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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다양성, 로컬, 오가닉

노포 맛집 꿈꾸는 삼각지역 초콜릿 가게

카카오봄 고영주 대표

Text | Solhee Yoon
Photos | Hoon Shin
Film | Jaeyong Park

“심지어 장례식장에서도 초콜릿을 나눠주더라니까요.” 고영주 대표는 벨기에에서 8년간 살며 벨기에인의 뜨거운 초콜릿 사랑을 맛봐버렸다. 초콜릿이란 마치 크리스마스 같은 기쁨을 날마다 누릴 수 있는 비밀 치트키 같았다. 그 즐거움을 우리나라에서도 나누고자 서울에서 카카오봄을 시작했다. 곧 20년 차다.








카카오봄이 자리한 이 골목이 일명 ‘용리단길’ 아닌가요. 이곳으로 이사 온 지는 얼마나 됐?

벌써 3 네요. 처음에는 홍대, 그다음 삼청동, 리고 경리단길을 지나 삼각지역까지 왔어요. 처음 이 동네에 왔을 때는 진짜 조용했고 마치 딴 세상 같았어요. 어쩌다 그간 ‘뜨는 상권’에 다 보니 많이 지쳐 있었거든요. 그래서 ‘상권이고 뭐고 그냥 내가 좋은 동네로 가자. 20년을 버텼는데 어디 가든 장사 못 할까’ 싶은 마음으로 향한 곳이 삼각지역 이 자리였어요. 물론 ‘용리단길’이라고 뜨기 전에요.(웃음)








이상형처럼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동네 모습이 있었나 봐요.

맞아요. 삼각지역 주변은 젊은이들이 오가는 쌩쌩한 상권이 발치에 있으면서도 오래된 노포가 동네를 틀어쥐고 있는 듯한 든든함이 느껴져 좋았어요. 제일 좋 직접 김치를 담가서 백반을 내는 식당이 가까이 있다는 것이었죠. 오래 하다 보니까 밥 다운 밥 한 끼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일터 주변에 있는 게 너무도 중요하더라고. 게다가 손수 담근 김치를 손님상에 낸다는 건 사장님이 자신의 오래된 방식을 지키겠다는 선언이자 실천이거든요. 허리가 다 굽도록 열심히 살아온 사장님들이 지금도 늘 그렇게 주방에서 한결같이 장사하는 모습을 보면 저는 또 배우죠.








카카오봄 무슨 뜻인가요?

이름을 뭐로 지을까 한창 고민하던 때에 벨기에 초콜릿 교재 첫 장에 등장하는 ‘카카오봄’이란 단어가 떠올랐어요. 네덜란드어로 카카오 나무란 뜻이. 그 단어에 꽂히면서 문익점이 목화씨를 품고 와 한반도에 새로운 이야기를 키웠듯 ‘내 한번 벨기에식 초콜릿으로 한국에 초콜릿 문화를 퍼트려보리라’는 포부를 이름에 녹여.








언젠가부터 ‘쇼콜라티에’ 대신 ‘초콜릿 기술자’로 자신을 소개하더군요.

일을 하면 할수록 ‘기술자’란 단어가 좋아졌어요. 처음에는 저도, 저를 불러주는 언론사도 ‘쇼콜라티에’를 선호했어요. 저는 생소한 초콜릿 문화를 전파하는 사람이란 뜻의 이국적인 뉘앙스에, 언론사는 이목을 끌 수 있는 희귀함에 그렇게 불렀죠. 그러던 어느 날 지인과의 스터디 모임에서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생각하게 되었는데 문득 ‘기술자’란 단어가 떠올랐어. 그렇죠. 저는 맛있는 초콜릿을 만드는 손기술로 밥벌이하는 사람인데. 그때부터 스스로 초콜릿 기술자라고 소개해요.




중요한 건 그 한 입의 여유를 죄책감 없이 즐기는 태도였어요.”




벨기에에서 유학하는 동안 어떤 초콜릿 문화를 경험했나?

‘서교동을 털면 출판사가 나온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것처럼 브뤼셀을 털면 초콜릿 가게가 나올 거. 그만큼 골목마다 초콜릿 가게가 있고 그들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초콜릿을 자주 . 집들이를 해도 초콜릿을, 장례식장을 가도 초콜릿을 . 학교에 아이들이 받아 오는 선물도 초콜릿이죠. 저는 가난한 유학생이 속으로는 휴지나 과일, 세제를 으면 좋으련만 싶었는데 말이에요. 근데 그렇게 손바닥만 한 초콜릿 상자를 받아보니 자연스레 새로운 세계가 보이더라고요.




가장 크게 느낀 건 뭐였?

