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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꽃가지로 추억을 박제하다

플로리스트 안젤라 메이너드

Text | Nari Park
Photos | Angela Maynard, Jeska Herne and the Hard Grant Publisher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길에서 마주한 나뭇가지 가운데서도 유독 마음에 드는 녀석이 있다. 그리고 바람결에 어지러이 흔들리는 갈대, 푸른 솔방울이 떠오르게 하는 양귀비씨, 또는 그 무엇···. 꽃과 만들기에 관한 두 권의 책을 집필한 런던의 안젤라 메이너드는 일상의 특별한 순간에 마주한 꽃을 말리고 엮어 추억을 기록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흐드러지게 핀 장미나 작약 다발을 화병에 꽂으며 주문 같은 것을 되뇐 적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 꽃이 최대한 오래 피어 있기를···.” 곧 시들 테지만 꽃이 품은 그윽한 향과 놀라운 색채는 공간을 생기로 가득 채운다. 짧고 유한해 더욱 애틋하고 값진 것이 꽃이 지닌 매력일 것이다. 런던 동부에 거주하는 안젤라 메이너드Angela Maynard는 이런 생화 대신 마른 꽃과 가지를 이용한 드라이플라워 작업을 한다. 꽃이 마르는 과정에서 변화하는 예측하기 힘든 색감, 여전히 남아 있는 은근한 향, 시든 꽃다발을 버려야 하는 ‘죄책감’으로부터의 해방은 마른 꽃이 지닌 매력이다. 아침 산책길 또는 여행 중 거닐던 들판에서 주워 온 마른 꽃가지에는 개인의 서사까지 깃들어 더욱 특별하다. 추억을 공간 속에 영원히 들이는 방법은 어쩌면 마른 꽃 한 줄기에서 시작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플로리스트가 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요?

패션 분야에서 12년간 다양한 영국 브랜드의 프로덕트 매니저로 근무했어요. 2014년 런던 버로우 오브 해크니에 제 플라워 워크숍 공간인 ‘보타니Botany’를 열기 위해 이전 커리어를 정리했고요. 2019년에 매장을 닫은 뒤로 지금은 꽃에 관한 책을 집필하고 크리에이티브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어요.



삶에 꽃이 자리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나요? 꽃을 주제로 사람들을 만나던 보타니는 어떤 매장이었는지도 궁금해요.

2014년 식물을 집 안에 들여 반려식물처럼 키우기 시작하면서 운영하던 곳이에요. 당시 영국에서 식물과 라이프스타일 제품을 결합한 유일한 매장이었죠. 꽃 판매 외에도 다양한 이벤트를 여는 복합 문화 공간이었어요. 작품을 소개하는 갤러리와 이벤트 공간을 겸한, 당시에는 꽤 신선한 장소였죠. 매장을 이끌어가기에 많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꽃을 매개로 사람을 모으고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방법을 배운 특별한 시간이었어요.








꽃과 정원은 본인에게 좀 더 특별한 의미일 것 같아요.

정원은 제게 늘 안식처였고 특히 봄날과 여름날에는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였어요. 정원에 있으면 자연과 좀 더 가까이 있다고 느껴지곤 했죠. 최근 작은 원베드 룸 아파트로 이사하며 더 이상 화단을 가꾸지 못하게 돼서 아쉬워요.








흔히 ‘꽃 장식’이라고 하면 싱싱한 생화로 만든 꽃다발을 생각하기 마련이죠. 그런데 어떤 계기로 드라이플라워로 작업하게 되었나요?

돌이켜보면 언제나 불안정하거나 부러진 식물, 색이 바랜 줄기 같은 것에 이끌렸던 것 같아요. 유년 시절부터 어머니와 할머니로부터 ‘만들고 고치는(make do and mend)’ 삶의 태도를 자연스레 습득했기 때문일 거예요. 처음 매장을 운영할 때는 저도 다른 꽃 가게들처럼 신선한 꽃을 판매했죠. 그러나 금방 시들어 처치 곤란한 꽃이 된 쓰레기를 마주하는 일이 불편해졌어요. 아무것도 버릴 필요 없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 끝에 마른 꽃을 찾게 되었죠. 저는 차분한 색감을 좋아했고, 꽃을 말리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예측 불가능한 색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어떤 색을 얻어낼 수 있다는 확신이 불가능한 작업이지만, 그래서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요. 말린 꽃을 이용해 작업하는 것은 자연의 산물을 시들고 죽게 방치하는 것이 아닌, 작품으로 환생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두 번째 삶에는 새로운 아름다움이 깃들죠.








곳곳에 다양한 정원과 산책로가 있는 특별한 도시 런던에서 생활하고 있어요. 작업에 주로 사용하는 꽃은 무엇인가요?

런던의 공원, 들판이나 습지에서 자라는 꽃을 모두 좋아해요. 그중에서도 은선초의 일종인 루나리아Lunaria, 다년생 엉겅퀴 에키놉스Echinops, 수수처럼 생긴 루멕스Rumex, 양귀비씨의 머리 부분, 밀과 풀 종류를 주로 사용하죠. 주변에서 재료를 찾다 보면 환경보호와 지속 가능한 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좀 더 자연 가까이에서 작업하는 느낌이 들어요.




