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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프랑스를 연결하는 신사동 갤러리

르누 프랑수아, 박수지 모먼트시리즈 대표

Text | Young-eun Heo
Photos | Ken Pyun

신사동의 작은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짙은 초록색 간판과 외벽이 반겨주는 아트 프린트 갤러리를 만나게 된다. 따스한 목재 바닥과 책상이 놓인 이곳에는 프랑스인과 한국인 부부 일러스트레이터가 일상과 상상의 경계에서 찾은 풍경이 벽에 걸려 있다.








짙은 초록색 간판과 외벽을 보고 모먼트시리즈 갤러리임을 알았어요.

박수지 갤러리를 대표하는 색이 하나 있었으면 했거든요. 너무 귀엽지 않고 심오하지도 않은 중성적인 모먼트시리즈의 그림을 잘 표현해줄 수 있는 색으로 초록색이 적당하다고 생각해 골랐어요. 또 초록색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니까요.



유튜브로 두 분이 갤러리를 준비하는 과정을 봤어요. 프랑수아는 바닥 목재를 엄청나게 고민해서 고르더라고요.

르누 프랑수아 따뜻한 갤러리가 되길 바랐거든요. 전에 성수동의 오르에르를 갔었는데 나무로 전체를 꾸민 공간이 인상적이었어요. 모먼트시리즈 갤러리도 나무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곳이었으면 했어요.










갤러리 중앙에 긴 테이블과 의자를 둔 이유도 궁금해요.

박수지 ‘편하게 앉아서 우리 그림을 마음껏 감상하고 가세요’라는 단순한 의도였어요. 대형 미술관에서 그림 앞에 의자를 두는 것처럼요.



진짜로 관람객들이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보고 가나요?

박수지. 의자에 앉아 오랫동안 그림을 보는 분도 있고, 아이와 산책하다 들어와서 아이를 앉히고 함께 그림을 보고 가는 분도 있어요.








두 분은 파리 예술학교에서 처음 만났다고 들었어요. 서로의 첫인상이 어땠나요?

박수지 처음에는 서로 관심이 없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아틀리에 수업 때 옆에 앉으면서 안면을 텄어요. 아틀리에 수업은 4시간 동안 그림을 그리는 거라서 옆에 앉은 친구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아요. 근데 그때도 ‘아, 이런 친구가 있구나’ 정도였죠. 프랑수아를 인식하게 된 건 그림을 보고 나서예요.



그 마음 이해해요. 그림 잘 그리는 친구에게는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죠.

박수지 한국에서는 입시 미술을 해서 미대생 대부분이 기술적으로 완벽하잖아요.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대학교에 입학하고 그림을 배우는 학생이 많아서 상대적으로 그림 실력이 부족한 친구들도 있어요. 그런데 프랑수아는 처음부터 그림을 잘 그렸어요. 알고 보니 어릴 때부터 그림을 즐겨 그렸다고 하더라고요.

르누 프랑수아 저도 수지 그림을 보고 관심이 생겼어요. 오브제 20개를 그리는 과제가 있었는데 수지 그림이 눈에 확 띄었어요. 한 장이 아니라 20장 전부 잘 그린 것을 보고 이 친구는 정말 그림을 잘 그리는구나 생각했어요.



그럼 언제 동료로서 함께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수지 학교에서 팀 작업을 하면서요. 프랑수아가 그림을 잘 그리니까 팀을 이루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왕이면 잘하는 사람이랑 하고 싶잖아요. 그렇게 팀이 되어 함께 작업하는데 잘 맞았어요. 당연히 결과물도 점수도 좋았고요. 그 이후로 프랑수아와 같이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어요.








작업할 때 분업하나요?

박수지 처음에는 모든 단계를 함께 작업했는데 지금은 프랑수아가 밑그림과 배경을 그리고, 저는 캐릭터와 채색을 담당해요. 마지막으로 함께 그림을 보며 세세한 부분이랑 색감을 조금씩 수정하면서 완성해요. 배경을 그리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리기 때문에 프랑수아가 작업하는 동안 저는 외부 커뮤니케이션 등 운영에 필요한 업무를 하고요.



부부가 함께 일하다 보면 부딪칠 때도 있지 않나요?

박수지 커플로서 싸울 때는 있지만 신기하게도 일로 싸운 적은 없어요. 각자 잘하는 분야가 달라서 그런지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주는 상호 보완적 관계예요.








모먼트시리즈는 프랑스에서 데뷔했어요. 제 생각에는 예술의 도시 파리가 일하기 더 좋은 환경일 텐데 한국에 온 계기가 있나요?

박수지 2019년에 모먼트시리즈를 결성한 후 우리를 알리기 위해 파리의 에이전시를 찾아다니고 한국에서 열리는 공모전에 참가했어요. 그런데 1년도 안 돼서 코로나19가 터졌어요. 당시 프랑스는 외출증을 발급받아야 집 밖으로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이동을 강하게 제한했거든요. 반면 한국에서는 프로젝트를 문의하는 곳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으로 가기로 결정했죠.




색이나 배경으로 우리가 전하고 싶은 감정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프랑수아에게 한국으로 온다는 건 큰 도전이었겠네요.

르누 프랑수아 한 번쯤은 다른 곳에서 살아보고 싶었어요. 저는 지금까지 파리 외곽, 한국으로 치면 경기도 같은 곳에서 태어나 쭉 자랐거든요. 한국에 정착하기 1년 전, 수지 가족을 만나기 위해 서울에 와서 3주 정도 보낸 적이 있어요. 그때 서울은 파리와 같은 대도시이면서도 고요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은 인상으로 남았죠.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모먼트시리즈 갤러리를 열었어요. 작업실이 아닌 갤러리를 먼저 연 이유가 있나요?

