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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 없이 하루를 사는 생활 여행자의 집

아티스트 니콜라스 레페브레

Text | Anna Gye
Photos | Mineun Kim
Web | www.nicolaslefebvre.fr

이집트 사막에서 구한 돌, 아마존 부족의 머리 장식품, 나이지리아 동전, 캄보디아 크메르 제국 시대의 거울, 메마른 산호. 아티스트 니콜라스 레페브레Nicolas Lefebvre의 집과 작업실에는 서로 연관성 없는 희귀한 물건이 가득하다. 그는 어린 딸 아나이와 함께 전 세계를 여행하며 발견한 운명 같은 오브제들을 프랑스 파리의 집과 작업실에 모아놓고, 이것저것 뒤섞고 작가만의 감각, 경험, 이야기를 불어넣어 또 다른 물질로 환생시키는 예술 작업을 한다.








니콜라스 레페브레 씨는 이번에 어디를 다녀왔나요?

딸 아나이Anahi와 함께 그리스 산토리니 이아Oia라는 마을에 갔다 왔어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기도 하고 해변가에서 수영도 하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죠. 지역 주민들과 친구가 되어 함께 즐겁게 지냈어요.








일 년 중 대부분을 여행자로 살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지루한 일상을 탈출하고 싶어 여행을 하지만 저는 반대로 제 삶을 찾으려고 떠나요. 미지의 길을 걷고, 나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낯선 사람을 만나고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돌발과 사건이 저에게는 반복되는 일상보다 더 익숙하고 편안해요. 여행을 생활처럼, 생활을 여행처럼 즐기는 거죠. 제가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여행업계에서 일하던 어머니를 따라 아시아, 멕시코, 아프리카 등으로 떠났고, 1999 19살 때 갤러리스트로 일하며 1950년대 프랑스 디자이너의 가구를 수집하기 위해 페루로 이주했죠. 이후 남아메리카 내 경매장, 벼룩시장을 쫓아다니며 살았어요. 제게는 발 닿는 곳 어디든 집이었어요. 아버지가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에 살고 계셨기 때문에 아프리카에도 자주 갔어요.








갤러리스트를 하다가 어떻게 예술가가 되었나요?

할아버지가 아트 컬렉터였고 아버지가 아티스트였어요. 저도 자연스럽게 에콜 뒤 루브르에서 미술학을 공부했죠.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아프리카를 자주 방문하면서 접하게 된 원시미술이에요. 원초적인 예술적 감성을 자극하는 아름다움은 자연스럽게 어머니와 여행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고 수많은 나라를 집으로 삼고 지낸 시간들을 끌어냈죠.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 감정이 폭발했어요. 아티스트로서 여행, 어머니,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졌고 여행에서 만난 운명 같은 물건에 새로운 의미와 상징성을 더하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죠. 제 예술 작업은 경험과 경험을 연결해 새로운 것을 합성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제 작품 중에는 십자가와 동그라미로 이루어진 것이 있는데 모성애와 호기심, 어머니와 딸을 상징해요. 작품마다 여행에서 떠올린 느낌표와 물음표가 담겨 있어요.








각기 다른 장소에서 구한 오브제를 프랑스 파리 1층 작업실에 모아놓았어요.

햇살, 바람, 파도를 거쳐 시간을 표류한 물건들이죠. 어떤 물건은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자석처럼 물건이 물건을 부른다고 할까. 그걸 보자마자 작업실에 있는 또 다른 오브제가 떠오를 때도 있고요. 작업실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거미줄처럼 촘촘한 인연들이 만들어낸 저만의 세계가 있어요.



이집트 사막에서 구한 돌, 아마존 부족의 머리 장식품, 나이지리아 동전, 캄보디아 크메르 제국 시대의 거울, 메마른 산호 등 이런 희귀한 물건은 어디서 구하나요?

