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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집을 200% 대대적으로 쓰는 법

시샘 그림책 테라피스트

Text | Solhee Yoon
Photos | Ken Pyun
Film | Taemin Son

시샘책방은 주인장 시샘이 선정한 그림책을 읽으며 생각과 시간과 마음을 나누는 곳이다. 특이한 점은 이곳이 일반 서점이 아니란 것. 그저 말 그대로 ‘시샘이라는 사람의 집에 있는 책방’이란 뜻이다. 자신만의 공간이 생기며 그림책만을 위한 공간을 가지고 싶다는 꿈을 ‘책방’으로 표현한 게 시작인데, 이 작은 차이가 일상의 큰 변화로 이어졌다.








이름의 의미부터 물어야겠어요. 제가 생각하는 ‘시샘하다’의 시샘 맞나요?

종종 같은 질문을 받아요. 대부분 이런 느낌이에요. “에이, 설마 아니죠?(웃음) 근데 맞아요. 대학생 때 필명을 만들려고 하면서 제가 쓴 글을 다시 본 적이 있어요. 그때 마치 자기소개 같은 구절을 봤죠. “땅이 별을 보며 시샘했다.” 땅이 별을 보며 “쟤는 반짝이는데 나는 반짝이지 않아” 하며 부러워하는 대목이었어요. 근데 그 모습이 딱 저 같더라고요.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모습이요?

. 저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들은 멋진 것 같고 나만 뒤처진 것 같아 많이 속상해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시샘’이란 저의 연약한 면이자 저를 가장 솔직하게 표현하는 단어 같았어요. 보통 시샘은 부정적인 어감으로 쓰잖아요. 근데 ‘저는 질투가 많고 시샘이 많은 사람’이라서 시샘이라고 소개하면 상대방도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편안하게 보여주더라고요. 그런 장점이 있어요.








이 집에는 언제 이사 왔어요? 계기가 있었나요?

올해로 6년째예요. 이 동네에 이사 올 때는 직장인이었어요. 신사동에 회사가 있었는데 강남은 집값이 너무 비싸서 버스 한 번으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강북에 집을 얻고 싶어 발품을 팔다가 이 집을 만났죠. 한강과 가깝고 제 예산과 출퇴근 거리가 딱 맞았어요. 그리고 중요한 조건 하나 더, 투룸이었죠. 생활하는 방 외에 별도로 방 하나를 책만 두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만큼 책을 좋아했나 봐요.

대학생 때부터 그림책에 빠졌어요. 헌책방에서 우연히 본 그림책 한 권이 시작이었고요.




저는 한 번에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 몇 번이고 테이블을 옮기고 조명을 옮기며 조금씩 자리를 찾아가는 사람이에요.”




어떤 책이었는데요?

<용기>란 그림책이었어요. 여러 가지 용기를 소개한 책인데 어른이라면 30% 이상은 해본 것들이 나와요. 근데 그것만으로도 ‘나 굉장히 용기 있는 사람이네! 나는 더 잘할 수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해져요. 아마 그때 제가 용기가 필요해서 더 감동했던 것 같아요. 대학생이 되고 새로운 환경과 사람에 적응하면서 한편으로 꽤 긴장하고 있었나 봐요.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는 자신에 대한 관심이 집에 서가도 아닌 책방 만들기로 이어졌네요. 책방이라서 인테리어에 특별히 신경 쓴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저희 집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게 이 테이블이에요. 이 테이블 살 때 가구 단지를 다 뒤졌어요. 다리가 가늘면 좋겠다, 발 디딜 데가 있으면 좋겠다, 마주 앉았을 때 친밀감이 느껴지도록 폭이 좀 좁으면 좋겠다 등등 온갖 까탈을 다 부렸어요.(웃음) 조명도 아빠랑 조명 상가란 상가는 다 돌아다니면서 고른 것들이에요.



아버지와 같이 꾸민 추억도 깃든 셈이네요.

아빠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이 방을 책방처럼 만들고 싶다고 말하면 아빠는 “그럼 네가 조명 위치를 맘대로 바꿀 수 있게 조명 레일을 달아줄게"라고 말하는 분이죠. 잠깐 살아도 제대로, 네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놓고 살라고 한 말씀에 제가 많이 의지했어요.










이 집에 그림책은 몇 권 정도 있어요?

대략 450권 정도 돼요. 그때그때 마음 가는 것을 샀는데, 책이란 게 사실 저에게는 기억의 의미가 더 커요. 뭐랄까, 저는 추억하는 걸 좋아하는데 기억력이 없거든요.(웃음) 그래서 뭐가 좋았고 뭐가 슬펐는지 생각이 안 날 때 그림책을 통해 좋았던 순간, 의미 있는 순간을 간직할 수 있어서 좋아요.








재미있게 읽은 집 관련 그림책이 있으면 추천해주세요.

<나의 작은 집>(김선진 글그림, 상수리) <틈만 나면>(이순옥 글그림, 길벗어린이) 한번 읽어보세요. <나의 작은 집>은 말 그대로 작은 집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한 이야기예요. 사는 사람에 따라 집이 계속 바뀌죠. 카센터였다가 사진관이었다가 모자 가게였다가. 같은 집이라도 사는 사람에 따라 다른 공간이 된다는 걸 잘 보여줘요. <빌리브> 구독자라면 틀림없이 좋아할 거예요. 그리고 <틈만 나면>은 틈을 비집고 어떻게든 크는 식물 이야기예요. 멋스러운 정원이나 화단 또는 예쁜 화분이 아니더라도 시멘트 틈, 콘크리트 틈, 아스팔트 틈 어디서라도 계속해서 자라고 피어날 거라는 이야기를 들려줘요. 저는 요즘 어떤 모습이든 상황이든 상관없이 그저 살아가는 것 자체에 관심이 많아서 이렇게 틈만 나면 생명을 틔우는 책 속의 꽃이 너무 좋아요. 완전 인생 그림책이에요.



