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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할 곳이 많아 흥미로운 집

어네스트 밀러

Text | Nari Park
Photos | Flora

각 면이 조금씩 뒤틀린 비정형 찻잔, 미 중부 농장의 낡은 트랙터와 기차를 본뜬 조형물, 정제된 유약으로 빚은 식기류. 20여 년간 미네소타주에서 도예가로 활동하는 어네스트 밀러는 그의 작품처럼 심플하면서 흥미로운 삶을 산다. 집과 별채에 마련한 작업실을 오가는 ‘마이크로 반경’의 동선이지만 그 안의 삶은 누구보다 다채롭다. 마당에 텃밭을 가꾸고, 아내와 함께 열아홉 살 고양이를 돌보며, 1년 반째 ‘새집’ 보수 작업을 하고 있다.








마당을 사이에 두고 집과 작업실이 마주한 풍경을 누구나 한 번쯤 동경해봤을 것이다. ‘휴식과 작업’이라는 상반된 목적의 두 공간이 한 집에서 완벽한 독립체로 자리하는 것. 1년 반 전 이 집으로 이사 오며 도예가 어네스트 밀러Ernest Miller는 그 오랜 바람을 실현했다. 두 거리가 만나는 ‘코너 집’을 선택한 덕에 다른 집보다 마당이 두 배로 넓고, 별도 차고인 개라지garage를 개조해 두 대의 가마를 설치한 넓은 공방을 완성했다. 작가는 워싱턴 DC의 스미스소니언 크래프트 쇼Smithsonian Craft Show, 미니애폴리스의 업타운 아트 페어Uptown Art Fair, 최근에는 31년 전통의 세인트크루아밸리 포터리 투어St. Croix Valley Pottery Tour 등에 참가하며 높은 공력을 쌓아왔다.








도예 작가이자 일반인에게 도예 기술을 가르치는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나 농장이 많은 지역의 작은 농가에서 자랐어요. 농경지는 넓지만 모든 것이 작은 커뮤니티로 연결되는 환경이었죠. 1980년대 중반 급변하는 경제 상황 속에서 장차 자라서 무엇이 될지 고민해봤어요. ‘예술가가 되면 어떨까’ 막연한 생각을 품었던 것 같아요. 뭔가를 만들고, 작품을 통해 타인에게 영감을 주고, 세상이 변화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면 멋진 일이겠다 생각했죠. 이후 대학에 진학해 다양한 공예 기법을 익혔고, 졸업하고 나서 ‘미네소타에 훌륭한 도예 문화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2008년 이주를 결심했죠. 20년 넘게 도예를 하면서 일반인 대상의 도예 수업을 병행하고 있어요. 하루 종일 도자기를 빚다가 저녁 무렵 강사가 돼서 이론과 기술적인 부분을 설명하는 일은 저에게 일종의 취미이기도 해요.



도자기를 빚는 행위, 도예 작업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매 순간이 육체노동인 고된 작업이지만 흙을 만질 때만큼은 마음이 평온해지죠.



여러 물성 가운데 흙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아무래도 다목적, 즉 기능성이 좋은 재료라는 점인 것 같아요. 식기, 생활 오브제 등 원하는 것을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으니까요. 흙을 만지는 행위는 완전히 날것을 대하는 느낌이에요. 흙이 손에 닿아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지면 마음이 편안해지죠.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하며 다양한 소재와 기법을 다뤘는데, 지금 제가 도예를 보다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같아요.










도자 성형에서 형태의 쓰임을 정확하게 예측하는지, 혹은 즉흥적으로 만들어내는지 궁금합니다.

딱히 어떤 기능을 특정하기보다 사용자 입장에서 ‘열린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편이에요. 주입구가 넓은 그릇의 경우 샐러드 볼, 와플 또는 팬케이크 반죽을 담는 그릇 등 다양하게 쓸 수 있는 것처럼요. 최대한 깨끗하고 깔끔한 형태를 유지하되 쓰임에 관해서는 사용자에게 맡기는 거죠. 좀 더 디테일을 더한 오브제는 실용성보다는 공간 속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조형물로 기능할 테고요. 저는 제 식기류가 이 두 가지를 충족하길 바라며 작업합니다. 구멍을 여러 개 낸 원통형 보관함은 언뜻 선반 위에 진열하기 좋은 오브제 같지만, 사실 마늘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용도로 제작했죠. 소시지나 치즈 같은 사이드 디시를 담는 사각 접시는 바닥 굽 부분을 변형시켜서 뒤집어놓으면 조형적인 매력이 있어요. 이 같은 재미를 줄 수 있는 기물을 다듬는 정교한 과정을 즐겨요. 사물이 제게 어떤 이야기를 건네는지 들으려고 노력하죠.



가장 인기가 많은 작품으로는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머그겠죠. 비정형의 육각 면으로 이뤄진 찻잔을 손으로 이리저리 감싸면서 차를 마시다 보면 티타임이 꽤 재미있어요. 찻잔을 뒤집어놓으면 작은 오브제가 되기도 하고요. 저에게는 도자의 감촉, 손에 닿는 질감이 매우 중요한데, 그 모든 것들을 집약한 가장 작은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머그는 일상과 정물 사이, 그 간극에 놓인 오브제예요. 집 어디에나 둘 수 있고 제 기능을 하면서 조형물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찾는 아이템이죠.