여행을 가면 반드시 벼룩시장에 들러요. 생활에 밀착된 물건을 보면 그들의 문화, 습관을 파악할 수 있어요. 하지만 실제 구입하는 물건은 어떤 용도인지 모른 채 오브제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가게 주인들은 수집 가치가 있거나 실용적인 물건인지는 살펴보지도 않고 엉뚱한 것을 산다고 하니 고개를 갸우뚱거리죠.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건네는 사람도 있고요.(웃음) 여행하다 보면 오래 걷기 마련인데 그러다 길에 버려진 물건을 주워 오기도 해요. 여행 가방에 돌, 나무가 가득할 때가 많아요.




돌멩이도 길에 있으면 하찮은 것이지만 창가에 두면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오브제가 될 수 있어요.”




누구에겐 쓸데없는 물건이 본인에겐 귀하게 보이는 셈이네요.

사실 쓸모라는 것이 종이 한 장 차이예요. 모로코에 살 때 현지인들이 쓰레기 같은 물건을 모은다고 비웃었는데, 제가 그것으로 작품을 만들고 전시를 하니 깜짝 놀라더군요. 돌멩이도 길에 있으면 하찮은 것이지만 창가에 두면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오브제가 될 수 있어요. 버려진 나뭇조각도 현관에 두면 유용한 벤치가 되죠. 전 이렇게 쓸모없는 물건을 조합해 또 다른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는 일을 창조라고 봐요. 지구에 해를 끼치지 않고 자원을 낭비하지 않으면서 자연에 가까워지는 일이죠.



1층 작업실 건물 위에 생활 공간이 있어요. 이렇게 생활 여행자로 집을 떠나는 당신에게 파리의 집이란 어떤 공간인가요?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Pierre Rabhi가 말한 대지 같은 곳이죠. 자연과 계절에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소소한 행복을 경험하는 장소. 여행에서 얻은 이미지와 감정 등을 작업실에 모아놓고 쉼 없이 퍼즐처럼 조립하고 해체하는 작업을 합니다. 기억을 되새김질하고 상상과 현실을 오가며 하루 종일 작업에 몰두해요. 게으름이 허락되지 않는 장소예요.








예술 작품이 아닌 가구는 소박한 편이네요. 특별한 장식도 없고요.

집에 있는 가구는 대부분 버려진 것을 활용해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여기 보이는 커피 테이블(위 첫 번째 사진)은 아프리카 가봉에서 구한 나무 기둥을 두껍게 자른 뒤 대리석 지지대 위에 올려 만든 것이에요. 집에는 최소한의 가구만 있어요. 가능하면 비우려고 합니다. 여유가 있어야 생각이 떠오르거든요. 떠날 준비도 금방 할 수 있고요. 집은 사고의 공간이고, 작업실은 실천의 공간이에요. 집에서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1층 작업실로 가서 작업을 하죠. 작업실에는 저만의 도구가 가득합니다. 생각나는 대로 작업할 수 있도록 손 닿는 곳에 모든 물건을 놓아두었어요.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필요한 물건을 1초 만에 찾을 수 있어요. 무작위로 놓인 것 같지만 저만의 논리와 법칙으로 배열되어 있거든요.








소유욕이 없는 편인가요?

그런 편이죠. 사람들은 필요해서 물건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욕심 때문에 소유하는 것이 많아요. 더 행복해지겠다고 쉬는 시간 없이 일하고 필요 이상의 집과 물건을 사고 큰 빚에 시달립니다. 늘 사고 싶은 것이 생기죠.  왜냐면 남과 비교했을 때 늘 자신의 것이 모자라기 때문이죠. 부자인 사람들이 풍족하게 사는 것은 맞지만 행복하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내가 그래도 이만큼은 되는 사람이구나' 하고 존재감을 느낄 때 원하는 것을 소유했을 때보다 더 큰 만족감을 느낀다고 해요. 주변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나서는 사람만이 진짜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빈손으로 사는 것에 익숙하고 모든 것을 털고 훌쩍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산다고 생각해요.








