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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다양성, 도시, 재생

세기말 감성 가득한 북촌 레트로 숍

남승민 디스레트로라이프 대표

Text | Solhee Yoon
Photos | Hoon Shin
Film | Jaeyong Park

인생네컷, 필름 카메라, 폴라로이드 카메라에 이어 요즘 젊은이의 ‘대세템’은 ‘2000년대 유물’이라고도 불리는 디지털카메라 초기 모델이라고 한다. 왜 이들은 몇천만 화소 카메라가 달린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굳이 저화질의 무겁고 투박한 기기를 찾아 나서는 걸까. 레트로가 도대체 삶에 어떤 활력을 줄까. 옛 사물에 푹 빠져 결국 중고 매장을 차린 남승민 대표의 답은 이러했다.








북촌에는 언제 왔나요?

서촌에 작업실을 두고 쓰다가 이 자리로 온 건 3년째예요. 책을 좋아해 도서관을 자주 가는데 마침 이 동네가 정독도서관과 가깝더라고요. 주변으로 산책로가 잘 가꿔져 있어 초등학생 아이 둘을 키우기에도 좋을 것 같아 집과 디스레트로라이프를 북촌으로 옮겼습니다.



공간이 특이해요. 중앙의 문으로 들어오면 양옆으로 방이 하나씩 있네요.

원래 가정집이었대요. 듣기로는 전 세입자가 웹툰 작가였는데 그분 취미가 목공이라 목재 문틀과 천장을 이리 예쁘게 고쳐 쓴 것 같아요. 제가 그대로 물려받아 쓰고 있습니다.(웃음) 처음에는 작업실 용도로만 생각했는데, 디지털카메라라는 기기 특성상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하는 손님이 많아 한 쪽은 작업실, 또 한 쪽은 쇼룸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저서 <디스 레트로 라이프>의 작가 프로필에서 ‘멸종 위기의 빈티지 물품을 판매하는 요원’이란 표현을 보고 무릎을 쳤어요. 특히 ‘멸종 위기’란 단어가 재미있었어요.

사실이 그렇지 않나요?(웃음) 혹시 2000년대 전후에 생산된 전자 기기를 가지고 있나요? 이제는 고장이라도 나면 정말 고치기 어려울 거예요. 교체할 부품을 사는 게 오히려 똑같은 기기를 새로 사는 것보다 더 품이 많이 들 때도 있을 거예요. 사실 늘 내 곁에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 알고 보면 슬슬 멸종되는 중이랍니다. ‘멸종’이 무슨 큰일은 아니에요. 사람들에게 잊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입고된 중고 디지털카메라를 정리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자주 들어요. 과잉의 시대에 폭포수처럼 세상에 쏟아져 나왔는데 찰나의 조명 뒤에 부지불식간에 잊히고 있구나, 사라지고 있구나.








언제 레트로 라이프에 빠졌나요?

매장을 차리기 전에 빈티지 시계 마니아였어요. 예지동 시계 골목에서 수리한 중고 시계나 직접 수리를 맡겨 고친 시계를 해외에 판매하는 일을 했어요.



빈티지 시계가 왜 좋았어요?

살다 보면 시계를 사게 될 때가 있잖아요.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때, 결혼 예물을 준비할 때. 그럴 때 보통 이름 좀 날리거나 사람들이 많이 산다는 브랜드를 찾아본 다음 예산에 맞는 모델을 고르는데, 저는 예지동 시계 골목을 찾아간 게 좀 달랐던 것 같아요. 가게 매대마다 새로운 표정의 낯선 옛것들이 가득해 제 눈이 이만큼 커졌죠. 그 후 매일같이 예지동을 돌아다녔어요. 나중에 왜 이것들이 나에게 충격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제가 발견한 느낌이더라고요. 1960~1980년대에 사람들 손목에서 시간을 알려줬던 이 효율적인 도구를 누구도 그것에 그리 관심을 쏟지 않는 이 시대, 이 도시에서 제가 마주한 느낌이요.




누구도 그것에 그리 관심을 쏟지 않는 이 시대, 이 도시에서 제가 마주한 느낌이에.”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어요. 그 발견이 왜 인상적이었어요?

