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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발견한 아파트 1층의 매력

구중정 구중정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 대표

Text | Solhee Yoon
Photos | Ken Pyun
Film | Taemin Son

“어찌 내 집 하나 수리하지 않았으면서 이런 집에서 살아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이건 다 제가 배우려고 선택한 거예요.” 구중정 대표는 포대를 나르고 블랙 벽지를 찾아 헤매던 공사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맞다. 세상만사 모든 일이 사실 집에서 작게 가장 먼저 일어난다. 그러니 내 집에서 생긴 질문과 고민과 깨달음이 중요하다. 그것이 곧 현관문을 나가 도시로 번져갈 테니까.








고양이가 함께 반겨주다니! 영광인걸요.

이 친구 이름은 만두예요.(웃음) 이렇게 사람을 좋아해요. 3살 때부터 같이 살았는데 벌써 13살이에요. , 안으로 들어오세요.



여기가 고양시이죠? 이 집에 이사 온 지는 얼마나 됐나요?

이제 2년 차 새내기예요. 이사 오기 전에는 서울에서 살았고요. 제 여건상 서울을 벗어나는 게 여러모로 좋겠더라고요. 첫째는 집값이 계속 오르니까 서울에서 제가 원하는 조건의 집을 구하기 어렵겠다는 경제적 판단이 먼저 있었어요. 제 예산으로는 전세나 월세살이만 가능하겠더라고요. 둘째는 아무튼 사무실은 서울에 있을 테니 ‘출퇴근 거리 1시간’을 한번 실험해보자 싶은 오기가 있었죠. 제 꿈이 서울 외곽 어느 동네에 직접 집을 짓고 사는 것이거든요.








입주하면서 인테리어를 싹 새로 했나 봐요. 사는 곳마다 이렇게 신경 써서 가꾸는 편인가요?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 설계 일을 하면서 ‘자기 집도 안 지어본 건축가에게 누가 집 설계를 의뢰할까’ 하는 의문이 있었어요. 현실적으로 그렇게 따지고 보면 사실 자기 집 지어본 건축가는 몇 안 돼요. 대한민국 국민의 70%가 공동주택에 산대요. 그러니까 10명 중 7명이 아파트나 아파트와 비슷한 곳에 산다는 거죠.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대중적인 아파트란 유형에 들어와 나만의 집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 내 마음대로 실험해보자. 그래야 건축주 마음도 알지!



건축주의 마음이자 건축가의 마음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건축주의 마음은 눈으로 보이지 않죠. 비용 절감이니까요.(웃음) 저는 한 달간 직접 작업복을 입고 쓰레기를 나르고 현장 청소를 하고 목수 아저씨들 밥 사드리며 공사비를 아꼈습니다. 건축가의 마음은 색을 한번 제대로 써보는 것. 요즘 아파트 인테리어 경향을 쭉 보니까 화이트가 대세더라고요. 그런데 제 눈에는 심심해 보였어요. 그렇다면 큰돈이나 많은 재료를 쓸 수 없으니 적재적소에 색을 입혀 공간에 입체감을 만들어보자 싶었습니다. 베란다 창 주변의 검은색 프레임이 바로 그것이에요. 풍경이 프레이밍되어 마치 생생한 액자 같아 보이지 않나요? , 그리고 주방 상부장을 낮게 달아 만두가 올라가 놀 수 있게 하고, 얘가 바깥 보는 것도 좋아해서 창 쪽으로 오가는 길도 열었습니다.




집을 내 마음대로 꾸미면 동네는 아무 상관 없더라고요. 어차피 안 나갈 거니까.”




공사 과정을 온몸으로 겪었으니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아요.

블랙 벽지가 시중에 잘 없어요. 찾아보니까 딱 한 브랜드에만 있더라고요. 그걸 사다가 도배 장인에게 드렸더니 대뜸 “집주인한테 혼나요” 그러시더라고요. 도배 풀을 먹이면 검은색이 흰색으로 변색돼 나중에 클레임 들어올 거라고.(웃음) 제가 책임지겠다고 단단히 약속하고 시공했습니다. 확실히 블랙 벽지가 까다롭긴 하더라고요. 풀 먹이고 닦고, 어디는 매직으로 칠하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집을 꾸미고 나니 달라진 게 있나요?

장점이자 단점일 수도 있는데 집 밖을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동네 아니면 안 돼’, 이런 마음으로 온 게 아니라서 더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니까 조금 과하게 이야기하면 집을 내 마음대로 꾸미면 동네는 아무 상관 없더라고요. 어차피 안 나갈 거니까.(웃음)










집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하군요.

더욱이 1층이라 거실에 앉아 있으면 카페에 온 것 같기도 합니다. 창밖으로 지나다니는 이웃들이 보이죠. 홀로 사는 외로움도 느낄 새 없이 만족하며 살고 있어요. 집이란 이런 거구나 하고요.