자주 가는 서점도 있나요?

일반 서점은 그림책에 비닐 커버가 씌워진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그림책 서점이나 중고 서점을 많이 이용하는 편이에요. 생각나는 서점은 소나기책방, 마쉬책방인데 저처럼 그림책 테라피스트로 활동하는 분들이 운영하는 서점이에요. 어떤 그림책을 봐야 할지 몰라 고민될 때 물어보면 책방 사장님들이 좋은 책을 소개해줄 거예요. 만약 여러 그림책을 천천히 읽어보고 싶은 분이라면 페잇퍼를 추천드려요. 시간당 이용료가 있지만 좋은 책이 많고 카페처럼 좌석도 있어 편안하게 책을 볼 수 있어요.










시샘책방에 사람들을 불러 모아 함께 책도 본다고요.

집을 예쁘게 꾸며놓으니까 지인들을 막 초대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그러다 맨날 같은 사람 말고 모르는 사람과도 이야기하면 재미있겠다 싶어 ‘남의집’이란 플랫폼에서 그림책 모임을 열기 시작했어요. 마침 퇴사 시기가 겹쳐 내가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해야겠다는 욕심이 있었고요. 여러 주제로 모임을 여는데 대표적인 건 ‘어른의 그림책방’이에요. 제가 수집한 그림책을 책상 위에 쌓아놓고 같이 읽고 감상을 나누는 시간이죠. 신기한 게, 좋았던 책을 소개하는 시간에 각자 마음 깊숙이 있던 솔직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럼 또 그것으로 함께 이야기하고. 이게 어른이 그림책을 읽을 때 가장 큰 매력이지 않을까 싶어요.



장소가 집이라 조금 더 끈끈한 공감대가 생길 것 같아요.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어른의 그림책방’ 모임 때 그날 읽은 가장 좋았던 책으로 <수영장>(이지현 글그림, 이야기꽃)을 소개한 분이 있었어요.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날따라 이상하게 그 책을 주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선물했어요. 그런데 예전에 모임에 왔던 다른 분이 이 소식을 듣고 자신의 <수영장> 책을 제게 주고 싶다고 보내왔어요. 거기 이런 메모가 적혀 있었어요. “아끼던 책을 나도 모르게 선물한 마음에 공감합니다. 뿌듯하면서도 조금 허전한 마음이 다시 채워지길 바랍니다.” 이런 연유로 그 책이 저에게 더 특별해졌어요.



이곳에 방명록도 있다고 들었어요.

우리 집에 누가 왔다 갔는지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똑같은 구도로 사진을 남기고, 또 방명록을 써달라고 해요. 엄마, 아빠도 써야 해요. 엄마는 이렇게 쓰셨네요. “딸 집에 왔는데 방명록 쓰고 가라는 딸은 너밖에 없을걸.” 에디터 님도, 사진작가 님도, 영상감독 님도 방명록 다 쓰고 가셔야 해요.








, 그럴게요. 집을 참 알차게 활용하는 느낌이에요.

40m2(12) 남짓한 이 작은 집을 저보다 잘 활용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봐요. 퇴사하고 스스로 ‘방구석 작당가’라는 이름을 달고 방구석 플리마켓, 방구석 콘서트, 방구석 미술관도 열었어요.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인테리어에 한창 빠져 있을 때 빈티지 소품이 좋아서 관련 숍 알바를 지원했는데 다 떨어졌어요. 그래서 내가 직접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태국 여행 때 사 온 빈티지 소품이랑 찻잔 등을 모아 방구석 플리마켓을 열었죠. 또 누군가 책방에서 노래를 부르면 낭만적이겠다 싶어서 콘서트를 열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을 같이 보고 싶어서 전시회도 열었고요.










타고나길 계획가 성향인가요?

아뇨. 이 집을 꾸미면서 시작됐어요. 저는 사실 제가 좋아하는 것을 잘 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이 집을 꾸미려다 보니 커튼을 무슨 색으로 고를지, 테이블은 뭐가 좋은지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때 당근마켓을 애용했어요. 샀다 팔고 샀다 팔고. 그러면서 알았죠. 취향이라는 게 어느 날 뚝 떨어지는 게 아니구나. 좋아하는 일도 마찬가지였어요. 퇴사하고 좋아하는 걸 하면서 먹고살겠다고 생각했는데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집 꾸미기처럼 일단 해봤어요. 그러면서 ‘나는 그림책을 쓰는 것보다 그림책 모임 진행을 잘하네’, ‘물건을 파는 것보다 사는 걸 좋아하네’ 하며 저를 더 잘 알게 됐어요.










이 집은 작지만 어느 곳보다 큰 집이군요. 시샘 님에게 집은 어떤 의미예요?

저는 용기가 없는 사람이에요. 용기가 없으니까 실패가 두렵고 제가 못하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기 싫어요. 근데 집은 내가 아는 곳이고, 내가 몇 번이고 새로 시작해도 괜찮은 곳이라 무엇이든 해볼 용기가 생겨요. 저는 한 번에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몇 번이고 테이블을 옮기고 조명을 옮기며 조금씩 자리를 찾아가는 사람이라. 집은 이렇게 느리고 많은 시도를 200% 품어낼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것 같아요.



집에서 더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이 집에서 할 수 있는 건 진짜 다 해본 것 같고요.(웃음) 조금 더 넓은 데로 옮겨 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요. 무엇을 할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직 모르겠지만 어느 집이든 그곳에 가면 무엇이든 하지 않을까, 이런 기대감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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