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약 15평) 아파트면 충분히 넓은 거예요.” 파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건축가 시뤼스 아르달랑은 규모가 아니라 기능과 활용 요소에 따라 삶의 충만감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그는 다재다능한 50㎡ 면적의 집을 만들기 위해 벽을 다 부수고 두 사람의 일상에 맞춘 ‘집 속의 집’을 지었다. 장 프루베의 조립식 주택에서 영감받았다는, 마호가니 스타일 나무 합판으로 만든 가구가 벽과 의자가 되는 그 집에는 내내 쾌적하고 여유로운 기운이 감돌았다.
시뤼스 아르달랑Cyrus Ardalan 씨의 집 내부가 이렇게 밝고 쾌적할 줄 몰랐어요.
저도 이사한 후에야 이곳이 프랑스 파리 태생 디자이너 로제 앙제Roger Anger가 1960년대에 지은 아파트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의 흔적을 찾을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부분이 손상되고 개조되어 있었거든요. 설계 도면을 그리면서 중정을 지나 아파트로 진입하는 구조, 건물 전면 모자이크, 불규칙한 창 크기, 바닥과 천장에 매립한 중앙 난방 시스템, 내부에 빛을 끌어들이기 위해 고심한 동선 등이 보였어요. 이 집을 선택한 큰 이유 중 하나인, 내부 벽을 모두 부술 수 있다는 점, 즉 빈 도화지 같은 내부 공간 또한 특징이죠.
벽을 다 부수고 다시 지을 수 있어서 이 집을 선택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네요.
파리에서는 정부 규제 때문에 가벽을 해체할 수 있는 구조의 아파트를 건축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런데 벽을 부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점, 선, 면을 디자인할 수 있다면 50㎡ 면적은 두 사람이 살기에 충분하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보통 집이 좁다고 느끼는 이유는 물리적 크기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하지 않은 구조와 기능과 효율을 반영하지 않은 방 크기 때문이거든요. 파리 평균 원룸 면적 10㎡의 방이라도 최적화해서 사용한다면 좁고 불편하다기보다 손을 뻗으면 모두 닿을 수 있는 효율적인 크기라고 생각할 거예요. 이 집도 욕실이 이상하리만큼 컸어요.
“좁다고 느끼는 이유는 물리적 크기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하지 않은 구조와 기능과 효율을 반영하지 않은 방 크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벽을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요.
습관과 동선을 살펴보니 구조가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소파에 앉아 창밖 보는 것을 좋아하니 가장 큰 창 앞에 거실을 배치하고, 부엌은 해가 잘 드는 남쪽, 침실은 서늘한 북쪽으로 정한 후 남는 공간에 욕실 복도 등을 채웠죠. 벽을 다시 세운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빌트인 가구처럼 짜 맞춘 책장, 옷장, 서랍장, 의자 등이 그대로 공간을 분리하는 방식을 떠올렸죠. 모티프는 장 프루베Jean Prouvé의 조립식 주택(Maison Démontable)에서 얻었어요. 장 프루베는 ‘가구와 건물 사이에 구조적 차이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 유랑민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무와 철로 운반, 조립, 해체까지 손쉬운 조립식 주택을 지었어요. 저는 땅을 파지 않고 프레임을 세운다는 구축 원칙에 따라 공간 속에 상자를 만드는 식으로 마호가니 원목 스타일 합판으로 ‘집 속의 집’을 만들었죠. 상자 안은 침실이 있는 사적 영역, 밖은 거실과 부엌이 있는 공적 영역으로 나뉩니다. 벽 역할을 하는 책장은 상자 밖에서는 책장이지만 상자 안 침실에서 보면 서랍장이죠. 부엌부터 거실을 둘러싸는 서랍장도 다이닝 룸 영역에서 벤치로 전환됩니다.
한 뼘의 잉여 공간도 남기지 않고 살뜰하게 가구를 짜 맞추는 일은 무척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중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요?
설계와 조립은 숫자만 잘 파악하면 되는 일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어요. 문제는 로제 앙제(아파트 건축가)에게 있었죠.(웃음) 그가 디자인했을 당시 중앙 난방 시스템을 천장과 바닥에 매립한다는 건 획기적인 아이디어였겠지만 그 때문에 인터넷, 조명, 가전 기구 등의 전기선을 감출 공간이 없었어요. 벽에 못을 막는 것도 불가능했고요. 그렇다고 선을 지저분하게 노출시키는 것은 절대 간과할 수 없었죠. 그래서 가구 안에 모든 선을 감쪽같이 숨기고, 못을 사용하지 않고 모든 가구를 고정하기 위해 설계 도면과 씨름해야 했어요. 지금 제가 앉아 있는 벤치도 양쪽 위아래 가구가 짓누르는 힘으로 지탱하고 있는 거예요. 조명은 미리 선택해서 전선 위치를 정한 후 따로 스위치를 만들었죠. 주방에 있는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와 샤를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 조명 전선은 싱크대 뒤에서 연결되어 있는데 스위치 하나로 조절해요. 손님들이 마음대로 조명을 끌 수도, 옮길 수도 없어요.(웃음)
벽, 바닥, 천장만 고급 자재를 사용해도 훌륭한 인테리어가 된다고 말한 디자이너가 있었어요. 이 집이 유독 깔끔해 보이는 것은 나무 재질과 화이트 컬러 바닥 때문이 아닐까요?
