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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다양성, 도시, 로컬

대림상가 3층에서 머금는 즐거움 한잔

홍중섭 끽비어컴퍼니 대표

Text | Solhee Yoon
Photos | Ken Pyun
Film | Taemin Son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공간을 시작해도 될까. 홍중섭 끽비어컴퍼니 대표는 그래도 된다고 답하는 듯하다. 사업 계획서 한 장 없이 맥주가 좋아 만난 친구들과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길 장소를 만들고 보니 이렇듯 5년 차 사업체가 되어 있으니까. 어쩌면 하나의 공간을 일구는 데 필요한 건 대용량 프레젠테이션 파일이나 여러 장의 입지 분석표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가득 찬 그것을 한껏 만끽하는 태도일지 모른다.








끽비어컴퍼니의 ‘끽’이란 단어가 계속 아른거리네요. 어떤 의미예요?

‘먹을 끽()’ 자를 써요. ‘먹다, 마시다, 피우다’라는 뜻의 한자예요. ‘끽차’, ‘끽연’도, 음식이나 어떤 대상을 마음껏 즐기고 나눈다는 ‘만끽’도 이 한자를 써요. 저희가 만든 맥주를 마음껏 즐겼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이름 지었습니다. 그때는 멤버가 다섯이었는데 만장일치였던 것 같아요.








동업하는 분들이 꽤 많네요. 어느 결정도 쉽지 않았겠어요.

저희는 학창 시절 친구라거나 지인의 지인 이런 관계도 아니라서요. 양조장에서 직장 동료로 만났습니다. 맥주를 좋아해서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기웃대는 사람들끼리 “맥주 좋아하세요?, “어떤 거 좋아하세요?, “우리 공방 하나 차려서 같이 놀까요?” 이러면서 모인 거거든요. 애초에 사업을 같이하겠다는 상상도 하지 않았던 터라 그런지 오히려 서로 존중하며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그럼 사업을 해보자고 한 결정적 계기는 뭐였어요?

여기를 빌린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웃음) 처음에는 신촌 근방으로 공방 자리를 찾았어요. 그러던 중에 을지로 대림상가에 자리가 하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와서 봤더니 꽤 반듯하고 주변에 사무실도 많아서 “우리 아예 펍을 해볼까요?” 하고 말을 맞춘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걸 누군가가 같이 좋아해 준다는 건 최고의 기쁨 같.”




세상에, 이 공간이 큰 역할을 했네요.

저희가 얼마나 즉흥적이었냐 하면, 여기 처음 와본 날 바로 계약금을 걸었어요. 주변 시세를 알아보거나 다른 자리를 찾아보지도 않고요. ‘그냥 우리라면 재미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맥주만 만들어서 팔아보자’ 그런 가벼운 생각이었죠. 이상한 자신감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5년 전이면 대림상가가 이렇게 번성하지 않았을 텐데요. 지금이야 예쁘고 멋진 카페나 음식점이 많지만.

이쪽 라인에서 저녁 6시 이후에 불 켜진 상가는 저희가 유일했어요. 이 길목을 비추는 가로등 같은 공간이었죠. 그러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상권이란 게 생겼어요. 유동 인구가 배로 늘었고 길목 자체가 따듯해졌다고 해야 할까요. 저희도 ‘이런 데가 생겼네’, ‘저기가 바뀌었네’ 하면서 매일 새롭게 발견하고 있어요.










왜 맥주가 좋았나요?

이전에 보험회사에서 손해사정사 일을 했어요. 아무래도 송사에 휘말린 분과 계속 이야기를 해야 하는 직업이라 업무 강도가 굉장히 높았어요. 그때 제 낙이 퇴근 후 맥주 한잔이었어요. 그러다 어차피 한잔 마실 거 조금 비싼 걸로 마셔보자 싶어서 눈을 돌렸는데 위스키는 너무 비싸고, 크래프트 비어를 발견한 거죠. 홈 브루잉도 해봤어요.



어땠어요? 처음부터 성공했다면 믿지 않을래요.

고백하자면 처음 한 건 정말 다 버렸어요. 한 모금도 넘기지 못했어요. 그래도 혹시 몰라 엄마한테 한 잔 드렸다가 잔소리 엄청나게 들었어요. ‘이런 걸 뭐 하러 하냐, 이게 무슨 맥주고 발효냐.(웃음) 혹시 이 글을 보는 분들 중 홈 브루잉에 관심이 있고 도전할 생각이 있는 분이 있다면 첫째도 둘째도 위생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의 실패 요인을 분석하면 당이 조금이라도 더 나오길 바라는 마음에 식혜 만들 때 엿기름 짜듯이 맥주 몰트를 손으로 짠 게 문제였습니다.








그런 시행착오를 딛고 이제는 양조장도 운영하는군요. 양조장 차리기 전에는 어떤 방식으로 맥주를 만들었나요?

