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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오래된 책방 위층의 시집 서점

유희경 위트 앤 시니컬 대표

Text | Solhee Yoon
Photos | Hoon Shin
Film | Jaeyong Park

서울의 올드 타운 중 올드 타운인 혜화동에 가면 1953년에 개업해 서울미래유산으로 등재된 동양서림이 있다. 올해 70살로 동네 터줏대감이다. 그런데 그 안에 작은 시집 서점이 둥지를 틀었다. 통로는 오직 공간 중앙에 똬리를 틀고 있는 나선계단. 궁금증이 일기 시작한다. 서점 안의 서점이라니, 오르는 길이 돌돌 말린 폭 60cm 남짓의 계단뿐이라니.








상호 위트 앤 시니컬에는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이란 부제가 붙어 있더군요. 무슨 뜻인가요?

말 그대로 시집만 소개하는 서점이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 있지 않을까, 혹시 없다면 내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에서 지었어요. 이 생각을 저만 했을 리 없다는 걸 이제는 알아요. 외국의 시집 서점 소식을 제보받기도 하고요. 그래도 위트 앤 시니컬을 차릴 당시에는 그런 마음이었어요. 2016 7월 신촌 기차역 부근 카페 일부를 빌려 영업을 시작했고 대학로에 온 지는 만 3년 됐어요.








위트 앤 시니컬의 주소가 특이하잖아요. ‘동양서림 나선계단 위’라니. 어떤 계기로 이곳으로 왔나요?

첫 울타리가 되어준 카페가 문을 닫겠다고 결정했을 때 저 역시 선택해야 했어요. 그 카페 전체를 인수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사하거나. 카페를 인수하기에는 자본이 모자랐고 이사할 곳은 마땅치 않아 고민하던 중에 최소영 동양서림 대표가 저를 찾아오셨어요. 서울시 지원으로 공간 리뉴얼을 하게 되었는데 한번 봐주면 좋겠다고요. 그 일로 동양서림에 방문했다가 나선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갈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제안드렸죠. 창고로 쓰는 나선계단 위 공간을 임대해서 사용하고 싶다고.








단박에 반할 만큼 마음에 꼭 들었나 봐요.

사실 막상 입주하려니 망설여지더라고요. 혜화동이 저에게 익숙한 동네이긴 하지만 서점 손님이 어느 정도 될지 알 수 없으니까요. 그때 ‘우리나라에 100년 간 서점이 하나도 없다’는 동양서림 대표 남편분의 한마디에 마음이 확 움직였어요. 그러면 합심해서 100년 가는 서점 하나 만들면 좋겠다고. 저는 위트 앤 시니컬만큼이나 동양서림에 애정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어요. 혜화동에 와보니까 대학생부터 어르신까지 연령층이 다양하고, 특히 서울 토박이가 많아 동양서림에 추억 하나쯤 있는 분들이 심심찮게 오셔서 저마다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듣다 보면 재미있어요.




“12 31일에는 서점 청소를, 1 1일에는 집 청소를 합니다.”




위트 앤 시니컬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나요? 책만 파는 것 같지 않아요.

제가 모토처럼 생각하는 문구가 있어요. ‘시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이에요. 그에 걸맞게 읽기부터 쓰기까지, 예컨대 시 창작 워크숍, 비평 수업, 시 낭독회 등을 열어요. 게임과 이벤트도 활발하게 하고요. 힘들죠. 조그만 체구에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어요.



유튜브 ‘위트 앤 시니컬’ 채널도 있던데요.

요즘에는 ‘이미지 텍스트 아카이브’라고 시의 텍스트를 영상 이미지로 해석하는 작업을 슬슬 해보고 있어요. 흥행은 아직 멀었고요. 재밌는 일이 있거나 기회가 생길 때마다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 공간에서 진행하는 여러 기획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언제인가요?

아무래도 낭독회예요. 그저 시를 소리 내어 읽는 것뿐인데 함께 모여 있다는 이유만으로 저도 손님들도 감정이 한층 깊어지는 것 같아요. 결례인 줄 알면서도 가끔 “낭독회에 어떤 계기로 오셨어요?” 하고 손님들께 물어보곤 해요. 이유는 제각각이에요. 얼마 전에는, 이제 시를 읽겠다고 굳게 마음먹은 친구와 그의 다짐을 듣고 ‘근데 시는 너무 어려운 세계야’라고 생각한 친구가 함께 다녀갔죠. 이 시간이 좋은 건, 이들이 낭독회에 참석하고 나서 다시 서점에 오거나, 또 오지 않더라도 시집을 꺼낼 때 설렘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긴다는 것이죠. 어쩌면 이곳에서 느낀 모든 감각을 잃어버려도 ‘지하철 4호선 혜화역 4번 출구로 나와 걷다 보면 시를 읽는 데 도움이 되는 공간이 있다’는 기억은 남을 테니까요. 그게 가장 보람된 일 같아요.








서가 옆 중앙에 큰 책상을 둔 이 공간은 뭐 하는 곳이에요?