사랑하는 이를 위해 무언가를 만들고 자신의 손을 움직여 얻을 수 있는 기쁨을 망각하기 쉬운 시대.”




길에서 풀과 식물을 채취하는 본인만의 가이드라인은 무엇인가요?

지역 공원과 습지, 꽃 시장을 돌며 영감을 얻어요. 아이디어를 구현하고자 종종 공원이나 숲 속에서 마음에 드는 마른 줄기를 몇 개 가져오기도 하죠. 보통 2~3개 이상은 가져오지 않고 뿌리는 항상 그대로 두는 것이 원칙입니다.








꽃과 만들기에 관한 두 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이기도 해요. 최근 발간한 두 번째 책 [The Art of Gifting Naturally]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나요?

선물을 주는 방식과 준비하는 과정을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보고 직접 만들어볼 수 있도록 영감을 북돋는 책이에요. 지나친 상업주의에 물들어, 사랑하는 이를 위해 무언가를 만들고 자신의 손을 움직여 얻을 수 있는 기쁨을 망각하기 쉬운 시대니까요. ‘선물을 만드는 습관’은 선물을 주는 이와 받는 이 모두에게 유익한 삶의 자세이고, 이를 통해 그 노력과 에너지가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저는 핸드메이드 선물을 받을 때 만든 이가 쏟은 정성과 시간, 마음을 충분히 느끼며 감사해 한다고 믿어요. 무언가 만드는 시간은 요즘의 우리가 거의 갖지 못하는 것이고, 이 정성과 가치마저 당연하게 여기는 이가 많거든요. 이번 책을 통해 사랑하는 이를 위해 돈으로 쉽게 뭔가를 구매해 선물하기보다 시간을 할애해 직접 만들어보도록 격려하고 싶었어요.



현재 런던 동부에 거주하는데 무엇이 그곳으로 당신을 이끌었나요?

아마도 푸른 녹지였겠죠. 저는 자연을 통해 많은 영감을 받아요. 마른 꽃으로 작업하는 과정에서 이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자연에 대한 존중감을 갖게 됐고, 이는 자연스럽게 환경에 대한 태도를 바꿔놓았죠. 런던의 동쪽 끝은 녹지 공간이 많은데 정작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푸른지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아요. 많은 공원과 습지, 운하, 세계적인 조경 디자이너 피트 아우돌프Piet Oudolph 팀이 설계한 스트랫퍼드Stratford의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 공원Queen Elizabeth Olympic Park이라는 놀라운 유산이 있죠.








침실이 하나인 작고 아늑한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어요. 거주 공간을 선택할 때는 보통 어떤 부분을 가장 고려하나요?

제 아파트는 40( 12) 정도이며 창문이 커서 밝고 따뜻해요. 집과 작업 공간이 유기적으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생활을 선호하고, 시각적 자극을 주는 깨끗하고 밝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식물과 빈티지 아이템, 자연에서 영감받은 예술 작품을 곁에 두려고 노력해요.



하루 중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거의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빅토리아 시대의 오래된 유리창이 있어요. 아파트는 개방형 공간으로 거실과 침실을 오픈된 선반으로 분리해,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을 내다볼 수 있죠. 그렇다 보니 늦여름 일몰 시간에 특히 아름다워요. 날이 저물며 공간 깊숙이 석양이 드리우는데 실내가 매우 밝아지고 빛에 의해 식물이 화려한 그림자를 남기는 찰나가 무척 매력적이에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요즘 세대에게 집이라는 공간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 듯 보여요. 본인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확실한 저의 안식처죠. 집은 온전히 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공간이에요. 마치 입체 도화지처럼 저라는 사람을 표현할 수 있는 거대한 캔버스 같달까요.



초보자도 쉽게 자신의 공간을 장식할 수 있는 드라이플라워 데커레이션으로는 무엇이 적합할까요?

제 첫 번째 책[Modern Dried Flowers]에 그와 관련한 몇 가지 멋진 아이디어가 담겨 있어요. 간단하게 만들고자 한다면 미니 드라이플라워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거예요. 줄기 몇 개와 갈색 끈만 있으면 손쉽게 작은 꽃다발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시들고 마른 꽃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하는 당신의 삶 또한 그와 결이 같지 않을까 짐작됩니다.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일상에서 무엇을 실행하는지 궁금합니다.

가능한 한 단순하고 간결하게 살고자 노력합니다. 업무나 비즈니스에서 발생하는 쓰레기가 재사용될 수 있도록 늘 재료를 고민해요. 가능한 한 적게 소비하고, 빈티지 또는 중고품을 구매하죠. 요즘 들어 소비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 중 누구도 완벽하진 않지만,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연에서 온 천연 원료로 작업하면 환경을 존중하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어요.



지난 한 해는 어떠했나요? 그리고 2023년에 준비하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지난해 두 권의 책을 출간하며 작가로서 바쁜 시간을 보냈어요. 2022년은 오랜 시간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했던 삶과 거리를 두고 일상을 재조정하고자 노력한 해였어요. 열정을 우리 자신의 일로 만드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인데, 저는 보타니 매장을 통해 그 성취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올해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제 책을 많이 알리고, 다양한 드라이플라워 워크숍을 통해 사람과 자연을 연결하며 사람들의 일상에 행복감을 주는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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