집시 양조라고 하는데요. 여러 양조장을 돌면서 장비를 빌려 쓰는 방식으로 양조를 해요. 저희는 당시 5명이었고 현업에서 양조사로 일하는 친구도 있었기 때문에 알고 지내는 양조장 대표들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드리고, 이런 맥주를 만들려고 하는데 공간을 좀 빌릴 수 있느냐 문의해서 진행했어요. 감사하게도 양조장 대표들께서 배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저희 레시피를 보고 응원도 해주시고 같이 협업하기도 하고요. 그때 만든 여섯 가지 제품 중 두 가지는 연중 생산하는 대표 맥주로 유지하고 있어요. ‘꿀꺽’하고 ‘스밈’이에요.



맥주 이름이 독특해요. 보통 지역명을 넣거나 브랜드명을 강조하잖아요.

저희는 그 맛의 분위기를 표현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꿀꺽 같은 경우는 꿀꺽꿀꺽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취지였고, 스밈은 IPA 맥주라서 향이 있고 쓴맛이 나는 맥주를 아직은 대중이 어려워하는 부분이 있어 쉽게 다가가 스며들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어요. 체리, 카카오, 초콜릿이 들어가 ‘치키체카초’라고 이름 지은 것도 있고, 향이 팡팡 터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팡팡’이라고 부르는 것도 있어요. 맥주 시음할 때 어떤 이름이 좋을지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받다가 제일 말맛이 좋은 단어를 고르게 되는 것 같아요.








이름 지을 때 재미있겠는데요.

처음엔 재미있었는데 5년 차 되니까 아이디어 고갈이에요. 요즘에는 고뇌의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신메뉴가 자주 나오기 때문이겠죠. 그 원인이 ‘월간 끽비어’ 프로젝트 아닐까요?

코로나19 대유행이 오면서 홈술족은 늘었지만 유동 인구는 줄었잖아요. 저희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어요. 한번 경험한 제품의 재구매를 유도하기보다 우리만의 색깔이 묻어나는 재미난 제품을 소개하는 게 더 눈에 띄겠다 싶어서 매달 새로운 맛을 출시하는 ‘월간 끽비어’를 시작했어요. 저희에게도 도전이었죠. 아예 프로젝트 소개 글에도 “사서 고생의 아이콘 끽비어컴퍼니”라고 쓸 정도로.(웃음) 덕분에 평소 사용하지 않던 재료를 들여다볼 수 있어서 의미 있는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디저트 코코넛레밍턴처럼 진득하고 달콤한 맛을 구현한 ‘코코넛레밍턴’이나 제주도에서 자란 초당 옥수수를 사용해 은은한 단맛을 낸 ‘콘 퍼 세컨드’가 대표적이에요.












맥주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눈을 반짝여도 되나요? 맥주로 한 편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실제로 그래요. 제게 특별한 맥주도 있어요. ‘사랑하는 여름’이란 이름의 맥주인데 결혼하며 기념으로 만들었어요. 신혼여행지가 하와이였거든요. 하와이가 구아바로 유명하잖아요. 그래서 구아바 풍미를 내면서도 소금을 약간 첨가해 살짝 신맛이 돌면서도 짭조름한 고제 스타일로 입맛을 돋우도록 만들었어요. 제가 여섯 멤버 중 처음으로 결혼했는데 아마도 결혼 맥주 만들기가 끽비어컴퍼니의 전통처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일로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시간을 숙성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어떻게 보면 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부분일 것 같아요. 스스로 무언가를 하고 싶어서 모였고, 우리가 좋아하는 걸 남들과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이 시간을 살고 있는 거니까요. 내가 좋아하는 걸 누군가가 같이 좋아해준다는 건 최고의 기쁨 같거든요. 이 펍만 해도 그냥 저희끼리 아지트처럼 즐기던 곳이었는데 단골이 하나둘씩 늘고 그분들이 같이 아껴주니까 너무 감사하잖아요. 맥주를 더 맛있게 만들고 싶고 더 재미있는 거 하고 싶고, 그러면서 서로 애착을 키워가고 있죠. 물론 어려운 일이에요. 그래서 안 될지언정 계속 무언가를 시도할 것 같아요.








운영한 지 딱 5년 됐다고요. 감회가 새롭겠어요.

느끼셨겠지만 서울 한가운데에서 펍을 운영하겠다, 양조장을 차리겠다, 처음부터 이런 목표로 시작한 일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반성도 많고 깨달음도 많고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많아요.



최근에는 뭐가 제일 고민이에요?

멤버들과 우리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해 최근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마니아층을 두껍게 만들어 성장하는 길과 대중층을 넓게 만들어 성장하는 길, 둘 중 끽비어컴퍼니는 어디에 어울리느냐에 관한 것이었죠. 저희가 정한 건 크래프트 비어를 처음 만나고 이제 맛을 발견해가는 분들이 여러 경험을 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되자는 것. ‘이런 희한한 맥주도 있구나, 이거 좀 더 마셔봐야겠네’. 저희가 바라는 반응은 딱 이거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제 여름인데 본인이 맥주를 즐기는 방법을 말해주세요.

술 자체가 워낙 캐주얼해 즐기는 방법이 다양하지만, 특히 제가 여름에 즐기는 방법이 있어요. 종일 땀 흘려서 힘든 날, 집에 도착해 샤워하고 나서 미리 냉동실에 넣어둔 맥주 한 캔 꺼내서 벌컥벌컥 한번에 들이켜는 거, 그거 제일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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