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IV

PEOPLE|로컬, 큐레이션, 프리미엄

망원동에서 외치는 보통 사람들을 위한 건배사

강성구 복덕방 내추럴 막걸리집 대표

Text | Solhee Yoon
Photos | Ken Pyun
Film | Taemin Son

음식점에 들어가 자리에 앉는다. 무엇을 보는가? 카운터에서 전해온 인사, 주방에 감도는 분주한 기운, 홀을 채우는 밥상, 그리고 마침내 이곳의 맛과 관심과 애정이 듬뿍 묻어난 메뉴판으로 몸을 기울인다. 복덕방 내추럴 막걸집 메뉴판은 특이했다. 투명 박스 테이프로 한 장 한 장 셀프 코팅한 공책을 8년째 쓰고 있다. 강성구 대표는 그것이 제 역할을 하고 있으니 끝까지 믿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어쩐지 이곳, 심상치 않다.








메뉴판은 운영자의 철학이나 태도와 닮아 있다고 생각하는데 복덕방 내추럴 막걸집 메뉴판은 오래 쓴 공책이네요.

저는 무엇이든 쓸 수 있을 때까지 다 쓰자는 주의예요. 이 공책도 아직 빈 곳이 더 남았으니까 여전히 쓰고 있고요. 여기 홀에 있는 가구도 그래요. 삐걱거리거나 깨진 부분은 제가 치료해가면서 쓰고 있어요.



가구를 치료한다니, 낯선 조합인데 번뜩 이해가 되네요. 벽에 편지가 많이 붙어 있어요.

한번 읽고 서랍에 넣어두면 그 감동이나 감사함이 쉽게 잊히더라고요. 여기 붙여뒀다고 매일 읽고 매일 감동받고 그러지는 않지만, 가끔 그 앞에 설 때마다 그때 그랬지, 그 사람 참 고마웠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복덕방이란 게 공인중개사 사무소란 뜻이지만, 인심이 좋아 편의를 잘 봐주는 이웃 이미지도 있잖아요.”




가게 이름이 재미있어요. 막걸리와 복덕방의 조합이라니.

복덕방이란 게 공인중개사 사무소란 뜻이지만, 인심이 좋아 편의를 잘 봐주는 이웃 이미지도 있잖아요막걸집을 열겠다고 마음먹고 나서 구수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의 가게 이름을 고민했어요. 그때 마침 가게 임대 계약서를 뒤적이다가 ‘복덕방’을 떠올렸어요. 집이든 사업이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란 이미지도 좋았고요.



어릴 때 복덕방에 가보셨나요?

또렷이 기억은 안 나지만 가봤어요. 동네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장기나 바둑을 두고 약주도 한잔 하고 계셨어요. 근처에서 얼쩡대면 빨대 꽂은 요구르트도 하나 얻어 먹었죠. 에너지가 있고 따듯함이 있는 곳이었어요.








망원동에서 8년째 장사하고 있다고요. 처음에는 망원동의 인기가 지금 같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이 자리를 선택하게 됐나요?

저렴했고 동네에 사람이 많았어요. 저는 상권을 분석할 때 미용실과 부동산 분포를 봐요. 동네에 사람이 많으면 미용실이나 부동산도 많거든요. 그리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일 것 같은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르죠. 원장님과 수다 한번 떨면 동네 분위기가 바로 파악되거든요. 여기도 미용실 자리였어요.










굉장히 명쾌한 지표네요. 그래도 중간에 변화를 주고 싶다거나 이사를 가고 싶은 적은 없었어요?

가끔 더 넓고 시설이 잘되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은 생각도 드는데, 그러다 말아요. 이유는 이 작은 공간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손님을 최선으로 대접하는 게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무엇보다 이곳에 추억이 쌓였어요. 총각 때 여자 친구와 함께 문을 열었는데 어느덧 부부가 되고 아이도 생겼죠. 손님들도 마찬가지예요. 저희 가게에서 연애를 시작해 부부가 되고 엄마 아빠가 된 손님, 사회 초년생 때 처음 왔다가 이제는 팀장급, 대리급이 된 손님도 있어요. 그 추억이 다 이 공간에 있으니까 나만 좋자고 바꿀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대표님 맘에 드는 술만 판다’는 큐레이션 막걸리집으로 유명해요. 처음부터 그랬나요?

개업 초기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유명한 막걸집 메뉴판을 조사해 후보를 추리고 믿음이 가는 양조장 제품을 골라 소개했어요. 근데 장사를 할수록 자신감이 없어지더라고요. 고민하던 차에 정말 우연하게 거제도의 저구막걸리 양조장을 갔어요. 늦은 밤에 도착해 양조장 대표님 댁에서 하룻밤 잤는데 술 한잔을 사이에 두고 자신이 어찌 살아왔는지, 왜 막걸리를 빚게 되었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더라고요. 그것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같이 생생했어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막걸리를 먹으니 그 사람 맛이 나더라고요. 술 빚은 사람을 닮은 거예요. 그때 깨달았죠. 양조장마다 깃든 이야기를 손님에게 잘 전달해주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그때부터 양조장 대표의 철학이 느껴지는 막걸리를 소개하고 있어요.



그러면 장사할 상품 종류가 적어지잖아요.