만든 지는 2년 정도 됐는데 ‘사가독서’라고 이름 붙였어요. 서점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벽을 터서 공간을 넓혔죠. 사가독서의 ‘사가’는 줄 사()와 틈 가() 자를 쓰는데, 세종 때 집현전 학자들에게 준 일종의 독서를 위한 강제 휴가 제도를 말해요. ‘일만 하지 말고 책 좀 읽어!’ 이런 뜻이랄까요. 사실 그런 시간 다들 조금씩 원하잖아요. 먼저 이 근방에 사는 대학생들이 시험 공부할 때 주인장 눈치 보지 않고 맘껏 있다가 갈 수 있는 곳이 되길 기대하고 있는데 아직 그렇게까지 활용하는 사람은 얼마 없고요.








시집을 추천해달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것 같아요. 그럴 때 뭐라고 답하나요?

질문을 먼저 해요. 그의 관심사를 알려고요. 지금 이 사람이 원하는 건 BTS인데 베토벤을 추천한다면 그의 마음에 닿을 리 없잖아요. “요즘 어떤 음악 들어요?, “최근에 어떤 영화를 재미있게 봤어요?” 등등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면서 그 답을 통해 추천 목록을 좁혀가죠.



SNS에 업로드하는 출근 일지를 보고 있어요. 원래 일기를 챙겨 쓰는 편인가요?

평생 일기라는 걸 써본 적 없다가 아주 우연하게 ‘나도 한번 써보지 뭐’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아 계속하고 있어요. 서점지기란 일에 대해 모종의 환상이 있잖아요. 현실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한 기점을 지키고 있는 일이니까요. 출근 일지를 본 사람들은 반드시 저에게 인사를 건네니까, ‘누군가는 읽고 있다’, ‘읽고 나서 위트 앤 시니컬에 관심을 갖는다’라고 생각돼서 그만두지 못하겠어요. 살면서 이렇게까지 꾸준히 해본 일이 없는 것 같아요.








매일 쓴다는 행위로 얻어지는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솔직히 괴로운 게 더 많거든요. 근데 그 괴로움이 글쓰기 실력을 키우는 것 같아요. 누군가가 보는 글이니까 오늘은 어제와 다른 단어나 표현을 쓰고 싶고 그렇게 스스로 노력하게 되니까요. 그러다 보니 원고지 20~30매 정도는 부담 없이 쓸 수 있게 됐어요. 무엇보다 저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읽는다는 게 용기를 줘요. 저는 출근 일지를 쓰려고 지각을 안 해요. 일지를 쓰려면 30~40분은 걸리니까 그 시간까지 계산해 일찌감치 출근하죠.



요즘엔 어떤 책을 읽나요?

요즘 굉장히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는데, 20대나 30대 초반에 어려워서 읽지 못한 책을 지금 읽고 있어요. 특히 인문학 서적이요. 그동안 열심히 공부했다거나 특별한 훈련을 한 건 아니거든요. 근데 일상을 살면서 얻어지는 이해력 같은 게 있나 봐요. 여전히 읽는 속도는 더딘데 예전에는 무슨 뜻인지 몰라서 짜증부터 났다면 이제는 씹고 삼킬 수 있어요. 그래서 책이 어렵다고 조급해하는 이들에게 말해요.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읽히게 될 거라고.








시집 서점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걱정하지 않던가요?

우연한 계기였다고 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왼쪽 눈을 실명했거든요. 볼 수 있는 눈이 하나밖에 없으니 절박해졌어요. 그러니까 또 다른 우연이 생기면 앞을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볼 수 있는 동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이끌어낸 것 같아요. 시 쓰기는 제가 제일 하고 싶은 일이었고 그것으로 생계 유지를 하려면 작은 공간에서 상업적인 거래를 할 수 있게 만들어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이었죠. 지난 5년이 쉽지만은 않은 시간이었지만 보답할 길이 없겠다고 생각할 만큼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얻은 게, 배운 게 많아요.



새해에 챙겨서 하는 루틴이 있나요?

2~3년 전부터 습관화한 굉장히 사소하면서도 중요한 루틴이 있어요. 온갖 기념일과 가족, 친구들 생일을 굳이 찾아보고 새 달력에 입력해요. 이렇게 한번 정리해두면 달력을 자주 확인하게 되고 깜빡 잊는 일이 확 줄어요. 그리고 대청소를 해요. 서점도 집도 책이 많아 먼지가 어마어마하거든요. 12 31일에는 서점 청소를, 1 1일에는 집 청소를 합니다.








본인에게 집이란 무엇인가요?

제가 집을 산 지 4~5년 정도 됐어요. 동네, 규모, 다달이 은행에 갚아야 하는 원금과 이자 등 모든 조건을 떠나 월세나 전세로 살 때의 불투명한 불안감이 사라진, 내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정감이 정말 커요. 이제는 모든 사람이 집을 가져야 한다는, 적어도 그곳에서는 버려지지 않는다는, 버림받을 수 없다는 감각이 누구에게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근래에 외조부, 외조모가 돌아가셨는데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이제 나 고아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어렴풋이 집을 떠올렸어요. 사이가 좋든 안 좋든 찾아뵐 부모님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조건이 좋든 안 좋든 나의 집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와 같지 않을까. 그래서 저에게 집이란 ‘돌아갈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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