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스노, 라이트 그레이, 뉴트럴 아이보리. 왠지 모르게 익숙한 이 단어들은 ‘벽지 색 1순위’ 검색 결과다. 이 이름 뒤에는 안락하고 따스하고 차분한 공간을 약속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하지만 집이라면 조금 더 생기 있고 경쾌하고 발랄해도 되는 것 아닌가? 장수원 대표의 집이 화가의 팔레트처럼 알록달록 색을 품게 된 배경이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기분이 좋아졌어요. 바닥 패턴과 노란 벽의 힘인가요?
어서 오세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까 제가 더 기쁘네요.
인테리어 공사를 언제 했나요?
1년 전 이사 오면서 했어요. 보시다시피 세로로 길쭉한 투 베이 아파트라서 하얀색 벽지로만 도배하면 심심할 것 같더라고요. 그렇다고 파티션이나 가벽을 두자니 공간이 쪼개져 답답할 것 같고요. 그래서 벽면, 바닥 면만 나누기로 했어요. 마침 집에 색칠을 좀 하고 싶었던 터라 잘됐다 싶어 부엌, 거실, 안방, 화장실까지 다 손을 댔죠.
이런 색깔 벽지는 구하기 쉽나요?
수입 벽지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에 직접 찾아가 상담을 받았는데, 제가 생각한 만큼 쨍한 컬러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당장 구할 수가 없었어요. 프랑스나 미국 사무실에서 재고 파악부터 먼저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좀 더 찾아보니까 소비자가 선택한 CMYK 값 그대로 벽지를 출력해주는 업체가 있었어요. 그곳에서 샘플로 노란색 벽지를 제작해본 결과가 무척 마음에 들어서 다른 색도 다 주문했어요. 저는 내향형 인간인데 컬러에서만큼은 외향형이에요. 컬러로 인해 생기도 얻고 기분 전환도 되는 것 같아요.
집 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예요?
상부 장을 없앤 부엌의 심플함을 좋아하지만 우리 집만의 특별함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요. 제 생각에는 화장실이 포인트인 것 같아요. 처음엔 하늘색 타일로 마감하려고 했는데 왠지 ‘화장실=푸른색’이 공식처럼 느껴져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광택이 있는 레드 타일로 마감했어요. 매번 들락날락할 때마다 만족스럽고 뿌듯해요.
어릴 때부터 이렇게 집을 가꾸는 데 관심이 많았나요?
전혀 아니에요. 30대 중반까지도 집에 별 관심이나 애정이 없었어요.
그럼 마음가짐이 바뀐 계기가 있었나요?
이 동네로 다시 이사 오면서 시작된 것 같아요. 이 동네에서만 20년 정도 살았어요. 중학생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요. 부모님 댁은 옆 단지에 그대로 있죠. 부모님과 함께 살며 키우던 강아지를 하늘나라로 보낸 다음 독립해서 다른 동네에 살았는데 삶이 달라지더라고요. 나름 오래된 주거지의 신축 빌라였는데 저에게는 좀 폐쇄적인 느낌이었어요.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이 고요하고. 저는 동네에 아이들 소리가 나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돌아왔어요. 그러면서 집을 제가 원하는 대로 꾸민 거고요.
저도 오면서 느꼈는데, 특히 오래된 아파트에서 느껴지는 매력이 있어요.
지은 지 30년이 넘었어요. 그래서 단지 내 나무도 크고 울창하죠. 아파트 단지의 그 청량한 푸르름이 제게는 중요한 것 같아요.
보통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요?
부모님이 옆 단지에 사는데 지인 강아지를 잠시 돌봐주고 계셔서 제가 새벽 6시쯤 강아지와 아침 산책을 해요. 8시 30분까지 회사에 도착해 저녁 6시까지 일하고 퇴근하면 아파트 단지 바로 옆 공원에서 운동하고 집에서 쉬는 편입니다.
하는 일에 대해 듣고 싶어요. 브랜드명이 파라킷인데 무슨 뜻인가요?
앵무새의 일종인데요. 동물 이름으로 네이밍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발견했는데, 컬러풀한 정체성이 마음에 쏙 들어서 망설이지 않고 결정했어요. 동물 이름으로 짓고 싶었던 이유는 제가 동물에 관심이 많아서인 것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동물의 지위를 물건으로 규정하고 있고 여전히 인간 다음으로 여겨지는 존재라 저나 우리 브랜드 소비자의 삶에 조금 더 가까이 당겨주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어요.
“좋아 보이는 거 말고 제가 좋아하는 걸로, 100명이 1씩 좋아하는 제품 말고 1명이 100을 좋아하는 제품을 만들고 싶어요.”
침구 시장에 뛰어든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들으면 웃으실 텐데, 광고업계에서 10년 정도 경력을 쌓은 후에 창업한 것이라 저에게 디자인은 그리 낯선 분야가 아니었어요. 쉽게 생각해 광고 시안을 위해 A4용지에 끄적이던 그림을 제대로 그려보고 싶다, 그리고 이 그림을 가장 크게 인쇄하고 싶다, 이 두 가지 바람이 있었어요. 심플했죠. 또 매일 쓸 수 있는 물건이면 좋겠다는 욕심까지 합치니 딱 침구더라고요. 그림을 종이 대신 직물에 인쇄하는 것뿐이란 착각까지 더해서요.(웃음)
국내 침구 시장도 조사했을 텐데, 어떤 게 인상적이었어요?