르누 프랑수아 파리에는 그림과 오브제를 판매하는 소규모 갤러리가 많아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갤러리’ 하면 고가의 그림을 판매하거나 들어가기 어려운 곳으로 생각하더라고요. 그래서 접근하기 쉬운 갤러리를 만들고 싶었어요. 또 우리 그림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고요.

박수지 디지털로 작업하니까 항상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그림을 봤거든요. 그런데 첫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화면 밖으로 나온 우리 그림을 보게 되었는데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이 느낌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죠.



일반적으로 ‘소규모 갤러리’ 하면 성수동, 서촌 같은 지역을 생각하는데 모먼트시리즈는 신사동에 자리 잡았어요.

박수지 우리가 본 곳 중 이 자리가 제일 좋았거든요. 사람들이 지나가다 쉽게 들어올 수 있는 1층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앞에 공원이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파리에서는 목요일 저녁에 전시 오프닝을 열어요. 그러면 지나가는 사람 누구나 들어와서 그림을 감상하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죠. 모먼트시리즈 갤러리가 그런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전시 오프닝 때 그림을 보고 나서 앞에 있는 공원에 들러 잠시 쉬거나, 오프닝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 나누면 좋을 것 같았어요.



우연히 지나가다 보고 들어오는 사람도 있나요?

박수지, 있어요. 주변에 에어비앤비가 있는지 종종 외국 관광객이 들어와서 그림을 보고 구매하기도 해요. 때로는 동네 사람이 들어와서 그림에 관해 물어보거나, 천천히 둘러보고 구매하는 경우도 있고요. 작가로서 제일 기분 좋은 순간이에요. 오롯이 우리 취향과 비전이 담긴 그림에 관심을 갖는 거니까요.








제일 반응 좋은 그림은 뭐예요?

박수지 책장 앞에서 디디에가 자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랑 우리 캐릭터를 활용한 축구 게임 테이블을 그린 그림이 인기가 많아요. 솔직히 저와 프랑수아가 특별히 아끼는 그림은 따로 있거든요. 신기하게도 사람마다 좋아하는 그림이 다 달라요.



모먼트시리즈 그림 속 배경은 ‘파리 6구 모먼트 5가’라는 가상의 공간인데 100% 허구인가요?

르누 프랑수아 모먼트 5가는 상상 속 동네지만 파리 6구는 실제로 존재해요. 파리는 구역마다 분위기가 다른데 파리 6구는 학자와 교육자, 예술가가 많이 사는 곳이라 조용하고 그곳만의 분위기가 있어요. 파리도 서울처럼 살기 복잡해서 노인들은 점점 외곽으로 나가거든요. 그런데 6구에서는 멋스럽게 꾸민 할머니, 할아버지를 자주 볼 수 있어요.










어쩌면 파리 6구 모먼트 5가는 두 사람의 이상향일 수 있겠네요.

박수지 그렇죠.



그림에 등장하는 페드로와 마리 부부, 반려견 디디에, 이웃사촌 루이는 두 분을 모델로 구상한 캐릭터인가요? 그림을 보면서 두 분이 생각났거든요.

박수지 캐릭터의 배경이나 성격을 설정할 때 우리 취향을 담는 건 맞지만 100% 저희는 아니에요. 제가 커피를 좋아해서 페드로의 직업을 바리스타로 설정했고, 저희가 식물을 좋아하는 취향을 담아서 마리의 직업을 플로리스트로 정했어요. 또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프랑수아의 성격을 반영해 공상을 좋아하는 소설가 루이를 탄생시켰고요. 우리의 성격, 취향, 관심사를 골고루 섞어 만들었어요.



SNS에 올라온 반려견 사진을 보고 ‘디디에가 이 친구구나!’ 했어요.

르누 프랑수아 사실 디디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종이에요. 그런데 종종 사람들이 물어봐요. 혹시 영화에서 영감받은 거냐고요. 디디에라는 이름의 강아지가 주인공인 프랑스 영화가 있거든요.








모먼트시리즈의 그림 속 캐릭터들은 눈과 입이 없어요. 눈과 입은 감정을 나타내는 중요 요소인데 안 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박수지, 입 같은 직접적인 요소가 없어도 색이나 배경으로 우리가 전하고 싶은 감정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희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거든요. 예를 들어 힘든 하루를 보냈다면 소파에 앉아 술 마시는 페드로가 지쳐 보이겠지만, 반대로 멋진 하루를 보냈다면 같은 그림인데도 페드로가 자신감이 넘쳐 느긋하게 술을 마시는 것처럼 보일 거예요.



그렇다면 배경에 특별한 정보를 담으려고 하는 편인가요?

르누 프랑수아 인물 못지않게 배경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특별한 의도를 숨기진 않아요. 대신 그림 주제를 정할 때 전체 분위기를 먼저 생각하죠. 상상한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서 그것을 잘 구현할 수 있는 오브제와 소품을 찾아서 그려요.








이제 막 시작했는데 모먼트시리즈 갤러리에서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르누 프랑수아 한국과 프랑스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었으면 해요. 특히 일러스트레이션 분야에서요. 한국에는 프랑스 작가를, 프랑스에는 한국 작가를 소개하는 창구가 되고 싶어요.

박수지 인지도는 낮지만 작품은 좋은 작가와 신진 작가의 전시를 하면서 우리만의 작가 커뮤니티를 이뤘으면 해요. 지금은 우리 그림만 전시하지만 앞으로는 우리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그림도 전시할 생각이거든요. 그러면 새로운 그림을 보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이 자주 찾아오지 않을까요? 사람들이 모먼트시리즈를 차갑고 접근하기 어려운 갤러리가 아닌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공간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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