눕히거나 뒤집거나 뜯기도 해요. 그래서 있는 가구를 다른 가구로 교체하지 않고 새로운 쓰임새를 만들죠. 지금 거실 벽의 CD 보관함이자 오브제 선반으로 쓰는 장은 원래 세워서 쓰는 책장이었어요. 그 옆의 원목장 하부는 문짝을 떼어내고 박스 보관 용도로 쓰고 있어요. 뗀 문짝은 빅슬립에서 선반으로 활용하고요. 이처럼 가구 디자이너가 의도한 목적 말고 내 공간에 맞는 나만의 활용법을 발견해내는 걸 즐기고 또 잘하는 것 같아요.(웃음)



애초에 이 가구들이 다른 용도였다는 것을 전혀 눈치 못 챘어요.

저는 사는 사람의 생활감, 취향이 가득한 집을 참 좋아하는데 어렸을 때 보던 일본 리빙 잡지가 한몫하는 것 같아요. 인터뷰이 집 구석구석을 취재한 기사가 실렸는데 신세계였어요. 집이 터질 만큼 피겨 인형을 수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히피 문화에 심취해 서핑보드와 하와이 꽃 플루메리아로 방을 물들인 사람이 있었죠. 집을 통해 이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엿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지금 제 집도 저만의 관심사로 읽히겠죠.










매장명인 빅슬립은 무슨 뜻인가요?

어릴 때부터 닉네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떠오른 단어나 문장을 수첩에 적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보니 슬립이란 단어가 한 페이지에 나란히 있더라고요. 분명 따로 적었는데 붙여 읽으니 왠지 오묘하고 신비했어요. ‘빅슬립에는 깊은 잠, 죽음이란 뜻이 있대요. 귀여운 어감에 반전 매력도 느껴졌죠. 레이먼드 챈들러의 추리소설 제목이고 영화화되었다는 건 나중에 알았어요. 그래서 요즘에는 그 오리지널 빈티지 원서를 모으고 있어요.










매장은 언제 처음 문을 열었어요?

2014년 사업자 등록을 한 뒤로 온라인 숍으로만 운영했어요. 그때는 효창동에 개인 작업실 겸 창고가 있어서 방문 예약을 한 분들에 한해 오프라인 공간을 보여드렸고요. 연희동에 매장을 낸 지는 3년 정도 됐어요.



빈티지 소품 숍을 열겠다는 목표는 언제 생겼나요?

이렇게 독립해서 혼자 살기 이전에 5인 가족 중 한 명의 일원이 맥시멀리스트로 살아간다는 건 사실 좀 이기적인 일이었어요. 제 방에만 두기에는 넘쳐나는 물건들을 박스에 싸서 집 안 곳곳, 신발장과 베란다, 싱크대 상부장 등에 숨겨두는 게 일상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저조차도 제가 무슨 물건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하나하나 어렵게 구한 예쁜 것들인데 빛을 보지 못하고 구석에 처박혀 있는 현실에 서글픈 마음이 들거니와 공간에 좀 늘어놓고 보고 싶어서 회사 근처에 작업실을 임대한 게 시작이었어요. 그러다 자연스레 친구들, 지인들이 작업실에 놀러 와서 제 소장품에 관심을 갖고 물어보고 구매하면서 지금의 빅슬립이 되었죠.








특별히 애착이 가는 물건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빅슬립 한편을 밝히고 있는 핑크색 무라노 버섯 램프요. 3년 전, 제일 좋아하는 일본 밴드 램프Lamp의 아시아 투어 공연을 보러 인도네시아에 간 적이 있어요. 그 여행길에 한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작은 가게에 들렀는데 깊은 구석에 있던 저 램프가 딱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무라노 조명이 갖고 싶어 해외 직구를 여러 번 시도했지만 파손되거나 구매가 성사되지 않아 한 번도 온전한 상태로 손에 쥔 적이 없었거든요. 바로 구매했죠. 집에 돌아와서 보니 안에 전선, 전구,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그래도 좋았어요. 직접 수리해서 지금 잘 쓰고 있어요.








매장을 간헐적으로 열잖아요. 여는 날을 인스타그램에 따로 공지하고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 공간을 운영하느라고 가고 싶은 전시를 못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못 만나면 이 일을 탓하고 미워질 것 같았어요.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인디 음악 기획사 붕가붕가레코드가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이란 말을 하더군요. 저도 딱 그 마음이에요. 그래서 제가 온전히 밝은 마음으로 손님을 맞이할 수 있을 때만 문을 열기로 했어요. 제가 지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해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빅슬립만의 분위기를 뷰티풀 카오스라고 설명하거든요. 그 말의 의미는, 비록 정갈하고 깔끔한 맛은 적어도 물건 하나하나가 모인 와중에 잡힌 나름의 질서와 그것이 어우러진 가운데 생긴 전체적인 조화로움인 것 같아요. 이러한 콘셉트를 유지하며 빈티지 물건뿐만 아니라 공예가나 아티스트의 작품, 빅슬립만의 감성을 담은 자체 제작 굿즈를 더 많이 선보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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