제 인스타그램 프로필에도 “빈티지가 세상을 재밌게 만든다”라고 썼는데 결국 빈티지는 상상력이거든요. 문학적 상상력이란 말이 있잖아요. 소설을 읽다 보면 이 캐릭터가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상상하며 이해하게 되잖아요. 오래된 사물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상상할 구실이 숨어 있어요. 어떤 시대에 왜 만들어졌고, 재질은 왜 이것이며, 어떤 사람들이 썼는지 등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해요. 시계 속 인덱스, 무브먼트, 핸즈(바늘) 그 각각의 역사를 찾아보고 원리를 이해하고 시대상을 상상하는 게 저는 즐거웠어요.








그러면서 컬렉팅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고요.

맞아요. 자신이 좋아하는 요소 또는 이야기가 사물에 스며드는 때가 오거든요. 그게 트리거인 것 같아요. 이를테면 1990년대에 스와치 시계를 처음 사서 애틋한 마음으로 사용한 기억이 있는 사람은 지금 그 당시의 스와치 시계를 볼 때 그런 기억이 없는 사람과는 다른 지점을 보는 거죠. 자신에게 영향을 준 할아버지, 삼촌, 이모가 선물해준 가방, 책 등도 다른 예가 될 수 있고요. 그렇게 자기만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생기면 빈티지 사물이 확 다가오는 것 같아요.










요즘 2000년대 초반에 나온 디지털카메라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고요. 이유가 뭘까요?

인스타그램이 만들어낸 트렌드라고 생각해요. 사실 스마트폰이 이 시대의 총아잖아요. 전화, 문자, 촬영, 글 작성 등 모든 기능이 그 반질반질한 네모 판에 들어 있죠. 촬영도 얼마나 잘되나요. 2억 화소 카메라를 단 스마트폰도 나온다는 걸요. 그러니까 한편으로는 좋은 퀄리티의 사진을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으니까 간단히 말해 지겨운 거죠. 그런데 필름 카메라나 초기 디지털카메라 사진은 처음 보는 입자감에다 색감도 특이하고 뭔가 달라 보여요. 이건 곧 자신을 특별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되는 거예요. 또 당시 디지털카메라만의 물성이 있잖아요. 재질, 여러 개의 버튼, 누르고 돌리는 조작 방법, 촬영할 때 나는 소리 같은 게 스마트폰과는 다른 느낌이잖아요. 이걸 처음 경험한 젊은 친구들은 신기할 수밖에 없죠. 그러니까 이런 것으로 그 시대와 소통하는 재미를 즐기는 것 아닐까요?








입문용 카메라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나요?

초창기 디지털카메라보다는 후기에 출시된 것 위주로 추천해요. 어느 시기를 넘어서면 브랜드를 불문하고 다 괜찮아요.



사진 찍는 거 좋아하세요?

저는 정물 사진이나 풍경 사진을 즐겨 찍는데 인물 사진이 주는 맛은 또 다른 것 같아요. 특히 아이들 사진 찍을 때 굉장히 기분이 좋아요. 아침에 등교하는 길에, 오후에 하교하는 길에 몇 장씩 찍는데 저에게는 정말 보물 같은 순간이에요. 또 제가 운영, 편집하는 유튜브 채널이 하나 있어요. ‘시켜서하는tv라고 젊은 시인들과 인터뷰하는 콘텐츠인데 그리 수익이 많은 편이 아니라 인터뷰이 사진을 찍어주고 인화해서 전하는 것으로 감사함을 표하고 있습니다.








디스레트로라이프 구석구석에 컬렉션이 있는데 집에도 따로 모으는 게 있나요?

헌책을 모으고 있어요. 중학교 1학년 사춘기 시절에 처음 접하고 빠져든 미스터리 스릴러물부터 추리 소설, SF소설, 19금 로맨스 소설까지. 예전에 좋아했던 책이 눈에 띄면 무조건 수집하는 편이에요. 똑같은 책이 몇 권씩 있는 경우도 있어요. 가끔 헌책을 읽고 있으면 그 속의 옛날 말투가 묘한 안정감을 줘요. 저는 표지 날개에 저자 사진이 있는 책을 좋아하고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그때는 해외 에이전시와의 공식 계약 절차 없이 무단으로 낸 번역서가 많았거든요. 그 속의 날것 그대로의 표현을 읽는 재미가 또 즐겁습니다. 저는 그것을 1980년대 넷플릭스라고 생각해요. 생뚱맞은 색 조합과 독특한 타이포그래피까지 책 표지도 얼마나 멋진데요.



올해 가장 기대하는 일이 있다면요?

디스레트로라이프 굿즈 출시, 그리고 시켜서하는tv 채널과 관련된 책을 올해에 출판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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