‘공부하다 피곤할 때 슈퍼 가서 사 먹는 판 초콜릿 한 장이 초콜릿의 전부가 아니다.’ 또한 ‘초콜릿은 즐겁게 먹는 디저트다.우리는 그러잖아요. “당뇨가 있어서 못 먹어.” “살쪄서 안 돼.그런데 벨기에에서 지낸 8년 동안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못 어요. 물론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초콜릿 품질 차이가 있지만, 중요한 건 그 한 입의 여유를 죄책감 없이 즐기는 태도였어요. 그게 문화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내 가게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했나요?

초콜릿 만드는 가게를 하겠다기보다는 초콜릿 만드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벨기에를 간 건 초콜릿을 배우겠다고 작정하고 떠난 아니었거든요. 우연히 초콜릿 전문 과정을 수강했고 재밌게 즐겼고 혼자 주방에서 날마다 연습하다 보니, 할머니가 되었을 때 초콜릿을 만들고 있을 것 같은 제 모습이 그려지더라고요. 그 모습이 좋았어요. 그래서 제대로 파기 시작했죠.



초콜릿 기술자 20년 차인데 스스로 지키는 태도는 무엇인가요?

혼자서 예쁘게 만들어서 좋아!, 이렇게 좋은 재료를 쓰다니! 감탄한들 소용없어요. 저의 기술은 결국 먹는 사람이 끝맺는 거니까요. 그래서 언제나 엄중한 마음으로 일하려고 해요.








올해 <이만하면 달콤한 인생입니다> 어요. 왼손으로 쓴 일기이던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오른손잡이인데 오른손을 못 쓰게 됐어요. 염증이 심해 정말 아무것도 못 할 정도로요. 절망감이 심하 그때, 그림일기 온라인 워크숍이 눈에 띄더라고요. 평소 ‘언젠가 여유로워지면 그림을 한번 그려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어차피 일도 제대로 못 하게 됐으니 이거라도 해보자’ 하는 심정으로 신청했어요. 그리고 강사에게 숙제 검사를 받아야 하니까 매일 썼어요. 제가 또 약속은 잘 지키거든.(웃음) 획이 삐뚤빼뚤하니 알아보기도 힘들고 쓰는 나도 힘든데 한 달이 지나니까 성취감이 장난 아닌 거예. 기술자가 느끼는 즐거움이죠. 내 손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 때 느끼는 희열! 래서 ‘좋다, 그럼 더 해보자’ 하고 1년을 더니 책 한 권 분량이 되었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알고 집중하는 게 멋져 보여.

시도해니까 아는 거지 처음에는 몰라요. 제가 좋아해서 하는 운동달리기데 이걸 찾기까지 얼마나 많은 종목을 거쳐왔는데요. 테니스, 필라테스, 요가, 권투 등등 안 해본 게 없어요. 자꾸 한 달도 못 가서 시들해지니까 ‘나는 왜 끈기가 없지?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죠. 근데 지나고 보니 자책할 필요 없더라고요. 그냥 나랑 안 맞은 것뿐이었어요. 그럴 때는 나란 사람 어떤 걸 재미있어하나, 좋아하나 찬찬히 짚어봐요. 저는 옷 고르고 바꿔 입고 이런 걸 안 좋아해요. 쇼핑도 귀찮아하는 스타일이라 도구나 기구를 사는 건 성격상 안 맞아요. 그렇게 좁혀가다 보니 달리기가 딱이었어요. 미리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지만 그랬면 제가 언제 권투를 해보겠어요. 그러니까 시행착오도 좋아요. 결국 우리 삶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인 것 같아요.








초콜릿을 즐기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저는 굉장히 많이 먹어야 해요. 들면서도 먹고, 완성된 상품의 품질 체크를 위해서도 먹어요. 그리고 다른 집에서 만든 초콜릿도 먹죠. 그런데도 매번 입에 넣을 때마다 “맛있다”, “좋다” 그래요. 집에서 쉬는 날, 커피나 차 한잔 내렸는데 식탁에 초콜릿이 하나도 없으면 속으로 그러죠. ‘나 왜 사니? 내 집에 초콜릿이 하나도 없어? 그러지 말자. 나를 위해 좋은 초콜릿을 집에 두자.’



2023년에는 어떤 재미난 일을 해보고 싶어요?

손님들과 나눌 재미난 이벤트를 생각 중이. 카카오봄 20주년이니까요. 빠듯하게, 바쁘게 살던 격동기를 지나 조금 여유가 생기니 카카오봄을 꾸준히 찾아와준 손님들 얼굴이 그렇게 떠올라요. 첫아이를 가졌을 때 온 손님이 둘째를 키우고 있고, 홍대에 자취할 때 왔는데 삼각지역에서 만나서 너무 반갑다고 말하는 손님 있어요.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너무 좋아요. 우리 같이 살고 같이 늙어가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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