벽, 바닥, 천장 분위기가 집 전체에서 8할 정도 차지할 겁니다. 하지만 고급 자재가 항상 더 좋은 결과를 만든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바닥의 경우 청소와 관리가 편리해야 하기 때문에 주차장에서 사용하는 저렴한 페인트로도 충분하죠. 번쩍거리는 광택(저렴할수록 광택이 강하다)이 차분한 나무 소재와 대치되면서 공간에 생동감을 주기도 하고요. 합판은 고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샤를로트 페리앙은 ‘디자인은 소재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라며 마호가니 특유의 절제 미감을 디자인으로 삼았죠. 비용 때문에 실제 마호가니 원목을 쓸 수는 없었지만 그런 차분한 분위기를 살리고 싶었어요.
둥근 나무 손잡이, 침대 양쪽에 커플처럼 마주 보고 있는 벽조명, 각진 서랍장 사이에서 유연하게 균형을 잡아주는 타원형 테이블…. 곳곳에서 디테일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어요.
섬세한 부분까지 알아주니 고맙네요. 건축가만이 공감하는, 티 나지 않지만 신경 쓰이는 요소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침실에는 양극 처리된 알루미늄으로 손잡이를 만들었지만 거실과 부엌 쪽 가구는 나무 손잡이로 바꿨어요. 빛이 잘 드는 곳에서는 알루미늄 손잡이가 뜨거워져 변형될 수 있기 때문이죠.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 건축가들에게 묻는다면 대부분 그렇다고 답할 거예요. 건축가들은 선 하나가 타인의 삶을 재단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거든요.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는 모든 시공 과정에서 어긋날 수 있는 타일 위치까지 고려해 바닥, 벽, 천장까지 이어지는 모든 선을 맞추는 데 집착했다고 하죠.
파리는 집이 좁고 비싼 것으로 악명이 높아요. 파리 건축가들이 명심해야 하는 점이 있을까요?
파리 건축가들이 하는 말이 있죠. “좁다고 생각하지 마라. 왜냐하면 파리 전체가 당신의 집이니까.” 그만큼 물리적 규모는 작지만 파리라는 배경이 갖는 힘이 크다는 것을 농담식으로 표현한 거예요. 실제 10㎡ 집이라고 해도 에펠탑이 보이는 작은 창문이 있다면 모두들 살고 싶어할걸요. 이론상으로는 좁은 집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다목적 가구로 공간 쓰임새를 확장할 수 있겠지만, 야외와 연결되는 요소, 예를 들면 푸른 공원이 보이는 창문, 루프톱 등을 갖추는 것만으로 충만감을 느낄 수 있어요. 그런 점에서 파리 건축가들은 좁다는 생각 자체를 버리고, 공간을 어떻게 파리와 연결 지을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해요. 안팎이 연결되는 투명한 집을 만들어야 하는 거죠.
눈에 띄는 디자인 가구가 여럿인데 자세히 소개해주세요.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건축가들의 빈티지 제품이에요. 거실에는 이탈리아 건축가 치니 보에리Cini Boeri의 브리가디에르Brigadier 소파와 가에 아울렌티Gae Aulenti의 타볼로 콘 루오테Tavolo con Ruote 커피 테이블, 파리 시테 대학교를 위해 디자인한 장 프루베의 안토니Antony 체어가 있고, 침대 양 끝에서 커플처럼 마주하고 있는 벽조명은 샤를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 다이닝 테이블 위 조명은 르코르뷔지에, 주방 가구 위에 달린 3개 세트로 이루어진 조명도 샤를로트 페리앙 빈티지 제품이죠. 최근 세네갈에 있는 클라이언트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장 프루베 가구에서 영감을 받고자 몇 개 더 구입했어요.
구조적이고 기술적인 디자인을 좋아하는 것 같네요. 미니멀한 분위기도 느껴지고요.
심플해 보이겠지만 이 집은 절대 간단하지 않아요. 복잡하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죠. ‘어떻게 잘 압축해서 보여줄 것인가’, ‘어떻게 꼭꼭 숨길 것인가’가 저의 관심사예요.(웃음). 단박에 ‘와’ 하고 탄성이 나오는 건물은 사는 사람을 돋보이게 만들 수 없어요. 그런 건축은 오히려 쉽죠. 중요한 것은 내부예요. 사람과 비슷해요. 속 깊은 사람과 오래 사귈 수 있잖아요.
도시의 집은 점점 가격이 높아져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도시를 떠나고 있어요. 런던의 경우 많은 이들이 룸메이트를 찾고, 함께 사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당신이 살고 싶은 집은 어떤 모습인가요?
파리에서 태어나 죽 이곳에서 살았기 때문인지 지금 이 집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근처 강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산책길(canal)도 있고, 잔디에 누워 와인을 마실 수 있는 공원도 있어요. 건축가 자신이 설계한 집에 살고 있으니 딱히 꿈의 공간이라고 할 만한 곳도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중요한 것은 공간이 아니라 자신이잖아요.
어느 건축가는 미래에는 냉동식품 수준이 높아지기 때문에 주방이 없어지고, 안락한 삶을 추구하면서 욕실과 침실만 존재할 것이라 예언했어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저는 반대로 주방을 중심으로 공간이 개편될 거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공간은 ‘끼리끼리 모일 수 있는 곳’이거든요. 자연스럽게 섞이고 모이고 대화하면서 새로운 생각이 발산되는 공간이 바로 다이닝이죠. 파트너와 저도 늘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잘 풀리지 않았던 문제를 해결하곤 해요. 저는 이란 프랑스 혼혈이고 파트너는 스웨덴 이란 혼혈이라 함께 이란 음식을 즐겨 먹는데, 소울 푸드 중 하나인 코레시 게이메khoresh gheymeh처럼 약한 불에 8시간 이상 졸여 만드는 음식이 많아요. 그러니 절대 주방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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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상 일본인들의 집에 대한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