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플로랑스 엘쿠비는 자녀들을 출가시킨 후 다시 파리로 돌아와 낯선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뷰티 오브제 스타일리스트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일. 그녀는 오랫동안 점찍어두었던 튈르리 정원Tuileries Garden을 품고 있는 파리 1구 지역 내 160㎡ 규모의 아파트를 찾아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고 도전하고 싶은 감각들을 담았다. 라파르망 파리지앵은 그녀의 독자적 브랜드이자 집과 일터 역할을 하는 장소다.
처음 라파르망 파리지앵L’Appartement Parisien이란 이름을 듣고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인 줄 알았어요.
실제로 그런 문의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웃음) 그러면 저는 ‘공간’이 아니라 ‘물건’을 다룬다고 설명하죠. 제 일이 건축에 감각을 더하는 인테리어 디자인과 연결 고리가 있고, 집이자 일터인 이 아파트의 물리적 공간 자체가 플로랑스 엘쿠비Florence Elkouby의 재능을 보여주는 포트폴리오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붙였어요.
뷰티 오브제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 자체가 생소한데,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면요?
예를 들어 조향사가 향을 창조하는 사람이라면 저는 향기에 이야기를 입히고 브랜드와 연결시킬 수 있는 향수병, 패키지, 포장지, 상자 등을 디자인하죠. 패션에 비유하면 패션 디자이너가 만든 옷에 어울리는 모델, 장소, 소품 등을 스타일링해 옷을 대변하는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뷰티 영역으로 한정한 것은 아니지만 겔랑, 시세이도, 지방시, 클로에 등 패션 브랜드 향수 작업을 많이 했기 때문에 뷰티 오브제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파리지앵은 타인의 시선보다 자기만족을 중요시하고, 완벽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부족한 것까지 매력으로 드러내려 합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파리지앵 스타일은 무엇인가요?
‘파리지앵의 99%는 파리 너머에 고향이 있다’는 말이 있어요. 그만큼 파리는 다양한 지역에서 온 프랑스인뿐 아니라 여러 인종과 민족이 뒤섞인 도시예요. 뉴욕 스타일이라고 하면 누군가는 브루클린의 빈티지한 인테리어가, 또 누군가는 맨해튼의 럭셔리 인테리어가 떠오르겠지만 파리지앵 스타일이라고 하면 감이 안 잡혀요. 왜냐하면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곳이 파리거든요. 트렌드가 아니라 당당한 태도와 솔직함이 파리지앵 스타일을 형성하죠. 파리지앵은 타인의 시선보다 자기만족을 중요시하고, 완벽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부족한 것까지 매력으로 드러내려 합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물었을 때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죠. 저에게 파리지앵 스타일이란 무정체성이에요.
무엇을 좋아하나요?
시기는 유머와 시각적 관능미가 가득했던 1960년대, 공간은 모든 물건에 은색 스프레이를 뿌려 별빛처럼 빛났던 앤디 워홀의 더 팩토리, 인물은 트위기Twiggy, 베르너 판톤Verner Panton, 에로 아르니오Eero Aarnio. 이곳에서는 이 모든 것을 떠올리게 하는 컬러, 패턴, 물건을 볼 수 있어요.
그렇다면 당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채워진 집을 둘러보는 것만으로 당신을 파악할 수 있겠네요.
그렇죠. 그래서 클라이언트 첫 미팅은 집에서 합니다. 집에서 와인을 마시며 대화를 시작해요.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그들이 직접 이곳에 와서 물건을 보고 만지고 교감하면서 제 취향을 느낄 수 있죠.