어떤 브랜드가 존재한다 정도의 시장 조사 외에는 깊게 파고들지 않았어요. ‘침구 세트’라고 검색했을 때 화면이 도배되다시피 뜨는 파스텔 톤의 잔잔한 패턴과는 정반대로 가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거든요. 마침 제 그림 스타일도 그러했고요.
시장의 요구와 반대로 향하면 소비자층이 없을 수도 있잖아요.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생각인데, 저는 좋아 보이는 거 말고 제가 좋아하는 걸로, 100명이 1씩 좋아하는 제품 말고 1명이 100을 좋아하는 제품을 만들고 싶어요.
어떤 걸 좋아하는데요?
색이나 형태에 대한 고정관념, 성별에 대한 룰을 넘어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 거대한 형태와 세심한 색채가 만들어내는 질서 속의 변화, 변화 속의 질서, 이 두 가지를 붙잡고 있어요. 이게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고요. 고정관념 한 스푼, 그 반작용 한 스푼을 섞어 신경 써서 파라킷만의 균형감을 찾으려고 해요.
제품에 강아지, 코끼리, 닭 등 동물뿐만 아니라 나무, 꽃, 씨앗 등 식물도 등장하더라고요. 또 요즘 관심을 키우고 있는 분야가 있나요?
요즘 바닷속 세상에 심취해 있어요. 어떠한 추상화에서도 보지 못했던, 어떠한 상상화에도 등장하지 않았던 조형이나 색채가 심해에 있다고 생각하면 진짜 경이로워요.
환경에 대한 관심도 클 것 같아요. 집에서 실천하는 친환경 습관이 있다면 하나 알려주세요.
그나마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게 조금 덜 소비하고, 있는 거 잘 쓰고, 잘 버리자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중고 거래도 정말 많이 하게 되고요. 늘 밀폐 용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외식할 때 음식이 남으면 포장해 와요. 끝까지 잘 먹는 게 모두에게 좋으니까요.
중고 거래를 즐긴다는 말을 듣고 보니 집에 색이 많지, 물건은 별로 없네요.
‘일상에 물건은 적게, 컬러는 많게’가 제 신조예요. 한동안 파라킷에서 ‘Less Stuff, More Color’란 캠페인도 진행했어요. 가구도 낮은 걸 좋아해 부피감이 작은 것만 있고, 잘 안 쓰는 물건은 나눔하고 있어요.
저의 집이나 친구 집을 떠올려도 벽이나 마루, 천장에 원색을 쓴 경우는 정말 찾기 힘든 것 같아요.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요?
제가 연구자가 아니라서 신빙성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 사람이 집에 기대하는 느낌은 아늑함, 포근함인 것 같아요. 그래서 무채색 계열을 선호하고요. 또 튀는 걸 좋아하지 않죠. 하루 8~10시간만 입는 일상복도 검은색, 회색, 흰색을 먼저 고르는데 하물며 인테리어는 5년, 10년은 보고 살아야 하잖아요. 잘못 칠하면 시간이며 돈이며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란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유행, 트렌드 같은 대중의 기준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고요. 그런 크고 작은 이유가 모여 대체로 이런 삼차원 공간을 컬러링해보고 바꿔본 경험치가 늘어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집에 색을 입힐 때 부담감을 줄이고 가볍게 접근할 방법이 있을까요?
북유럽 인테리어, 미드센추리 모던 인테리어, 뉴트로 인테리어 등 지난 10년간의 트렌드에서 꼭 등장하는 게 목가구예요. 월넛이나 마호가니처럼 진하고 어두운색이라면 조금 어렵지만 밝은 톤의 목가구라면 벽지나 담요, 러그, 침구 색만 잘 활용해도 계절마다 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어요. 저도 하얀 거실에 뉴트럴한 소파를 둔 게 다인데, 그 앞에 샛노란 매트를 놓아 포인트를 줬어요. 또 같은 색이라도 형태나 질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니까 이 점을 활용해도 좋을 것 같아요. 전 안방의 한 면을 초록색으로 칠하고, 맞은편 하얀 벽에는 초록 식물을 배치해 같은 색이지만 다른 느낌으로 연출했어요.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식물을 보고, 침대를 정리할 때 초록 벽을 보죠.(웃음)
애정을 담아 가꾸는 공간이라는 게 느껴졌어요. 본인에게 집이란 어떤 곳인가요?
인터넷을 하다 보면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이 나를 나보다 더 잘 아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이와 비슷하게 오프라인에서 저를 저보다 잘 아는 게 집 같아요. 만일 집을 의인화한다면 저와 베스트 프렌드가 될 수 있을지 장담은 못 하겠지만 저를 가장 잘 이해할 거라고는 생각해요. 제가 꾸민 곳이라 가장 저다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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