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IV



PEOPLE|네트워킹, 도시, 로컬, 재생

집 안에서 시작하는 지구 탐험

릴리프 에디션 출판사 대표 피에르 파헤

Text | Anna Gye
Photos | Mineun Kim

일 년에 두 번 발행하는 프랑스 독립 잡지 <릴리프>의 처음과 마지막 장은 항상 프랑스 자연주의자 테오도르 모노Theodore Monod의 말로 시작하고 끝난다. “19세기까지 탐험가는 과학자였다. 그리고 지구를 탐험하는 일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연구하고, 함께 궤도를 도는 작고 연약한 생물체를 생각하며 행동해야 한다.” 출판사 대표이자 편집장인 피에르 파헤Pierre Fahys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스스로 탐험가가 되어 주변을 섬세하게 돌아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2016년 잡지 <릴리프>를 만들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과학 관련 팟캐스트를 자주 들었어요. ‘라 테르 오 카레La Terre Au Carre, ‘레 아방튀리에Les Aventuriers’ 같은 채널로, 과학자를 초대해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이죠. 어느 날 여행 기사 마감을 하면서 들었는데, 어떻게 4명의 연구가가 6개월간 남극 연구 기지의 밀폐된 공간에서 생활했는지를 빙하학자 클로드 로리스가 설명하고 있었죠. 연말이면 위스키 한잔 마실 수 있는데 온더록스로 즐기기 위해 밖에서 얼음을 가져왔대요. 그런데 신기하게 남극 얼음에서 수증기가 천천히 올라왔다고 해요. 그때 이 수증기 현상을 빙하에 적용하면 남극의 기후 환경 역사를 파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대요. 저도 영감이 떠올랐죠. 탐험가가 하는 말처럼 생생하고 재미있게 자연을 과학적으로 바라보는 잡지를 한번 만들어봐야겠다고요.








클릭 한 번으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요즘, 왜 자연, 모험, 탐험을 주제로 한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나요?

탐험은 우리를 꿈꾸게 합니다. 집 밖을 나서 극지와 오지로 가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집 안에서, 소파 위에서도 호기심을 가지고 주변을 돌아본다면 그 자체가 탐험이라고 할 수 있죠. 사람과 자연의 관계, 우리 주위의 세계를 똑바로 관찰하게 하는 지력이 바로 탐험입니다. 우리를 절벽으로 몰고 간 코로나19 또한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어요. 다양한 생태계가 공존할 때는 일종의 희석 효과 때문에 전염병이 확산할 가능성이 줄지만 생태계가 단순해지면 확산 효과가 커지죠. 이처럼 우리에게 닥친 시련과 문제의 근본 원인을 되짚어가면 결국 자연으로 압축됩니다. 과거에는 생존을 위해, 권력 확장을 위해 탐험했지만 이제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 사람, 사회를 배우기 위해 탐험해야 하고 모두가 과학자, 탐험가, 혁신가가 되어야 하죠. 프랑스 자연주의자 테오도르 모노Théodore Monod는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연구하고, 함께 궤도를 도는 작고 연약한 생물체를 생각하며 행동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가 작동하는 방법 등을 알려주는 매체가 바로 <릴리프>라고 생각해요.




집 안에서, 소파 위에서도 호기심을 가지고 주변을 돌아본다면 그 자체가 탐험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어떻게 탐험가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처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을까요?

빙하가 기후변화 때문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일상에서 쉽게 경험하는 것이 아니기에 무신경하기 쉽죠. 그래서 어느 빙하학자는 아이슬란드 지역 마을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이 어렸을 때 빙하에서 놀던 이야기를 모아서 책으로 펴내 세상 사람들에게 익숙하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기후변화를 경고했어요. 잡지 <릴리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 과학, 문학, 예술에 대한, 세상에 흩어져 있는 기억, 추억, 사실을 모은다고 생각해요. 곤충과 식물에 관한 일러스트레이션, 바다와 자연에 관한 시와 소설, 과학자와의 인터뷰 등 다양한 화법과 학문을 넘나드는 것을 목표로 잡지와 책 중간 지점의 매체가 되길 바랍니다.












자연, 과학,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다 보면 매번 주제를 선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어렵죠. 그래서 매호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제기하는 자연 요소를 주제로 선정합니다. 그리고 주제를 심도 있게 파고들면서 다각도로 풀어내는 것을 목표로 목차를 선정합니다. 1년 동안 같은 테마 아래 제작된 두 권의 주제가 연관성을 가져요. 예를 들어 ‘불’이라는 테마 아래 사막과 화산을, ‘얼음’이라는 테마 아래 해수 빙하와 자연 빙하를 다루는 식이죠.



페이지마다 여러 명의 필자, 그래픽 아티스트, 일러스트레이터 등과 협업한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만큼 준비 기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요.