예전에는 막걸리부터 소주, 맥주, 콜라까지 다 팔았어요. 근데 선택의 폭이 넓어질수록 우리 색깔이 옅어지더라고요. 저는 사실 빨간색이 좋다고 말하는데 사람들은 주황, 노랑, 초록, 파랑, 온갖 색을 원하는 상황이 와요. 그래서 아예 더 빨개지자 결심하고 감미료가 들어간 막걸리와 다른 주류, 음료수를 다 걷어내고 ‘무감미료’ 막걸리만 팔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우리 색깔이 진해지고 이 맛을 좋아하는 손님들이 더 오더라고요.








본인의 기준에서 맛있는 막걸리란 어떤 건가요?

“어떤 막걸리가 맛있어요?”라고 사람들한테 묻잖아요? 그럼 이런 답이 나와요. ‘아버지와 등산 갔다가 하산하면서 먹은 막걸리’, ‘군대에서 헬기 레펠 훈련 끝내고 헬멧에 받아 먹은 막걸리’, ‘여행길에서 한참 헤매다가 간신히 찾은 음식점에서 먹은 막걸리’, 막걸리는 그런 술이에요. 좋은 추억이 있으면 맛있어져요.



결국 중요한 건 이야기네요.

저는 손님들이 막걸리를 드실 때, 만든 사람이 누군지, 왜 이 재료로 이런 맛을 냈는지 등 다양한 이야기를 알고 드시면 좋겠어요. 그럼 소비의 가치도 올라가잖아요. 그게 제가 테이블에서 막걸리 한 병 한 병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이유이고요. 제가 잘하고 또 해야 하는 일이죠. 술을 빚는 대표님들께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손님의 첫 잔을 제가 채워드리며 누가 여기 오자고 했는지 물어본 다음에 ‘오늘을 최고의 날로 만들어드리겠다’고 말씀드려요. 손님들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방식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 주문을 거는 거예요. 초심을 잃지 말자고.










직접 양조도 하시나요?

수많은 양조장을 다니면서 생각해온 이상적인 방식으로 고집스럽게 술을 빚는 양조장 대표님을 만나 2년간 개발한 끝에 복덕방 내추럴 막걸리를 출시했어요. 내추럴 막걸리란 말 그대로 쌀, 누룩, 물만으로 ‘자연히’ 빚어지는 막걸리예요. 아시죠? 옛날에는 막걸리를 집집마다 빚었어요. 김치를 담그는 것처럼요. 대량생산에 따른 품질 유지를 위해 인공감미료를 넣는 막걸리와 태생부터 다르죠.



그러고 보니 페트병이 아닌 유리병이네요. 막걸리 ‘집’의 품격을 높인 셈이군요.

용기도 이 내용물의 특징과 성격과 메시지를 드러내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저희 막걸리가 와인과 같은 역할과 위상을 지닌다고 믿고요. 실제로 프랑스와 이탈리아 음식과도 잘 어울려요.








술을 빚는 일은 일상에 어떤 깨달음을 주나요?

좋은 술을 빚고자 한다면 늘 똑같은 환경을 갖추는 게 중요해요. 그럼에도 계절에 따라, 기온에 따라, 습도에 따라, 숙성 일자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달라지죠. 그 차이를 느끼는 게 술을 즐기는 묘미이고요. 근데 인생도 그런 것 같아요. 요즘 사람들은 똑같은 일상을 지루해하고 벗어나려고 하는데, 사실 매일이 특별할 순 없잖아요. 그러니 자연히 보통의 날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달까요. 그러면서 조금씩 내 행복을, 내 맛을 찾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맛이란 매우 주관적인 데이터이고 자신이 느끼는 바에 달려 있는 거잖아요.



가볍게 ‘혼술, 홈술’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데 대표님의 홈술 메뉴가 궁금해요.

대중적인 공식을 따르는 편입니다. 매콤하고 양념이 진한 무침이나 볶음과는 녹진한 막걸리를, 바삭하고 포근한 튀김에는 시원한 맥주를 합니다. 중요한 건 술잔이에요. 저는 입술이 닿는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2023년에 계획하는 일이 있다면요?

2023년은 저희에게 전환점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한 해가 될 것 같아요. 해외 시장의 문을 계속 두드리고 있고 몇몇 도시의 플랫폼과는 팝업 개최와 이벤트 자리까지 만들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저희 이름을 알리는 여정의 시작일 것 같아요.



8년이란 숙성 끝에 제대로 맛을 낼 참이군요.

이야기를 알고 먹으면 더 좋다는 걸, 그럼 돈 쓴 보람도 생긴다는 걸 더 많은 분들께 알려드릴 겁니다. 그럼 이야기를 따라 막걸리를 찾는 분이 많아지겠죠. 사람들이 생각하는 막걸리 이미지도 달라지고, 그들의 관심이 다시금 술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고, 더 많은 양조장이 생기고, 쌀 소비가 늘고, 농업이 부흥하고, 결국 나라가 강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러니까 지금 제가 할 일은 이곳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위해 막걸리 한 병이라도 더 소개하는 거죠.(웃음) 어떤 생각을 갖고 움직이느냐가 결국 그 분야의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거 같아요. 제가 늘 이야기하는 시대를 위해 앞장서겠습니다.




RELATED POSTS

PREVIOUS

나와 오브제와의 관계, 그 친밀감이 편안한 곳
라이팅 디자이너 마이클 아나스타시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