부모님을 따라 어릴 때부터 여행을 다니고 전 세계를 고향으로 삼으면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무엇인가요?

세상을 보는 방법이죠. 문화, 언어, 인종 등에 따른 어떤 편견도 없이 어린아이 같은 눈으로 타인을 바라보고, 교류하고, 이해하는 법. 세상을 헤쳐 나가는 데 중요한 것은 지능보다 공감이며 계획보다 사건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을 일찍 터득한 것 같아요. 사람들은 여행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넓힌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차이점만 발견하고 돌아올 뿐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아요. 생활자가 되어봐야 변화를 느낄 수 있죠.



낯선 나라에서 살아봐야 한다는 말인가요?

거주지를 옮기지 않아도 여행자 마인드를 버리고 계획과 준비 없이 낯선 나라를 탐험해보라는 말입니다. 일상의 냄새가 물씬 나는 동네도 가보고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고요. 우여곡절 속에 피해 갈 수 없는 일을 만나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됩니다. ‘나는 사실 이런 성격이구나’, ‘나는 이런 점을 두려워하는구나’ 등 여행을 통해 자신을 알아갈 수 있어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생기는 뜻밖의 낯선 풍경과 관계가 오히려 나를 확장시킨다는 것을, 집이 없어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죠. 저는 보통 한 도시에 최소한 3주 정도 머물러요.








지금까지 가본 장소 중 가장 인상적인 곳은 어디인가요?

사하라 사막. 지도 없이 다닐 수 있는 곳이니까요. 여름에 다녀온 그리스도 좋아요. 수십 번 같은 장소를 가도 수백 번 다른 장면을 보여주는 나라예요.



항상 딸과 함께 여행을 간다고 들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어머니가 그랬듯 저도 일찍부터 딸에게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세상에는 기쁨뿐만 아니라 슬픔, 절망, 무기력 등 수많은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둘이 여행하면 서로에게 집중한 채 고립된 생활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서로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바깥을 자세히 살피게 됩니다. 이제 13살이 된 딸은 세상과 자신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됐어요. 딸이 바라보는 시선, 딸이 던지는 질문, 우연한 행동 등이 저에게 큰 영감이 되죠. 여행지에서 만난 새로운 문화, 풍습, 사람, 전통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질문하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예술가로서 평생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의 눈을 갖기를 원했는데 딸과 함께 여행하면서 많은 덕을 보고 있어요.








여행하는 동안 딸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나요?

이제 누구 말을 들을 나이가 아니에요.(웃음)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죠. 제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을 함께하는 거죠. 조언보다 체험이 더욱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니까요.



다음 여행지는 어떻게 정하나요?

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어요. 자연스럽게 생긴 인연과 기회가 또 다른 타국으로 이끄는 것 같아요. 이번에 동업자와 함께 포르투갈 리스본 근처에 있는 16세기 빌라를 발견했는데 이곳을 호텔, 레스토랑, 아티스트 레지던스로 개조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요. 아마 다음 행선지는 포르투갈이 되겠죠. 배로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모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이용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플라스틱 오디세이’라는 흥미로운 작업을 보게 되었는데, 언젠가 저도 배를 타고 미지의 장소로 가서 환경보호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는 예술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비대면으로 타인을 만나고 가상공간 여행이 가능한 때에도 우리는 왜 집을 떠나 여행을 해야 할까요?

어제와 내일이 비슷한 나날에서는 창의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죠. 나이가 들수록 궁금증과 호기심이 없어지고 세월이 빠르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꿈꾸고 ‘왜 그러지 않을까’ 생각하는 창의적인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집 밖을 나서야 해요. 낯선 여행을 통해 하던 대로 하지 않는 일탈과 사건을 경험하고 자신의 고집과 습관과 충돌하고 부딪쳐봐야 또 다른 자신을 만날 수 있어요. 집과 가장 거리가 먼 곳, 저 너머에 새로움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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