맞아요. 1년에 두 번 발행한다고 해도 매달 5명의 에디터가 분주하게 움직여야 모두 소화할 수 있죠. 주제를 정하면 관련 지역을 찾고, 이를 시작점으로 저자, 인터뷰어, 학자, 일러스트레이터 등을 탐색합니다. 팟캐스트에서 많은 자료를 얻어요. 무조건 다양한 앵글을 담는 것보다 때로 인터뷰 전문이 가득하기도 하고, 때로 한 시대 혹은 한 지역과 관련한 연구나 문학을 자세히 소개하는 등 주제에 따라 목차, 흐름, 구성이 달라집니다. 특히 인터뷰에 심혈을 기울이는데 제가 주로 진행합니다.








감동받은 인터뷰어가 있나요?

주제가 ‘평야’였어요. 평야는 파리를 조금만 벗어나면 만날 수 있는 환경이잖아요. 테마가 너무 평이하고 광범위해서 주제와 방향성을 정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결국 땅에 사는 생물의 다양성과 농업에 초점을 맞췄어요. 그리고 역사학자 알랭 코르뱅Alain Corbin이 문학에서 식물을 어떻게 인용하는지 자세히 설명했어요. 환경보호가 필요하다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말이 영원히 기억되었으면 했어요. 그가 기록한 식물들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어 곧 사라질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과거 시대의 지도, 자연 도감, 책 페이지 등을 함께 보여주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지난 호에 조선 시대의 19세기 세계 지도 ‘천하도’를 삽입했어요.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를 필두로 조선 시대에 본격적으로 세계 지도와 함께 지리적 지식이 전파되었는데, 조선 시대 선비들은 자신의 염원과 이상향에 대한 동경을 담아 천하도를 만들었죠. 사실에 기반을 두지 않았지만 상상력으로 만든 가장 드라마틱한 지도라고 할 수 있어요. 이처럼 고대 지도에서는 과거 사람들이 자연을 바라보던 태도와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릴리프>의 앵글은 현재에 머물러 있지 않아요.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대에서 자연과 인류 혹은 자연과 다른 생물체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관찰해 전달하고자 합니다. 책장을 덮는 순간 우리가 살아갈 미래가 지도처럼 보이길 원하죠.










16권의 책이 나왔습니다. 제작 과정에서 흥미로웠던 콘텐츠를 소개해주세요.

현재 작업하고 있는 빙하 이야기를 해볼게요. 시작은 과학입니다. 빙하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구성 물질은 무엇이고 어떻게 지구에 영향을 미치는지 이야기하다 이후 식물학자가 빙하 주변 동식물의 생태 환경에 대해 말하고, 일러스트레이터가 이를 그림으로 보여준 다음 빙하에서 영감을 받은 시와 소설을 소개하는 것으로 전개됩니다.



빙하 탐험가 인터뷰가 이어지고 역사학자가 바통을 이어받아 과거 시대 탐험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죠.

매호 탐험가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데, 그 스토리가 아름다운 것만은 아닙니다. 때론 실패와 죽음으로 끝나기도 해요. <릴리프>는 자연을 더욱 아름답게 보여주는 사진이나 작품,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어요. 공포, 슬픔, 우울 등 자연의 빛과 어둠, 그 현상 자체를 담고자 하죠.








개인적으로 모험과 도전을 추구하는 탐험가인가요?

집 밖을 나서지 않아도 탐험을 즐길 수 있어요. 저는 매번 잡지를 만들면서 만나는 각 분야 전문가들 덕분에 간접적으로 탐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또 문학작품을 통해 물리적 거리보다 더 먼 곳으로 떠나고, 상상하고, 모험을 즐기죠.



출판사에서는 매거진 발행 외에 별도로 고대 지도를 제작하고 있어요.

잡지를 제작하면서 옛날 지형을 파악하기 위해 과거 지도를 자주 찾아보았는데, 고대 지도를 통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고대 지도는 특수 종이를 이용해 오프셋 잉크로 제작합니다. 어느 시대 특정 지역의 지도만 다루는 것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미시시피강 지도의 경우 15개의 지도를 겹친 작품입니다. 이로써 주기별로 강줄기가 어떻게 변하는지 볼 수 있죠. 강이 생물체처럼 스스로 면적을 확장하고 주변 생태계를 자생적으로 가꾸어나간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어요. 강은 살아 있어요.








출판사가 위치한 동네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제가 태어나고 자란 파리 11구에 출판사가 있어요. 집과 5분 거리죠. 옆에 자그마한 공원이 있어 자연에 대한 영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잡지 외에 제작하는 릴리프 굿즈, 고대 지도, 공책, 실크스크린 포스터, 어린이용 야생동물 색칠 포스터와 책 등을 판매하는 쇼룸 역할도 해요. 현재 에디터들은 재택근무 중이에요. 주로 제가 이곳을 지키고 있죠.








볕이 가득 들어오는 명당 자리에 본인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네요.

오래된 나무의 질감을 좋아해요. 글이 풀리지 않을 때 종이 넘기듯 손으로 나무를 쓰다듬다 보면 뭔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모두 벼룩시장에서 구한 것이에요. 원래 미용실에서 사용하던 거라 하더라고요.



책상 위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물건이 있나요?

찻주전자요.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서 차로 바꿨는데, 이제는 차를 너무 많이 마시네요.(웃음)




RELATED POSTS

PREVIOUS

나와 오브제와의 관계, 그 친밀감이 편안한 곳
라이팅 디자이너 마이클 아나스타시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