집에는 어떤 모습의 당신이 숨겨져 있나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모든 일을 즐겁게, 여유만만하게 소화하려 하는 밝은 성격의 소녀가 이곳에 있어요. 발전과 완성의 강박으로 자신을 무리하게 몰아가다 보면 일에 매몰되기 쉬워요. 일도 삶도 즐길 수 있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물건으로 당신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스포트라이트 조명이 없다는 점. 오직 간접조명뿐이에요. 욕실에도 간접조명만 있는데 얼굴이 더 예뻐 보여요.(웃음) 포르나세티 캐비닛에 새겨진 얼룩말, 벤치 위의 원숭이, 침실 시트의 표범 문양 등 각종 동식물 패턴이 동화적 분위기를 내죠. 소파 위에 컬러풀한 쿠션을 쌓아두는 것도 저의 느긋하고 여유로운 성격을 반영한 것이에요.
집 안에도 여러 가지 스타일이 혼재되어 있어요. 마치 파리처럼요.
가구와 조명은 북유럽 디자인(덴마크 브랜드 구비 제품), 캐비닛과 소품은 이탈리아 디자인(포르나세티 제품), 러그·쿠션·커튼 등은 보헤미안 프렌치 디자인(르 몽드 소바주), 포인트 벽은 브리티시 클래식 스타일(하우스 오브 해크니)로 구비했죠. 이런 다양한 스타일로 어지럽지 않도록 벽, 바닥, 천장은 미니멀 컬러와 톤으로 마감했고요.
특히 사진 작품이 눈에 띄어요.
갤러리 드 랑스탕Galerie de l’Instant에서 구입한 것인데, 태어나서 성장하고 결혼하고 출산하고 자녀를 기르면서 나이가 드는, 한 여성의 일대기를 추측할 수 있는 작품 시리즈입니다. 각 공간마다 제 인생과 겹치는 희로애락의 순간이 있죠. 전 일을 할 때도 아름답고 우아한 감각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 삶처럼 달콤하고 씁쓸하고 기쁘고 슬픈, 미묘한 여러 감정이 느껴지는 것이 좋은 작업이라 생각해요.
구조도 변경했다고 들었어요.
파리 오스만 양식 아파트의 특징이자 단점이 주방이 매우 좁다는 거예요. 먹고 마시고 나누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생각하는 저에게 주방은 시급히 개조해야 할 부분이었죠. 해가 잘 드는 남쪽으로 주방을 옮기고 창을 더 크게 만들었어요. 거실도 다이닝 룸에 반 이상 양보했죠. 거실에서 보면 양 갈래 길이 나와요. 집에서 맛있는 요리를 하려면 왼쪽 부엌으로, 밖에 나가 외식을 하려면 오른쪽 현관으로 가라!
뷰티 오브제 스타일리스트 일이 인테리어 디자인과 맥락이 비슷하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인테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사람들은 좋아하는 물건으로 취향을 드러내려 하지만 사실 공간에서 중요한 것은 물건 외의 요소예요. 내가 좋아하는 물건을 배치할 바닥, 벽, 천장을 잘 마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배경이 분위기를 만들죠. 욕실 바닥을 패턴 타일로만 장식해도 분위기가 달라져요. 그리고 좋은 가구보다 질감이 느껴지는 러그에 투자하세요. 뭔가 채우려 하지 않고 덜어내려는 노력이 중요해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거겠죠. 인스타그램 말고 자신의 이미지로 집을 채우세요.
자녀들을 독립시킨 후 다시 파리로 돌아와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더욱이 세상 어디에도 없던 뷰티 오브제 스타일리스트라는 영역을 개척했죠. 어떻게 인생 전환을 시도할 수 있었나요?
일을 하다 보면 그만둘까 말까 망설여질 때가 있어요.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불안감 때문에 시작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머리에 맴도는 생각을 떨쳐내지도 못해요. 과거에는 엉덩이를 붙이고 책상에 앉아서 인내하는 방법이 옳다고 여겼지만, 지금은 적절하게 포기하고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면 생각을 붙들지 말고 움직여야 해요. 사람들은 무언가 지속하던 일을 그만두는 것을 실패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실패가 아니라 용기예요. 방향을 전환해서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죠. 인생은 생각보다 길지 않아요. 선택지가 없어질 때까지 자신을 몰아가지 말고 일단 멈춰보세요. 포기할 줄 아는 사람만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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