마지막 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어요.

주위를 둘러보면 정말 다양한 공적 공간이 있죠. 카페, 서점, 도서관, 빨래방 등. 우리는 이런 곳을 돌아다니며 시간과 돈을 쓰죠. 저 역시 학교에서 건축을 배울 때 그렇게 배웠어요. 현대 도시는 최소의 집과 최대의 공적 공간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그런데 이 집에서 먹고 자고 일도 하며 지내니까, 특히나 코로나19 2년을 집 안에서만 살다시피 하니까 집이 생각보다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오히려 우리가 집의 의미를 너무 얕봤다 싶은 거죠. 그걸 깨달은 것 같아요.








이 집에서 더욱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 세운 규칙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여기는 밥 먹는 자리, 작업하는 자리, 책 보는 자리, 눕는 자리 등등 구역을 나누어 각각 역할을 부여했어요. 이렇게 해두면 그 구역만 어지르고 치우면 돼서 편해요. 혼돈에 쉽게 빠지지도 않고요.








환경문제에 책임 의식을 느끼고자 에어컨을 들이지 않았다고 한 글을 봤어요.

, 맞아요. 1년을 에어컨 없이 살았어요. ‘기후변화’를 ‘기후 위기’라고 부르는 마당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결국 얼마 전에 에어컨을 들여왔어요. 왜냐하면 그 말을 지키려고 선풍기를 3대나 틀어야 했고, 만두가 힘들어하는 게 미안했어요. 외려 ‘이게 맞나’ 싶었죠. 그래서 에어컨을 들이되 폭염일 때만 짧게 사용하기로 했어요. 저는 1년 중 한 2주 정도 한낮에만 사용해요.



내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의식하고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실천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텀블러도 늘 가지고 다녀요. 속으로 마일리지를 쌓죠. , 나 오늘 종이컵 하나도 안 버렸어, 나이스!










냉장고 옆면에 마라톤 메달이 많네요. 달리기를 좋아하나 봐요.

2016년 말 한창 건축사 시험 준비를 할 때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졌어요. 그때 한 선배가 달리기를 해보라고 권하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했어요. 요즘은 바빠서 일주일에 2번 정도 10km씩 뛰어요.



한번 뛸 때마다 10km를 뛴다고요?

30~40분 정도 달리다 보면 저절로 다리가 움직이는데 그때 엄청난 희열을 느껴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란 말이 그 뜻이에요. ‘달리기 애호가들이 느끼는 도취감.’ 비 오고 바람 부는 궂은 날에 달리잖아요? 더 행복해요.(웃음) 당장 멈추고 싶을 만큼 힘들지만 사실 죽지는 않거든요. 한바탕 뛰고 집에 와서 개운하게 씻고 시원한 맥주 한잔 할 때, ! 진짜 좋아요. 10km, 20km, 42km 이 거리가 사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죠. 그럴 때는 그냥 뛰어야 해요. 천천히 오래. 제가 하는 일도 그런 것 같아요. 결국 생활도, 마라톤도, 모두 다 이어져 있죠.










직접 마라톤 코스를 짜서 달리기도 하나요?

마침 기회가 닿아 지난해 코오롱스포츠 연계 프로그램으로 ‘건축학개런’을 진행했어요. 남산 일대를 한 시간 정도 뛰며 독일문화원 등 도심의 건축물을 감상하는 건데, 사실 우리가 늘 그 앞을 지나다녀도 저 건물이 뭐가 좋은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잖아요. 그걸 한번 알아보자, 소개해보자 하는 기획이었어요. 올해 봄에도 진행할 거예요. 한번 꼭 참여해보세요.



마지막 질문은 건축가이기에 드릴 수 있는 질문 같네요. 좋아하는 아파트가 있나요?

잠실의 아시아선수촌아파트를 좋아해요. 조성룡 건축가, 정영선 조경가의 작품인데, 직장이 그 근처라 3년 동안 매일같이 다녔어요.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사무실까지 가는 길이 아시아선수촌아파트를 가로지르는 길이었어요. 어디로나 열려 있는 단지라 누구나 공원 같은 그 속을 누릴 수 있었죠. 그 길이 정말 근사했어요. 그리고 또 스위스 건축가 페터 춤토르가 설계한 노인을 위한 집(Home for Senior Citizens) 공동주택도 좋아해요. 그곳의 특징은 넓은 복도예요. 복도가 폭 3m, 길이 40m 정도 되거든요. 그러니까 여기가 곧 주민들의 거실이자 운동장이자 놀이터가 돼요. 하나 더, 그 복도를 바라보는 쪽으로 작은 창이 나 있어요. 만약 나가기 싫으면 집에서 창으로 복도를 바라만 봐도 되는 거예요. 소극적 참여, 능동적 참여 모두 가능한 열린 아파트죠. 저도 만약 아파트를 설계한다면 그런 커뮤니티 장을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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