미국 중서부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축물, 트랙터 같은 농장 기계에서 영감을 얻은 작업물로도 잘 알려져 있어요.

오래전부터 트랙터와 오래된 기차 같은 조형물을 도자기로 만들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BBC에서 옥션 하우스에 관한 내용을 방송했는데 ‘부강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의 100년 가까운, 연식이 오래된 기차를 구입해 보수해서 다시 작동시킨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기차와 트렉터 같은 오브제를 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도자기로 구현해보고 싶었어요.










작업에 영감을 주는 자연, 특히 거주하는 지역인 미네소타 특유의 목가적 풍경이란 어떤 것을 말하나요?

겨우내 눈이 많이 내리기 때문에 늘 사위가 희고 눈부시죠. 설원이나 콘크리트 사이를 뚫고 푸른 잎이 솟아오를 때 자연의 생명력을 색으로 구현하기도 합니다. 흰 주전자 뚜껑에 푸른색 집 모양 손잡이를 다는 식으로요. 콘크리트를 회색, 자연을 녹색으로 비유하기도 하고요. 제설차가 분주하게 도시를 돌아다니고 집집마다 제설기로 눈을 쓸어내는 풍경, 모든 것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떠올리며 작업하기도 하고요.



작품은 어떤 경로로 구매할 수 있나요?

세인트폴에 있는 그랜드 힐 갤러리Grand Hill Gallery, 대니시 티크 클래식Danish Teak Classics에서 소품을 판매해요. 사전 예약자에 한해 제 스튜디오를 오픈하고 있으며, 앞으로 작품을 모아 오픈 스튜디오 세일을 할 계획이에요.










일반인 대상의 도예 수업 강사이기도 해요.

가르치는 행위를 통해 제 작업을 돌아보게 되는 장점이 있어요. 일례로 수업을 하다 보면 종종 어떤 두려움 같은 것을 느끼는 수강생을 만나게 돼요.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분해지는 것이 어려운 분들이죠. 그럴 때는 천천히 ’A, B, C‘를 발음하며 호흡을 가라앉힐 수 있도록 도와줘요. 도예라는 행위 자체가 많은 긴장을 불러오고 뭔가 배우는 행위가 어려운 일이라는 걸 상기하게 돼요. 그렇게 수업을 마치고 제 작업으로 돌아오면 기분이 정화되는 걸 느낍니다.



도예가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아침에 일어나 작업 전 1시간 정도 뉴스를 듣고 식사를 준비합니다. 그런 다음 가마에서 초벌 또는 재벌구이 할 작품을 살피고, 납품처의 마감 기한 등을 체크하죠. 오전 작업 후 오후에는 1시간 정도 사이클을 즐길 때도 있어요. 세인트폴의 미시시피강을 끼고 달리는 루트를 선호하죠. 그렇게 한 번씩 마음도 정화하고 작업 동력도 얻어요.




행복을 느끼는 데에서 공간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아요.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공간 그 자체만 있으면 되죠.”




집과 작업실을 선택할 때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는 편인가요?

집 구조나 설계를 우선적으로 봐요. 1년 반 전에 현재 집으로 이사 왔는데 아직까지 리모델링을 하고 있죠. 몇 가지 구조와 생활 동선을 정리해야 했는데 지금까지 침실 2개를 볕이 잘 들도록 수리했어요. 리빙 룸과 실내 창고 등 할 일이 산적해 있지만 고쳐나갈 공간이 있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집 구조 가운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었는지 궁금해요.

모든 라이프스타일 동선이 한 층에서 이루어지는 구조가 마음에 들었어요. 집에 들어서면 큰 창고가 있어 자전거 등을 보관하기 쉽고, 그 옆으로 층고가 높은 작업실이 자리하죠. 아내의 집무실이자 열아홉 살 반려 고양이 벨라가 휴식하는 공간이에요. 문을 닫으면 밀폐된 공간이 되는 독립된 주방은 저희 부부의 일상에서 매우 중요해요. 종종 지인들을 초대해 모임을 즐기는데, 이곳에서 식사와 대화를 즐기고 저희는 즉석에서 요리를 서빙할 수 있으니까요. 또 제가 제작한 도자기를 테스트하는 공간으로도 매우 중요하고요. 주방 옆으로 자리한 또 하나의 리빙 룸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에요. 벽에는 아내가 수집한 미술 작품을 걸어두고, 선반에는 작가 친구들에게 받은 작품과 그간 제가 모은 작품을 보관합니다.










하루 중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을 꼽는다면 언제일까요?

일과 시작 전, 리빙 룸에서 뭔가를 하며 잠시 차분해지는 시간이에요.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고 짧은 독서를 즐기는 시간이 좋아요. 행복을 느끼는 데에서 공간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공간 그 자체만 있으면 되는 거죠.



집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사회적 규율이나 의무를 내려놓고 온전히 편안해질 수 있는 공간이에요. 그렇다고 너무 늘어지지는 않는, 약간의 자극과 영감을 주는 것들로 채운 곳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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